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ngineer Story

기본카테고리 | 2018-10-02 오전 10:41:21 | 조회수 : 192 |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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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을 디자인하는 엔지니어

사이몬
나의 유학이야기

많은 대학생들은 한국에서 물론 해외에서 Job Career꿈을 꾸고 준비를 한다.  그 중 하나의 과정이 해외 유학이며 북미로, 유럽으로 학부또는 학부를 마치고 전공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석사 및 박사학위에 도전하게됩니다.  필자 또한 부류의 한명으로 한국에서 건축 공학 학부를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 석사 입학하여 졸업 후, 1999년 졸업과 동시에 꿈의 직장에 취업, 정리 해고 후 다시 일어서기,   그 후 19년동안 시카고과 뉴욕에서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꿈을 꾸는 구조 기술사(Professional Engineer)로서 활동 중이다. 지난 경험을 이 글을 통해서 후배들과 공유하고저 한자 한자 적어봅니다.

도전은 시련을 먹고 자란다. 시련이 없는 도전은 도전이 아니다
 
학부 4학년 시절, 1996년 대기업 취업, 동 대학 석사 진학, 미국 유학의 선택의 기로에서 가족의 후원을 업고 미국 유학 길을 택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건설 분야의 대기업의  취업 설명회 및 추천장 요구가 각 대학마다 많이 오던 시절이었다. 한 번의 직무 능력 시험을 친 적이 있다. 미래 진로에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좋은 소식은 받지 못했다. 그 때가 대학 4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도전은 단단한 준비를 필요로한다 그렇지 않다면 실망을 준다. 하지만 실망도 도전으로 배운점이 있고, 다른 움직임을 이끌게 해준다면,  좋은 실망인 것이다.
 
다른 길을 찾아서 준비를 하다
대학 4학년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대기업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고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였다. 군대 복무 시절 카투사로 근무하면서 미군과 생활을 2년 넘게 군 생활을 통해 그런지 영어에 대한 친밀감과 미국 어학 연수를 다녀온 형의 권유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지겨웠던 군대 생활도 인생에 도움이 되었던 거였다.
지금도 그렇 듯이, 당시에도 미국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접수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TOEFL 과 GRE 시험을 치고 학부 성적표와 자기 소개서 (essay), 교수님의 추천서, 재정 증명서를  지원하는 대학교에 접수했다. 미국 대학교의 정보는 학교 유학 정보 책자에서 학과 별 Civil Engineering Graduate program rank, 위치, 인지도,  일년 수업료 및 생활비, 한인 유학생 비율 등등 검토 비교 후, 10군데 정도 입학 원서를 접수하였다. 4학년 후반기의 결정이었기에, 짧은 시일동안 TOEFL과 GRE시험을 준비하게 되었고, 특히 GRE 시험은 다행히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에서 12월 치게되었다. GRE 성적을 받아 볼 여유 시간도 없이 모든 서류를 대학교에 보내고 GRE 성적은 바로 체점과 동시에 각 지원 학교에 보내도록 요청을 해야만 했다. 말그대로 큰 모험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결단을 내리고 준비를 시작할 걸 후회도 있었지만, 다행이도, 일리노이 주립대, Urbana Champaign에서 토목 석사 입학 수락을 받게되었다. 다른 길의 문이 열린 것이었다.
 
 
입학 시련 IMF
입학 후 2년의 석사 과정 공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보냈다. 하지만 1997년 입학 후 한 학기가 지난, 12월 한국에서 불어온 IMF의 영향은 미국에서 유학하는 이들의 큰 광풍으로 발걸음을 되돌리는 그런 시련의 시간이 되었다. 거의 환율이 2배 이상 오른 것었다. 많은 유학생들이 학과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학비 및 생활비 걱정, 성적에 대한 압박감, 불 투명한 미래 등이 험난한 젊은 시절의 강한 기억으로 남게되었다. 다행히 학교 측의 배려와, 학비와 대도시에서 떨어져 있던 캠퍼스로 생활비가 저렴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연히IMF의 힘든 시절을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형의 경제적인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인생의 길은 여러가지 길이있다
인생의 길은 지름길 같은 직선 길, 꼬불 꼬불한 길, 험한 낭떠러지, 높은 절벽위의 길. 인생의 길은 이 모든 길로 연결되어있다.  다시말해서, 나는 석사 교육에 투자를 하고있었던거였고 투자로 취업은 뒤로 미루고 있었던 거였다. 석사 네번째 학기는 졸업을 준비하면서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시간이다. 많은 미국 친구들은 지난 여름 방학 인턴쉽을 하면서 커리어 및 네트워크를 준비해오는데, 난 박사 과정 시험 (Qualificatin exam)을 준비했다. 하지만 박사 과정 시험은 만만치 않아고, 시험의 실패 후,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뒤 늦게나마 취업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취업을 준비하는 선배 한분이 계서서 같이 준비를 하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영주권을 가지고 있던 그 선배와는 다르게 나의 길은 신분적인 장벽으로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30군데 이상의 취업 문의,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거의 없었다.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은 기회를 찾기위해 백 번 두들겨서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두들겨야 했다. 그래서 그 한 번의 기회를 찾게 되었다. 두 번의 현장 인터뷰 중 시카고에 위치한 Skidmore, Owings and Merrill (SOM)에서 입사 허가 통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꿈도 꾸지 못한 일이 나의 현실에서 펼쳤진 거였다. SOM 은 세계적인 건축 설계및 구조 엔지리어링 회사이다. 건축을 공부한 나한테 SOM은 꿈의 직장이었던 것 이었다.
 
NETWORK 중요성
한번의 기회를 얻기위해 많이 두들겼다.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소중한 만남과 기회는 저절로 오는게 아니라 발걸음을 움직였고 계속해서 문을 두들겼다. 지금 기억나는 거지만 계속해서 문들 두들긴다는 것은, 많은 면에서 반복효과가 있게된다.  
1997년 졸업 후 유학을 준비를 마치고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일리노이 주립 대학교 토목과에서 입학 허가 통지를 받고 그 해 8월 입학을 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당시 삼성도의 위치한 KOEX의 건축 설계를 위하여 서울을 방문 중인 SOM구조 파트너인 BILL BAKER가 필자의 학교에서 강연회를 하기로 되어있어 라이드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유학을 준비하던 차이어서 동 대학교 석사 과정 선배랑 같이 호텔로 그를  Pickup하러 갔다. 학교로 모셔오는 중 내가 석사 과정 통보를 받은 일리노이 대학교 동문이란 사실과 알게 되었고, 그의 명함을 받아두었다.
필자에게 인생의 첫번째 행운이었다. 그를 통해 취업 이력서를 보냈고, 회사 방문 면접을 보게되었고, 취업 수락도 받게되었던 것이었다. 두 번의 방문 인터뷰 중, 그 하나의 기회는 한국에서 만남의 인연으로 연결이 된것이라 같았다. Bill Baker가 2년전의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인터뷰의 기회를 준거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첫 직장을 SOM에서 일하게 되며 밝은 미래 길과 함께 승리의 희열을 만킥해 보왔던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
두들기면 문은 열린다.  도전하는 하는 자한테 기회는 열린다는 예기다. 다시말하자면 두들기지 않은면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현재 서울 도곡동의 위치한 타워 패리스 3차의 Design Competition과 시카고 Michigan Avenue 선상에 위치한 Millennium Park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느낀게 된 것이지만 한국의 프로젝트를  가끔 해 온 미국 회사에서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한인 젊은 엔지니어들이 성실성과 열정을 좋아하고  찾게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한국인의 좋은 인상을 보여 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Figure 2.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
 
전문 직종에서 경험을 토대로 Professional Engineer License  취득과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은 한국과 미국이 유사하다. 졸업 후 미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첩첩산중이 이곳에서도 적용이 된다. 졸업 후 간신히 첫 직장을 찾아 F-1 학생 Visa에 주어지는OPT (On the job training) 로 일하게 되고, 그후 취업 비자인 H-1 Visa를 다시 취득하여, 총 6~7년의 기간 동안 일을할 수있다.  취업 기간 중, 개인적인 인생의 목표,  그리고 영주권의 취득은 미국에 정착하여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결코 고용주가 아닌 고용인Employee로서 당당하게 대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대다수의 해외에서 온 이들한테에게 결코 쉬지않은 험난한 여정인 것이다.

 
성공을 위한 실패
두 걸음 진보를 위해 한 걸음 후퇴라는 말이 있다. 필자의 한걸음 후퇴는 SOM에서 3년 6월을 근무하고 찾아왔다. 엔지니어로서  주어진 일에 전념해 왔지만, 경기의 후퇴 영향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SOM에서 많은 건축가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고, 엔지니어들도 하나 둘씩 정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필자도 추수 감사절 바로 전 주 금요일, 회사에서 정리 해고가 되었다.  
한창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 구조설계를 마치고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이었지만, 프로젝트가 끝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회사에 Downsize를 하게된 것이었다. 한창 정리 해고가 진행이 되는 과정엔 나 자신도 이직할 곳을 알아보고 인터뷰도 해보았지만, Working Visia 신분에 경기 침체로 이직 자리를 찾기가 쉽지않았다.
전전 긍긍 이직 자리를 찾아 시카고를 넘어 세계 경제 수도인 뉴욕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정하고 관심을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은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대학교 학부나,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하고 있지만, 필자가 졸업할 90년 후반기만 해도 유학생들이 박사 과정을 얻고 고국으로 들어가 교수직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말하자면 여러모로 미국에서 남아 취업을 하고 Career Development를 생각하면서 준비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인터넷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회사 정보를 얻어 직접 문을 두들기며 자리를 찾게 되었다. Engineering News Record (www.enr.com)에서 건축 설계/ 엔지니어링 (Architecture,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회사 Revenue Rank와 주 서비스 영역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도전과 함께 뉴욕에서의 인터뷰 후 DeSimone Consulting Engineer 구조 설계 컨설팅 회사에서 취업 허가 통지서를 받게되었고, 말료된 H-1비자의 재 신청 후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2003년 2월 추운 겨울의 바람을 견뎌가며 장장 850 마일 거리인 뉴욕으로 14시간 차를 몰고 가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뉴욕 생활이 시작되었다.
  
성장과정
기회는 저절로 오는게 아니라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고, 좋은 선택을 하는데는 많은 조언과 결단이 필수적이다. 그 때만해도 이민사회에서 동양인 대상의 Career Development 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 말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며 움직였다. 시카고와 달리 뉴욕은 정말 다이나믹하다. 기회가 많아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오는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모든 것이 새로워다. 뉴저지에 생활 공간을 찾고, 뉴욕 맨하튼으로 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또 걷거나 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가는 출 퇴근 길은 날마다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회사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적응하기, 그렇게  뉴욕 생활 적응이 6개월이상 걸리는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새로운 환경에 정신없이 적응하는 중에 여러 구조 엔지니어들을 만나게 되었고, 2005년 지금의 Thornton Tomasetti, 당시 TTG라는 구조 엔지니어링 회사에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이직을 하게되었다.  이 당시엔 한국의 고층 건물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한국어 능통하고 한국 프로젝트 경험자를 찾고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타워 팰리스 3차 경험으로, 어렵지않게 TTG에서 서울 금융센터 (Seoul IF) 프로젝트의 타워 4동 구조 설계 업무를 맡을 수 있었으며, 그 후에도 66층 높이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Metapoli), 80층의 부산의 위브더 제니스 (the Zenith)의 구조 설계, 시공까지 진행은 안 되었지만 인천 151타워 기본 설계를 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명실 상부, 고층 건물 구조 전문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때가 2005년과 2013년 사이의 일들로 한창 부동산 커품이 있었던 때였던 거였다. 인생의 길은 희노애락이 주재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항상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르막 길에 올랐을 때는 겸손을 내리막길에서는 인내를 배워야한다.
 
 
후배 양성에 관심같기
인생의 굴곡을 통해서 얻은 값진 경험을 우리 젊은이들과 공유하자. 그들이 꿈을 꿀 수있도록 롤모델이 되도로 노력하자. 특히 AEC 분야에 롤모델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 10년동안 한국의 고층건물 프로젝트차 한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가끔 선배 교수님의 학교에 방문하여 작지만 소중한 나의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과 엔지니어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던 학생에게 소량의 밑걸음이 되길 바래면서 말이다.  유학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한 학생에게 나의 걸어온길이 꿈만이 아닌 하나의 현실 가능한 길로 전해지길 바랬다. 결론적으로 그 중 한 학생이 나와 같은 학교에 입학했고, 계속되는 조언을 통해, 내가 근무하고 있던 회사의 기카고 오피에서 여름 인턴쉽과 그 후 계속되는 관계 발전을 통해 2016년 입사 허가 통지를 받게 되었고, 현재까지 근무해고 있다.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게 큰 의미를 줄 수 있다는 보람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대학교를 준비하는 고 1의 뉴욕 방문과 만남,  
2016년 여름,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여 일하고 있는 중, 중요한 방문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막 고 1이 되어 미래를대한 생각, 대학교 진학을 위한 긴 여정의 준비, 생각이 많은 두 고등학교 학생이 뉴욕을 방문했다. 그들은 긴 여정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전 준비를 위한 험난? 하고 긴 여정을 준비하기 위한 에네지를 충전시키고, 다른 세상의 대학교를 탐구하러 발걸음을 한것이다.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한  마음이 들어, 본인의 회사에 초대하여 미국 건축 설계회사를 보여주고, 한동안 앉아서, 나의 유학 생활을 통한 경험담과 그들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특히 예술에 관심이 있어 예술 활동을 하고 준비하는 아이는, 뉴욕 예술인들의 활동 무대인 첼시를 소개해 주고, 도전적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를 소개해 줄수 있었다. 우리의 짦은 만남은 큰 도전을 앞둔 그 아이한테 큰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한국으로 귀국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학교 공부, 방과 후 활동으로 많은 상을 수여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그 어찌 기쁘고 감사하지 아니한가!  목표를 하는 대학교에 좋은 소식을 기대해 본다.   
 
인도 출신 학생 이야기
Professional Media Platform 중 하나인 linkedin은 미국 직장과 직장인을 연결 고리의 역할 을 해오고 있다. 특히 미래 직장을 찾는 예비 학생들에게 회사, 및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취업 정보를 Linkedin에 올리고 있고 회사 홍보도 하고있다.  
필자도 2000명 이상의 Contact과 연결이 되었있다. 전문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간 소통과 동료들과 연결이 되어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한 번은 취업을 준비하는 인도 출신 대학원 학생한테 직장을 준비하는데 조언을 구하는 메세지를 받았다. 단순히 Job Opening을 문의하는 대다수의 취업 준비생과는 달리,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준비해야 할 점을 묻는 그의 자세가 나의 젊은 시절을 회상시키고 나의 마음속에 측은함 일으켰고, 또한 그의 진취적인 자세에  답변을 주었다.  혹시나 한국 유학생들 중에 취업을 준비하고져 한다면,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랜다.

Hello Simon,
Thanks for adding me to your professional network. I am Hong Gil Dong currently a master’s student at Syracuse university, NY and specializing in structures. I am interested in the structural and forensics engineering field and see that’s the kind of work you do. I would like to learn more about your experience in the industry, work atmosphere and how it’s like to work on the field. I am hoping to have a conversion with you and get some insights and advice regarding the same. It would be great if you could guide me through as I navigate the opportunities and job market.
Please let me know if you have time for a short phone call.
Thank you.

Hong Gil Dong.  
 
일반적으로 젊은 친구의 짧은 질문에 긴 대답과 자료로 답을한다. 나의 지난 힘든 시절에서 만들어진 나의 측은한 삶의 여운으로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친구는 학교 주변의 전문 직종회사에서 Summer Internship을 찾을 수 있었고,  그러는 동안 몇 번의 통화 후, 또 다른 뉴욕 맨하튼 위치한 구조 설계회사에서 인턴쉽과 그 후 정규직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가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층에 위치한 맥주집에서 만나 저녁을 한다.
한 가지 꼭 예기하고 싶은 건, 학교 성적 중요하지만, Networking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Soft skill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성격에 맞는다고 이른 결단을 하지 말자.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갖아 주고, 경청하고 어우러져 보면, Soft Skill 발전시킬 있다.
 
 
가치있는 일을 찾아  보자
작거나 크거나 자신의 마음, 시간과 금전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쉽지않다. 그렇기에 자그마한 생각도 마음도, 도전과 함께 움직임이 필요하다. 42 킬로의 마라톤을 뛰려면 짧은 거리부터 충분한 체력이 만들어 질때까지 계속 뛰어야 한다. 그리고 같이 뛸 동료를 찾아 같이 하자. 긴 거리를 혼자서 뛰는 것은 절대적으로 쉽지않고 포기하기 쉽다. 반드시 자기의 페이스를 알고 동반자와 같이 하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준비 기간, 뛰는 과정에 경험하고 극복한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또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는게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JP MORGAN CHASE CHALLENGE
현재 소속 회사 HOK에서 2016년, 2018년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JP Morgan Chase 3.5마일을 뛰었다.  42년이된 이 행사는, 암 치료 연구, 지역 사회를 위한 FUNDRASING 행사로 많은 회사 단체에서 참여하고, 뉴욕뿐 아니라, 보스톤, 버팔로, 시카고, 새 프란시스코 외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 행사가 있다. 다음 날 새벽 비행기로 시카고 출장을 가게 되어있어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간신히 37분만에 완주를 마치고, 다음 날 출장길에 오르겠되었다.
큰 꿈을 가지고 있다면, 작은 도전부터 계속해보자. 도전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계속하게 되면 습관이 되어 큰 도전을 하기 위한 체질과 정신력이 길러진다.  결단과 행동이 필수적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미국에 이민 역사가 100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민 1세, 1.5, 2세들이 많은 주류사회에 진출하고 성장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의 분야에서  이제는 예술, 디자인, 음악, 건축, 엔지니어링, 미디어 , 엔테테인먼트,  등등 다양한 분에에 이르러 성장해오고 있다. 성장을 하며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중  Korean American Community Foundation (KACF)는 2007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올해로15년을 맞이하여 한인들의 미국 사회에서의 역량 강화와 기부 문화에 대하여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하여 행사를  2017 년과 2018 년 참관해 보았다.. Giving Summit 행사는 맨하튼에 위치한 뉴욕대학교 (NYU) 킴멜 센터에서 미주 한인 사회에서 기부 문화를 고취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나누게 되었다. 특히 기부 문화가 보편화된 미국의 유대인 사회에서 기부의 정의를 배우며 기부 방식에 관련 예기들은 듣고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특히Central Synagogue in New York에서 사역해오는 Keynote speaker Senior Rabbi Angela Warnick Buchdahl로부터 유대 문화에서 Giving의 의미를 배우는 자리가 있었으며, 한국 이민 사회에 Giving 문화에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아 정리해 본다. 유대교에서 말하는 Giving은 Tzedakah 단어에서 유래하며 의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세상에 왔다 가는 인생으로 자신에게 영원히 소유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기에, Giving 문화는 유대인들 한테는 의무감으로 쉽게 받아지는 것이다.
  
기부의 레벌 Levels of Tzedakah (Giving)
1.     Enabling recipient to become self-reliant 수혜자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것.
2.     Giving when neither party knows the others identiy: 수혜자와 기부자가 서로 모르면서 주는 것.
3.     Giving when you know the recipient’s identity, but the recipient don’t know your identity: 기부자는 수혜자를 알지만, 수혜자는 기부자를 모른 상황에서 주는것.
4.     Giving before being asked: 요청을 받기전 주는것.
5.     Givign after being asked: 요청을 받고서 주는 것.
6.     Giving less than you should, but giving it cheerfully: 기쁘게 주지만 자신의 능력 이하로 주는 것
7.     Giving be grudging: 투덜거리면서 주는 것
 

 최근에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인류애를 기반으로 Giving에 의미를 깨닫고, Social Entrepreneurs, The next generation of Givers로서, 저 소득층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사회로의 진출의 준비를 위한 밑걸음을 주거나, 전력이 부족하여 병원 시설이 열악한 마을에 태양열 에너지 보급 프로젝트을 통해서 사회에 긍정의 변화를 성공리에 이끌어 나가는데 공헌을 하고있다.

행사의 마지막은 여러 비영리 단체에서 열심히 도전하며 봉사하시는 시니어분들을 찾아 축하해주는 자리를 마련하였고, 또한 자신의 Giving경험을 젊은 후배에게 나누어주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끝으로 지난15년이 결코 헛되이 흘러가지 않았음을 느끼며, 다음 15년을 위해 서로 격려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더욱 더 많은 젊은 한인 들의 참여를 기대해 보며, 한인 사회를 넘어 인류적인 차원으로 성장하는 KACF를 그려보면서 마무리하고저 한다WWW.KACFNY.ORG로 접속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

 
 구조계에서 인생의 지인을 만나다
지인의 소개로 이책을 빌려 읽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듯, 나의 마음은 필라델피아의 위치한 그의 회사로 향했다. 주점함 없이 문득 뵙고 싶다는 나의  제안에 응해 주시어, 뉴저지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필라델피아 그의 회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단 층 건물 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공간과 건축 설계 엔지니어링 회사의  공간이 있었다.
17년 건축 구조 설계회사에 몸담아 일해온 나에게 이 책의 내용과, 저자의 삶은 나에게 큰 충격과 위안으로 다가왔다.  일을 위한 직장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남을 돕고 섬기는 그런 신앙적 비지니스 마인드가 나의 걸어온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무언가를 찾고 이루기 위하여 노력한 나에게, 이 책은 앞으로의 나의 삶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그런 책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하 사장님께서 책 한권과 "참희생은 승리의 지름길"  사인을 해주셨다.

 
꿈은 계속 계속되어야 한다.
10대 꿈을 찾고,
20대 계획하고,
30대는 꿈을 이루려 하고,
40대는 꿈을 완성하며,
50대는 다른 꿈을 꾸며,
60대는 다른이들과 꿈을 나누며 살면 어떨까?
 
마지막 말
세상에 꿈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어릴 적 꿈은 막연했다. 꿈이란 뭘까?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사회에 의미를 부여할 일을 이루는 과정이 꿈을 찾고, 이루고,  의미를 더하는 것이 아닐까? 왜 그리 꿈을 타령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과 같이 행복하려고 꿈을 꾼다라고 말하고 싶다. 꿈은 꿈을 꾸는자의 것이니까. 꿈은 꿈을 꾸는자의 것이다.




태그 : Engineer Story
댓글 : 1
S.E.IL   2018-10-10 01:45 [ Modify ]  [ Delete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읽으면서 구조건축사란 커리어 속, 지금 제 위치에대해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일리나이 동문이시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