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주교좌 대성당 - 대구·경북지역 신앙의 요람

기본카테고리 | 2018-04-13 오전 9:14:14 | 조회수 : 2368 | 공개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대성당 계산천주교회,
통칭 계산성당(桂山聖堂)

계산성당(桂山聖堂)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본당의 주보 성인은 루르드의 성모이다. 본당이 처음 건축된 것은 1899년으로  이 당시에는 한옥 양식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진에 의해 이 성당은 1901년 전소되고 그 위치에 현재의 서양식 성당을 세워, 1902년 12월 3일 첫 미사를 드렸다. 현재의 서양식 성당 또한 경상도 전역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점이 인정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사적 제 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1911년에 대구대목구가 설정되었을 때 주교좌성당으로 결정되었다.


​유럽의 대성당에 비해 규모나 면적이 작은 성당이지만, 서울과 먼 거리인 중부내륙의 천주교 신자들이 모이면서 일찍이 큰 교세를 형성한 곳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주교좌성당으로 대구와 경북지역 가톨릭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의 전동성당과 함께 우뚝 솟은 쌍탑이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하였으며, 원래는 1899년에 지금의 강화도 성공회성당과 유사하게 십자가 형태의 2층 구조에 기와를 올린 한식 건물로 지었으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이 나서 무너지고 그 자리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


​[계산성당 전신]

1885년 12월 제7대 조선대목구장 마리장귀스타브 블랑(한국식 이름:백규삼) 주교가 대구본당을 신설하고, 초대본당 주임으로 프랑스의 아킬레 바오로 로베르(한국식 이름:김보록) 신부를 임명하였다. 로베르 신부는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신나무골에서 3년간 은신하여 전교하였다.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 후에 신앙의 자유가 넓게 허용되었다. 그래서 1888년 겨울, 로베르 신부는 대구 읍내의 교회 진출을 위해, 신나무골에서 대구와 가까운 죽전 새방골(대구시 서구 상리동)로 옮겨 3년간 은신하여 전교하였다. 낮에는 바깥 출입을 삼가고 밤이면 상복으로 변장하고 신자들을 방문하여 성사를 주었다.

1891년 새방골에서 읍내로 들어와서 성밖 대야불 정규옥 승지댁에서 7년 동안 전교하면서 영구적인 본당을 설치할 부지를 물색하던 중 1897년 3월 김보록 신부는 현재의 계산동 성당 자리와 그 서편에 있는 동산 두 곳을 물색하였다.

김보록 신부는 동산 전부를 150냥에 매입하려고 결정하였으나, 신자들 특히 노인층 신자들은 현 계산성당 자리가 좋다고 하였다. 그들은 구릉 지대이며, 허허벌판 지대에(당시 황무지) 성당 자리를 잡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전국 어느 곳을 막론하고 성당의 위치는 대개 높은 지대에 있어 마을이나 전 시가를 내려다보게 되는데, 대구에서는 시내에서도 제일 저지대인 평지에 위치하게 되었다. 



계산동에 정착한 김보록 신부는 신자들이 성전 건축과 신부의 새 사제관(사랑채)을 짓기 위해서 한결같이 보여준 열성으로 3년 만인 1899년 이른 봄 한식(韓式)으로 지은 십자형 기와집 성당과 신부 사랑채와 신자 교육관으로 사용될 해성재(海星齋) 건물 등을 건축했다. 사제관인 신부 사랑채는 2층으로 지었으며, 채색을 잘하는 스님 5명을 고용하여 성당과 사제관을 화려하게 단청(丹靑)하였다. 서울에 세워진 약현(중림동)성당, 종현(명동 1898)성당, 인천 답동(1896)성당 등은 모두 서양식 건물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세워진 대구 성당은 순수한 한식으로 동양 건축이었다. 1899년 12월 25일 루르드의 성모께 헌당식과 축성식을 성대히 거행하고, 성모성당이라 하였다.


내가 성당을 찾던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으며, 곧 있을 지방선서로 인해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서로 섞여 전면도로의 인도에는 통행이 불편할 정도였다. 




한국판 <엑소시스트>로 알려진 영화 <검은 사제들>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계산성당은 <검은 사제들>에서 명동성당과 하나의 공간처럼 등장한다. 최 부제가 김 신부(김윤석)의 부탁으로 구마의식을 위한 성물을 가지러 가는데, 그때 나오는 성당이 명동성당과 계산성당이다.








가는날이 일요일이라 주일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따스한 날씨로 인해 밖에서 일부 진행을 하고 성당내부로 옮겨 미사가 계속 진행되었다.

























 

고딕형식의 건물로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쌓아올린 성당 외벽은 100년의 시간을 담은 듯 느낌이 장중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양옆으로 기둥이 줄지어 서 있으며, 기둥 곳곳에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로베르 신부가 성당을 지을 때 함께 만들어 붙인 것이라 한다.




















성당 내부는 양쪽의 회색 벽돌 기둥이 성스러운 기품을 더한다. 한복 차림의 성인을 그린 스테인드글라스 창도 눈여겨볼 일이다. 서울 명동성당, 전주 전동성당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 성당 건축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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