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큰울산, 21세기로 가는 길 ( 월간 지방자치 )

서창원 논문 | 2015-12-04 오후 11:51:22 | 조회수 : 1468 | 공개

 

                  문화도시 큰울산, 21세기로 가는 길

 

 

                                                                                서 창 원 지역홍보연구소장

 

 

   울산은 지난 1962년 이 나라 최초의 공업특정지구로 지정되면서 인구 8만의 소읍이 시로 승격되었다. "도시는 공업 없이도 발생하지만, 공업은 도시 없이는 불가능하다" 라는 역사의 교훈이 가장 적절히 반영된 예가 울산이라 해야 할 것이다.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이 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생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는 신라의 영성을 재현하려는 것이며 이것은 민족 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니,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인 것입니다. 이 울산 공업도시의 건설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웅도이며, 그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입니다..." 라며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행한 치사 내용에서 보듯이 특정지역의 지정학적인 이점을 활용, 개발 이익을 염원한 공업기지 건설의 첫 삽질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다분히 감상적이기도 한 기공식 치사의 내용은, 소위 국책사업에 대해 특정지역이 치러야 할 시련을 예고하는 대목은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국가재건에 빛나는 사명감에서 혁명정부의 정유, 제철,비료공장을 주축으로 한 공업기지 건설계획을 특정지역에 옮기게 된 감동만이 행간에 가득하다.

 

  공업지구 지정과 도시의 기형적 성장

 

   이리하여 울산은 중화학공업의 교과서적인 입지조건이라 할 임해공단의 효시가 되었는데, 일제 때 이미 공업기지 건설을 계획하여 일제 말기에 소규모 정유공장을 이 곳으로 이전했고, 한국전란 때도 미군 유류 저장고가 설치된 터라 울산은 석유와는 인연이 깊은 땅이었다.혁명정부가 독자적으로 정한 입지라 하지만 일제가 인구 50만의 공업도시로 키우겠다는 건설계획를 참조한 것이 틀림없고 또 실제로 그 이상의 최적지는 없었다고 한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0.85 m 에 불과, 우리나라 어느 항구보다 자연적인 조건이 좋고 수심이 깊은 항만조건과 낙동강과 태화강의 풍부한 공업용수, 튼튼한 지반은 중화학공업을 유치하기에 알맞았던 것이다. 또한 전국적인 도로망과 철도,항구시설 등 해상과 내륙교통의 연결지점이며, 한국전란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듯이 다른지역에 비해 안전한 전략 산업기지였다.


   그러나 울산이 공업기지가 되고 오늘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 모두가 공업정책 탓으로 돌린다면, 울산의 지난 역사를 과소 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득한 선사시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빼곡이 새겨진 물상들에서, 농경과 수렵을 통한 육상활동과 배를 타고 어로작업을 하는 해상활동 유적이나, 삼한시대 변진지방으로 토철을 녹여 쇠를 얻고 강력한 집단을 형성, 멀리 고대 일본이나 중국에 까지 전파했다는 기록으로 보나, 신라시대 서라벌 경주의 관문으로 고대 해상무역의 요지로 일찍이 확인된 바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나라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국제 교역항이기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물산의 생산과 교류는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곳에 입지한다는 것이 자연스런 귀결이라 한다면 울산 공업특정지구로 지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보편적인 도시 성장과정을 거쳐 국토 동남권에서 부산과 더불어 착실한 도시화 과정을 걷게 되었을 것이다. 공업기지 선포 이후 생산의 현장이 된 울산은 전국에서 고용의 기회가 가장 큰 지역으로 인구의 집적효과가 관성을 타고, 도시성장의 적정선을 넘어 과열 도시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감추어진 공업도시의 시련

 

   오늘날 까지 30여 년간 줄기차게 공업화의 길을 치달려 온 울산은 공업기지 건설은 중앙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거한 국가시책에 순응하면서, 한편으로는 일반 도시행정, 복지, 교육 등 시민생활과 밀접한 분야는 경상남도의 통제 지시에 따라 외형적으로는 고속성장을 거듭하는 반면, 과열화된 인구를 수용할 도시기반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이른다.


   또한 공업성장의 이면에는 지역 환경의 희생이라는 그늘이 있었다. 울산이 공업단지로 지정될 당시는 공해라는 개념 조차 없었고, 공업화 이후에도 상당기간 공해에 대한 인식이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70년대 들어 매우 진보된 형태의 국토이용계획이라는 내용을 살피면, 내륙에 위치한 경상북도 구미시는 전자공업을, 경상남도 창원시는 기계공업을, 그리고 바다를 끼고 있는 울산의 온산에는 비철 금속공단을 육성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새로운 공업단지의 고시는 거대한 공해지구의 탄생을 알리는 경종이었다.


   그 후 온산공단의 공해 피해는 바다에 집중되었고 어민들이 대부분인 주민들의 피해가 커 생활현장인 오염지구를 떠나야 하는 이주대책이 실시되기도 했다. 60만 평의 곡창지대로 이름 높았던 삼산평야는 막심한 복합공해로 영농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런데도 당시 농수산부는 73년 삼산평야가 울산공단 방책선 밖이며 시가지와 공단간에 완충지대가 필요하고 집단화된 농경지로 생산성이 높다고 판단, 절대 농지로 고시하는 의외의 조치를 내렸다.


   울산의 대기오염은 주로 바람의 방향에 따라 크게 좌우 되는데,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면 별반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남동풍이나 북동풍이 불 때는 농사철이어서 어김없이 삼산평야가 피해를 입어 왔다. 특히 울산은 바람이 불지않는 무풍일수가 많아서 오염물질의 정체가 심해 대기오염도를 가중시키기도 했다. 이 후 삼산평야는 절대농지에서 해제되고 용도가 바뀌면서 주거상업지구로 고시되었는데 농사도 안되는 공해지역을 주거지역으로 만들어 사람을 살게 했으니 공익성 보다 당장의 경제적 가치에 기준을 둔 결과라라 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농사가 안되는 공해지역인 이 곳을 정부가 일괄 매입, 충분한 보상을 해 주고 주민들을 이주시킨 후 공해 차단 녹지지구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으나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드러났던 것이다. 신도심지역으로 급속히 윤곽을 갖추고 있는 삼산지역에는 울산의 관문이라 할 울산역, 고속 시외버스터미널이 이곳에 몰려 있고, 거대 유통센터와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데 앞으로 울산의 실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도시계획의 수립이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고 현재의 환경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비없이 별개의 비전만으로는 객관적 현실에 기반한 예측력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2016년을 목표년도로 한 21세기 울산장기발전계획도, 기형적으로 굳어진 거대도시의 현안에 대해 본질을 외면하는 형식주의적인 마스터플랜으로 그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역계획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가변성과 예측 불가성을 들어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보겠으나, 설령 실천 수단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울산의 실상에 비추어 중앙정부의 보상적 성격을 띈 집중적인 지원과 특정한 관심을 전제로 해야 함은 자명하다.

 

  울산의 현안과 보상적 국가지원

 

   울산은 지난 7월 15일, 마침내 광역시 승격의 새 장을 열면서 전국 7대도시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울산광역시 승격에 대해 단순한 행정구조 개편을 통한 외형적 수치적 성장만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코 중앙정부나 기타 자치단체에서 보듯이 인구의 증가치, 재정자립도 따위의 계량적 요소 만으로는 울산 현안에 대한 올바른 처방이 나올 수 없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이 하면서 일기 시작한 가치관의 변화, 즉 어느정도 경제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됨에 따라 성장과 배분, 개발과 보전문제 등 그동안 성장정책에 가려졌던 가치 선택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 첫째는 무엇보다도 국가가 이 지역에 대해 취할 시급한 보상적 조치로 공해 저감을 위한 보다 더 분명한 투자와 교육 및 복지환경의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발전은 국가 공동체의 균형된 발전을 위해 지역간의 분배와 혜택의 공정성이 보장될 때 성립한다.


   국책사업을 위해 지역경제를 명분으로 해당지역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공해요인을 쏟아 놓고  그 반사이익은 중앙이나 기타 지역사회가 차지하는 것은 지역 이기주의 또는 국가정책 이기주의라 할 것이다. 국익을 위한 지역사회의 희생임에도 불구하고 개발과 성장에 따른 부작용인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그 해결의 실질적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자치단체가 행정적인 부담을 떠 안아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간접적이나마 수혜를 입고 있는 다른 자치단체와 획일적인 삶의 질 비교 평가에서 울산은 당연히 불리한 위치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둘째, 울산의 현안 가운데 하나는 도시 한 가운데 걸쳐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그린벨트를 들 수 있다. 개발 제한구역 지정 목적을 보면 도시인구 유입방지 및 무질서한 도시확산 방지 등이 골자로 되어있다.


   울산은 70년대 연간 인구 증가율이 최고 25% 까지 치솟아 많은 인구를 질서있게 정착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71년 지정된 그린벨트로 인해 기형적인 도시계획이 적용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일례로 도심과 인접한 땅은 묶여있고 몇 km 나 떨어진 외딴 곳인 울산의 주산이라 할 함월산 정상부의 광대한 녹지는 밀어내어 주거지역으로 전환했던 것이다.


   지역현황을 무시한 중앙부처의 탁상행정의 결과인데, 시 군 통합과 광역시 승격으로 시역 확장이 이루어진 지금, 그린벨트가 도시 한가운데 걸쳐 있어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그린벨트 외곽에 새로운 택지를 개발해야 하고 그에 따라 그린벨트를 통과하는 교통 및 관로공사에 이중으로 재정을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린벨트로 지정되지 않은 울창한 녹지는 오히려 택지조성 명목으로 파괴되어 버리고 수목이 별로 없는 그린벨트 구역은 황무지로 방치되는 기현상은 그린벨트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도 못하면서, 그린벨트의 변경이 곧 환경파괴라는 사회통념이 과민하게 고착화된 결과라 할 것이다.


  울산과 같은 특정지구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이 처럼 해마다 폭등하는 인구를 수용해야 하는 고충 속에는 도심에 공해차단을 목적으로 녹지로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는 곳이 되레 택지로 개발되면서 무참히 녹지가 파괴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세째, 도시기능의 원활성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도로망의 활용이 필수적인데 울산에는 언양-울산간 고속도로가 사실상 도시고속도로의 성격으로 전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 총 연장 14.3 km의 우리나라 고속도로 단위노선 가운데 가장 짧은 구간이다. 시속 70 km로 달리면 10여 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길이다. 이는 부산의 도시고속도로인 15.3 km 보다 짧아 언양-울산간 고속도로라는 명칭이 무색해 만큼 시급히 도시고속도로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울산이 처해 있는 현안의 대강을 살펴 보았지만 지난 35년의 도시 변천사에서 보듯, 특정지역의 막대한 희생의 결과로 국가경제 발전 지표를 한껏 끌어 올리 수 있었던 것이다. 울산을 국가경제 발전의 견인차요 민족중흥의 전기를 마련한 요람이었다고 치켜 세우는 화려한 영광 이면에는 공해도시, 복지,교육,문화의 불모지라는 상처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공업화의 영광과 상처를 한 몸에 간직한 울산은 다른 광역시와 속성을 달리하고 있으면서 경제성장 지상주의가 가져다 준 결과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도시이다. 올해 광역시 승격을 맞아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한 솔직한 진단과 해법을 국가에 제시하는 것을 또 다른 지역 이기주의라고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처용설화가 서린 울산, 문화도시로 거듭나야

 

   울산은 오랫동안 대기업 위주의 생산현장 역할로서,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기업이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도시로서 크게는 중구 및 남구 중심의 지역시민사회 영역과 현대공화국이라는 별칭의 동구 중심의 기업사회 영역, 북구 및 울주군 중심의 전원도시 영역으로 분절화 되어 있어 생활권이나 지역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나의 지역공동체로 묶기에는 지역간에 이질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80% 에 달하는 외지 유입층의 미약한 정주의식과 지역사회 시민 참여도, 그리고 20% 토착민의 과거 농경사회 특유의 배타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각종 선거의 양상을 통해 이러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울산은 가지산, 영취산, 신불산, 고헌산 등 1,000m 이상의 고산 준봉을 포용하는 영남 알프스가 고래등 처럼 내륙으로 뻗어 있고 여기서 발원하는 태화강은 삼산평야를 적시며 동해와 만나는 다양한 자연축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우리 말 연구에 잊지못 할 업적을 남긴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장이며 신라충신 박제상의 충절과 광복군 총사령 박상진 의사의 기개가 살아있는 고장이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언양 자수정을 명성, 고층습원 생태계의 보고, 무제치늪과 단조늪이 보여주는 다양성은 공업한국의 진열장이라기 보다는 한국 근대사의 표본이라 해야 마땅하다. 신라 향가 처용가와 처용설화가 서린 개운포가 있는 고장이 울산 땅 임을 알 때, 공업도시 이미지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문화도시 울산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난 날 공업건설의 첫 삽질이 외형적 성장의 추구였다면, 광역시 승격으로 새 출발의 '외솔'을 심었던 두번째 삽은, 삶의 질이 제고된 문화도시로 가는 이정표라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부터 울산의 발전은 굳이 공업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시민 존중도시'의 도시 이념대로 나아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잠재 역량이 무엇인지, 본래 지니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계승할 것인지 새겨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하여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된 공업도시 울산의 그릇된 인식을 청산하고 국익 기여에 대한 자긍심을 살려 나갈 수 있는, 21세기 풍요로운 '큰 울산' 을 건설하여 다시한번 민족중흥의 공덕에 버금가는 영광을 이 땅에 안겨 주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연구소 발행, 월간 '지방자치' 1997. 9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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