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 미학

기본카테고리 | 2014-02-11 오전 11:55:18 | 조회수 : 4678 | 공개

숭고의 개념은 고대 수사학에서 최초로 나타났으나 문화적으로는 근대 정신의 산물이다. 고대 로마의 롱기누스에 의해 처음 미학의 역사에 등장한 숭고는 그 이후 오랫동안 미학의 관심 영역 밖에 머물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근대 미학의 요청에 의해 새로운 미적 범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시금 광범위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글에서는 칸트 미학의 체계에서 숭고의 이론이 어떻게 제기되는지 검토한 후, 료따르가 칸트의 숭고 이론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아방가르드의 논리에 접목시켜 포스트모던의 예술론을 전개하는지를 살피고 있다. 료따르는 우리의 상상력과 지각 능력을 초월하는 자연 대상의 몰형식성이 마음 속에서 이성의 이념을 환기시키고, 이 이념의 부정적 표현으로서 표현 불가능한 것을 그 자체로 드러내어 숭고의 감정을 유발한다는 칸트의 숭고 이론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의 싹을 발견하고 숭고를 포스트모던 문화의 감수성과 연결시켰다.
료따르에게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현실이 허구화되고 파편화된 이미지로 분열된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숭고가 가진 무한성에 대한 미적 감수성이 이러한 기능을 충족시킨다. 료따르의 입장은 포스트모던 문화와 관련해, 숭고의 미적 감수성을 매개로 아방가르드 예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아방가르드 회화가 노리는 비결정성은 표현 불가능한 것을 사건 그 자체로 드러내는 숭고의 미학에서 성취된다. 그러나 아방가르드 예술이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통해 그 의미와 실천 영역을 넓힌 것은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대중과의 원활한 소통은 여전히 큰 문제로 남는다.
※ 주요어 : 숭고, 아방가르드, 비결정성, 포스트모더니즘
1. 여는 글
숭고하다는 것, 숭고의 미적 체험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미적 체험을 한다. 산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한 떨기 야생화에서, 밀레나 렘브란트의 그림 앞에서,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이와는 전혀 다른 미적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인적이 끊긴 깊은 산 속의 고적한 암자에서 문득 바람결에 스치는 풍경소리를 들을 때,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광막한 벌판이나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구름에 휩싸인, 또는 백설로 뒤덮인 고산 준령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아름답다는 감정보다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과 허무함, 그에 대한 자연의 무한성과 경외감, 그리고 전율감에 사로잡힌다. 우리를 사로잡는 이 정체 모를 모호한 감정은 보통 미적 범주에서 숭고 또는 숭엄(sublime, Das Erhabene)이라고 불리워 왔다.
숭고의 개념은 고대 수사학에서 최초로 나타났으나, 문화적으로는 버크와 칸트의 이론이 구현하고 있는 근대 정신의 산물이다. 즉 숭고는 근대의 확장된 자아 개념과 그것의 미적 표현인 모더니즘과 더불어 본격화되었다. 고대 후기 로마의 전설적인 수사학자인 롱기누스에 의해 처음 미학의 역사에 등장한 숭고는 그 이후 오랫동안 미학의 관심 영역밖에 머물다가 엄밀한 객관주의에 토대를 두었던 고전적인 미의 개념에 반발한 18세기 근대미학의 요청에 의해 낭만주의의 새로운 미적 범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의 문제와 관련해 다시금 광범위한 관심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모더니즘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른바 숭엄함 또는 숭고함의 미학이라 불리고 있다. 다시 말해 이성 중심적 사유의 바탕 위에서 엄밀한 미적 규범을 밝혀내어 객관주의 미학의 꽃을 피웠던 르네상스의 정형화된 규범에 반발해, 개인의 주관적인 미적 정서를 강조한 바로크와 낭만주의 미학의 주관주의가 숭고의 미적 정서와 자연적인 친연성을 보였고, 그것은 탈이성적인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와 연결되었다.
아름다움이 조화와 질서, 균제, 정형과 연관된다면, 숭고는 보통 부조화와 부정형, 혼돈 또는 파격과 연관된다. 이런 관점에서 아름다움이 서구 미학에서 객관주의가 지배한 고대 그리스 이래 중세와 15, 16세기 르네상스기에 이르기까지 미술사를 일관한 주요한 미적 범주였다면, 숭고는 17세기 바로크 시대로부터 시작해 18, 19세기 낭만주의를 거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다양한 전위 예술(아방가르드) 운동,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 본격화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주요한 미적 범주로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칸트 미학의 체계에서 숭고의 이론이 어떻게 제기되는지 검토한 후,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자인 료따르가 칸트의 숭고 이론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아방가르드의 논리에 접목시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론을 전개하는지, 숭고 이론의 영향과 그 관계를 살필 것이다.

2. 칸트의 숭고 이론
1674년 브왈로(Boileau)의 번역과 주석으로 비로소 근대미학의 조명을 받은 가상의 인물, 롱기누스의 <숭고론 Peri Hypsous>에서 숭고는 일종의 문체학상의 개념이었다. 롱기누스는 위대한 문학 작품을 보증하는 어떤 특질이 있는 바, 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을 '원대하고 중요한 사상'과 '격렬한 정서'로 보고, 이것을 숭고의 조건 혹은 그 구성요소라 불렀다. 진정한 숭고는 독자에게 단순한 쾌락이나 지적 신념이 아닌, 황홀감 Ekstasis을 낳게 하고 그 본성에 의해 우리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브왈로 이후 롱기누스의 숭고 개념은 샤프츠베리가 발견한 자연과 자연미에 대한 강렬한 새로운 감정 표현, 그리고 에디슨에서 '일차적인 쾌'(현존하는 대상에서 일어나는)의 반응을 일으키는 미적 특질로서의 웅장함으로 나타나고, 1757년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미 관념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탐구> (이하 '탐구'로 표기)에서 생리적, 심리적 방법에 따른 그 이론의 정치(精緻)성을 얻게 된다.
버크의 경험주의적 고찰에서 아름다움과 숭고의 분석은 개인에 대한 대상의 생리적, 심리적인 효과에 주목하는 방법이었다. <탐구>에서 버크는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연민과 애정의 사회적 정념과 결부시켰고, 숭고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 확장되는 경험의 대상과 더불어 놀라움 또는 낯섬과 대면함으로써 생성되는 불굴의 영웅주의적인 감정과 연관시켰다.
버크는 숭고의 원천을 고통과 위험의 관념을 일으켜 감각과 영혼을 자극하는 두려운 대상에서 찾는다. 고통과 위험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약화되었을 때, 고통이나 위험은 '유쾌한 감정'delight 으로 전이되어 숭고한 정념을 산출한다. 숭고에 관해서 버크나 칸트는 미적 경험에 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다. "버크의 이론이 장엄한 대상이 고통이나 위협으로 느껴지는 그러한 상황의 미학을 지향한다면, 칸트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크기나 힘의 완전한 압도적인 과잉에 대한 이성적 반응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버크가 자연과 사회, 예술 등 광범위한 대상에 걸쳐 숭고를 연구한 데 비해 칸트는 주로 그 대상을 자연계에 한정시키고 있는 점도 다르다.
칸트 미학에서 아름다운 것과 숭고한 것은 모두 그 자체로서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한다. 그러나 만족감은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질적인 표상과 연관되어 있으나, 숭고에 있어서는 양적인 표상과 연관되어 있다. 칸트는 '단적으로 큰 것'을 숭고하다고 했다. 칸트가 말한 '단적으로 큰 것'은 모든 비교를 넘어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며 '그것과 비교해서 다른 모든 것이 작은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이 단적으로 크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객관적 척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주관적 판단이지만, 그 판단은 주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요구하는 보편적 판단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이 크다고 함은 '수학적-규정적 판단'이 아니라, 그 대상의 표상이 주관적 합목적성을 가진다는 데에 관한 '반성적 판단'이다.
칸트가 숭고의 개념을 '큰 것'으로 본 점에서 분명히 롱기누스의 영향권에 놓이지만, 그것을 "신적인 완전성에서가 아니라 감성적으로 제약된 유한한 인간성 속에서"찾았다는 점에서 롱기누스가 파악한 숭고의 개념과는 일정한 차별성을 갖는다.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숭고를 자연 대상, 정신(상상), 이성이념들의 세 가지 계기로 파악한다. 하나의 자연대상을 관조할 때, 상상은 단 한 번의 직관 속에 어떤 총체성의 이념을 표현하고자 하지만 이 시도는 무위로 끝난다. 예컨대 우리가 폭풍우 치는 광대한 바다나 별이 빛나는 가없는 밤하늘을 바라 볼 경우, 인간의 제한된 감각 직관으론 그 대상들의 지각 가능한 공간적·시간적 경계와 한계의 초월을 경험한다. 따라서 자연의 미는 대상의 형식과 관계되며 숭고는 경계 또는 한계의 부재에서 오는 형상의 결여, 즉 몰형식성과 관계된다. 바다는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 기준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몰형식한 것으로 나타나고, 어떤 명확한 형상이나 경계들을 결여하여 광대함이라는 이념에 이르게 된다. 이에 대해 칸트는 "진정한 숭고는 그 어떤 감성적 형식 속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이념들에게만 관계된 것으로 이 이성의 이념은, 어떤 적합한 표현도 가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적합성이 감성적으로 표현됨으로써 그 자체에 의하여 마음속에서 환기되고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념들을 환기시키는 것은, 이념들의 부정적 표현으로서 표현 불가능한 것이 있음을 증명하는 한에서 숭고의 감정을 유발하는 바로 상상력의 실패 그 자체다. 이러한 경험은 초월적인 공간의 경험, 즉 무에 대한 두려운 경험이다. 이 때 상상력은 칸트가 말한 '공포의 심연' 속으로 내던져진다. 따라서 숭고한 것은 대상도 아니고 이성의 이념들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모든 모호함과 함께 이념들을 표현하기 위한 상상력의 운동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력에는 무한한 진보에의 노력이 있고, 이성에는 현실적 이념에 대한 요구로서 절대적 총체성에 대한 요구가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감각적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이러한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초감성적 능력이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체험은 감각적 표상에 관계하는 상상력과 오성의 일치를 통해 발생하며, 이에 반해 숭고의 체험은 상상력이 총체성의 능력인 이성의 이념과 결합함으로써 발생한다. 거대한 자연 현상은 우리의 지각과 상상력을 끝없이 좌절시키며 고통의 느낌을 유발한다. 우리가 무한한 대상 앞에서 전율과 외경(畏敬)을 느끼는 것은 상상력의 한계를 매개로 한 절대적 크기의 표상 때문인데, 총체성을 지향하는 이성의 능력이 상상력을 부추겨 숭고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숭고의 체험이란 우리의 순수한 이성 능력이 자연 속에서 심미적 혹은 감성적인 방식으로 자기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 이외의 어떤 다른 것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숭고의 논의에 대해 뤽 패리(Luc Ferry)는 "이 부분은 칸트 미학 속에서 어떻게 형이상학 체계의 해체와 유한성에 대한 근본적 사유, 그리고 표상을 초월하는, 또 현대 철학에서 '차이'라 불리는 바로 그것에 대한 사유가 동시에 공존하는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바로 이 때문에 칸트 미학은 취미판단에 있어서 핵심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이성과 감성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고서 단호히 바로크로 향한다"고 했다. 칸트가 예로 든 영국식 정원의 취미나 거의 그로테스크할 정도로까지 상상력의 자유를 끌어들이는 가구에서 바로크적 취미처럼, 취미가 상상력의 표상행위 속에서 자신의 최고의 완벽성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는 것은 강요된 규칙성을 벗어날 때 이루어진다. 바로 여기서 기괴함과 자유분망함을 추구하며 르네상스의 재현의 미학에 도전한 17세기 바로크주의가 아방가르드와 만나는 중요한 계기가 이루어진다.

3. 숭고와 아방가르드
이제 칸트의 숭고 이론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료따르가 칸트의 숭고를 아방가르드 및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와 어떻게 연관짓고 있는지 살펴보자.
료따르는 롱기누스의 고전적 숭고 이론과 이를 계승한 17, 18세기 버크와 칸트가 성취한 숭고의 미학을 분석한다. 숭고에 대한 료따르의 이러한 이론적 천착은 모더니즘을 특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예술적 감수성으로 숭고미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료따르가 발견한 칸트의 숭고미는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고통이 기쁨으로 전환된 강력하면서도 모호한 감정이다. 료따르는 이렇게 말한다.
칸트에게서 미의 지각은 예술작품의 대상이나 자연에 의해 형성된 개념들의 기능과 이미지들의 기능 사이의 자유로운 조화(오성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 조화-필자)에 의해 촉발된다. 숭고의 미학은 훨씬 더 비결정적이다. 이것은 고통과 혼합된 쾌락, 즉 고통에서 오는 쾌락이다. 사막이나 산, 피라미드 등과 같이 절대적으로 광대한 자연, 대양의 폭풍이나 분출하는 화산 등과 같은 절대적으로 강력한 현상들은 다른 모든 절대적인 것들과 마찬가지로 지각/감각적 직관을 통하지 않고 이성의 이데아(이념-필자)로서 생각될 수 있는 대상들이다. 이런 대상들 앞에서 재현능력, 즉 상상력은 그 관념과 일치하는 재현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이러한 재현의 실패로 인해 고통이, 즉 주체 내부에서 지각될 수 있는 것과 상상 혹은 재현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료따르는 숭고미학이 갖는 '비결정성'과 주체 내부에서 "뭔가를 생각하는 능력과 '표현하는' 능력 사이의 갈등"에서 아방가르드의 논리를 발견했다. "숭고미학 이야말로 특히 근대예술(문학을 포함하여)이 그 동력을 발견했고 아방가르드의 논리가 그 원리를 발견한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모더니즘은 "표현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작은 기술적 실험에 몰두하는 예술"에 붙일 수 있는 꼬리표이다.
콰토르첸토(Quattrocento: 15세기 르네상스기) 이래 회화의 기능은 사물에 대한 사회 정치 종교적 질서를 기록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다양한 사실적 양식에 의해 19세기와 20세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사진과 기술과학적 문화의 충격과 더불어 전통적인 예술과 미 개념의 변화가 일어나고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의 역사가 열린다. 18세기 후반 아방가르드 예술양식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회화는 주어진 사물 질서의 단순한 변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료따르의 말대로 "예술은 더 이상 모델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그대신 예술은 재현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려 한다."
료따르는 아방가르드 예술의 역사에서 숭고의 두 가지 양식을 구분한다. 첫째는 '멜랑코리', 즉 현전presence에 대한 '향수'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재현의 능력에 대한 무기력함과 주체가 느끼는 현전에 대한 향수, 그리고 인간 주체를 사로잡는 모호하고 부질없는 의지에 있다. 말레비취(Malevitch)와 독일 표현주의자들, 푸루스트, 키리코(Chirico) 등이 이러한 감수성의 영역에 속한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그림과 문학에서 우리는 주체성의 깊은 차원에 대한 낭만주의적 노력과 존재하나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절대적 자아와의 소통을 위한 노력을 발견한다. 그것은 '무형식성' 또는 '추상성'이 암시하는 '표현불가능성의 가능한 지표'이다.
말레비취가 그린 정사각형 가운데 하나인 흰 것은 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고통을 불러일으킴으로써만 기쁨을 준다. 가시적인 표현 방식을 통해 표현불가능한 것의 인유allusion를 만들고자하는 것이 아방가르드 회화의 원리이다. 이것은 칸트의 숭고 개념에 내포되어 있는 실재와 개념 간의 '통약 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으로 설명 가능하다.
숭고성의 또 다른 양식은 '새로움'novatio이다. 이것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직접적인물음을 통해 전통적인 예술관에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예술과 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감수성의 혁신을 추구했다. 여기서 중요성은 새로운 게임의 법칙에서 유래하는 존재와 기쁨의 증가에 있다. 료따르가 그리고 있는 '새로움'은 인상주의에서 세잔느, 큐비즘으로의 이행에서 발생하며 대략 1910년대 추상의 부상에서 절정에 달하는 급진적인 양식의 변화이다. 예컨대 세잔과 들로네이즈(Delaunays), 그리고 몽드리안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숭고성은 근본적으로 향수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잃어버린 절대자의 재현을 지향하기 보다는 오히려 조형적 실험의 무한성을 지향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작업은 현대 산업의 기술과학적 세계에 속한다."
낭만주의 회화에서 여전히 재현의 제약 속에 묶여 있던 선과 색채, 공간, 형상 등은 마네와 세잔에 이르러 콰토르센토 이래 형상과 색채의 공간적 재현을 결정해 왔던 회화의 규범에 근본적인 회의의 눈길을 보냈다. 고전적인 회화의 규범에 도전했던 이러한 시각과 발상의 전환을 료따르는 숭고의 미학이 등장하면서 18, 19세기에 예술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른 '비결정성'의 범주로 설명한다. 비결정성의 범주는 전통 형이상학적 체계의 붕괴와 더불어 일체의 인과적, 선형적 가치와 질서가 거부되고 다원성과 우연성이 강조되는 시대적 맥락 속에 대두되었다.
료따르는 회화의 비결정성을 '사건성'으로 파악한다. "표현 불가능한 것은 다른 어떤 때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즉 (무언가가) 일어나는 순간에 존재한다 … 사건으로서의 그림 그리기, 회화는 표현 불가능한 것이며, 회화가 증언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사건 혹은 사건 그 자체이다." 낭만주의와 아방가르드의 근본적 차이는 개념으로서의 회화와 사건으로서의 회화에 있다. 개념으로서의 회화는 개념이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재현적 회화를 일컫는다. 사건으로서의 회화는 숭고와 연결된다. 회화의 사건성은 "모든 것을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지적 능력을, 그리고 그 지적 능력의 힘을 포기 하는 것, 지적 능력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다. 이리하여 료따르는 아방가르드 정신의 싹을 칸트의 숭고 미학에서 찾는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지각될 수 있는 현재의 사건성을 재현될 수 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무언가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사건성, 즉 비결정성은 작가에 의해 예술작품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 독자를 향해 무한히 개방된 의미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열린 결말'을 시사한다.
근대미학은 비록 향수적이긴 것이긴 하나 숭고성을 지향한다. 그러나 '향수적' 작업은 그들의 숭고적 잠재성을 충족할 수 없었다. 그들의 숭고 미학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상실된 내용으로서만 드러내지만 형식은 인식 가능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술의 목적을 작품의 수용자에게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할 때, 이미지를 통한 형상화는 인지를 통해 작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감정적인 표현력에 한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감정들은 기쁨과 고통이 내재적으로 결합한 진정한 숭고 감정을 형성하지 않는다. 여기서 기쁨은 이성이 모든 표현을 능가한다는 데서 생기는 것이고, 고통은 상상력과 감수성이 그 개념에 일치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
숭고의 잠재성은 예술의 본성을 무한한 실험과 진보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려는 '새로움'의 작업에 의해 충족되며 아방가르드의 숭고는 기술과학의 무한한 가능성 속에 만연한 현대 문화의 감수성을 예견한다.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료따르의 기본 입장을 다시 상기해 보자. 료따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후기 형태로도, 모더니즘의 극복으로도 보지 않는다. "한 작품은 먼저 포스트모던한 경우에만 모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끝나는 상태의 모더니즘이 아니라 생성 상태에 있는 모더니즘이고 이 상태는 항구적이다." 이리하여 "포스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것"으로 규정된다.
프레드릭 제임슨(F. Jameson)의 지적대로 료따르는 모더니즘과 단절되고 그것과 구분되는 포스트모던의 단계를 설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을 본격 모더니즘의 양식이 붕괴된 데 대한 불만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훨씬 더 엄밀한 의미에서 영원히 새로운 모더니즘들의 출현에 앞서 반복되는 순환적 시점으로 생각한다.

4. 숭고와 포스트모더니즘
료따르가 말한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은 1985년 퐁피두 센터에서 그가 조직한 '무형물'Les Immateriaux 이란 제목의 전시회에서 그 충분한 환기력을 얻었다. 이 전시에 대한 료따르 자신의 태도는 많은 부분이 1970년대의 개념미술(미니멀리즘), 즉 프레드릭 제임슨이 료따르를 지칭한 '본격 모더니즘'high modernism 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가 모더니즘과 연관된다면 그것은 모더니즘의 '신들의 황혼'Gotterdaemmerung 이라고 크로우더는 말한다. 즉 모더니즘이 쇠퇴하고 사멸해 가는 한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보다는 료따르가 지적했듯이 전시의 목적은 관람객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연출법'dramaturgy 을 소개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료따르의 태도에 대해서 젱크스는 료따르가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주의, 즉 후기 모더니즘을 계속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켈리니코스(Callinicos)는 료따르의 주요 논점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내의 한 경향으로써, 현실을 질서 있고 통합된 총체성으로서 경험할 수 없는 우리의 무기력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찬양하려는 태도로 특징지을 수 있다. 미니멀리즘 예술은 이러한 정의에 부합할 수 있다"고 파악했다.
료따르가 이 전시에 포함시켰던 작품 가운데 많은 부분은 아방가르드의 추상(개념)미술, 예컨대 모홀리 나기(Moholi Nagy), 폰타나(Fontana), 말레비취, 뒤샹 같은 작가의 작품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테펜 벤턴(Stephen Benton)과 덕 타일러(Doug Tyler)의 홀로그램 같은 새로운 '하이테크' 공정과 물질을 이용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바셀리츠(Baselitz)나 슈나벨(Schnabel), 클레멘트(Clement) 등에 의한 '신표현주의' 작품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한 '절충주의적' 작품의 배제는 이들의 작품이 세잔이나 뒤샹, 클레 같은 화가들이 인식했던,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예술가의 책무를 망각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또한 료따르에 의한 전시 기획의 초점이 기술과학적 진보에 토대를 둔 변화된 감수성에 대한 경험적 이론과 진정한 회화로서 아방가르드에 관한 대안적 대서사를 결합하는 데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료따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메타서사에 대한 불신으로, 정신의 변증법, 의미의 해석학, 이성적이며 노동하는 주체의 해방, 그리고 복지의 창조와 같은 대서사에 관한 분명한 요청을 통하여 그들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담론에 대한 불신으로 정의하는 것은 극단적인 역설이라고 할만하다. 모더니즘의 향수적 미학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진정한 숭고주의의 승리를 설명하는 료따르의 방식 그 자체가 매우 해방적인 '대서사'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료따르의 '신표현주의' 작품의 배제가 역설적이게도 모더니스트적 태도의 집착에 근거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 료따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수성을 조명함에 있어서 이 전시의 목적은 대안적이라기 보다는 중립적이어서 이미 일어났던 감수성의 변화를 단순히 환기시키는 데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다른 작품을 배제하기 위하여 아방가르드 작품이 선택되었다면, 그것은 단지 이들 작품이 이 전시회를 통해 강조된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수성을 다른 작품이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예견하고 구현했다는 것이다.
전시회가 연출한 감수성의 토대는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실재는 더 이상 단순한 실체적, 자기충족적, 물질적인 표피에 의해 지각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양한 의미를 가진 복잡한 층위의 교차에 의해 해석된다는 사실에 있다. 이 전시에 적용된 숭고의 개념은 전통적으로 버크와 칸트에 의해 파악된 '무한성에 대한 미적 감수성'이다.
료따르의 근본 주장은 그가 구분한 숭고의 두 양식에서 '향수적인 것'으로부터 '새로움'으로의 지향이며 숭고 일반의 이론과 아방가르드의 포스트모던한 본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료따르는 "모던한 화가들은 원근법에 따를 경우,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재현해야 한다. 시각의 영역은.....눈만이 아니라 정신과도 관련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그들은 주어진 시각의 혁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모더니스트 화가들이 회화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짐으로써 성취한 작품 경험은, 보이지 않는 것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재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아내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고통과 즐거움이 결합되어 숭고하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하버마스는 모더니티의 문제는 부분적으로 미적 경험과 생활세계의 재통합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파괴적인 포스트모던한 접근은 '승화되지 못한 의미나 해체된 형식으로부터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해방적 효과도 따르지 않는' 한 무익하다고 확신한다. 이에 대해 크로우더는 전시에서 강조된 승화된 감수성은 이성의 긍정을 통해 해방적인 효과를 가질 뿐만 아니라 하버마스가 말한 그러한 재통합적 임무에 분명히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승화된 즐거움은 기술과학의 충격으로부터 일어날 뿐만 아니라 성격에 있어서 분명히 미적이긴 하지만, 올바른 문맥 속에서는 심화된 정치적 자각을 촉진할 수 있는 근거를 갖는다는 입장이다.
아무튼 료따르의 이론은 현대 포스트모던 문화의 필요와 구조와 관련하여 아방가르드 예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여기에 칸트의 숭고가 매개고리를 제공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모든 혁신적 작업은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시킴으로써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 실제 그들이 무엇을 얻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떤 뛰어난 아방가르드 작업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잠재된 매체의 위력적인 감각을 환기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진정한 아방가르드를 설명하는 척도는 되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크로우더는 아방가르드 예술과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에 대한 칸트의 숭고와 료따르의 연결을 성공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전체를 연결하는 료따르의 철학적 전략은 오류를 범했지만, 그의 작업의 다른 양상은 적어도 어떻게 칸트의 숭고가 현대의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의 이념에 연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고 그는 결론짓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전통적인 숭고미의 개념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문맥 속에서 제기되고 있는 페미니즘은 지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4. 맺는 글
서구 미학의 역사에서 18세기는 미와 미적인 것을 둘러싸고 중대한 가치의 전환을 이룬 세기로 기록된다. 아름다움을 대상의 객관적 성질로 이해했던 피타고라스 이래의 오래된 객관주의가 경험주의 철학의 세례를 받은 영국 미학자들에 의해 아름다움을 인간의 주관적 심리현상으로 받아들인 주관주의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전환의 이면에는 이 시기에 들어와 크게 유행한 낭만주의 예술의 영향이 큰 몫으로 자리잡고 있다. 즉 낭만주의는 엄격한 균제와 비례, 질서에 바탕을 둔 외재적 형식미에 대해 개인의 내재적 정서의 충동과 감정의 표출을 강조함으로써 미적 주관화의 계기를 제공했고, 고전적인 예술과 미 개념의 확장을 가져왔다. 숭고미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근대 미학의 확장된 미적 범주로 등장했다.
칸트는 고대 롱기누스와 근대 버크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숭고론을 펼쳤다. 칸트는 우리의 상상력과 지각의 능력을 초월하는 크기나 힘의 압도적인 과잉에 대한 이성적 반응을 숭고미로 파악했다. 크기나 힘에서 압도적인 위력으로 다가오는 자연은 우리의 감각 기준을 초월한 몰형식성으로 나타나 마음 속에서 이성의 이념을 환기시키는데, 이 이념의 부정적 표현으로서 표현 불가능한 것을 그 자체로 드러내어 숭고의 감정을 유발한다. 이러한 칸트의 숭고 이론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의 싹을 발견하고 료따르는 숭고를 포스트모던 문화의 감수성과 연결 지었다.
료따르는 숭고를 현전에 대한 '향수'와 '새로움'의 둘로 구분하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상실된 내용으로 드러내지만 이미지를 통한 형상화로, 감정표현에 한계를 갖고 숭고적 잠재성을 충족할 수 없는 낭만주의적 '향수'에 대해, 현대 산업의 기술과학적 충격에 따른 변화된 감수성으로 조형적 실험의 무한성을 지향하는 '새로움'의 작업을 모더니스트 감수성의 정점이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수성으로 파악한다. 료따르에게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 그 자체로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현실 그 자체가 허구화되고 파편화된 이미지로 분열된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숭고가 가진 무한성에 대한 미적 감수성이 이러한 기능을 충족시킨다.
즉 료따르의 입장은 포스트모던 문화와 관련해, 숭고의 미적 감수성을 매개로 아방가르드 예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결국 재현의 위기가 초래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에서 숭고미의 범주가 유효 적절한 논거를 제공했던 것이다. 확고부동하게 믿어 온 외부의 실재를 재현해 오던 예술이 눈길을 자기 내부로 돌려 예술 그 자체를 대상으로 예술적 실천의 장을 펼친 아방가르드 개념예술의 자기반영성(또는 자기지시성)은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보편적 실천 규범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 자체로 드러낸다는 말은 비결정성의 범주가 지배하고, 구체화된 심미적 대상의 생산 행위가 벽에 부딪힌 곳에서, 예술은 이런 저런 퍼포먼스와 이벤트를 통해서 일상의 영역에 틈입(闖入)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와 의미를 생산해 낸다는 말이다. 아방가르드 회화가 노리는 비결정성은 표현 불가능한 것을 사건 그 자체로 드러내는 숭고의 미학에서 성취된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의 논리를 올바로 계승하고 있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로부터 예술과 사회적 삶의 통합, 전통의 거부, 고급문화에 대한 반대 등을 물려받았지만 아방가르드에 내재한 건강한 정치적 충동은 탈색시켜 버렸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가 시도한 예술과 사회생활의 통합을 흉내내면서도 그 통합이 지향한 정치적 내용은 제거해버렸다. 아방가르드 운동은 부르조아 사회를 부정함에 있어, 예술제도 자체의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변혁의 한 수단으로서 예술을 사회적 삶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료따르가 옹호하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통해 그 의미와 실천의 영역을 넓힌 것은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대중과의 원활한 소통은 여전히 큰 문제로 남는다. 공허해 보이는 몸짓과 텅빈 캔버스 앞에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무한성의 숭고함을 체험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다가 갈 수 없는 절망의 고독과 소외를 체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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