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삶터] 사고 파는 문화

서울의 삶터 | 2012-01-03 오후 11:23:04 | 조회수 : 3153 | 공개

지금은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작은 토큰 판매소가 있었다. "토큰 열개 주세요"하며 판매소 앞에 나있는 작은 반달형 구멍으로 5천원을 밀어 넣으면, 토큰 열개를 내밀어 주는 손을 보게 된다. 그 손의 주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또 굳이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런 저런 다른 말도 오갈 필요가 없다. 그저 구멍을 통해 토큰 파는 이와 사는 이의 손만 들락거리면 되는 것이다. 비록 단돈 오백원짜리 상품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파는 것도 서비스업이다. 그러니 곰곰 따지고 보면 서비스치고는 참으로 무뚝뚝하다는 생각이 들터인데 우리는 전혀 불평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겨울의 찬 바람을 막기 위해서 작은 구멍만 열어놓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푹푹 찌는 여름철에도 마찬가지로 작은 구멍만 열어놓는 것은 어찌 설명하랴. 또 이곳이 돈을 취급하는 곳이니 지레 조심스러워 작은 구멍만 내놓고 거래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곱절의 매상을 올리는 바로 옆 신문가판대는 토큰 판매소마냥 폐쇄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 싶다.

우리가 토큰 장수와 「거래」를 할 때에는 그 거래품목이 토큰으로 한정되어 있다. 물건을 진열해 놓을 필요도 없고, 고를 필요도 없으며, 그것을 사기 전에 한번 찬찬히 살펴볼 필요도 없다. 작은 구멍을 통해 필요한 토큰 개수만큼의 돈을 주고 토큰을 받으면 거래가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쿵저러쿵 말이 필요가 없고,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작은 구멍을 통한 속편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여러가지 물건을 산다. 버스 정류장에서 토큰을 사는가 하면, 백화점을 찾아 무스탕 코트 한벌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 토큰과 무스탕 코트를 사고 파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또 이것들을 사고파는 장소, 즉 토큰 판매소와 백화점은 그 크기나 구조가 서로 확연히 다르다.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심히 지나치지만 사실은 상품의 종류, 판매방식, 판매장소의 구조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몇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토큰 판매소 옆에는 조금 더 큰 신문가판대가 있다. 이곳은 토큰 판매소와는 달리 그래도 앞면이 트여 있다. 일간신문이나 주간잡지는 거래행위에 앞서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신문은 가판대 앞에 꼽힌 채 주먹만한 크기의 표제를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는 「선택」행위도 이루어진다. 가판대 안쪽 판매원 뒤로 진열된 여러개의 주간지 표지를 대충 훑어보고 볼만한 것을 선택한 후에야 우리는 "주간○○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가판대는 토큰 판매소에서와 같은 작은 구멍만 가지고는 장사가 될 수가 없다. 추운 겨울에 난로를 들여놓고도 손을 비비는 한이 있더라도 가판대 앞면을 활짝 열어놓고 상품을 진열해야 한다는 말이다.

동네 구멍가게로 가보자. 이곳에는 서너평의 공간에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상품이 쌓여있다. 식품류가 주종을 이루겠지만 화투목도 살 수 있고 건전지도 살 수 있다.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는 가게 문 어귀까지 다가가서 주인 아저씨에게 ࡔ○○○ 주세요ࡕ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문 바로 안쪽에 앉아있던 주인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용케도 그 물건을 찾아내어 가지고 나온다.

"얼맙니까?""이천오백원입니다."3천원을 주인에게 건네주면서 말을 붙여본다. "그새 오백원이 올랐군요." 가게 주인은 "요즘 돈이 돈입니까. 실명제 하더니 물가만 올라가네요"라고 받으며 잔돈 오백원을 돌려준다. "그러게요...참, 잔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사갑시다. 애가 좋아해서... 어떤 것이 맛있습니까?" 이쯤되면 손님은 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게 되고 냉동고 문을 열어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한다. 주인은 옆에 서서 "그게 요즘 잘 나가요"하며 도움을 준다.

구멍가게의 구조는 손님과 주인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가게 안 주인이 앉아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해서 그 뒷쪽은 주인의 영역이고 그 앞쪽은 손님의 영역이다. 손님이 물건을 요구하면 주인은 그것을 찾아 손님에게 건네준다. 동네에서 자주 보는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자연스럽고도 친숙한 대화가 이어질 수가 있다. 때로는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 직접 물건을 고를 경우도 있다. 막연히 아이스크림을 사고자 하지만 무슨 상표의 무슨 제품을 사야할 지는 모르는 채 가게로 왔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가게 주인은 손님 옆에 지켜서서 충실한(?) 충고를 줄 수 있다. 이것은 구멍가게에서만 가능한 서비스가 된다.

수퍼마켓은 구멍가게보다 그 규모도 크고 상품의 종류도 훨씬 더 많다. 물론 그 구조도 판이하게 다르다. 여기서는 널찍한 매장 안에 선반이 열을 지어있고, 수천가지의 물품들이 종류별로 잘 나눠진 채 선반에 진열되어 있다. 손님은 매장 안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진열되어 있는 물품을 직접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바구니에 넣는다. 그리고는 또 다른 물품도 선택을 한다. 물론 구멍가게에서와 같이 반가이 맞아주고 말상대 해주는 아저씨는 없다. 물품을 찾고 고르는 행위는 손님 혼자의 몫이다.

바구니가 다 차면 이제 입구의 계산대에 간다. 아가씨가 한손으로는 바구니 속의 물건을 하나씩 꺼내고 다른 한손으로는 현금등록기를 두드린다. 바쁜 아가씨에게 말이라도 건네면 행여 계산이 틀릴 것만 같아, 손님은 계산대 앞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매장 선반 사이로 다른 손님이 보인다. 혼자 바구니를 든 채 사탕봉지 둘을 놓고 요모조모 비교해 보고 있다. 그러더니 둘 다 제자리로 놓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과자봉지를 집어들고는 다시 찬찬히 살펴본다. 조금이라도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발견하려고 말없이 선반 사이를 누비는 수퍼마켓의 손님은 「외로운 사냥꾼」의 모습이다.

백화점은 손님이 매장 안을 자유로이 다니며 상품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수퍼마켓과 비슷하다. 물론 다른 점이 있다. 고급스러운 장식이나 조명 등이 다르기도 하지만,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도 다르다. 수퍼마켓 매장에는 손님만이 다니고 직원들은 계산대에 몰려있다 (물론 물건을 정리하는 직원은 매장에 있어야 하겠지만). 그런데 백화점에서는 매장 곳곳에 점원 아가씨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다 손님이 어떤 상품에 다가서며 흥미를 보이기만 하면 환한 미소로 접근해 온다. 친절한 대화상대가 되어 줄 태세가 되어있는 것이다. 손님이 색상이 맞지않는다거나 모양이 안좋다고 하면 싫은 내색없이 손님의 마음에 들 때까지 몇번이고 다른 제품을 가져와 보여준다. 수퍼마켓의 손님이 외로운 사냥꾼이라면, 백화점의 손님은 「몰이꾼을 둔 왕족 사냥꾼」의 모습이다. 같은 물건이 백화점에서 더 비싸게 팔리더라도 백화점에 손님이 몰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같은 상점이라도 상품의 종류에 따라, 사고파는 방식에 따라 그 공간 구조는 다양하게 변한다. 또 같은 손님이라도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받는 대접이 달라진다. 이러한 다양성이 우리의 서울을 그 극심한 혼잡 속에서도 살아볼 재미가 있는 삶터로 만들어 준다.

* 이미지출처: 네이버 포토갤러리 -놀숲(spunik)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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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터'는 제가 지난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서울 상황과는 달라진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그 씨리즈를 포스팅 합니다.



댓글 : 1
다은   2012-01-06 15:15 [ Modify ]  [ Delete ]
제가 중학교 다닐때 까지만 해도 버스정류장 옆에 토큰은 아니지만 학생권?(이름이 기억안나는데, 학생 표 직사각형으로 생긴 것이 줄줄이 붙어있던)파는 판매소가 있었던 기억이나요. 평소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구멍가게와 백화점에서의 구매 행위를 이런 시각에서 보니 새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