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 방안과 과제 (울주연구 서창원 논문)

서창원 논문 | 2015-12-03 오후 8:42:45 | 조회수 : 2500 | 공개

             지역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 방안과 과제

 

                                                                                      서창원 지역홍보연구소장

 

1. 들어가는 말

 

우리조상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우리의 삶에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좁은 국토와 제한된 자원, 높은 인구밀도의 여러 조건 가운데 경제개발은 다른 무엇 보다도 중요시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문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무모한 말로 치부되었던 적도 있었다.

오늘날 경제수준은 높아지고 사회가 보다 민주적으로 변화되고 교통과 통신 정보화가 급격히 향상되게 되면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제 문화는 더욱 폭넓은 현실적 창조력을 갖게 되었으며 모든 이가 이를 통해 보편적으로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문화가 지니는 가치가 재인식 되어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 일컫는 것이다.

 

과거의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의 하나는 ‘정신성(精神性)’이다. 문화의 일차적 가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온 이러한 정신성이라고 할 때 오늘날은 그 축적된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현재의 삶에 견주어 보고 배우며 즐기는 것이 또 하나의 문화활동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곧, 문화자원의 지속적 발굴과 함께, 가치의 해석과 체계화,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창조적 재 구성으로 이어지면서 관광산업과 결합,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 또는 관광상품화로 귀착하기에 이르렀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관리하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지금까지 중요한 문화유적이 발굴 조사되고 난 후 대부분은 발굴조사 보고서 정도만 작성하고 덮어두거나 개발에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울산지역만 하더라도 땅을 파기만 하면 선사시대 유물이 쏟아진다. 울산이 유독 선사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70년대 초, 각각 국보로 지정된 대곡리와 천전리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본격화 됐다. 그 후 지난 20년간 울산에서는 12곳의 신석기 유적 외에도 40개에 가까운 청동기 유적도 발굴되었다. 96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논이 발견된 옥현유적과 90년 발굴된 검단리 유적은 청동기 때 한 마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 우리나라 취락유적의 표본으로 평가 받았으나 발굴 보고서만 작성하고 개발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옥현유적지는 유적 전시관을 건립하여 다소의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서울 암사동 선사취락유적이 복원되어 교육 및 관광자원이 된 것이나 이웃나라 일본의 큐슈(九州) 사가현의 ‘요시노가리’같은 유적이 역사 유적공원으로 단장되어 주목 받고 있는데 비하면 우리의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발굴되는 유적마다 복원계획을 세우거나 역사 문화 관광자원화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화유적의 복원과 문화관광자원으로서 활용이 다른 어떤 개발의 이익보다도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검토할 필요는 있다.

 

본 고에서는 타 지역의 관광자원과 차별화 되면서 역사 문화도시로서 지역의 이미지를 높이고 많은 국내외 관관객을 유인할 매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이미 분석된 대곡리반구대암각화(국보 제 285호)와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 박제상 유적(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서생포왜성(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등 이들 주요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울산시와 울주군이 추진하고 있는 문화관광자원화의 기본방향을 알아보고 우선순위를 고려한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의 대강을 국내외 사례를 들어 논해 보고자 한다.

 

2. 암각화 지구 관광자원화 계획

 

 

울산의 특화문화요소를 꼽으라면 첫째가 ‘암각화’이며 다음이 ‘처용’문화유산이다. 그 가운데 처용은 60년대 부터 부각이 되어 처용문화제 등 가시적 문화행사로 이어지면서 울산은 처용의 도시로 일컫어져 왔다. 그러나 처용 문화유산이 그간 지역의 문화 근간으로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서 위기를 겪어 온데 비해 암각화는 최근 급부상한 감마저 있다.

이는 암각화가 처용에 비해 가치 측면에서 뒤처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고 70년대 초 암각화 발견 이 후 지역민에게 좀더 가까이 대중성 있게 다가서지 못했던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그간 암각화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이어졌으나 그것이 오늘날 울산문화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고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조건인 가치의 해석과 문화상품으로서 창조적 재발견이 늦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울산 암각화의 대표격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 이후 사연댐의 수위 만큼이나 깊이 잠겨 있었다. 발굴 종합 보고서가 83년에야 나오고 그간 연구의 중심이 주로 외지 학자에 의해 이루어져 지역의 관심은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의 지위로 크게 멀어져 있었다.

암각화가 울산지역에서는 몇몇 예술인에 의해 창작품의 주제로 간간히 등장하다가 90년대 들어 지역대학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시작되었다. 문화재 관리행정 측면으로는 95년 울산시의 요청으로 지방문화재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국보로 승격시키는 일이 있었다. 발견 후 3년만인 73년 국보로 지정된 천전리 각석과 함께 국보 2종 모두가 암각화가 지정 되므로서 전국에서 보기드문 국보 암각화 보유도시가 되었다.

 

울산광역시가 암각화를 문화관광자원으로 본격 인식하고 개발을 추진하게 된 시점은 99년 중순경이라 할 수 있다. 울산광역시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암각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면서 울산광역시에 문화관광자원화를 구상하라고 지시한 이후,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울산을 대표할 문화요소를 살피던 가운데 암각화가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다.

 

이어서 2000년에는 서울에서 암각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울산암각화의 전국적인 관심과 외국학자들에 의해 국제학계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와 같은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암각화가 울산을 대표할만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지방문화의 특화와 문화자치를 이루려는 지방정부의 의지를 살리면서 중앙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는 성과도 얻었으며 아울러 공업도시로 인식되던 도시 이미지를 크게 개선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지역의 특화문화요소로 확고히 자리 매김한 울산 암각화가 또 다시 뜨거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울산광역시에 의해 울산 암각화 선사유적 공원화 방안이 제시되면서 시작됐다.

울산광역시의 기본계획은 최대한 친환경적인 개발을 통해 지금까지 사실상 방치나 다름 없었던 암각화를 체계적인 보존 관리와 활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입로 확포장 공사를 추진할 즈음 자연경관 훼손을 우려한 민간문화단체의 반대 여론에 부딪쳐 지연을 거듭,암각화 관광자원화계획이 월드컵 개최시기를 넘기게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논란이 언론을 통해 크게 번지면서 암각화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을 증폭시키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시민들이 바라는 암각화의 활용방안은 여태까지 관리에 소홀한 감마저 있었던 것을 최소한의 편의시설이라도 갖추고 진입로 확장 등 주변 여건과 환경정비 였다고 본다면, 이러한 민간문화단체의 개발 반대 여론은 관주도형 관광개발의 폐단을 일찍이 경험, 개발이 곧 환경훼손이라는 선입감이 크게 작용했던 탓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관련학자들의 암각화 보존과 연구 우선논리가 더해지면서 당국의 관광자원화 의지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암각화가 발견된지 30년이 지나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유독 문화행정이 관심을 가질 즈음 관련학계가 울산광역시의 기본방침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극단적인 반대를 일삼은 태도도 암각화의 가치를 지역을 대표할 만한 문화자산으로 이해하고 권장하면서 보다 쉽게 대중화 하려는 노력은 외면한 채, 오로지 암각화를 학술적 연구대상으로만 삼을려는 학자들의 의중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간 암각화의 훼손도 알만한 사람들의 무분별한 탁본이나 본뜨기로 인한 훼손 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일반시민의 문화의식 부재로 뒤집어 씌우고 있는데, 암각화 보존에 관한 논의에 앞서 그간의 훼손에 관한 정확한 경과 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암각화 보존 방안은 사연댐 수위를 낮추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없어 보인다. 울산광역시에서 암각화 보존에 관한 연구 용역을 석조문화재 보존과학연구회에 의뢰를 하고 보존을 위한 국제심포지움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처방을 내어 놓지도 못했다. 물길을 돌린다든지 원형 경기장 같은 모양의 방수벽을 설치한다든지 하는 방식이 제시되었으나 오히려 주변경관을 망치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항구적인 암각화 보존 방법 이란 보장도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진입로 입구에서 부터 도보로 이동하는 방식이 가장 친환경적이겠으나 현재 그 일대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주민생활과 관광객의 편의를 고려한 판단으로 보여진다.

 

다음의 핵심사업으로는 암각화의 다양한 학술적 정보와 관광객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선사문화 전시관을 건립하는 일 무엇보다도 암각화의 보존은 훼손을 가속화 하는 대곡천 상류의 수질 악화 등 외부환경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세계 유수의 암각화 보존방식을 살피더라도 인위적인 처리방식이 성공을 거둔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단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영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수량을 조절하지 않는 다음에야 그냥 그대로 두는게 가장 좋다고 본다. 당대 우리의 자산만이 아니라 후대에도 물려주어야 할 너무나 소중한 가치이기에 섣부른 처방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암각화 보존문제와 병행하여 논란이 되었던 사안은 진입로의 확 포장사업이다.

2.33Km에 이르는 좁은 암각화 진입로를 8m의 노폭으로 하려던 당초 계획을 일부 수정, 절반 정도만 확,포장 하고 나머지는 도보가 가능하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가장 이상적인 인데 현재 진입로가 끝나는 반구교 건너편 반구서원 일원에 조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암각화가 제 아무리 가치가 있고 대중적인 관심이 크다하더라도 현장에서 이를 충족시켜줄 충분한 자료가 없으면 어렵게 찾아간 방문객을 실망시키게 된다. 유명하고 크게 알려진 명성만큼 많은 진기한 자료를 보여줄 수 있어야 선사문화 관광지로서 매력도 살아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관광과 교육용으로 실물크기의 정교한 암각화 모형을 설치하고 답사객의 지적 호기심을 해소 시켜 주어야 한다.

 

 

암각화로 특화된 선사전시관에는 울산 암각화를 중심으로 고령, 포항 등 우리나라 각지의 암각화의 자료를 집대성하고 동북아 및 전 세계 암각화와 비교하여 울산 선사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알뜰히 꾸며져야 할 것이다.

 

암각화 전시관이 단순히 보여주기만 하는 전시공간 뿐만 아니라 암각화 연구자가 상주하면서 울산암각화를 지속적으로 세계 암각화와 비교, 연구하는 학술적 기능도 갖추어야 한다.

그 간의 암각화 연구 성과를 축적하여 비치하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과정을 방문객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살필 수 있는 거점으로 가꾼다면 그 자체가 이미 관광자원이며, 세계 암각화 학계가 주목하는 연구센터로서 외국 암각화 연구자의 학술교류 등이 상시 이루어 질 것이다. 따라서 선사문화 전시관은 외형 위주의 건물 건립에만 치중할게 아니라 건립 구상과 동시에 책임있는 암각화 연구자의 참여가 선행되어야 암각화 전시관이 학술적으로도 내용이 충실히 살아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 외 부대시설로서 교육시설을 들 수 있는데 암각화 문화관광 기념품 판매 코너, 자연생태 관찰 데그, 원시문화 산책로, 휴게공간 등이 설치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지된 시설보다도 살아있는 선사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중요하다. 암각화 문화관광자원화 사업의 성패는 관광을 끝내고 떠나는 사람이 그 곳을 이웃에 알려 다시 찾아올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문화관광 개발은 관광을 통해 삶의 터전을 보다 윤택하게 가꾸어간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볼 때, 지역주민과 지역 자본이 주체가 되어,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는 시설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체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체험 프로그램의 개발과 적용을 위해 주민참여 방안 연구와 주제의 설정, 상품개발 및 마케팅에 이르기 까지 민,관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앞서 예로든 일본의 ‘큐슈 요시노가리‘ 유적의 예로 살펴보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야요이 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라는 주제로 선사인의 불지피기, 사냥하기, 당시 선사인의 제사의식 등 생활 체험 프로그램을 상시 개발하여 관광객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인근의 ‘후쿠오카’현 ‘이타쯔게’ 마을 사람들은 선사전시관 및 전시관 앞에 복원된 무논(水田)에서 문화재를 활용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안내 설명서에는 유적발굴에서 복원과정부터 1년간 진행되는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까지 상세히 실려 있다. 또한 ‘야요이’ 사람들이 입었던 옷감을 짜고 토기 만들기를 체험한다. 밭에는 모시풀과 염료식물을 심은 후 채취해 실을 뽑고 직조기계로 옷을 만들고 10월 가을 축제 땐 수확한 쌀로 떡 만들기,천 짜기와 함께 ‘야요이’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이와 비교해 울산의 암각화 관광지구에서 구상할 프로그램을 잘 살펴보면 거의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암각화에 새겨진 형상을 분석하여 유추할 수 있는 선사인의 생활상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울산 전역에 걸쳐 산재한 선사유적지의 대표적 생활상을 집대성한 선사마을을 조성해야 한다.

 

당초 울산광역시 계획은 선사마을을 선사전시관과 천전리 각석 사이에 조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유적 환경 훼손 우려를 염려한 문화단체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광객 유인 효과를 확실히 하기 위해 선사체험 마을 조성은 심도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장소는 여러 곳이 있겠으나 울산시가 매입을 추진하는 천전리 각석 일대 사유지를 활용하고 십수년전 청소년 체력 단련장으로 조성 되었던 부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거기에 선사인의 집을 조성하고 암각화에 나타난 각종 동물 사냥터를 만들어 모형 동물에 활 쏘기, 창 던지기 등을 체험하게 한다. 선사 고래잡이 재현을 위해 배를 타고 모형고래에 작살을 던질 수 있는 놀이장도 조성한다. 선사 도예방에서는 손으로 빗은 선사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보고 나무막대를 비벼서 불도 피워 본다. 그 외 모형 암각화 조성광장에는 실제 도구를 사용해 암각화를 쪼으는 체험과 여기에 모조 탁본 체험장도 곁들인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잘 짜여진 프로그램과 함께 정기적인 암각화 축제도 개최하는 등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실천 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갖춘다면 세계 어디를 내어 놓아도 손색없는 훌륭한 선사체험 관광단지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암각화 지구 일대를 가능한 인공의 흔적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일단 그렇다 하더라도 천전리 각석 일대 정비는 근본적으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먼저 관광객이 암각화로 접근하는 동선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현재는 시멘트로 조성된 잠수교를 지나 천전리 각석의 뒤쪽으로 접근해 아래로 돌계단을 타고 내려 와서 철책 안을 들어가 관람하도록 되어있다. 암각화를 관람자에게 되도록 가까이 보게 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막상 보고나면 뭐가 뭔지 실물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실망하기 쉽다. 또 암각화를 둘러싸고 있는 육중한 철책도 주위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관람객의 감상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있다.

 

먼저 천전리각석 주변 보호철책을 철거하고 일대를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복원하여, 관람객은 천전리 각석에서 대곡천 건너편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장소에서 조망하도록 접근 통로를 조정해야 한다. 그 곳에는 천전리 각석의 내용을 자세히 볼수 없는 단점을 보완할 각종 사진과 모형 등 현황 패널을 설치, 자세한 이해를 돕도록 하면서 고정식 망원경을 비치하여 실물을 직접 관찰 하도록 한다.

어떤 유적이든 유적이 입지하는 장소성과 경관이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역설적으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사연댐에 잠겨 있기 때문에 더 신비스럽고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 천전리 각석도 지나치게 접근성이 좋아서 관람자가 근시안적인 인식으로 그치기 쉬운 선입견을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

 

대곡천이 절묘하게 천전리 각석을 휘돌아 감는 입지 경관을 충분히 감상하고 느껴볼 수 있어야 진정한 현장 답사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너무 쉽게 접근하다 보면 계곡에 입지한 선사 암각화가 주는 특유의 신비감 마저 잃게 된다.

따라서 암각화지구 관광자원화 계획에 의거, 설치가 예상되는 반구교 인근에서 천전리 각석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설치를 생략하고, 이어서 그대로 관찰지점까지 선사문화 산책로를 통해 관람객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천전리 각석 근처의 출입은 관리자와 연구자 외에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 하므로서 근본적인 경관 보존대책과 아울러 유적의 가치도 높이는 이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3. 박제상 유적지 주변 문화관광 자원화 계획

 

박제상 유적지 주변 문화관광자원화 계획은 신라시대 충신인 박제상과 부인 김씨의 유서지로 역사와 교육의 장으로 제공하기 위한 정비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를 통해 박제상 공의 충절사상을 선양하고 충,효,예,열의 산 교육장으로 후세들에게 전하기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박제상 유적지는 치산서원(鵄山書院)과 망부석(望夫石), 은을암(隱乙巖) 등 세곳으로 나뉘어 있다. 치산서원은 부지형태가 굴곡이 심해 미관을 저해하고 있으며 부지가 협소하여 관람객들의 휴게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은을암과 망부석이 각각 떨어져 있어 연계성의 부족으로 현장 탐방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본 계획은 박제상 공의 충절사상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부여함과 동시에 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인데 제3차 울산권 관광개발계획에 의하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연차계획으로 치산서원과 은을암, 망부석을 연결하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자원 정비를 추진하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대규모의 시설개발의 추진이 아니고 박제상 유적지의 홍보와 교육 공간 및 탐방객들을 위한 편의 공간 제공 등 주로 관광객 편의 중심의 외형적인 정비 보강계획에 치중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여기서는 박제상 유적에서 소홀히 하고 있는 교육과 관람 기능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내용을 중심으로 점검해 보고자 한다.

 

치산서원은 박제상과 김씨 부인,두 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임금이 세운 사당 치산사(鵄山祠)가 있었으나 조선말기 서원 철폐로 없어졌던 것을 1991년 11월 복원된 건물이다. 평소에는 늘 비어 있어 치산서원 봉제회에서 주관하는 제사를 일년에 한번 올리는 것 외에는 관람객이 보고 느낄 것이 거의 없다. 연차계획에 의해 유물전시관을 건립한다고 하지만 언제 실현될지 모르고, 공공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박제상 관련 유물이나 자료를 빠짐없이 수집하여 집대성 하여 치산서원의 여러 건물 공간을 그냥 비워 두지 말고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전통가옥 보존이 어려운 것은 지어놓고 사람이 살면서 관리하지 않으니 자연 훼손이 심하다. 관리인이 상주하면서 전시공간을 관람객에게 안내 하면서 유적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관 주 건물에는 박제상 공과 그의 부인, 딸의 밀랍 인형을 제작해 설치하고 관람객이 일정거리에 다가 오면 자동으로 안내문이 흘러나오는 음향시설을 설치한다. 이런 형태의 모델을 예로 들자면 전북 고창 모양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성내 각 건물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잘 꾸며져 있다.

또한 박제상 행적을 묘사한 각종 옛 그림이나 글씨 등 여러 서지자료와 주요 관련 유적지의 사진을 게시하도록 하며 박제상 공이 일본으로 떠났던 발선처(發船處)에 관련된 연구 현황, 율포 및 유포석보 유적과 경주 쪽의 제2의 망부석에 관한 일설도 집대성 하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충렬공 박선생실기, 울산읍지,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치산원도, 치산원 집사록 등 각종 문헌기록을 정리하여 박제상 자료 및 연구논총을 편찬해야 할 것이다.

 

은을암에서 출토된 기와 파편, 치술령 정상 신모사 터에서 수습한 신라토기편 등 1987년 당시 박제상유적 발굴조사 보고서에 나타난 유물들과 박제상 공이 태어난 고향인 경남 양산에 있는 박제상 만고충열비를 탁본한 자료와 사진, 충효마을에 전하는 박제상 효충가(孝忠歌) 등을 병풍으로 제작하여 비치하도록 한다.

국내에 없는 희귀자료는 일본 대마도를 중심으로 사진과 복사본을 제작하여 전시하고 이와 함께 오류가 많은 대마도의 박제상 관련 유적해설도 확인하여 정정을 요청해야 한다. 그 외에도 치산서원 정원이나 주변에는 박제상의 충절을 잘 상징하는 전통 수종의 나무를 식재하여 전체 경관 이미지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

박제상 부인이 두 딸과 함께 일본에 볼모로 간 박제상을 그리며 눈물 지었다는 망부석에는 현재 음각으로 망부석(望夫石)이라고 새겨진 한문 글씨 외엔 찾아볼게 거의 없다. 최근 울주군이 비석 형태로 세운 치술신모 기념비가 있으나 별로 감동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여기에 동해를 바라보며 박제상의 무사귀환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치술신모녀상을 세운다면 어렵사리 이곳을 찾는 탐방객의 기대감을 만족시킬 좋은 볼거리가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사례로는 제주도의 해녀상이나 정선아라리의 처녀 뱃사공상, 칠갑산의 콩밭 메는 아낙네상 등이 있는데 관광객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유적지의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랜드마크 기능을 다하고 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박제상유적인 은을암은 치술신모가 죽어 새가 되어 바위에 들어가 숨었다는 전설을 잘 가시화 시킨 부조 형태의 조형물을 유적지 해설문안과 함께 현장에 설치하면 좋을 것이다.

 

그 외 치산사보존회가 매년 음력 2월 중정일에 올리는 춘향제를 담은 영상 기록물과 박제상 유적을 종합적으로 쉽게 해설한 홍보물을 비치하고 삼각 형태로 흐트져 있는 이들 유적간에 유적 도보 탐방로 정비 개설 등 연계성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박제상유적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충효사상 함양과 교육적 실천도장으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인근에 위치한 암각화지구와 함께 경주문화 관광단지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울산으로 유인하는 북울주권의 주요거점으로 적극적인 관광홍보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4. 서생포왜성 주변 문화관광자원화

 

 

남울주권의 문화관광자원인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은 축성술의 대가라 일컫는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1593년 전형적인 일본성의 구조로 지었다고 전하는데 현존하는 왜성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

조선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4월 부산포로 들어온 왜군은 병력을 나누어 서생포와 다대포를 동시에 공격했다. 당시 남해안 일대, 전라도 순천에서 울산의 서생포 사이에 모두 18개의 성을 쌓아 새로운 전략거점으로 삼았는데 그 중 하나가 서생포왜성이다.

 

서생포왜성의 관광자원으로서 가치는 천혜의 진하해수욕장과 새천년을 맞아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가 시작되는 간절곶이 관광자원으로서 집적효과를 더하고 있으며 남쪽의 부산권의 관광객을 울산으로 유인하는 주요 거점의 하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서생포왜성이 주요 관광자원으로 부상하게 된 또 다른 계기는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본성곽담화회의 활동과 관련이 있는데, 임진왜란이 끝난지 400년이 더 지난 지금 많은 일본인이 서생포왜성을 찾아 일본과 울산간 국제교류의 장으로 변모하게 된 것과 위폐 봉안 명단 선정으로 진통을 겪었던 중구에 세워진 충의사와 별도로 역사의 현장인 서생포왜성 내의 창표당(蒼表堂)을 복원하려는 지역주민의 강한 의지가 결합이 되면서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1999년 일본에서 대규모로 관광단을 조직하고 수차례에 나뉘어 한국의 왜성 테마관광이 실시된다는 보도를 접한 울주군의 한 공직자가 한국측 파트너인 모 관광사에 서생포왜성을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서생포성에 수천명의 일본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정보에 따라 울주군은 긴급하게 서생포왜성 복원 정비사업계획을 수립했는데, 일부 언론은 즉각 반일 감정을 들어 왜성을 복원하는데 거액 투자는 안될 말이라며 비판의 논조를 세우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적도 있었는데, 섣부른 반일 감정과 해외 관광객 유치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주기도 했다.

현재 서생포왜성을 중심으로 인근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유적 복원 및 보존운동은 문화유적의 관광자원화계획에 있어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주로 이러한 계획의 성패 여부는 지역주민의 절대적인 협력 없이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창표당 복원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매년 임란공신 후손들을 초대하여 추모제를 봉행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서생포왜성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울주군에서는 이 행사를 매년 측면 지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울산과학대학에 서생성 관광자원화계획 용역을 의뢰하여 최근 최종보고회를 가진 바 있다. 본 계획의 기본방향을 간략히 살펴보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개발 하면서 성곽 유구 및 자연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보전적 개발로 과도한 물리적 시설물 도입은 지양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유구 조사나 문헌 연구를 통해 서생포왜성에 내재된 가치와 특성을 구체화하는데 중점을 두며 일시적이고도 대규모의 개발 방식을 벗어나 단계적 지속적인 개발이 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주요 도입 시설로는 창표당의 복원과 자료전시관, 기타 주차장 설치 등이 있으며 종합적인 자세한 내용을 그린 서생포왜성 설명판을 설치하고 무인 안내 시스템을 도입하여 관광객의 편의를 돕게 한다고 되어 있다.

 

서생포왜성의 정비는 일본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들의 연구성과를 차용하고 복원에 필요한 자문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국제적인 문화교류로 이어지고 서생포왜성의 문화행사에 일본의 왜군 후손들이 방문하여 우리의 임란공신 후손들과 화해와 친선의 장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일본도 서생포왜성 복원이나 정비에 필요한 도움 요청을 쉽게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먼저 그들과 협력해서 상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서생포성 복원계획과 비교해 일본의 성곽 정비사례를 살펴보면 ‘사가‘현의 ’나고야‘성 유적을 들수 있다. 이 성은 무너진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후세에 전해주는 것을 최선의 보존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침략의 거점 구실을 했다.

 

’나고야‘ 성은 ’오사카’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데 일본 4만여 개의 성 가운데 가장 오래 되면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유적으로 꼽히고 있으며 가급적 인위적인 복원 흔적을 줄이고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완벽한 복원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최근의 경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이는데 지금보다 더 무너지지 않게 해서 후손에게 물려 주는게 최선이라고 여기고 전통 토목기술로 유적을 복원하여 사라져 가는 전통 성벽 수리 방법을 계승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라 한다.

이는 프랑스와 독일 등의 유적 보존 방법을 참고한 것이라는데 오히려 많은 문화재 전문가와 관람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전시위주로 단기간에 문화재 복원을 서두르는 우리의 경우와 비교가 되기도 한다.

실제 가까운 언양읍성의 예로 볼 때, 부분적으로 복원한 것이 되레 원래의 허물어져 있던 옛 정취마저 사라지게 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실제 완전 복원을 목표로 할수록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움을 겪을 바에는 최초의 상태에서 더 이상 훼손을 막는 조치를 하면서 적절한 장소에 복원 모형을 설치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앞에서 말한 충의사는 실제 엄청난 예산을 들여 임란 공신을 기리는 사당으로 복원했지만 평소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심지어 외지에 거주하는 임란공신 후손들 조차 아무런 시설물이 없는 서생포왜성에서 봉행하는 추모제에만 참석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유적의 '장소성'과 참다운 ‘정신성‘이 사라진 외형만 번듯한 건물이란 참으로 무의미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서생포왜성의 관광자원화 계획도 역시 지나친 외형적 성과 보다는 시급한 우선순위에 따라 자료와 유물 등 작은 것부터 챙겨 나가면서 유적 정비계획 자체를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자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창표당 복원 후 설치될 전시관에는 서생포왜성을 복원한 모형이 주변 지형과 어우러진 모습으로 설치되고 울산의 임진왜란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한데 모아야 할 것이다.

창표당에는 단순히 임란공신의 위패만 봉안할게 아니라 공신 모두에게 내린 신사시(紳士詩)도 원문과 번역본을 비치하고 관람객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임란공신 56위의 활약상을 집약한 역사화(歷史畵)를 고증을 거쳐 제작하거나 추모비 성격의 청동부조(浮彫)로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 하다고 본다.

서생포왜성의 주요 문화관광 볼거리로는 추모제와 병행하여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승장이었던 사명대사와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담판을 벌렸던 사실이 기록된 선조실록과 징비록(懲毖錄)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고향인 일본 ‘구마모토’ 주민들을 초청해 공신 후손들과 화해와 친선을 다짐하는 행사를 축제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5. 맷는 말

 

이상으로 울주군 관내 주요 역사 문화재 관광자원화계획의 개략적인 현황과 경과, 점검사항을 열거해 보았다.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이 추진하고 있는 관광자원화 사업이 관광객 편의위주의 외형적 시설계획에 의존 하고 있다면 본고에서는 주민의 삶과 함께 하는 문화관광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 발굴 사례에 초점을 맞추었다.

울산의 대표 문화관광자원인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의 선사시대 고래잡이 광경은 고래를 선호하는 일본 관광객을 유인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박제상 유적과 서생포왜성의 일본과 관련성은 더 이상 두 말할 나위가 없을만큼 크다. 일본관광객 유치를 위해 울산, 키타큐슈를 잇는 정기 여객선이 운행을 하고 있지만 울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관광자원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이 국제관광객을 유인할 의욕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당장이라도 추진할 수 있는 계획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는 세부 실천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인데 일본의 문화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가 앞장서서 일본과 문화교류가 있는 지역관광 단체와 지역대학의 일본연구소 등의 국제문화 학술교류 활동도 지원하고 연계해 나가야 한다.

 

문화관광개발은 단기간 외형적 성과에 집착해 관주도의 일방적 계획과 집행보다도 지역민의 삶을 먼저 살피므로서 이들의 참여와 관심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흔히들 자치단체마다 관광자원개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지역주민은 경제적 분담능력과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계획과 개발과정에서 늘 배제되거나 오히려 개발에 떠 밀려 주민의 삶은 온데간데 없고 관광수익만 노리는 외지 자본가만 설치는 행태를 반복해서는 지역문화가 살아 숨쉬는 문화관광자원화 계획이 온전히 실현되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말해 가장 중요한 문화관광자원은 사람이다. 곧 애향심을 가지고 지역문화를 이어가는 주체인 주민이라 할 수 있다. 주민 스스로 지역문화를 즐기고 자긍심을 가지는 일이 지방분권시대 문화자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그와 함께 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 전승과 이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당장의 관광수익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것은, 문화유산을 통한 관광자원화를 추진하는 자치단체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 울주문화원 발행 '울주연구' 창간호 2002. 1 )

 

 

 

(참고문헌)

 

제2차 관광개발기본계획 (2000) 한국관광연구원

제3차 울산권 관광개발계획 (2001) 울산광역시

암각화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2000) 예술의전당.울산광역시

박제상 사적조사보고서 (1987)한국교원대학교 교육연구원

서생포왜성 관광개발계획 중간보고회 자료집 (2002)울산과학대학 건설환경연구소

문화도시 문화복지 121호 (2002.3)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좌측면 45도 각도에서 바라 본 반구대 암각화 전경, 물이 빠져서 전체가 드러나 있다.

 




태그 :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