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의 남쪽, 알푸하라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 Poqueira (Capileira, Bubion, Pampaneira)

그라나다, 스페인 | 2014-11-18 오후 9:40:41 | 조회수 : 3036 | 공개

 

 

뜨거운 태양 아래 땀도 나지 않는 8월 이었다.
트래킹을 하려다 길을 잘못 들어 차길로 들어가 그늘도 없는 차도의 갓길로 한참을 걸어 내려갔어야 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그 힘들었던 기억 보다 더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하얗고 아름다운 그 산골 마을들의 테라자와 티나오 구석구석에 다정하게 놓여져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
해가 지면 아마도 그곳에 나와 이야기를 나눌 그곳의 사람들을 상상해보며 문득 들었던 생각.
나는 꼭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고 싶다.

아름다운 곳들이 많이 있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곳도 간간히 있었지만,
언제나 그런 생각들은 아름다운 장소와 경치에 대한 감탄의 부수적인 생각이었을 뿐,
하지만 그곳에서는 정말 그런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리라.
그리고 한동안 그곳의 아침과 저녁을 함께 맞으며 그곳에서 지내리라.

알푸하라의 포케이라 강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하얀 조약돌을 누군가 섬세하게 조각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내가 사랑하는 세 마을. 

알푸하라의 명불허전. 카필레이라. 부비온. 팜파네이라.
일명 포케이라 라고 일컫는 이 마을에 나는 언젠가 그곳에 꼭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리라. 

 


 

 


다시 찾은 알푸하라의 아름다운 세 마을

이렇게 다짐을 했던 것도 이미 작년.
또다시 이른 여름이 찾아오고, 나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또다시 포케이라를 중심으로 한 세 마을의 트래킹 계획을 세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는 아니라도 분명 그곳은 여전히 아름다우리라.
이번에는 꼭 트래킹 코스를 잘 따라가서 찻길로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알푸하라 마을들 가운데서도 그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이 세 마을은
불과 몇십분이 채 걸리지도 않은 거리에 옹기 종기 모여 있어서 그라나다에서는 당일 코스로 세 마을을 둘러보고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제일 위에 있는 마을을 카필레이라, 그리고 중간에 있는 부비온, 제일 아래에 있는 마을은 팜파네이라.
일반적으로 그라나다에서 갈 때는 카필레이라 까지 가서, 능선을 타고 트래킹 코스를 밟아 부비온을 거쳐 팜파네이라 까지 내려오고,
팜파네이라에서 그라나다로 돌아오는 마지막 차를 타고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왕복 버스비용은 10유로 남짓. 
원래는 그라나다 -> 카필레이라 버스표 1장, 그리고 팜파네이라 -> 그라나다 버스표 1장을 사야 하지만,
어차피 그 버스가 그 버스이고, 왕복으로 사면 가격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카필레이라 행으로 왕복 표를 끊어서 돌아올 때 팜파네이라에서 버스를 타도 상관은 없다.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고 게다가 아름답고..
그라나다의 근교에서 가볼만한 곳 중에 가장 유명하고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이라고 자부한다.

단, 주의할 좀이 있다면 거기까지 가는 버스가 시에라 네바다 능선을 따라 알푸하라의 작은 마을들을 들러 들러 가기 때문에, 왠만한 사람들은 멀미가 장난이 아니다. 그라나다에서 카필레이라까지 가는 시간은 두시간 남짓. 거리 상으론 그정도가 되지 않지만, 산길이고 굽이 굽이 돌아가기 때문에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멀미에 약한 사람들은 꼭 멀미약을 챙길 것을 추천.
나는 어렸을 때 굉장히 멀미를 잘하는 아이였다.
잘할게 없어서 멀미를 잘했나 싶지만, 멀미가 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으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버스만 타면 느껴지는 매케한 냄새와 그 냄새에 반응해서 꿈틀거리는 오장육부.
멀미하는 어린 나를 달래준다고 엄마와 아빠가 안아주고 달래주지만, 그럴 수록 더욱 멀미가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일 힘조차 없어서 팔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가만히 있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부왁. 
하지만 그런 날카로운 멀미에 대한 첫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은 멀미를 잘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렇게 바뀌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버스에 타서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 산을 바라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였던 것 같다.
멀미에 저항하려는 의지가 생겼기 때문일까. 그게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나는 멀미를 잘 하지 않았다.
차멀미는 물론 배멀미도 잘 안 한다. 
하지만 나와 함께 포케이라에 가는 나의 일행들은 그렇지가 못했는지, 화장실에 멀미에… 여간 고녁이 아니다.
멀미약 챙겨 먹으라는 말을 미리 해둘 걸,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알푸하라에 들어가는 길은 깊은 산길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차창 밖으로는 거대한 산맥이 파도처럼 펼쳐진 장관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멀미하는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알푸하라에 가는 길에 펼쳐진 그 풍경이 너무 좋아서, 오늘도 차창 옆에 딱 달라붙어서 거대하게 펼쳐진 협곡들과 간간이 드러나는 계곡, 그리고 군데 군데 지나가는 아름다운 마을들의 모습에 흠뻑 빠져있다.
그곳의 마을들과 대자연에서 느껴지는 코드는 마음의 평화.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이미 여러번 보아온 이런 풍경들을, 이미 여러 번 사진으로 담았던 그 모습들을 또다시 폰카에 담으며, 맑은 하늘 멀리까지 또렷하게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달리기를 두시간 남짓.
드디어 우리는 목적지, 카필레이라(Capileira) 에 도착했다. 

 



 

 


포케이라의 첫인사, 카필레이라

알푸하라의 마을들은 전에도 이야기했듯, 그라나다가 무슬림 세력에서 카톨릭 세력에게로 넘어갔을 때, 그라나다에서 쫓겨난 무어인들이 시에라 네바다의 산맥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며 이룬 마을들로, 그라나다의 무어인들의 마지막 흔적이 남겨져 있는 곳이다.
알바이신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모로코의 어느 산골 마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건축 양식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알푸하라의 집들에서 보여지는 가장 큰 특징은 굴뚝과 티나오.
산골 마을이기 때문에 이곳은 일교차가 매우 크다. 
40도 까지 올라가는 요즘 같은 날씨에도 높은 지대에는 만년설이 덮여있는 만큼 기후가 선선하고,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기후에 대비한 건축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이곳은 또한 만년설이 녹아 내리는 물이 계속 흐르기 때문에 그 물들로 농사를 한다고 한다.
알푸하라의 집들은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계단식 집으로, 아랫집의 지붕이 윗집의 앞길이 되는 모양새를 띄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산골 마을의 큰 일교차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치 동굴처럼 안으로 길쭉하게 파고 들어간 평면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한 티나오라는 것은, 각 집의 현관과 맞은 편 집의 현관, 또는 맞은편 길의 벽을 천장으로 덮어서, 그 아래 그늘을 만들고, 눈도 쌓이지 못하게 하여, 마치 공동 마당처럼 사용하는 공간을 일컫는다. 겨울에도 눈 한번 오지 않는 그라나다와는 달리, 수시로 눈이 내리는 이곳의 기후와, 눈이 오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든 산골 마을임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이곳만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알푸하라의 마을들을 대표하는 버섯굴뚝 또한 이곳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모양이 왜 버섯 모양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모로코의 산골마을 셰프샤오웬에서도 비슷한 굴뚝을 본 것 같은것이.. 이런 굴뚝이 무어인들의 산골 마을 건축의 전통적인 양식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카필레이라에서 내리면 맞은편의 멀지 않은 곳에 이 마을의 관광안내소가 있다. 
그곳에 가면 카필레이라의 지도 혹은 포케이라 세 마을의 지도도 여분이 있다면 얻을 수 있다.
이번에 만난 이모님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셔서 매우 반가웠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구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관광안내소에서 체크해야 할 또 한가지는 트래킹 코스. 
세 마을로 이어지는 간단한 트래킹 코스도 있지만, 트래킹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난이도가 꽤 높은 하이 코스도 많이 있다.
뭐니뭐니해도 이곳은 스페인 제일의 봉우리 뮬라센이 있는 시에라 네바다의 한 가운데 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마을과 간단한 트래킹이 주 목적이므로 세 마을로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만 설명을 듣고 나왔다.
이모님 말씀으로는 카필레이라에서 부비온으로 가는 길은 차도를 따라 가는 게 편하고, 부비온의 성당 앞 광장 옆에서 시작되는 트래킹 코스를 따라 팜파네이라까지 이어지는 GR7 길을 따라가면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지도까지 챙겨서 카필레이라의 따뜻한 햇살 아래 서있으려니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을 친다!!!!!!!
이제 뜨거워지는 그라나다와는 달리 이곳은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분다. 
쪼리를 신고 간 나에게 이 신발로 트래킹은 무리라며, 가까운 가게에서 신발을 하나 사라고 충고해주신 이모님 말씀에 따라 6유로 짜리 노란 신발을 하나 샀다.
새 신을 신으니 팔짝 뛰어보고 싶은 기분이다!!!!
나와 함께 온 일행은 아직도 멀미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좀 쉬고 싶다하여, 나는 그들과 헤어져 카필레이라를 한 바퀴 돌아보고 잠시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가까운 여행 뿐 아니라 먼 여행도 일행과 함께일 경우, 각자의 요구조건이 다를 경우는 많이 있고, 그럴 경우에는 각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여행을 하고 이후에 다시 만나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서로 참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곪아서 터지는 경우도 꽤 많이 봤으니까.



 

 


얼룩 고양이의 초대, 그리고 계란후라이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그 언덕

새로 산 노란 신발을 신고 발길 닿는대로 카필레이라를 걸어가 본다.
하늘색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금발머리 꼬마 아가씨가 아버지인지 할아버지인지를 따라 팔랑팔랑 나비처럼 뛰어간다.
지난 번에 아랫마을을 위주로 돌았으니, 이제는 윗 마을을 한번 돌아보기로 한다.
딱히 정해진 루트 따위는 없다. 손바닥 만한 마을에서 길을 잃어봐야 어디로 가겠는가.
무작정 걸어가다가 힐끗 보이는 저 골목이 궁금하면 그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그 골목에서 펼쳐지는 근사한 시에라 네바다와 카필레이라의 경치를 감상하고 저 위쪽 오솔길로 걸어올라가 본다.

 


덩쿨식물이 멋지게 자라고 있는 어느 집의 귀퉁이에는 기둥으로 세워진 나무를 여성의 몸처럼 조각해 놓은 어느 조각가의 비밀스런 작업공간이 펼쳐져 있다.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한 저 기둥은 그리스 아테네의 어느 신전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예술혼이 느껴진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제철 맞은 장미가 활짝 피어있고, 그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나는 다시 길을 오른다. 
카필레이라의 마을은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고 또 걸어 그 골목골목마다 숨겨진 이런 은밀한 모습들이 이곳의 진짜 매력이다.
중간중간 건물 사이로 내다보이는 푸르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모습과 만년설의 아름다움에 나는 지금 대자연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음 또한 새삼 느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가 옆을 돌아보자, 저만치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반쯤 열린 문을 열고 나오는 게 보인다.
움직이는 무언가, 아마도 나비나 벌일 듯한 무언가를 따라 조심스레 나온 고양이가 여전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그 무언가를 쫓고있는 그 모습이 귀여워 카메라에 담고 나자, 그제야 그 고양이가 나온 문 뒤로 펼쳐진 엄청난 너비의 계란후라이 꽃밭이 눈에 들어온다!!!!!!!!! 

 


와…. 이 고양이 녀석이 나를 이 꽃밭에 초대해 준 거구나! 
정말이지… 몇년 전 서울 숲 옆에 펼쳐진 엄청난 너비의 코스모스 꽃밭 이후로 이렇게 넋이 나갈 만큼 방대한 양의 꽃밭은 처음 본다!!!!!
게다가 온통 노랗고 하얀 계란후라이 꽃 천지다!!!!!!!!!
작고 예쁜 계란후라이 꽃이 수천 수만은 될 듯… 끝이 보이지 않게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여전히 움직이는 무언가를 쫓고 있는 얼룩 고양이의 초대를 받고 조심스레 새로 산 노란 신발을 신은 채 거대한 계란후라이 꽃밭에 들어섰다.

우리의 삶에는 가끔 말이 필요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때의 나 또한 그 어떤 수식어도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없었다.
수많은 꽃들 사이로 마치 내 심장이 꽃으로 가득 채워진 듯한 설레임에 들떠 마구 뛰어다니던 내 모습은,
만약 누군가 보았다면 미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소리 따위 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정도로 정말 나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저 멀리 올리브나무들이 가득한 건너편 산봉우리가 보인다.
저 아래 주차장에는 누군가가 세워 놓은 하늘 색의 멋진 오픈 카가 그림처럼 놓여져 있다.
알푸하라의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색과 시에라 네바다의 대자연의 초록, 그리고 카필레이라의 그림 같은 하얀 집들과 어우러져,
그 하늘색 오픈카는 그야말로 완벽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저 차를 타고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면 저 멀리 뮬라센 봉우리 까지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콩닥콩닥 거리는 마음을 추스러 그 드넓은 계란후라이 꽃밭을 나선다.
나를 그곳으로 초대해 주었던 얼룩 고양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곳의 계란 후라이 꽃들이 잠시 고양이로 변해서 나를 그곳에 초대해 준 건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 않는 상상을 해본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상상이다. 
지금은 다시 꽃으로 돌아가 나를 배웅하고 있을 얼룩 고양이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며,
나는 계란후라이 꽃을 닮은  노란 신발을 신고 다시 마을로 향한다.

마을에서 쉬고 있던 일행과 다시 합류를 했다.
멀미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그들은 아랫마을 어느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식당이 마침 내가 작년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던 식당이다. ^^
파랗고 하얀 파라솔을 보니 작년에 들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리셉션에 꽤 귀여운 청년이 있었는데, 오늘은 아직 안 왔나보다. 
마침 배도 고프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20분 정도 기다려야 식사가 가능하단다.
그대로 기다릴까 하다가, 아랫마을을 천천히 둘러보고 마을의 관광안내소 근처에 있는 다른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부비온을 향해 출발하기로 한다. 

 


카필레이라의 아랫마을 입구에는 내 독일 친구를 닮은 목각인형을 세워놓은 타파집이 있다.
맥주를 손에 들고있는 그 목각인형을 볼 때 마다 그 친구가 생각이 나 절로 웃음이 나지만 오늘도 문은 닫혀있다.
아랫마을을 구경하다 마을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니 드넓은 전망이 탁트인 주차장이 나온다!
아까의 환상적인 계란후라이 꽃밭에서 보았던 멋진 하늘색 오픈카가 아직도 세워져 있다.
같이 간 친구가 그 차를 잠시 살펴 보더니, 작동되는 차가 아닌 것 같다며, 내부도 엉망이고 아무래도 전시용으로 세워놓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런 듯도 하다. 차 문도 고장이 나고, 기어도 고장이 난 고장난 차를 멋진 주차장에 세워두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놓은 센스에 박수를 보낸다!
전시용 하늘색 오픈카를 배경으로 우리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
카필레이라의 주차공간에서는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뮬라센이 보인다.
뮬라센을 배경으로 비장의 점프샷을 찍어본다!
굳이 남는 건 사진 뿐이라서가 아니라, 재미있으니까! 즐거우니까! ^^ 

 


카필레이라의 하얀 마을은 세 마을 가운데에서도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하다.
골목 골목 오솔길과 티나오를 지나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을 가로질러 하얀 골목을 걷는다.
테라자의 화분에 핀 예쁜 꽃들과 저 위에 시원하게 널린 빨래마저 아름다운 곳.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나는 꼭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올 것이다.

원래는 트래킹을 하다가 풀밭에서 먹기 위해 다함께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지만, 
멀미 때문에 힘이 빠져 이미 도시락을 먹은 친구도 있고, 마을을 돌아보고 났더니 배가 고프기도 해서, 마을의 관광안내소 맞은편의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뭘 쌀까 하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김과 예~~~~전에 사다가 조금 남겨놓은 중국산 단무지가 있어서, 거기에 비엔나 소세지와 게맛살을 좀 넣어서 얼렁뚱땅 김밥을 싸왔다. 잠결에 대충 대충 쌌지만 김과 단무지가 들어있으니, 아주 맛있지는 않아도 김밥 맛은 나겠지.  

 

영업하는 식당에서 도시락만 꺼내 먹기가 그래서 수프를 시켰다. 내가 주문한 수프는 소파 데 알푸하라. 알푸하라 특유의 수프 였는데, 마늘 향이 강하게 나서 내 입맛에는 잘 맞았다. 같이온 친구 둘 중 하나는 도시락을 꺼내 먹고 음료를 하나 주문했고, 이미 도시락을 먹어버린 다른 친구는 알푸하라 고유 음식, 살치챠 쵸리소 등 소세지 구이들과 계란후라이 등 열량이 가득한 알푸하라 메뉴를 주문했다. 이전에 나도 먹어본 적이 있는 이 메뉴는, 산골마을에서 사는 알푸하라 사람들이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 메뉴로, 그 열량과 지방의 함량이 장난이 아니어서. 반 정도 먹으면 입안에 기름기가 가득하다. 하하하… 그래도 맛있다. ^^


날씨 좋고, 공기 좋고,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 퍼펙트한 어느 한낮, 따뜻한 태양과 선선한 산바람을 쐬며 점심을 먹는다.

 


기분이 참 좋다. 후식으로는 알푸하라 특유의 과자를 주문했다. 마치 우리네 뻥튀기의 한 종류처럼 생긴 과자인데, 그야말로 입안에 닿으면 사르르르 녹는 달콤한 맛이다! 이 과자에 대해서는 제일 아랫마을 팜파네이라에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얼마나 달콤한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입안에서 녹아 사라지고, 그 단맛의 여운을 간직한 채 우리는 차도를 따라 부비온으로 걷기 시작했다.  

 


 


드디어 만나다! 알푸하라의 양떼!

부비온으로 가는 길은 트래킹 보다는 차도가 가깝고 편리하다.
작년에는 카필레이라에서 산길 트래킹으로 부비온까지 갔었는데, 길이 질고 좁아서 그다지 걷기 좋은 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카필레이라 관광안내소의 이모님 말씀대로 차도를 따라 걷자니 거리도 가깝고 훨씬 걷기 좋았다.
날씨는 선선하고 따뜻하고, 아랫지역은 이미 초여름이지만, 이곳은 아직 봄이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

걷고 또 걸어 부비온에 다와갈 무렵 멀리… 길 건너편에 뭉실뭉실한 것들이 넓게 퍼져있는 것이 보였다!
뭘까 하고 자세히 봤더니, 움직이기도 하는 걸로 보아 분명히 저건 양떼다!!!!!!!
알푸하라에서는 높은 고지대이고 깊은 산 속이라 이렇게 동화 속에서나 보던 양치기와 방목해서 키우는 양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지난 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번 본 것 외에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그 양떼들을 본 것이다!!!! 
가까이 가니 엄청난 수의 양들이 떼를 이루어 여기 저기서 풀을 뜯고 있는 게 보였다. 
멋지게 뿔도 나 있고, 양이라고 다 하얀 색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양한 색깔의 양들이 있었던 것도 신기했다. 
멀리 밀집모자를 쓴 잘생긴 양치기 오빠에게 올라~! 하며 인사를 해보지만, 낯선 이와의 마주침이 쑥스러운지 손만 흔들어 주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하하하… 

 

그나저나 양들이 정말 신기하다!!!!! 

어렸을 때 EBS 에서 어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아니었지만 참 신기한 영화라서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그 영화에서는 양들이 하는 말이 사람의 목소리로 더빙이 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양들이 하는 말이라는 게 어릴 적 내가 생각하던 양의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와는 달리, 참으로 이기적이고 못되기도 하고, 굉장히 인간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 여튼 마치 실제 인간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 듯 양들의 대화를 더빙해 놓은 그 영화 속의 양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깊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왠지 저 양들도 저렇게 착하고 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여느 인간들 처럼 이기적이고 못된 면도 가지고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 혼자 의미심장하게 웃어본다. 마치 내가 왜 웃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뿔이 근사한 어느 양의 눈빛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용한 마을 부비온으로 들어섰다. 

 


 



포케이라의 두번째 마을, 고요하고 평화로운 부비온

카필레이라에서 부비온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작은 테테리아가 하나 있다. 테테리아는 Te, 즉 차를 파는 찻집으로, 그라나다에는 모로코 분위기가 물씬 나는 테테리아가 많이 있는데, 이곳의 테테리아는 빼어난 산수경관을 배경삼아 길게 현관 앞으로 빼어놓은 야외 테이블들이 예술이다. 아직 손님이 없는 테테리아의 난간에 기대어 부비온을 바라보는 테테리아 주인으로 보이는 친구에게 인사를 하니 반갑게 받아준다. 
고요한 부비온 마을을 향해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가다 문득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방금 전 떠나온 카필레이라가 가까이에서와는 또다른 모습으로 멋진 자태를 뽐내며 뮬라센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게 보인다. 
부비온의 마을들은 세 마을 가운데서도 유난히 하얗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라서인지, 베란다의 꽃들이 더더욱 돋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무어인들의 마을 답게 길에 파인 물 흐르는 홈 부터, 군데 군데 마실 물이 나오는 오래된 음수대까지 물의 흔적이 마을 이곳 저곳에 조심스레 묻어있다. 
부비온은 세 마을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규모의 마을이기도 하다. 작은 부비온을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작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카필레이라에서 부비온을 내려다 볼 때 가장 눈에 띄던 큰 교회가 있는 광장이다. 덩그러니 햇빛만이 가득 담긴 광장 한 켠에는 이 마을의 아윤따미엔또, 즉 동사무소 혹은 뭐 관리 사무소 정도의 행정시설이 있고, 교회를 돌아 뒤쪽에 있는 또다른 작은 광장으로 가면, 마치 동화 속의 예쁜 삽화에서나 존재할 법한 예쁜 나무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멋지게 펼쳐진 산세를 배경에 두고 작은 벤치 하나를 그늘에 품고 서 있다. 나무가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에 앉아 고요하지만 상냥한 마을, 부비온이 선물하는 최고의 순간을 만끽한다. 마을은 어쩜 이리 고요한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눈 아래 가득한 싱싱한 나무들,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 그리고 여전히 머리 위에 빛나고 있는 태양과 곰곰히 떠가는 구름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작은 노랫소리가 작은 광장의 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그늘 안을 가득 차고 흐른다. 문득 윤선도의 오우가가 떠오른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해야 무엇하리

윤선도, 오우가 중


 

 


고목과 돼지와 함께 한 산행, 팜파네이라를 향해서...

부비온의 교회 아래에는 GR7 길의 표지판이 표시되어 있다.
그 표지판을 따라 왼쪽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마지막 마을, 팜파네이라를 향한 가벼운 트래킹을 시작한다.
산길이 그리 험하지도, 그리 길지도 않지만, 운동화는 신는 것이 좋은 정도의 가벼운 산길이다.
열심히 걸어가다가 고개를 둘러 점점 멀어지는 부비온과 저 멀리 카필레이라는 바라본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세 마을이 이렇게 옹기종기 붙어 있으니, 이런 멋진 트래킹 코스도 만들어지는구나.
길 옆으로 펼쳐지는 초원이 마음을 치유해 주는 듯 하다.
그러다가 같이 가던 친구가 "돼지다!" 하고 소리치는 곳을 바라보니, 정말 우리가 걷는 트래킹 코스 옆 언덕 아래에 돼지 우리와 돼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돼지가 어찌나 귀엽던지. 여기 돼지는 코가 앞으로 좀 더 나온 것 같다. 멧돼지는 아닌데 꼭 코가 멧돼지랑 돼지 중간 쯤 되게 나온 것 같았다.
아무튼 처음에는 한마리 였던 녀석이 알고 보니 한 마리가 아니었다.
잠시 후 그 녀석을 따라 나온 돼지 일가족의 구성이 한 일고 여덟은 되었던가.
특히 올망졸망한 아기돼지들이 너무너무 귀여웠다!!!!!!
같이 가던 친구가 잽싸게 언덕을 내려가서 돼지 우리의 지붕 위를 밟고 내려가 돼지 우리 가까이에서 돼지와 교감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ㅋㅋㅋ
돼지우리의 지붕도 이곳의 여느 집들처럼 자연스럽게 풀이 자라게 되어 있어서 그리 약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돼지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트래킹은 계속되었다.
한참을 가다가 보니 저쪽 초원 위에 멋진 색깔의 고목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렇게 쓰러진 고목을 보면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죽어있는 병사를 랭보가 발견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 병사는 전투복을 입은 채 죽어있었지만, 그 장면 속의 햇살은 왜이리 평화롭고 아름다웠는지. 그 아이러니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얼른 뛰어가 그 병사 처럼 죽어있는 척을 하면서 사진을 찍어본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그 순간, 뭔가가 엉덩이를 쿡쿡 찌르길래 보니까, 고목 앞에 난 풀들이 온통 가시 투성이다!!! 
다행히 철푸덕 앉지 않아서 가시가 깊이 박히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햇살과 아름다운 풍경의 한 가운데에 가시나무라니.
역시 세상은 참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어울림의 연속이다. 이런 아이러니.

그리고 드디어, 세 마을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팜파네이라에 도착했다!!!
팜파네이라, 첫번째 방문 때는 길을 잘못 들어 부비온에서 팜파네이라로 내려올 때 차도를 따라 엄청 돌아오는 바람에, 차시간에 맞추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이 마을을, 이번에는 제대로 접수해 주리라 다짐하며 팜파네이라에 힘차게 첫 발을 내딪는다! 

 


 


포케이라의 마지막 마을, 팜파네이라

팜파네이라의 어느 골목에 걸터 앉아 잠시 트래킹으로 고단해진 발을 쉰다.
골목의 건너편 어느 집의 지붕인지 옥상인지, 요만한 작은 공간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의자가 있고, 하늘하늘 빨래가 널려있다.
그 아래 늘어지게 고양이 두 마리가 그늘 아래 씨에스타를 즐기고 있다. 
아…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나는 너무 좋다. 
그 일상적인 한가로움에서 느껴지는 시큼한 레모네이드 향 같은 작은 낭만이 너무 좋다. 
고양이 두 마리를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가도 이 두 녀석은 꿈쩍을 안한다. 눈만 살짝 떴다가 이내 다시 감아버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옆의 작은 오솔길 입구에도 다른 고양이 두 녀석이 느러지게 누워서 씨에스타 중이다.
팜파네이라의 고양이도 다들 짝이 있구나. 하아…. ㅋㅋㅋ

팜파네이라는 일전에 아쉬움을 남기고 빠른 거름으로 한바퀴 둘러보기만 했던 마을이라 더욱 의욕적으로 이곳 저곳을 걸어다녔다.
전에는 바빠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천천히 돌길을 밟아 하얀 골목 골목을 들여다보니, 이 마을 꽤나 매력적이다!!!
부비온 보다 사람이 많고, 카필레이라 보다 일상이 더 많이 담겨져 있는 팜파네이라는, 세 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이다. 
가장 아래에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문득 들어선 기념품 가게.
알푸하라는 원래 꿀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나가다 문득 Vino Miel (와인 꿀) 이라는 팻말을 보고, 와인으로 꿀을 만드나? 하는 생각에 들어선 가게였는데, Vino 따로 Miel 따로, 가운데 찍혀있는 점을 미처 못 본 거였다. 하하하…
우리가 가게를 구경하고 있자니, 맞은 편 가게에 있던 가게 주인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주신다. 
맞은편의 가게도 자신의 가게이니 이곳을 둘러보고 저곳도 한번 보라고. 

 

 

작은 병들에 담긴 꿀들과 단 과자, 와인 들 틈에 벽 한쪽에 진열된 하얀 과자가 보였다!
바로 우리가 아까 카필레이라의 식당에서 디저트로 먹었던, 입안에서 살살 녹던 달콤한 그 과자!!!!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이 과자는 팜파네이라 특유의 과자로, 다른 지역에서는 '한숨' 이라는 뜻의 suspiro 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soplillo 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숨이라는 이름의 과자라니.. 하하하.. 뭔가 사연이 있을 듯 하면서도, 이렇게 달콤한 한숨이라니. 참 재미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친구는 그곳에서 한숨을 한 봉다리 구입했고, 다른 친구는 알푸하라의 그 맛있다는 꿀을 한 병 구입했다.
팜파네이라에서 나고 자란 주인 아저씨는 우리가 물어보는 것, 묻지 않은것 까지 이것 저것 팜파네이라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주신다.
팜파네이라를 참 사랑하는 사람이다. 기분 좋게 꿀과 한숨을 들고 다시 팜파네이라의 길을 나섰다. 

 


 


숨어있는 보물 찾기, 팜파네이라의 공방들!

천천히 트래킹을 하면서 내려와도 팜파네이라에서 그라나다에 가는 막차를 탈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우리가 들렀던 기념품 가게 골목을 조금 더 올라가자, 아까 기념품 가게 아저씨께서 꼭 들러보라고 언질 해 주셨던, 멋진 수를 놓아 망또도 만들고 아름다운 풍경화 처럼 수도 놓는 수놓는 공방이 있었다!
마침 가게 앞에 주인 아주머니께서 앉아계셔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을 구경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고맙게도 흔쾌히 허락 해 주신다.
공방은 아주머니의 할머니 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업이었다. 세 마을 중 특히 팜파네이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털 망또와 카페트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특히나 내 친구는 너무 아름답고 세련된 망또가 탐이 난다며,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저 망또를 사겠다고 다짐을 한다. 
아주머니 께서는 일본의 어느 여행잡지에 자신과 공방이 소개된 자료를 보여주시며, 팜파네이라 및 알푸하라의 여러 공방들을 소개해 놓은 책이 있으니 한 권 들고 가라고 하신다! 그래서 안내 책자이겠거니 하고 내려가 보니, 이건 안내책자 수준이 아니라 거의 제대로 된 도록 수준의 멋진 책이 아닌가!!!!
이거 정말 그냥 들고 가도 되요? 라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하신다. 그리고 다른 공방들도 다녀 보라고도 말씀하신다. 
완전 이렇게 고마울 수가!!!!!! 이층에서 여전히 작업을 하고 계신 아주머니께 일층 대문을 나서며 발코니 너머로 Gracias¡¡¡¡(고마워요!!!!!) 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니, De Nada!(별 말씀을~) 이라고 응수해 주신다. ^^ 와… 진짜 완전 기분 좋다!!!!!

길을 걸어가며 책을 천천히 다시 훑어보니, 알푸하라 뿐 만 아니라 그라나다에도 있는 여러 공방들을 소개하는 책자 였다. 그라나다에는 집시들이 오래부터 자리잡고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모로코 인들도 많이 들어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여 이런 저런 이유로 공방들이 많이 있다. 가죽 공방도 있고, 악세사리 공방, 아까 처럼 수 놓는 공방… 여러 공방이 있다. 이런 공방들을 소개하고 그 위치를 실어놓은 이 책을 따라 공방 루트를 하나 만들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책이 만들어진 목적은, 이렇게 아름답고 빼어난 풍경과 하얀 마을들이 살아 숨쉬는 알푸하라가 그 아름다움 만큼의 유명세가 부족하기 때문에 공방을 따라 루트를 만들어볼 계획으로 만들어진 책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어쨌든 나로써는 너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팜파네이라에는 우리가 둘러본 곳 외에도 두 군데 정도의 공방이 더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금속 공방 이었다. 아까 지나치다가 얼핏 문 너머로 들여다 본 곳이었지만 시간도 많겠다, 다시 한번 가보기로 한다. 
흘러내릴 듯한 아름다운 곡선으로 치장한 근사한 거울들이 공방 입구를 장식하고, 그 사이에 내 얼굴을 비추니 저 뒤로 알푸하라와 함께 빛나는 태양이 거울의 테두리에 있는 장식들에 반사되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공방 안에는 거울 만큼이나 예쁘고 매력있는 언니가 혼자 앉아 사람 좋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 공방은 두 자매가 운영하는 공방으로, 둘 중 언니인 이 언니는 금속공예를, 그리고 동생은 유리 공예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료집을 꺼내어 보여주며, 원래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여기 저기 작품을 설치하던 모습들을 사진에 담은 걸 보여준다. 

전에 어느 동굴집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그 동굴은 원래 동네의 쓰레기장 처럼 쓰이던 버려진 동굴이었는데, 그 부부가 직접 그걸 치우고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 재정비해서 파티오 안의 근사한 동굴 사랑방으로 재탄생 시킨 곳이었다. 그 동굴집을 설명할 때도 처음의 버려진 동굴 이었을 때부터 모두 사진으로 남겨 앨범에 담아 놓은 것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거나, 행복한 순간에 사진을 찍고 그것을 담아두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뭔가 보람있는 일을 이루어 낼 때, 하나 하나의 성과를 기록하며, 그 자체로 스스로에게 응원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것도 좋겠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여하튼, 나는 그 공방의 거울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거울을 사봐야 무엇하랴. 나중에 한국에 들고 들어갈 때는 또 어쩔 것이며.. 거울을 산다고 떡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ㅜㅜ
버는 만큼 쓰랬다고 어쩔 수 없다. 당장은 눈으로 가득 담아두고 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해두는 수 밖에. ^^
이층의 작업실도 볼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이층은 지금 거의 재앙 수준이라기에..ㅋㅋㅋ 일층만을 둘러보고 이쁜 언니와 인사를 하고 공방을 나왔다. 
참 웃음이 예쁜 언니다. ㅎㅎㅎ 

 

 


공방을 나와 길을 따라 걷는데 저 앞쪽에 꽃집 처럼 보이는 꽃이 많은 집 앞에서 어느 중년의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아주머니께서 꽃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시면 아저씨께서 찍어주신다. 참 흐뭇한 모습이다. 
나도 그 사이에 서서 친구를 시켜 사진을 찍어 본다. 
그리고 그 꽃들과 꽃들을 위해 햇빛을 조금 가리기 위해 펼쳐 둔 파라솔 사이로 팜파네이라의 파란 하늘과 하얀 집들을 빼꼼히 내다 본다. 
너무 아름답다… 역시 안달루시아는 그 태양도 태양이지만, 그 태양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꿀맛이다.  

 

 


다른 하나의 공방은 가죽 공방이다. 가죽 공방은 팜파네이라의 제일 아래 교회 옆 큰길가에 있다. 
가죽 공방의 주인은 공방에 있지 않아서 만나보지 못했지만, 가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죽을 직접 재단하는 작업대 까지 잘 보이는 곳에 있었으니까.  

 


 


일리 할머니의 달콤한 쵸콜릿 만큼이나 달콤한 팜파네이라 산책

포케이라의 마을들에는 겨울에 눈이 종종 오기 때문에 그 눈 녹는 물이 잘 흐르라고 길 한가운데에 홈을 파놓는다. 팜파네이라에는 그 홈을 조금, 아주 조금 더 깊게 파서 마치 개울같은 분위기를 내는 골목이 있다. 지난 번에 들렀을 때, 그 골목을 꼭 걸어보고 싶었는데 걷지 못한 게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잊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 조금이라도 물이 흐르니 이내 그 주변의 공기는 시원해진다. 흐르는 물은 이내 잦아들었지만, 물이 흐르던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 본다. 굽이 굽이 그곳이 그곳 같아도 어쩜 하나같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골목 저 끝에 덩치가 큰 아버지가 갓난 아기를 받쳐안고 있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고 얼른 달려가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뛰다가 하마터면 발목이 접질릴 뻔 했다. ㅋㅋㅋㅋ 그래도 다행히 발목 무사히 거두어 아기에게 다가가니 역시 너무너무 귀여운 아이다!!!!!!! 정말 인형보다 더 인형같은 아이였다!!!!!!!!
게다가 아이의 부모님들은 어쩜 그렇게 기분 좋게 웃고 있는지! ^^
그곳에서 아이와 사진도 찍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천천히 걸어 아까 들어섰던 곳으로 다시 둘러 왔다. 
남은 시간에는 Abuela Ili(일리 할머니)라는 초콜렛 가게에 들러보기로 한다.
일리 할머니의 초콜렛 가게는, 처음 내가 포케이라를 들렀을 때, 팜파네이라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가까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 화장실을 빌려 사용하면서 알게 된 지하에 있는 초콜렛 가게이다. 
일리 할머니의 초콜렛 가게는 계단을 내려가 지하에 초콜렛이 진열되어 있고, 진열장 뒤로 거대한 작업장이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초콜렛들을 시식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작은 접시에 조그맣게 잘라서 담아 놓은 수십가지 종류의 초콜렛들을 보고 있으면,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혀 끝에 달콤한 쵸콜렛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쌀 쵸콜렛, 민트 쵸콜렛, 고추 쵸콜렛… 등등 정말 가지 각색의 쵸콜렛들이 있어서, 신기한 것이 있으면 시식을 해봐도 된다. 
물론 마트 시식하듯 이것저것 다 시식의 신처럼 먹는다면 아무래도 좀 실례가 되겠지만. ^^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먹자 마자 입 안에 민트향이 가득 퍼지고, 혀 끝에는 쵸콜렛의 달콤함이 느껴졌던 민트 쵸콜렛과, 온갖 인상을 찌푸리는 친구들을 따라 먹었다가 신세계를 맛보았던 고추 쵸콜렛. 정확히 말하자면 매운 쵸콜렛이 되겠다. 쵸콜렛이 매울 수도 있다는 걸 일리 할머니의 쵸콜렛 가게에서 처음 알았다. ㅋㅋㅋ


그라나다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되어가 이제 자리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독일에서 온 듯한 엄마 아빠 아이의 일가족과 그들의 친구인 듯한 스페인인 아빠, 아이의 일가족이 함께 어울려 네다섯 된 듯한 아이들끼리 어울리며 장난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특히 독일에서 온 듯한 일가족의 아빠는 어쩜 그리 애들에게 화 한번 안 내고 잘 놀아주는지. 
게다가 아이들도 너무 귀여워서 참 흐뭇하게 보았다. ㅋㅋㅋ

포케이라로 오는 버스에서 우리와 함께 타고 왔던 어느 청년이 버스 시간이 늦은 줄 알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스패니쉬 타임이다. 여유를 갖고 기다리자. 

길 건너 편에 신기한 의자가 있길래 가까이 가보니, 네델란드에서 온 아저씨가 의자에 파라솔을 신기하게 달아놓고 직접 마사지를 해주고 돈을 받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보고 공짜로 해줄테니 5분만 받아보고 가라고, 산행을 했으니 피곤하지 않냐고 해서 솔깃 했지만, 아무래도 금방 버스가 올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버스는 한참을 더 기다려서야 도착했고, 돌아오는 버스는 갈 때와는 달리 사람이 가득 차서 빈 자리 없이 꽉꽉 매우고 그라나다까지 달렸다.
물론 이곳에 올 때 처럼 Orgiva, Lanjaron등의 알푸하라의 다른 마을들을 하나씩 거쳐서… 각 마을마다 몇 사람의 손님을 태우고, 또 내려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 한 결을 접어 보내며

포케이라에서의 하루는 꿈결 같았다.
그곳에는 꼭 사랑하는 누군가와 다시 오리라 다짐을 했었는데,
굳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어도 다시 찾은 포케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결 같았다.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이 전부 꿈결이라 한들 이렇게 아름다운 꿈이라면 아쉬울 것도 없을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결에 디저트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한숨을 곁들여.
세상의 모든 그늘에게 보낸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 이상의 '봉별기', 가을방학의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중에서




Los Momentos de Poqueira (Capileira)

 

정보 : 알푸하라의 주요 공방들에 대한 안내를 해놓은 웹싸이트. http://www.artesanosalpujarra.com/
          메뉴의 Nuestors Artesanos 에 들어가서 좌측의 이름을 클릭하시면 각 공방의 주인과 공방 소개, 그리고 주소를 볼 수 있음
          내가 만난 공방 주인들은, Mercedes Carrascosa Martin 아주머니와, Leticia Mayorga Gomez 언니. ^^

 

 

 

 모든 내용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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