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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터] 음식점
서울의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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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3 오후 11:19:16
| 조회수 :
2714
|
공개
서울에는 음식점이 참 많다. 조금 큰길로 나가보면 거의 세 집 건너 한집이 음식점이다. 물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음식을 사먹는 곳을 중국집․칼국수집․곰탕집․갈비집 등 「○○집」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음식이 아닌 물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곳에는 철물점․세탁소라 하여 「집」자를 붙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먹는다는 행위와 「집」이라는 공간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집 밖에 나서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집만큼 편한 곳이 없다는 말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말도 있다. 등이 따뜻한 것은 집안에 편안히 들어앉아 있는 상태이고, 배가 부른 것은 음식을 잘 먹었다는 것이다. 또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도 있다. 먹을 때만큼은 편히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는 먹을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자기 개집 앞으로 물고 와서 거기서 천천히 즐겨가며 먹는다. 집에서 편히 먹는다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인가 보다.
외식문화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 옛날,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외식이라 하면 으레 집 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탕수육 등을 배달시켜 집에서 먹는 것을 의미했다. 누가 어디에서 만들었는지에 상관없이, 음식은 내 집의 편한 분위기 속에서 먹어야 하는 것이 상례였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들어 시내에 고급 중국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중국집은 음식을 배달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곳에 찾아가서 그야말로 「外」食을 하게 되었다. 편한 집을 굳이 나서서 애써 중국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는 무엇인가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 고급 중국집은 길 건너 약국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 중국집과는 달리, 큰 건물에 화려한 장식을 갖추고 있다. 건물 안에 연못이 있고 그 위로 폭포가 떨어진다. 말끔히 차려입은 종업원들의 공손한 접대를 받으며 번쩍이는 수정 샹들리에 밑을 지나노라면 절로 우쭐해진다. 그뿐이 아니다.
이 고급 중국집에서는 대개의 경우 한 두 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 소위 코스로 나오는 중국요리를 먹게 된다. 그것도 종업원이 큰 접시에 요리를 가지고 들어와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들 접시에 음식을 나누어준다. 우리는 젓가락을 들어 그 음식을 집어 입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못먹던 어린 시절, 먹을 것만 보면 형제들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기억이 새삼스러운데 이제는 깨끗이 입힌 자식들을 데리고 점잖게 앉아, 종업원이 시중 들어주는 음식을 우아하게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내심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는 것이다.
편안한 분위기의 내 집에서 먹는 것으로부터 값비싸고 우아한 분위기의 중국집에서 먹는 것으로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지난 60, 70년대는 경제개발을 목표로 땀을 흘리는 시기였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결의 아래 우리는 산업현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했다. 피곤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면 무엇보다도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며 무슨 연유로 외식을 하게 되더라도 음식을 배달시켜 집에서 편히 먹고 싶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니 편히 쉬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좋은 옷으로 치장하고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찾아 그동안 힘들게 일한 대가로 한두번쯤 멋을 내보고도 싶은 것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태도변화가 동네 중국집에서 고급 중국집으로의 진화를 낳게 된 것이 아닐까.
고급 중국집과 비슷한 시기에 대형 갈비집도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종업원이 갈비를 가지고 와서 즉석에서 굽고 또 가위로 잘라주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각자 먹고 싶은 대로 고기를 집어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급 중국집에서 우아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면, 갈비집에서는 생생한 현장감을 즐길 수 있다. 고기를 굽는 냄새와 연기, 또 그 연기를 빼내는 환기통의 소음, 이리저리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바삐 돌아다니는 종업원, 손님들의 떠드는 소리 등으로 가득한 갈비집에는 활력이 넘친다. 이것 역시 80년대에 들어 우리가 가지기 시작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돈주고 사먹는 음식을 굳이 집으로 배달시켜 남이 볼세라 조용히 먹어치우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사람이 모인 곳에 가서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보아란듯이 그 비싼 갈비를 당당하게 먹는 능동적 자세인 것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음식을 조리하는 곳과 그것을 먹는 곳의 상대적인 위치도 변했다는 사실이다. 동네 중국집의 경우는 중국집 주방과 내집 안방으로 아예 분리가 되어 있었다. 음식물의 조리과정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급 중국집의 경우는 주방과 객장(客場)이 한 건물 내에 있지만 이 두 장소가 벽으로 격리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갈비집에 와서는 이 조리와 식사 행위가 한군데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것은 갈비집이 유행하기 시작한 80년대가 사실은 우리 나라의 아파트 문화가 성숙하는 시기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네 전통주택에서는 음식을 부엌에서 조리하여 마당과 대청을 거쳐 안방으로 들고 들어와 먹었었지만, 아파트에서는 음식이 준비되는 부엌 조리대 바로 옆에 식탁을 놓고 그곳에서 온 가족이 음식을 먹는다. 조리와 식사장소의 통합, 이것이 80년대의 아파트 문화에서 파생된 외식문화의 특색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갈비집에 이어 나타난 것이 뷔페라는 외식형태이다. 뷔페에서는 미리 만들어 놓은 갖은 종류의 음식을 객장 한가운데 그득히 쌓아놓고, 사람들은 직접 나서서 자기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자기 테이블에 와서 먹는다. 뷔페식당의 조리장소는 갈비집과는 달리 격리된 주방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여기서는 음식을 어디서 만드는 가를 따지는 일보다는 음식을 어떻게 선택하는 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동네 중국집, 고급 중국집, 갈비집에서는 메뉴를 보고 먹을 음식을 선택하여 종업원에게 ࡔ○○○ 주세요ࡕ라고 주문을 한다. 뷔페에서는 이미 만들어져서 객장 한 가운데 진열된 음식을 눈으로 보고 자기가 먹을 것을 마음대로 선택을 할 수 있다.
주문식의 음식점이 마치 구멍가게와 같다면 뷔페는 수퍼마켓과 같은 방식이다.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는 가게 문 어귀에 서서 주인 아저씨에게 ࡔ○○○ 주세요ࡕ라고 하면 주인이 그 물건을 내어준다. 수퍼마켓에서는 손님이 매장 안을 자유로 돌아다니며 진열되어 있는 물품을 직접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바구니에 넣는다. 그리고는 또 다른 물품도 선택을 한다. 뷔페도 마찬가지이다. 종업원의 시중을 바라지 않고 소매 걷어부치고 직접 나서 자기가 먹을 음식을 이것저것 접시에 골라 담는다. 수퍼마켓과 같이 능동적인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또 음식을 주문해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모든 것이 숨막히게 빨리 돌아가는 오늘의 삶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삶터는 음식을 먹는 곳이든 물건을 사는 곳이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고, 둘 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성격이 바뀌어 나간다. 음식을 먹는 것도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삶이고 음식점도 백화점도 모두 우리의 삶의 터이며,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출처: 신차이니레스토랑 홈페이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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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터'는 제가 지난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서울 상황과는 달라진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그 씨리즈를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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