[해외]네덜란드 델프트 역세권 공모전 이야기

기본카테고리 | 2015-05-07 오후 1:57:41 | 조회수 : 3615 | 공개

[해외]네덜란드 델프트 역세권 공모전 이야기

 

  • 2013년, 한국과 네덜란드

최근 한국 도시 개발의 화두는 아무래도 용산 역세권의 파행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용산 개발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개발이었다는 도시 및 부동산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기고문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것 같다. 뉴스들을 읽다보면  주주들간의 갈등, 비싼 토지가격, 막대한 환경부담금, 자본구조문제, 부동산 시장 침체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켜 개발 사업 청산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여진다. 가끔 용산 역세권 개발의 디폴트 기사와 함께 실리는 개발 부지의 휑한 항공사진을 보게되면  과연 그 곳의 역사와 사람들을 밀어내고 얻은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도, 사람도, 돈도 모두 잃어버렸다.

용산 역세권 개발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네덜란드에서도 역세권 개발이 붐을 이루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작년에만 역세권 관련 프로젝트를 2개 정도 하였다. 이 중에서 최근 회사에서 참여하여 당선된 델프트(Delft)시의 역세권 공모전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회사에서 공모전과 실현을 위한 후속작업에 현재 참여하고 있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세스와 설계안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델프트시는  델프트 공과 대학(TU Delft)으로 유명한 대학도시이자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가지고 있는 역사도시이다.  이 도시의 역세권(30ha)은 밀도, 투자규모 등을 고려해보면 용산 역세권의 개발 규모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용산 역세권 개발과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델프트 역세권(Spoorzone Delft)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물론 일대일 비교를 하거나 용산개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개발사업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 다만, 세계 경제 위기 때문에 개발의 난항을 겪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고 도심에 인접해서 도시의 역사성에 대한 고려, 다양한 입장 수렴 등의 내용을 위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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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델프트 역세권 대상지

 구글 지도에서 델프트 확인하기 클릭

  • 델프트 공모전의 시작: 경제 위기에 따른 유연한 도시아이디어 요구 

1990년대 네덜란드는 주로 도심 근교에 주거단지를 건설하는 Vinex 정책을 통해 주거지를 늘려갔는데, 최근들어 이들 개발의 초점은 도시 외곽보다는 도시 내부를 밀도있게 개발하여 도시성을 높이는데 맞췄다.  그러한 맥락에서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그렇듯이 밀도있게 사용되지 못하는 대표적인 도시의 비어진 틈(urban void)중에 하나로 밀도 있는 개발을 위해 주목받고 있는 곳이 바로 철도부지이다.  이러한 역세권 개발은  네덜란드의 주요 공공 교통인 철도의 중요성을  함께 높여주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현재 동시다발적으로 Rotterdam, Hague, Arnheim, Utrecht, Zwolle 시 등 많은 도시에서 역세권 재개발이 진행중이거나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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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oan Busquets의 도시설계안

최근 네덜란드의 역세권 개발 추세 속에서 이번 델프트 공모전은 조금 흥미로운 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실시된 델프트 역세권 설계 공모전이 도시 구조에 대한 최초 아이디어 설계가 아니라 재설계 공모전이라는 점이다.  1999년에 진행된 최초 공모전에서 Joan Busquets의 도시설계안이 선정되었는데, 개발을 준비하고 기존 철로를 지하화하는 등 약 15년 정도의 시간 동안 개발환경이 바뀌면서 이 계획안이 현재상황을 반영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시말해, 이 설계안은 세계 경제 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개발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델프트 시청은 현재 경제 상황에 맞는 유연한 계획안이 필요하였다.그렇다고 10년 넘게 토의되어 왔던 이 계획안을 무조건  무시하고 재설계를 했던 것이 아니라 Joan Busquets가 제안한 몇몇의 아이디어와  시의회에서 승인된 몇몇 가로들을 유지하는 것이 지켜야할 설계 가이드라인이었다.

  • 공모전 진행: 전문가, 정부, 시민의 의견 종합적인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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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almbout urbanlandscape, West8, D.O.K architects의 도시설계안

델프트 역세권 공모전은 먼저 여러 도시 및 건축사무실들을 초청하여 지난 작업들을 평가한 후 그 중 세개 회사를 선정하였다. 이렇게 선정된 회사가 내가 다니고 있는 Palmbout urban landscape, West8, 그리고 D.O.K architects 였다. 각 회사들은 2달 남짓한 프로젝트 기간동안 설계안을 완성하였고, 그 후 결과를 듣기까지 약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내가 작업을 참여하면서 프로젝트의 내용 만큼이나 흥미롭고 새롭게 느꼈던 것이 이 3개월동안에 진행된 당선작을 뽑기 위한 검증 절차였다. 이 절차는  총 세 차례의 프리젠테이션 및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시청 관계자, 이전 공모전 당선자인 Joan Busquets,  KCAP의  Kees Christiaanse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앞에서 비공개 프리젠테이션 하였고, 그 후 정치적인 결정권을 가진 시의회에서도 발표가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델프트시에 있는 5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공개프리젠테이션을 하였는데  공청회 성격을 가진 이 공개 프리젠테이션은 인터넷으로 선예약을 받아 표를 무료로 제공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설계안을 확인하면 되지 굳이 누가 저녁시간에 이것을 보러 올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몇일이 안되서 500석이 다 나갈정도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이 공개 프리젠테이션은 우리가 생각하는 딱딱한 형식의 공청회가 아닌 쇼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시민들과 발표자들간의 열띤 토론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발표가 끝난후에는 로비에 전시된 패널과 모형 앞에서 실제로 실무자들과 시민들간의 대화가 지속되었는데, 한시간이 넘도록 시민들이 자기가 관심있는 모형앞에가서 질문하는 열정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이 세차례의 발표를 통해 델프트시는 전문가, 시의회, 시민들의 의견과 반응을 종합하였고, 남은 2달여간의 시간동안 역사관련 단체의 의견을 물어 세개의 계획안중 어떤것이 가장 델프트 역사를 잘 반영하는지 조언을 들었고 부동산전문기관을 통해 각 계획안의 수익성을 계산하였다. 우리회사의 안은 세차례 발표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얻었고, 역사단체에서도 가장 델프트적인 안이라고 평가받았다. 동시에 세개의 안 중에서 경제적 수익성과 유연성이 가장 높게 평가받으면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이 과정을 다시 돌아보면 도시는 행정, 정치, 디자인, 경제, 역사, 시민참여 등이 모두 동등하게 다루어 도시의 미래상을 결정했다는점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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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시민 대상 Palmbout urbanlandscape, West8, D.O.K architects의 도시설계안 발표 현장
  • Palmbout urban landscape의 View of Delft 설계안에 대한 간략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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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계획조감도(남쪽에서 본모습)

이 글에서 우리 회사및 경쟁회사에서 제시한 도시설계안의 모든 아이디어와 현재 이슈가 되어서 실현을 위한 후속작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다루고 싶지만 이야기의 초점을 경제적으로 유연하면서도 역사를 존중하며 계획된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공모전 작업이후에 시청 및 모든 관련된 단체들간에 협의를 통해 실제 건설될 도시설계안을 만들어가는 실무 과정 다음 번에 별도로 다시 한번 다루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계획안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으로 델프트시의 공간적, 역사적 특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설계안에 반영했는지 언급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은 델프트 시만이 가지고 있는 도시 DNA라고 불렀고, 각 DNA를 새로운 역세권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설계요소로 보았다.

  • 설계 아이디어의 출발:  DNA of Del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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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델프트의 특징적인 스카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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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델프트의urban composition

우리는 델프트만의 역사적 특징을 찾기위해 도시의 구조, 경관, 공간에 대해 주목하였다. 위의 도시 구성(urban composiiton)에 관한 스케치에서 볼수 있듯이 델프트는 긴 시각적 축과 도시 실루엣,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인 Vermeer가 델프트 그림의 주제로 종종 삼았던 도시의 안쪽 공간(urban interior)등 세가지로 특징지었다. 긴 남-북의 선은 도시의 공간적 틀을 만들어내고 동서의 연결의 불연속성은 강한 시각적 축과 대비를 이루며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도시 구조는 잘 짜여진 직물처럼 종방향의 직선과 횡방향의 변화들을 가져다 준다. 이러한 도시 구조는 신-구 교회등 타워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시의 실루엣과 조화를 이루며 극대화된다. 광장,중정, 주거 골목 등의 도시 안쪽 공간은 도시의 긴 시각적 축 및 큰 도시구조와 대비를 이루면서 델프트만의 도시 DNA를 만들어 낸다. 우리회사에서는 이러한 세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긴 시각적 축을 만들어주는 남북의 중앙 공원(터널이 지나가는 선으로 상부의 공원화 의무), 가로와 수로를 계획하였고 블럭중간중간 불규칙적으로 동서 축으로 이어지는 골목들을 제안하였다. 또한 도심 타워들의 높이를 넘어서지 않는 규모에서 주요 지점에 타워를 계획하였는데 이는 계획밀도를 올려주면서 역세권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중정형의 블록 또는 코트야드를 가진 개별 건축을 제안하며 도시의 안쪽공간에 대한 재해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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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델프트의 urban interior 그림(좌:Pieter de Hooch 우:Verm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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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계획안(View of Delft)

또한 공간적으로 델프트만의 가로 공간을 찾는 것에 중점을 두고, 델프트 도심의 가로 및 수로 공간의 이미지를 차용하였다. 아래에서 보는 이미지는 계획안에서 남북을 잇는 주요가로의 이미지이다. 델프트만의 수로 폭과 높이, 재료 등을 현재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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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주요 가로 이미지
  • 미래 개발을 위한 도시의 기본 틀(Urban framework as underlying structure for development)

델프트 역세권은 현재 철도 지하화에 따라 역사 도심과 19세기후기/20세기초에 건설된 Westkwartier 및 전후 주거지인 Voorhof 의 세지역 사이에 ‘긴 구멍(long void)’으로 남아있다. 설계 아이디어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지역간을 연결해주는 공간적 틀(spatial framework)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불확실성을 가지고 미래에 바뀔수있는 건축물의 형태를 정확히 정한다기 보다는 이 공간적 틀을 확고하게 해줘 역세권에서 미래 개발이 일어나는 기본틀을 마련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였다.

도시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도시 DNA에서 언급한 세가지 요소인 긴 시각적 축, 도시 실루엣, 그리고 도시 내부 공간들을 재해석해서 계획하는 한편, 건축은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입면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주고 다른것들은 고정하지 않는 대신 자율적인 논리, 힘과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촉진시킬수 있게 하였다.

이를 위해 아래 그림과 같이 블록의 양쪽 끝에 형태적으로 엄격하게 계획된 건물들을 계획해주고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개별 개발자들이 도시의 틀에 따라 자율적인 건축을 할 수 있게 원칙만을 정해주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이 양쪽 끝에 배치된 건물을 Conerstone(초석) building이라고 불렀다. 형태적으로 엄격해야하며 개발의 시작점이 된다는 의도였다. 이러한 개발의 자율성은 불확실한 미래의 경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데 큰 의미를 가진다. 개발 초기에 양쪽에 Cornerstone building을 먼저 건설하여 향후 일어날 개발에 큰 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에 개별 건축의 자율적인 개발에도 블럭 자체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또한 블럭 중간에서 일어나는 개발은 1-2개 정도의 통로만 규정해 주고 개별 건축디자인의 자율성을 통해 다양성이라는 예측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구성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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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블럭 개발(양쪽에 확고하게 계획된 건축물과 자율적인 개별건축)
block2#12 블럭  구성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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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블럭  파사드 구성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

또한 위에서 언급한 세개의 지역(역사 도심과 19세기후기/20세기초에 건설된 Westkwartier 및 전후 주거지인 Voorhof 의 세지역)을 공간적, 프로그램적으로 특징지어 설계한 것도 지역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단계적인 개발을 통해 계획의 경제적 유연성을 높이려는 의도였다.아래의 도면은 세개의 서로 다른 지역을 설명해주고 있다. 위의 10번 그림인 주요 가로 이미지는 세지역이 만나는 곳을 시각화(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본것)한것인데,  좌측의 도시적인 느낌의 건물 지역과 우측의 개별 건축에 의해 지어진 Westkwartier지역은 다른 분위기를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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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단계적 개발과 지역성을 위한 서로다른 세개의 지역(우측: 역, 중앙 녹지가 있는 중심 개발지, 좌측 상단: Westkwartier. 좌측 하단:Voorhof)

 

  •  맺는글

현재 당선이후  우리 회사에서는 나를 포함해 사장님, 프로젝트 리더 등 4명의 소규모팀이 공모전 당선이후 실제 건설될 때 생길 문제들을 재설계하고 협의해 가고 있다. 일부 부분은 다른 회사가 제안했던 아이디어를 합하여 실제 건설이 가능한 도면들로 만들어 가고 있다. 매주 델프트시청에서 시청, 우리설계팀, 토목기술자, 개발자,부동산 전문가, 교통 전문가, 물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협의해가며 계획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쪽만의 입장이나 가치관에 치우쳐서 하는 도시개발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들을 종합하고 협의해가면서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설계가란 다양한 입장을 종합하고 이를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하게 된다.

델프트 역세권 프로젝트에 관심있는 분들은 이메일주시면 공모전 보고서(영문)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13. 4. 18

이상현 (croissang@gmail.com )

  •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석사
  • 네덜란드 TU Delft Urbanism 석사
  • Palmbout urban landscape(Rotterdam, Netherlands) 에서 junior urban designer로 근무
  • 현재, 대구시청 도시디자인과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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