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 Arad과의 인터뷰

Essays | 2012-01-15 오후 6:48:47 | 조회수 : 4272 | 공개

Ron Arad과의 인터뷰

 
최재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9월 7일 오전 이스라엘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건축디자이너 론 아라드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 신도림역 근처 복합쇼핑문화센터인 ‘디큐브 시티’ 앞에 설치된 ‘볼텍스트(Vortext)'라는 설치미술의 작가이다. 

먼저 볼텍스트에 대해 살펴보자. Vortext는 vortex(소용돌이)와 text(텍스트)가 합쳐진 이름이다. 높이 17미터의 이 작품은 땅에서 하늘로 소용돌이치며 올라가는 회오리 바람을 형상화한 리본모양의 철재(鐵材) 구조물이다. 이 리본 자락에는 2만4천개의 소형 LED 전구가 촘촘히 붙어있어 이를 이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보여주는 미디어 전광판 역할을 한다. 리본을 따라 형형색색의 문자나 그림이 움직이며 올라간다. 전광판 그림 속에서 사람이 걸어가기도 하고 동물이 뛰기도 한다. 자동차가 지나가는가 하면, 작가의 말대로 세익스피어의 희곡 텍스트 전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며 하늘로 올라 갈 수도 있다. 게다가 지나가던 사람이 직접 콘텐츠를 입력할 수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영희야 사랑해! 철수가❤”라고 리본 위에 외치면 다른 누군가가 “나는 영수인데, 내가 더 사랑해! ❤❤”라고 되받아 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이제껏 보아 왔던 대형 빌딩 앞 조형 작품들과는 매우 다르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정문 앞 조각 ‘아마벨’은 거대한 고철 덩어리로 보인다. 그냥 그 자리에 놓여, 누군가의 말 대로 20세기 인간문명을 비판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광화문 신문로 흥국생명 건물 앞에는 ‘망치치는 사람’이라는 높이 22미터의 거대한 조각이 있다. 이 거인이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데 한번에 1분 17초가 걸린다. 현대사회의 운명과 철을 이용해 노동하는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한 것이라 한다. 첫 번째 작품은 육중한 덩어리인데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구경하는 사람이 움직이면서 이 작품을 감상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까지 배워 알고 있는 조각이다. 두 번째 작품은 22미터짜리 거인을 형상화 했는데 아주 천천히라도 움직이긴 한다. 구경하는 사람은 한 자리에 서서 고개을 들어 망치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작품을 감상한다. 우리 시민들은 움직이는 거대한 조각 작품을 처음 대하면서 기발한 발상이라면서 아주 신기하게 여긴 적이 있다. 

볼텍스트 역시 조각작품이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좀 더 새로운 방식이라면 약간은 움직이기도 해야 한다. 볼텍스트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움직이기도 한다. 그 표면에는 문자와 기호가 분주히 움직이며 지나가기 때문이다. 

기실 이런 방식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우리네 동네 어디에 가도 상가건물은 온갖 간판으로 뒤덮여있다. ○○피부과의원, △△△보습학원, ○○칼국수, △△약국 등의 문자가 서로 위아래로 모여 아우성이다. 우리는 그 가운데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둘째, 이른바 IT 강국의 우리는 작은 양의 문자로 많은 양의 정보를 함축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주고받는 데 매우 능숙하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시작하여, 이제는 카카오톡에서 트위터에 이르기까지 능숙한 우리는 문자정보, 즉 텍스트 정보 교환의 전문가들이다. 

볼텍스트는 문자정보로 뒤덮인 우리네 환경, 문자정보가 빠르게 오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LED라고 하는 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이제 다시 작가와의 만남으로 되돌아 가 보자. 올해로 만 60세가 된 아라드씨는 약속 장소에 아주 편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머리모양에 꼭 맞는 모자, 헐렁한 라운드넥 티셔츠, 진바지에 알록달록 무늬의 운동화 차림은 기존의 디자인 대가들이 그들의 옷차림이나 안경, 가방 등 악세사리를 통해 연출해 내는 아우라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우선 작가에게 물었다. 볼텍스트를 간략히 묘사하자면? 그의 대답은 “항상 변하고 있는 콘텐츠의 전달자”였다. 의외로 짧은 답변이었다. 이보다는 좀 더 긴 설명이 따르는 것이 대개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필자가 경험했던 바다. 짧은 대답 속에서나마 앞에 쓴 바와 같이 필자가 본 볼텍스트와 작가의 볼텍스트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적이 마음이 놓였다. 

두 번째 질문으로 볼텍스트를 디자인하고 설치하는 과정에서 의뢰인(발주자, 고객)과의 문제는 없었는지 물어 보았다. 디자인 분야에서 첫 디자인 안을 만들어 의뢰인에게 이것을 보여주면 의뢰인은 자기 취향대로 여기저기 뜯어 고치기도 하고, 혹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안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겪는 일이다. 그런데 아라드씨는 필자에게 되려 물었다. “한마디로 답할까요?” 계속된 그의 한마디 답변은 의외였다. “No.” 그럼 두세마디로 답해 보세요 하니, 바로 나온 그의 답변은 정확히 세 마디인 “Not at all” 이었다.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다. 
개발하는 공학도의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밝은 디자이너들의 일이 아닐까, 또 이런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혜안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아라드씨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이번 서울 방문에서 디큐브 시티의 최고경영자와 함께 건물 내부를 돌아보던 중, 어느 휴게 공간에서 그는 자기가 디자인한 소파를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양만 그럴싸하게 베낀 싸구려 복제품이
이 질문과 답은 두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디자인에 있어서 의뢰인과의 문제가 없는 작가는 흔치 않다. 의뢰인의 취향과 작가의 디자인 사이의 간격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작가는 설명과 설득을 통해서 자신의 디자인을 실행시켜 나가기 마련이다. 비용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아라드씨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니, 정말 이해심이 깊고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많은 의뢰인을 만났던지 아니면 아라드씨는 볼텍스트가 놓여질 문화적 맥락과 물리적 위치에 대해 완벽한 해결책을 초기부터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일게다. 아마도 볼텍스트의 경우는 이 두가지 모두에 해당할 것이며, 능력있는 작가가 멋진 의뢰인을 만난 흔치 않은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둘째, 아라드씨의 답변, “no,” “not at all” 은 그야말로 카카오톡, 트위터 등 문자메시지 시대의 간결어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60세의 작가가 20대의 언어 구사 방식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는 사실로부터 작가가 현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그 시대를 백퍼센트 자기화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아라드씨는 필자에 질문에 대해 매우 간결하게 대답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 건축은 형태의 창조인가 아니면 공간의 창조인가 하는 다소 심각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제가 왜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요?”라는 되물음이었다. 간단한 답을 툭 던져 놓고 그 답에 대한 해석은 질문자의 몫이라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 공학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디자인 된 스마트폰을 사용자 손아귀에 쥐어 주면 사용자는 알아서 그 사용법을 터득하지만, 공학적으로 많은 기능을 잔뜩 집어넣기만 한 스마트폰은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매뉴얼을 꼼꼼히 읽어 봐야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라드씨는 의뢰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몇가지 경험을 말해 주었다. 우선 큰 실패담 하나. 정확히 10년 전 아라드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내 전자제품 회사의 초청을 받아 처음 한국에 왔다. 5-10년 후 본격적으로 쓰이게 될 전자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구하는 자리였는데, 이때 아라드씨는 현재의 아이패드와 거의 동일한 개념과 기능을 가진 모바일 컴퓨터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이 회사 임원들은 이 신개념 디바이스에 대해 회의적이어서, 오늘의 아이패드 보다 먼저 개발, 보급되어 전 세계적인 히트 상품을 내 놓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데스크탑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이의 틈새를 과감히 겨냥한 아이디어의 발굴. 이러한 것은 하드웨어를 었다. 이를 지적하니, 최고경영자가 그 자리에서 부하직원을 불러, 당장 오리지널 제품을 주문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볼텍스트 디자인과 설치과정에서 보여준 의뢰인의 믿음과 소파 사건에서 보여준 작가에 대한 존경심에 대해 아라드씨는 감격해 했다, 이런 것들이 최고의 디자이너가 멋진 디자인을 창조해 내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일 터다. 

마지막으로 젊은 디자이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기존의 나쁜 버릇 만들기 (그는 디자인 교육과 훈련을 이렇게 표현했다)를 버리고, 변화하세요. 새로운 것을 창조하세요”라고 대답했다. 만들어 놓고 나면 “어? 왜 이런 것을 이제껏 만들지 않았지?”라고 무릎을 칠 만한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이단아라고 했다. 현재 자기 건축사무소에서 자기가 가장 나이가 많지만 가장 과격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놓기 일쑤이고 밑의 젊은 파트너들이 이것을 수습하느라 애를 먹는다면서 파안대소 했다.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와 옷차림에서 필자는 1960년대의 히피 문화를 떠올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1951년에 태어나셨는데 그렇다면 1960년대의 히피 문화 전성기 때 사춘기를 보내셨군요? 그의 대답. “그래요. 저는 히피의 마지막 세대이지요. 60년대의 아이인 셈이지요.” 60세의 당당한 히피. 파격적인 그의 아이디어와 디자인과 함께 그는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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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 9월 18일 중앙일보 주간지인 “중앙 Sunday”에 게재하기 위하여쓴 글입니다. 그런데 편집자의 편집을 거쳐 결국에는 훨씬 짧게 변하긴 했습니다. 인쇄된 최종 버전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3155&cat_code=M&start_year=2011&start_month=06&end_year=2011&end_month=09&press_no&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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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5
이제부터   2012-02-07 09:56 [ Modify ]  [ Delete ]
직접 콘텐츠를 입력할 수 있다니 흥미롭네요! 저도 가서 한번 구경해보고 재밌는 추억거리 한번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수영   2012-01-30 11:28 [ Modify ]  [ Delete ]
영등포에 살면서 아직 디큐브센터에 가보지 못했네요. 볼텍스트도 볼 겸 방문해봐야겠네요 ^^
하나   2012-01-27 15:53 [ Modify ]  [ Delete ]
교수님의 흥미로운 글 잘읽었어요~건축,디자인 그리고 IT가 결합된 작품인 볼텍스트에 대한 작가의 의도와 그의 사상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ㅎ 기회가 되면 디큐브시티에 방문해서 볼텍스트 작품을 다시 보고싶네요~
몽인지성   2012-01-17 09:29 [ Modify ]  [ Delete ]
감사합니다.^^.
planet91   2012-01-16 10:20 [ Modify ]  [ Delete ]
교수님 글 잘읽었습니다.
지난해 이 작품의 소식을 접하고 찾아가봤던 기억이있는데요,
소개해주신것 처럼 소용돌이(Vortex)치는 형상에 텍스트(text)를 담은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이채로웠습니다.
작가의(Ron arad) 철학과 디자인 배경을 알게되니 더욱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