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교육

기본카테고리 | 2016-07-31 오후 4:19:19 | 조회수 : 1181 | 공개

  우리의 건축은 70만 년 전 횡혈을 거쳐 기원전 20만년 전 경부 터 한 곳에 머물고 사회가 형성되면서 집단거주에 필요했던 간단한 주거건축, 즉 땅바닥을 약간 낮게 파고 생활하는 움집, 수혈주거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건축물은 더위와 추위, 비와 바람 등 자연환경으로부터 보호는 물론, 사회의 가장기초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을 담는 기능을 하면서 지역별 민족별로 특성을 나타낸 나름대로의 구조물로 건축된다
  우리의 건축은 세계의 건축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과학적이고 지혜로운 특징을 가진 우리민족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니고 문화적으로 융성하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많은 정치ㆍ사회적인 소용돌이와 임진년과 병자년 2차례의 큰 전란과 36년간의 일제하에서의 문화말살, 근대화 이후 사회의 혼란과 6. 25, 장기간 지속되어온 군사독재의 전통역사문화의식 부재로 우리의 전통건축문화는 많은 부분 훼손 및 훼철되었다
  전통이라는 것은 허례허식이고 우리의 초가와 기와는 불편한 것으로 정비되어야 마땅하다는 무조건적이고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결과로  독성의 시멘트 콘크리트와 화학물질로 점철되어 있는 석면슬레이트와 함석쪼가리, 건축자재가 우리의 주거문화를 차지하고 건물들은인간을 담는 그릇 속에서 체내에 쌓여가고 있는지도 모른 체 그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와 재료확보의 여건과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쳐도 우리는 우리문화의 뿌리를 간직하고 그 근원을 찾아서 보존하고 정통성을 부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것이 곧 우리의 뿌리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가장 우리다운 것이며, 세계적인 것으로 우리 후손에게 온전히 발전, 계승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 뿌리를 온전하게 계승하지 못하면 우리는 정신적인 식민지로 또한 문화식민지로 민족정신이 없는 민족으로 또 다시 세계에서 정신적 미아로 남아 떠 돌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왜 이토록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우리 나름대로 독특하게 발전시켜 나갔을까 ? 시간이 남아서일까 ? 할일이 없어서 일까 ? 아니다 그 속에는 자연에서 얻은 과학과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바람과 태양, 건물의 안쏠림과 귀솟음, 대청과 온돌, 맞춤과 이음 등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하의 독특한 우리만의 건축기법이다. 이 속에는 우리의 철학과 사상, 우리의 놀이문화, 우리의 여유, 우리의 가락, 우리의 풍경이 담겨져 있다. 우리의 자연과의 대화와 자연이 주는 지혜와 과학이 담겨있는 우리 건축기술이 홀대받고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것을 지키고자 배고픔을 참고 견디며 명맥을 잇고 있는 우리의 장인들의 숨결과 맥을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의 전통건축물은 기록에 의존하여 후대에 전해지는 것 보다는 당시의 건축 환경에 따라 건축가의 머리와 손에 의존한 것으로 지금도 대부분의 건축물이 상량이나 주심 지하에 묻은 항아리에서 발견된 묵서 등의 기록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는데 건축물을 짓는 사람들을 목수라고 하여 하대하고 있다. 작가는 한문으로 하면 作家 즉 지을 “작”에 집“가”를 쓰고 있다. 이제 집을 짓는 사람을 일컬어 당당하게 작가라고 해야 한다.우리에겐 아직까지 우리의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建築工匠 대목장이 있다. 이들은 서로가 문하생으로 들어가 얽혀 있는 경우도 있으나 굵은 선에서 본다면 대부분 기문의 계보를 가지고 나름대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격은 편안하고 아무 일 없는 고요한 시기에 성장하지 않는다. 오직 시련과 고난을 겪은 후에 영혼이 강해지고 패기가 생기며 성공할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좀 더 편안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힘든 시절에 자신을 어떻게 다스렸느냐가 진정한 자기모습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주어진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하고 이루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
  2008년 2월 10일 우리는 우리 손으로 국보1호인 숭례문을 한줌의 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복원을 위해 무려 6년이라는 시간과 막대한 재정 투입을 통해서 전통 고증방식으로 2013년 5월 숭례문 복원이 완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청이 벗겨지고 기둥이 갈라지는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복원사업의 부실공사 논란이 불거졌다. 숭례문 복원 부실공사과 관련하여 감사원에서 문화재청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숭례문 복원공사가 부실투성이라고 지적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숭례문 복원공사 부실 투성이, 재시공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리고 복원과정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고 공무원들의 뇌물수수가 사실로 밝혀져 문화재정책의 주관청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보여준 것으로 개혁의 게기가 되었으며, 대목장의 목재 횡령 등의 사건은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았으나 당시의 언론보도를 보면 자문도 없이 마구잡이로 공사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숭례문복구과정에 대해 당시 문화재청 숭례문 복원단장이 쓴 책 <숭례문 세우기>를 읽어본 나로서는 과연 감사 발표가 맞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간다.
  엄격히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관리 감독을 소홀하게 한 문화재청이 책임이 있다고 본다. 꼼꼼히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원재료의 원산지 문제나 부실 공사 문제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목재감정을 맡았던 교수의 죽음은 숭례문 부실 공사에 부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여부가 더욱 궁금해지게 되었다. 당시 단장이 썼던 <숭례문 세우기>대로 한다면 문화재청 스스로가 법률과 원칙을 져버렸고, 시방서대로 공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문화재에 복원에 필요한 모든 기술, 기법, 재료 등이 과거와 단절된 지금 ‘다시 과거의 기술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된 사람을 징계하고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는 실수대로 교훈으로 삼아 제대로 문화재 복원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시공기간을 맞춰야 되는 문제, 또 주어진 예산 안에서 해야 되는 문제. 어떤 공사를 하든지 사실 시간문제와 예산 문제는 항상 제기되는 거지만 숭례문만큼은 '빨리빨리'가 아니라 '제대로' 복원했어야 했다. 장인들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져야 한다. 판결과 상관없이 장인으로서 할 도리를 다 못했다면 법 이전에 전통건축물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또한 책임져야 할 공무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원칙과 법률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지도ㆍ감독기관으로서 규정에 따라 공무를 집행하는 것이 의무다. 그렇지 못했다면 규정에 따라 징계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해도 양심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종 카스트 산물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왜 이토록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우리의 장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전통도구들을 숫돌에 갈고 있는 것일 까 ? 무엇 때문에 그토록 천대를 받아가면서도 그 일을 놓지 않고 하고 있는 것일까 ? 문화재청 관리들이 장인들보다 더 지식이 있을까 ? 우리나라 최고의 장인으로서 기술을 인정받은 대목장의 입문 동기는 거의 동일하다. 배고픔에서 시작해서 오랜 시간동안 도제교육을 통해 우리의 전통건축관을 갖게 된 것이다. 그들은 책속에서 건축관을 갖게 된 것이 아니고 직접 나무를 깎고 다듬으면서 우리의 전통건축을 이해하게 되고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인양성에 대한 교육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대목장 지정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또한 대목장의 위상과 보호육성기관의 관리도 개선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활동중인 대목장은 한분 밖에 없다. 이 분도 공무원들의 책임전가 희생양으로 활동을 중단시켜 우리나라 전통건축 기술. 기법 전수를 중단시킬 것인가 ? 50여년간을 기능인으로서 한길을 살아온 장인들을 인정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 사람이 주장하는 바른말을 고깝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상호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 우리 전통건축의 기술. 기법 전수발전에 힘을 기울일 때 다. 그것이 우리의 정통성과 정체성. 가치관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태그 :
댓글 : 0
이전 포스트 :: 대목장의 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