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불탱의 보물이 있는곳 『 상주 남장사 』

기본카테고리 | 2016-04-11 오전 11:06:00 | 조회수 : 2756 | 공개

목각불탱의 보물이 있는곳  『 상주 남장사

맑다고 하던 날씨가 흐려서 미세먼지와 함께 온 하늘이 안개가 낀것 같다.  한동안 꼭 찾아봐야 할 사찰 "남장사"를 다녀왔다. 

남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경상북도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시대 832년(흥덕왕 7)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186년(명종 16) 각원화상(覺圓和尙)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 일주문

"노악산남장사"라는 현판이 가장 먼저 오는 이를 반긴다.  오래되어 단청도 다 벗겨지고 이젠 기와마져 흘러내려 지나가는 사람은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남장사는 경북 상주지역에서 가장 큰 사찰로 신라 때 진감국사에 의해서 창건되었으며 이 당시의 이름은 "장백사"였다. 이 사실은 최치원이 쓴 지리산 쌍계사의 진감국사 비문에 기록돼 있고 흥덕왕 7년(832년)의 일로 나타나 있다. 1186년에 각원국사가 주석하면서 이름을 "남장사"로 바꾸었고​, 그뒤 1203년(신종 6) 금당(金堂)을 신축하였고, 조선시대인 1473년(성종 4)에 중건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사명대사가 주석하기도 하였다.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 50m정도 올라가면 공덕비가 있다.


△ 도안교

조금 더 올라가면 범종루가 보이고 그 앞에 10m정도의 석구조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도안교라 하며 외측엔 한글로, 내측은 한자로 다리이름이 적혀있는것이 특이하다.







△ 범종루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한 사찰로서 범종루의 크기로 보면 엄청 큰 절로 느껴진다.

남장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35년(인조 13) 정수선사(正修禪師)가 금당 등을 중창하였다. 조선 중·후기에 걸쳐 몇 차례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였으며, 진영각(眞影閣)과 상로전(上爐殿)이 신축되었고, 1807년(순조 7)에 진허(鎭虛)가 극락전과 조사각을 중건하였다. 다시 1889년에는 보광전, 1903년에는 칠성각, 1907년에는 염불당(念佛堂)을 건립하였다.





범종루에 있는 범종, 법고, 어북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다른 사찰의 경우 대부분 출입이 금지된 범종루지만 남장사는 목조계단을 통해 올라갈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범범종루에 오르는 이 계단은 새로 만든것 같았다.






지금도 시간에 맞추어 종을 울리는지 법고밑에 시계가 놓여져 있다.

 


범종에 새겨진 글자와 그림이 선명하다.  무슨뜻인지 알수 있는 글이였으면 좋으련만....





범종루의 단청은 매우 선명하였다. 근래에 새로 단청을 한 느낌이다.


범종루를 지나온 경내의 모습이다.  고즈넉한 느낌이 한껏 밀려왔다.  이곳이 극락보전의 영역이다.  마당은 꽤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으며  잔디와 함께 토끼풀이 전체를 덮고 있었다.





​△ 삼층석탑

​극락보전 앞쪽의 석탑과 석등들은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요즈음 것이다.





​△ 극락보전

극락보전에는 중앙의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우에 관세음(觀世音), 대세지(大勢地) 두 보살을 모셨다.

이밖에도 극락보전 안에 업경대(業鏡臺) 2점이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골에는 4기의 부도가 있고,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된 석장승 1기가 있다. 이곳에서 목판본이 개판되기도 하였는데, 조종경(趙宗敬:1495∼1535)의 《독암유고》 1권과 부록 1권, 이춘원(李春元:1571∼1634)의 《구원시집》 5권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장중함이 느껴진다.  이 전각은 1610년에 새로 지으면서 그때까지 금당 곧 본전이었던 무량전으로부터 본전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전체적으로는 절의 무게중심이 아래쪽으로 내려온 느낌이며, 위쪽에 원래 본전이었던 보광전이 있어 마치 층층시하를 이루고 있는 듯한 배치를 하고 있다.




원래 극락보전 건물은 1635년에 불탔고 지금 건물을 새로 지어 1776년과 1856년에 중수했다. 극락보전 안에는 건칠아미타불좌상의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1701년에 그린 감로왕탱을 비롯하여 18~19세기의 불화들이 전각 안을 빛내고 있다. 아미타불의 후불탱은 1741년에 조성한 불화인데, 후불탱의 본존과 보살들의 두광이 강한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는 한편, 비파를 타고 있는 사천왕의 모습은 아주 섬세한 정밀묘사여서 강약이 조화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극락보전의 어칸 사분합문에 있는 꽃창살이다. 단청은 두툼하게 입혔지만 청색이 창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 향로전

​예날 시골집 같은 분위기를 나타낸 요사채로 아궁이가 있는 부엌문과 댓돌위에 놓인 신발의 모습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극락보전의 좌측에 있는 이 건물은 근래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창고와 강학공간으로 사용되는것 같았다.




​△ 설법전


설법전 아래의 계단을 통하여 올라온 보광전의 영역이다.







​△ 요사채입구 돌계단

​설법전 옆의 요사채로 오르는 돌계단이 정겹다.








△ 보광전

​극락보전의 왼쪽으로 난 운치 있는 돌계단을 죽 따라 올라가면 다시 삼문(설법전)을 만나고 비로소 원래 본전이었던 보광전을 만나게 된다.  그 유명한 보광전이다.  이 보광전이 유명한 이유는 주불의 뒤쪽에 있는 목각탱화때문이다.  남장사 보광전의 보물은 주불인 철조비로자나불상과 목각탱화로  철조비로자나불상은 보물 990호, 목각탱화는 보물 제92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주불 뒤에 있는 후불탱화를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나무로 조각한 것이 특색이다.


 

이곳의 목각탱화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부득 문화재청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24개의 목각조각으로 8개의 판을 이어서 탱화를 만들어 금색도장을 하였다.


보광전은 남장사의 본전이었을 때에는 무량전이었으므로 아미타불을 모셨을 터이다. 그러나 새 본전으로 극락보전을 짓자 보광전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이 철조비로자나불은 14세기 공민왕 시절에 나옹화상이 조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비로자나불상 뒤에는 흔히 있는 탱화말고 목각탱(木刻幀)이 자리잡아 비로자나불을 빛내준다.







​△ 요사채

​보광전 양옆으로 주지실과 강당이 있고 요사들이 제가끔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집들이 오밀조밀 있는 이곳은 남장사의 절 분위기를 한층 돋우어준다.


​△ 요사채, 종무소


△ 금륜전, 산신각

 


​△ 진영각


​△ 공양간

​음식이 만들어지고 공양되는 공간으로 무척 깨끗하게 느껴젺으며, 이곳 또한 외부인의 출입금지구역이다.


남장사에는 부속암자가 많이 있다.  보광전 위쪽으로 있는 이 암자는 요사채로 보이며  관음전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 암자인지 알수가 없었다.  이쪽의 부속암자쪽으로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며,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출입이 금지된 곳의 또 다른 암자.  멀리서 사진만 찍어 본다.




설법전에서 나와 영산전으로 가는 오솔길이다. 철재로 만든 다리가 있으며 그 다리 아래쪽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영산전으로 가는 길에 놓여진 보살상과 돌무더기의 탑들은  아름다운 전설을 만드는듯 하였다.







​△ 영산전

​주불전과는 많이 떨어져 있는 영산전..  1978년 7월 영산전의 후불탱화에서 주불(主佛)과 16나한상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들을 봉안했다는 기록과 함께 사리 4과와 칠보류가 발견되었다.


영산전의 전탑형 굴뚝이 입구에 세워져 있다.







△ 보광전 동문


이 암자는 출입이 금지된 암자로 아마도 응향각이 아닌가 싶다.

응향각 안에는 역대 조사(祖師)의 진영(眞影)을 안치하였는데 열두 폭을 주위에 걸어놓았다. 이것은 불화 형식을 갖춘 것으로 명주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탱화와 공통점이 많다고 한다.  들어가지 못해 확인 되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다.




​△ 화장실

​주차장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찰구경을 하지 전에 잠시 들려 마음도 비운다.


​△ 주차장

이곳에 주차를 한 경우 주차장옆의 동문을 통해 보광전부터 구경하여 아래쪽 범종루까지 내려가는 동선이 좋을것이다.

30대 정도는 충분히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고 대형버스의 주차도 충분하다.


주차장 주위에 핀 아름다움들...





주차장 옆에 이야기길이라는 산책로가 길게 가꾸어져 있다.  저 멀리 벛꽃길과 나무숲까지 이어지는것 같다.




△ 이야기길

 

​시간이 촉박하여 이 이야기길은 걸어보질 못하였다.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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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를 찾기위해서는 남장동이라는 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남장동에 접어들면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감나무이다. 또한 집집마다 벽이 없는 창고 같은, 또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긴 했지만 누마루 같은 시설물을 하나씩 다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설물은 평시에는 비어 있어 그 용도를 알 길이 없지만 가을이 깊어갈 무렵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감을 깎고, 또 한편에서는 깎은 감을 실에 줄줄이 꿰어 횃대에 걸쳐놓는 일을 한다. 깎인 감들은 주렁주렁 매달려 살랑살랑한 노음산 가을바람에 알맞게 마른다. 바로 곶감을 말리는 것이다. 감나무에 조롱조롱 달린 붉은 감도 보기 좋지만, 집집마다 여러 접씩 곶감을 꿰어 말리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맛이 좋은 ‘상주 곶감’은 이렇게 사람과 자연의 손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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