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과반수 득표로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종북주의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켜낸 박근혜의 51.6
호국 성령들이
진정 이 나라를 돌보신다면
그 돌보심이
이 두사람을 보냈음이리라...
사랑은 가고 가슴만 남아
희망은 가고 고통만 남아
눈물과 어둠의 밤이 깊어 갈지라도
그대 가슴속 푸른 하늘을 빼앗아 갔을지라도
어둠과 함께 통곡 소리가 들리고
또다시 새로운 밤이 찾아 올지라도
밤을 밝히는 자에게만 별들이 빛나니
절망이 이편에 서면
또 희망이 저편에 보이나니
조용히 하나의 문을 닫으면
마침내 또 하나의 문은 열리나니...
눈물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기다림이 꽃을 피우기 위하여
그대는 무릎을 꿇지 말고
당당히
바람이 되라
깃발이 되라
아침이 되라
햇살이 되라
화살이 되라
촛불이 되라
그리고 어머니가 되라
박근혜
그대는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되라
사상 첫 여성, 부녀 대통령, 박근혜
양친을 암살당한 '비극의 딸'이
한국 첫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고도 경제성장과 민주화 운동 탄압으로
공과 죄가 상반하는 박정희 前 대통령의 딸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부친이 하지 못한
'국민대통합'을 목표한다.
6.25전쟁중인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친이 대통령에 취임.
'국모'로 불리운 가장 사랑하는 모친
육영수의 애정을 받으면서 엄격하게 자랐다.
도시락은 보리쌀 섞은 밥이었다.
지금도 골동품 같은 에어컨을 사용한다고 하는
철저한 검약가다.
[나라의 산업 발전에 공헌하고 싶다]며
서강大學의 전자공학과에 진학,
이공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 교수를 목표해
프랑스에 유학중 모친이 총격으로 사망,
운명은 일전한다.
22세부터 약 5년간, 퍼스트 레이디역으로
부친을 받들며 정치 감각을 연마했다.
그 부친도 1979년, 측근에 암살된다.
"(북한과 접한) 전선에 이상은 없습니까."
부친 사망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말한 것은 나라 걱정이었다.
실의(失意) 속에서, 은둔생활에 들어갔지만,
아시아 통화위기를 계기로 정치에 뜻을 두고,
1998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 첫 당선한다.
2004년 보수계인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
불리한 상황에서 행해진 그해 총선과
금년 4월 총선에서 선전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는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유세중에 폭한에게
칼로 얼굴을 그어져 중상을 입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의 여당 예비선거에서
이명박에게 석패했다.
열렬한 지지자가 많은 한편, 박정희 정권의
군사 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반발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신뢰와 약속을 중시하는 원칙 주의자]로,
유연성과 친밀함이 결여됐다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독신을 관철하지만, 선거 활동 마지막 날인 18일
이렇게 호소했다.
"나에게는 보살펴 주는 가족도, 재산을 양도할 자식도 없다.
국민이 나의 가족으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에게 신명을 다하겠다.
그 기회를 달라."
박근혜, 이제 이렇게 외칠 수 있으리...
탄핵역풍으로 한나라당이
80석도 못 건진다는 말이 나올 때,
나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자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어 기사회생했습니다.
-2004년 총선
정권심판 분위기 속에서 탄핵보다
더 어렵다고 했을 때,
나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152석을 얻어 국회 과반을 확보했습니다.
- 2012년 총선
모두가 독재자의 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능력 없다 비웃었을 때
나는 굴하지 않고 국민대통합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012년 대선
일베 "민주당, 우리가 졌다!
세상에 이런 먹통이…."
흑색선전과 루머, 왜 먹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