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i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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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타그마 광장에서 ‘제주
4.3의 비극’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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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크레타섬의 농민들이 지난 10월4일 크레타
국제공항 앞에서 정부의 연금 삭감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AP
★*…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로 대표되는 ‘신화의 나라’, 파란 지붕에 하얀
벽체의 건물이 아름답게 들어선 산토리니섬, 그리고 지난 1~2년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그리스 경제 위기다. 현재의 그리스는 외신을 타고
나오는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싸움, 정부의 재정긴축안에 항의하는 시위 모습이 주류를 이룬다.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 억압받고 고통받았던
긴 과거, 내전과 반공극우독재정권으로 점철됐던 비극의 근·현대사, 점령 시기보다 더 큰 고통이 따르고 있다는 경제 위기. 신화 속에 살아 숨쉬는
영광은 짧았고,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20세기 중반 그리스와 한국은 너무나 닮았다. 제국주의 침탈 이후 유사한 역사적 경로를
걸어왔다. 그리스는 독일의 침탈을, 한국은 일본의 침탈을 경험했으며, 이런 경험은 해방 이후 두 나라에서 정치·사회적 갈등의 심화와 확대를
가져왔다.1944년 10월 해방을 맞은 그리스와 1945년 8월 해방된 한국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상황’에 노출돼 있었으며, 양국은 외세의
개입에 전면적으로 휘말렸다.냉전체제 형성기의 그리스와 남한에서는 국가 건설 과정에서 좌·우익 세력이 충돌했고 미국의 적극 개입으로
반공·우익정권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와 남한, 특히 제주도에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그리스는 1941년 4월 나치
독일에 점령된 뒤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 불가리아 등 3개국의 분할 점령통치에 놓였다. 점령통치는 가혹했고, 이에 맞선 그리스인들의
민족해방투쟁은 치열했다. 점령 시기인 1943년부터 시작된 그리스 좌·우파 사이의 무력충돌은 내전의 기원이 됐다. 내전은 1946년 3월부터
1949년 10월까지 꼭짓점을 찍었다. 그리스 내전으로 희생된 이는 10만~15만여명으로 추정되고, 강제로 흩어져야 했던 주민은 70만여명에
이른다. 마을 2000여곳이 점령 시기 독일군의 대게릴라전으로 초토화됐다. 1940년대의 그리스는 전쟁과 점령, 내전과 학살로 점철됐다. 재건과
발전은 힘들었고, 심리적 상처는 너무나도 깊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0월31일 4·3 사건 발생 55년 만에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는 자리에서 ‘국제적 냉전’이 몰고 온 사건이라고 언급한 바 있듯이, 제주 4·3도 냉전체제 형성기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리스 내전 때는 좌·우파가 치열한 무력투쟁을 전개했다면, 제주에서는 군·경이 일방적으로 벌인 진압전투였다. 미국은 제주 4·3의
발발부터 사실상 끝난 1949년까지 거의 모든 사건의 전개과정을 기록하고 보고했다. 당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도 제주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사 더보기= 손님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원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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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Daum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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