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사옥

기본카테고리 | 2015-03-20 오후 7:29:09 | 조회수 : 9788 | 공개

 
작가개요`

 
김수근 金壽根 [1931-1986]


출 생 지 : 서울
주요수상 : 카발리에레상, 범태평양건축상
한국정부 및 건축관련 단체에서 다수의 상 수상
주요저서 : 《김수근 건축작품집》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주요작품 : 《공간사옥》 《명동타워빌딩》
《자유센터》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등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공간사옥은 일제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긴 우리의 정체성을 공간미학으로 풀어냈다


대한민국 근대와 현대모두에 아이콘적인 영웅인 김수근. 그 존재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의 제자들 대부분이 현재 한국 건축계를 이끌어가는 이름있는 건축가가 된 이시점에서
김수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건축의 의미를 찾을 수 잇다.
 
 
작품으로 보는 건축성향

 김수근의 작품세계는 시대적으로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가 그것이다.
 
 1960년대 그는 표현적이고 조형적인 건축어휘를 구사하여 국회의사당, 자유센터, 워머힐, 오양빌딩, 구씨저택 등과 왜색 시비 논쟁이 일어났던 부여 박물관을 설계하였다. 이 시기에는 강한 이미지로 기념비적인 성격에 알맞은 노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사진4-1] 자유센터 준공당시
[사진4-2] 부여박물관

 

1970년대 는 김수근 만의 것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작품세계를 열어간 시기이다. 우리의 전통건축이나 전통문화를 소화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조형감각에 적절한 공간 크기와 인간적인 스케일이 어우러지는 수작들을 만들어 내었다. 공간사옥, 서울대학교 예술관, 덕성여대 약학관, 가정관, 경동교회, 불광동 성당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벽돌을 섬세하고 세련되게 그리고 인간의 손 맛을 느끼게 사용하였다.

[사진4-3] 마산양덕성당
[사진4-4] 경동교회
 이시기 김수근은 외장재로 주로 붉은벽돌을 사용하였다.(공간사옥 등 소수의 경우에만 검은 벽돌을 사용). 한국 벽돌의 크기는 서양의 석조 건축의 그것보다 비교적 작다. 이러한 재료의 크기와 비례에 따른 차이는 건물 전체의 구성에서 공간의 분절로 이어진다.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내부의 시멘트 벽돌도 같은 크기의 것을 사용하였다. 벽돌 줄 눈으로 토속적인 느낌을 강하게 가기도 하였다.
김수근이 설계한 많은 건물에서 벽돌 두장 두께의 벽체가 벽면에서 돌출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김수근의 띠’라고 부를 정도로 건축조형에 주로 모티브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는 효과는 두가지 정도로 요약 해 볼수 있는데 먼저 벽면을 분절시킴으로서 매스의 육중함 대신 풍부함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다. 또하나는 건축에 정면성과 방향성을 부여해 준다는 점이다. 김수근은 사람들이 멀리서 건물을 보고 출입구를 찾지 못하면 실패한 작품이하고 자주 뇌였다고한다.
 
1980년대 는 작고 잘게 잘라져서 연결되는 덩어리들로는 처리하기 쉽지 않은 대형 프로젝트들을 설계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기본개념을 유지하면서 거대한 덩어리들을 인간적인 스케일로 나누어 건축적 질을 지켜나간다.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벽산빌딩, 서울지방법원 청사, 서우루 올림픽 주경기장, 체조경기장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는 알루미늄 패널 등 새로운 자재와 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하였다.

[사진4-5] 벽산125빌딩
[사진4-6] 잠실주경기장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에서도 공간 구성의 원리는 분절된 매스와 통합된 공간의 형성이다. 그리하여 형태는 여러 개의 분절된 매스의 중첩으로 이루어졌지만, 내부 공간은 비교적 트여있고 연결된 공간으로 되어있다.
 
 
작품개요


<공간사옥>
 
건 축 가 : 김수근
소 재 지 :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219
준공년도 : 1974 설계년도 1971
시설분류 : 업무시설
대지면적 : 600㎡
연 면 적 : 1350㎡
규    모 : 지상 5층
                 지하 1층
구조형식 : 철근콘크리트조
내부마감 : 전벽돌
 
 
 1971년부터 설계가 시작된 공간사옥은 김수근이 세운 건축설계사무소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물이다. 르꼬르뷔지에 풍의 모더니즘 양식이 초기 김수근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공간사옥은 그만의 독창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간사옥의 배경인 1970년대 초라는 시기는 김수근에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시기였다. 한국종합기술공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조형세계를 찾아나서는 시기였고, 국가적이고 기념비적인 건물설계가 주를 이루었던 1960년대에 자신의 건축에 회의를 느끼면서 보다 인간적인 스케일이 있는 공간을 위해 연구하던 시기였다. 그가 지향하게 될 여러 차원의 건축적인 의미들을 가장 명확하게 담고 있는 하나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김수근은 공간 사옥을 ‘둘러싸여 있으나 결코 막히지 않은 공간’이라고 지칭했다. 서로 다른 층고와 미로 같이 꼬여있는 동선으로 마치 이공간에 온 느낌이 든다.
 
작품분석 및 견해


[사진5-1] 공간사옥 주단면
<공간구성> 초기 스케치에서 이건물의 공간을 특징짓는 것은 건물 중앙에 반층 높이로 계속 반복되어 설치되어 있는 동선 처리이다. 김수근이 처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순전히 지형적인 조건 때문이었다. 대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그의 건축관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데, 여기서도 경사진 대지를 적절하게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층과 층의 구분이 모호하고 창의성이 돋보이는 독특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5층 정도의 높이지만 내부는 14층 정도로 분절되어 있다. 건물명 그대로 ‘공간 속에 공간이, 공간에 공간을 더한 것 같은 구조’다. 그러나 종합화된 공간을 봤을 때  계단이 오를 때마다 계속 새로운 공간이 열리도록 하는데에는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의 공간적 다양성을 공간의 중첩, 전이의 효과를 느끼게 하며 기본적인 척도를 인간화에서 시작하였다. 인간의 키를 척도로 하여 한 층의 높이를 최대한으로 압축하여 스킵플로어를 설치했다. 이 경우 층이나 하나로 구획된 공간은 없어지거나 모호해지고 공간은 유동적으로 된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실제로 내가 어디에, 몇층에 있는지 알기 어려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계단은 복잡한 공간사옥의 동선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중요한 건축 요소이자, 건물의 분위지를 집약한 공간 사옥의 백미이다.
[사진5-2] 공간사옥 삼각계단
 구관 전체를 스킵 플로어로 처리하려는 생각은 2층톺이까지만 적용되고 그 이후에는 다른 개념들이 적용 되면서 전혀 다른 질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두 가지의 원형이 평면에 나타난다. 하나는 필립존슨이 뉴카난에 지은 유리 집에서 중앙에 설치한 원통구조를 비슷하게 옮겨 놓은 것이고, 또 하나는 건물 상부를 연결하는 원형계단을 설치 한 것이다. 이 원형계단은 미로적인 성격을 강하게 부여하고 있으며 철제문을 열면 반경이 1m도 되지않는 원형 계단이 나온다. 좁은 계단실과 계단실 앞에 설치 된 문 때문에 처음 이건물을 찾은 사람들은
[사진5-2] 상부가 차단된 계단
건물의 상부로 통하틑 통로를 잘 인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또한 좁은 계단실을 오를때에는 묘한 느낌이 든다. 중세성당의 첨탑을 위한 계단들처럼, 위의 층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혀 감잡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상당히 밀폐되고 억눌린 느낌을 주는것이다.
 

[사진5-3] 1층평면도
 이것은 김수근이 초기에 의도한 여러가지 공간 개념들.즉 계단을 통한 공간의 열림과 다양한 공간의 상호 관입과는 정반대 되는 것인 것 같다. 먼저 스킵플로어는 공간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줄 수 있었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별로 유용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기능의 분절은 유도한 것이다. 반층 높이의 계단으로 연결된 1,2층은 응접실, 회의실, 작업실 등의 직접설계작업과 관련이 없는 실들이고, 원형계단으로 연경된 3,4층의 경우 설계실,소장실,자료실로 설계와 직접관계가 있는 실들로 구성되었다(실제 설계당시). 마지막으로 받복되는 단조로운 평면을 깨트리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 스킵플로어의 개방된 공간과 원형계단의 폐쇄된 공간 사이의 공간적인 대조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직각의 평면에 원형의 요소를 삽입하여서ㅡ 공간적인 미묘함을 이끌어내려고 한 것 같다

 

[사진5-4] 삼각계단
구사옥과 신사옥을 연결하는 부분을 지나면 흔치 않은 삼각계단이 나온다. 45도로 꺾이며 이어지는 이 계단은 가장자리가 트여 있어 빛이 통한다. 이 때문에 위층과 아래층의 경계가 모호하면서도 계단을 오른 뒤 아래를 내려다보면 삼각 계단이 빚은 삼각 홀이 건물을 관통하는 것 처럼 보인다.

[사진5-5] 연경당과 공간사옥 평면비교

 
 김수근이 공간사옥을 지으면서 연경당을 모티브로 정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공간사옥 자체도 오피스가 아니라 주거용 건물로 생각하고 지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물론 그가 직접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곳곳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 해 볼 수 있다,
 우선 연경당의 내부 본체와 공간사옥의 평면도를 비교해 보면 건물의 기능에 있어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연경당의 경우 건물을 남성의 공간으로 상징되는 사랑방과 여성의 공간으로 상징되는 안채라는 두 가지 기능으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공간사옥에 있어서도 구관과 신관, 둑 개의 건물은 기능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거의 분리되어있다. 물론 두 건물이 일정한 시간적 차이를 두고 지어졌기 때문에 불가피한 점도 없지 않으나, 김수근 자신이 의도적으로 시도한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후에 한꺼번에 지어진 ‘문화회관 전시실’에서도 이런 기능의 분리는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무실과 전시실, 식당과 전시공간이 서로 다른 영역으로 한 건물 내에 공존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매개 공간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사진5-6]
공간사옥의 구사옥은 공간의 sequence나 열림과 닫힘을 조화롭게 표현해 공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암시만을 통해 공간이 가지는 긴장과 이완을 주고 있다. 신사옥은 빛에 의해 투명성을 통해 내부에서 외부인 듯 함을 그대로 보임으로 외부화된 내부공간 체험을 제공한다. 구사옥에 출입문 아래에 중정은 전통공간의 마당과 같은 기능을 가지며, 외부와 내부의 중간적 입장에서 빛에 의하여 하나의 매개적 공간으로 생성된 음영에 의해서 공간의 한정성을 보인다(5-8). 2층 로비의 부분은 구사옥의 불투명적 특성과 반대되는 유리의 투명성과 외부로의 확장적 특성을 지각된다(5-7). 신사옥은 유리의 투명성을  내 외부의 소통을 통해 구사옥과 고궁을 방해하지 않고 이로 확장된 영역성과 비물질적 특성을 지각된다(5-6).

[사진5-8]
[사진5-7]


[사진5-9] 외부 전경


[사진5-10] 김수근의 띠
<외피 주변과의 조화> 얼핏 보기에는 긴장방형 모양인데다 창이 별로 없어 폐쇄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외벽 재료로 쓰인 검은 벽돌 위로 담쟁이 덩굴이 감싸고 오른 모습은 계절마다 건물의 표정을 변화시킨다. 전벽돌의 모습은 한옥에서 느껴지는 역사를 현대까지 지속한다. 이 두 요소는 함께 어우러져 계절의 변화와 역사의 지속을 복합적이며 시시 각각으로 나타낸다. 건물의 방향성과 측면 파사드 분절은 김수근이 설계한 많은 건물에서 벽돌 두 장 두께의 벽체가 벽면에서 돌출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김수근의 띠'라고 부를 정도로 건축조형에 주요 모티브로 사용된 것이다. 공간사옥에서도 물론 볼 수 있는 요소이다.
 신관은 구관과 동일재료를 사용, 그리고 스카이라인을 맞추고 있으며 가로변에서 인식되는 공간사옥의 남측면은 구관과 신관에서 동일형태의 창을 사용함으로써 대지 밖에서 공간사옥은 한 건물처럼 보인다. 즉, 신관의 증축에 있어서 구관과 신관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구별 지으려 하지 않음으로써 두 건물의 소속적 일치를 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지 외에서 공간사옥으로의 접근을 돕고 있다.
 
 
 공간사옥은 묘하다. 어느 방향으로 다가가는지 어느 계절에 찾아오는지에 따라 매번 전혀 다른 장소, 전혀 다른 시간, 심지어 전혀 다른 세계로 다가온다. 광화문 쪽에서 율곡로를 따라 서쪽에서 다가가면 거대한 현대 그룹 사옥 옆에 서서 자본주의 도시 공간을 경계 짓고 있는가 하면, 창경궁을 따라 동쪽에서 다가가면 수백 년 조선의 역사를 담고 있는 창덕궁 돈화문 옆에 서서 한양의 시간을 경계 짓고 있다. 겨울에 찾은 공간사옥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래되고 버려진 고성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면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한 첨단공법의 신관은 외관상 흑색벽돌의 폐쇄적인 구관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지만 애초의 공간철학은 그대로 구현했다. 구사옥 에서도 창경궁과 창덕궁의 아름다운 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건물의 투명도에 중점을 두었다.
 
 이 건축이 위치하는 원서동은 창덕궁을 비롯한 궁원이 있고, 도시의 가로 이면에는 아직도 한옥 주택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장소이다. 신사옥은 구사옥 에서도 창경궁과 창덕궁의 아름다운 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건물의 투명도에 중점을 두었다

 공간 사옥이 문제점 없이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쉽게 평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건축가 김수근이 살아 있을 때 그를 세상에 알리고 건축가 김수근이 죽어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
더 발전하여 그를 다시 세상에 알리게 된 공간 사옥은
분명히 그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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