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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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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9 오후 7:13:29
| 조회수 :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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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종지기가 되고 싶었던 대법원 판사
김홍섭 판사는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에 아브라함 링컨 전기를 읽고
감동하여 법률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세 때 일본인 변호사 밑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하였고
24세에 동경에 유학하여 일본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한 후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법률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가 바쁜 일과의 틈을 타서 사형수들을 옥중으로 찾아다니며
그들의 정신적인 아버지가 되어 왔던 일은 유명합니다.
그는 부인과 8남매를 두었는데
이들을 다 키우고는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종지기로 지내고 싶다는 소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양복을 마추어 입는 일이 없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시장에서 군인 작업복을 사서 물들여 많이 입었으며
오버는 미군 모포지에 물감을 들여서 입었습니다.
신발도 검정 고무신을 신고 출퇴근 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는 판사였지만 판사 티는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전교를 위하여 강원도에 다닐 때의 일화입니다.
버스가 검문소에 정차를 하여 경관이 올라와
승객을 들을 검문하였습니다.
그의 앞에 이르러 “무엇 하는 사람이야?”하고 물었습니다.
“판사입니다.”
“판사는 무슨 판사야? 신분증 내놓아”하고
경관은 소리쳤습니다.
그는 신분증을 꺼내어 경관에게 공손히 내주면서
“판사를 판사라고 하지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하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의 신분증에 대법원 판사임을 알아본 경관은
깜짝 놀라 깍듯이 경례를 하면서 용서를 청한 적이 있답니다.
그가 몸이 아파 관용차를 타고 병원에 입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부인이 그를 부축하기 위해 차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이 차를 탈 수 없다.”고 하며
내리라고 해서 부인은 부득이 택시를 타고
뒤를 따라 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하신 거지요.
그는 법정에서 부득이 사형선고를 내리고서 며칠 지난 다음,
교도소로 그 사형수를 찾아갔습니다.
자기의 직책상 달리 할 수 없어 사형언도를 내리지만
심히 미안한 일이라고 양해를 빌고 나서
가톨릭에 귀의하기를 권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많은 사형수들이 영세 입교하였답니다.
-꼬보 제공-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에베소서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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