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고의 유래
6 25 전쟁과 加平高의 歷史
한국전쟁 때 參戰했던 美國 40師團 參戰勇士 다섯 名이
나흘의 日程으로 한국을 찾아와 京畿 加平의 어느
高等學校 卒業式에 參席했다.
지팡이를 짚고 61년 만에 한국 땅에 찾아온 그들은 바로
그 고등학교를
지어준 恩人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현역장병과 참전용사가 모은
장학금 1,000 달러를 장학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먼 길을 나서 자신들이 지은 학교에서 공부한 아이들의
졸업식에 찾아온 이들의 정성도 고맙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나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 건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1952년 전쟁이 한창인데 당시 가평에 주둔했던
미 40사단장의 눈에 번쩍 뜨인 모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포성이 울리는 전쟁터에서 천막을 치고
무려 150여명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한
그는 부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야기를 해줬고
1만 5,000여명의 장병들이 2달러씩 돈을 모아서 그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주기로 했다.
공병부대가 나서 건물을 지었다.
여기까지는 당시 전쟁에서 가끔
보던 장면이다.
감동은 바로 그 다음 대목이다.
학교를 다 짓고 나서 학교 이름을
사단장 이름으로 하자는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그
러나 당시 사단장 조지프 클레란드 장군은 정중히 사양했다.
"처음 전사한 내 부하의 이름이 마땅하다."
얼마나 큰 그릇인가 !
그의 말 한마디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의 부대에서 처음으로 전사한 부하가
당시 19세의 소년병 케네스 카이저 하사였다.
그래서 카이저 학교로
정해진 것이다.
주민들이 '가이사'라고 부르는 대로 따라
'가이사 중학원'이 되었단다.
그게 지금의 가평고다.
클레란드 장군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연금 일부를
가평고에 장학금으로 전해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그의
부인이 그 뜻을 따랐다 하니
그의 깊은 인품이 느껴진다.
- 대한인터넷방송 영사업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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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시었나이다"(욥기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