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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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3 오후 7: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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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觀點)의 차이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보는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하지
만 실은 뇌로 본다. 눈은 망막에 상을 맺히게 하는 렌즈 일 뿐이다. 인간이 살면서 겪은 경
험과 지식을 통해 시각정보를 해석하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계단을 오르는 자가 계단 모서리에 걸려서 넘어졌을 때 넘어지는 자에게는 계단은 ‘걸림돌’
이었을 것이다. 계단에서 넘어질 때 다시 앞의 계단을 짚고 일어서게 된다. 이 때 계단은
‘디딤돌’이 된다. 같은 계단이라도 자신의 처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수능 수험생이 시험장으로 갈 때 아침을 죽을 먹지 않는 학생이 있다면 이것은 그 날 시험
을 죽 술까 염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학생은 일부러 죽을 먹고 갈 수 있다.
이 학생은 시험장에서 문제를 죽 먹듯 쉽게 풀 것 이라 생각한 것이다.
예쁜 제비꽃을 두 가지로 표현한다. 생김새가 오랑캐 투구 닮았다고 하여 오랑케 꽃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꽃반지 만들기 좋은 꽃이라고 해서 반지꽃이라고도 한다. 매사 보는 눈이 다
르고 마음먹기 달린 것이다.
한자의 행(幸)은 다행 행이다. 한자의 모양이 바로 보나 뒤집어보나 같다. 한자의 매울 신
(辛)은 다행 행(幸)과 다른 젓은 “-”가 하나 없다.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 하나 차
이로 행복을 의미하고 “-”를 빼면 맵고 고달픔을 의미하는 매울 신(辛)이 된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과 미국의 경기를 한 적이 있다. 경기 중에 한국이 페널티킥을 얻어
냈고, 이을용 선수가 키커로 나섰지만 아쉽게도 실축하고 말았다. 그런데 처음 키커로 나섰
던 선수는 이천수 선수였다.
이천수 선수가 찰 것처럼 나와서 공을 만지더니 결국 이을용 선수가 찼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후견지명(後見之眀 : 사후확신 편향)) 심리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을용 이냐고?”
“왼발잡이 선수를 왜 프리킥을 차게 하냐고?”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는 겁 없는 이천수에게 맡겼어야지, 도대체 감독은 뭐하는 거야?”라
며 히딩크 감독의 결정을 맹비난했다.
그런데 장담하거니와 이을용 선수가 성공했더라면, 감독의 결정을 맹비난했던 바로 그 사람
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는 왼발잡이가 최고야.”
“경험 없는 이천수 선수를 쓰느니 노련한 이을용 선수가 훨씬 낫지.”라는 말로 상황을 분석
했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그 상황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심리이다. 스
포츠 게임의 결과를 알고 나면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갖고 있었던 것
처럼 감독의 작전을 평가한다.
후견지명 효과의 폐해 중 하나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epistemic curiosity)’을 저하시킨
다는 점이다. 어떤 현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갖는 것은 ‘놀라움’을 경험하는 것에서 비롯
된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새로 접하게 된 정보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 그 새로운
정보가 기존의 내 지식으로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정서적 경험, 즉 놀라
움이 지적 호기심의 출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에든지 당연하다고 느끼며 놀라지 않는 사람은 지적 호기심을 강하게
가질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은 본인이 똑똑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또한 사람들에게 좋은 인
상을 줄지는 몰라도 새로운 지식에 대한 탐구력이 결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라도 어떤 일이든지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 일과 반대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자신의 사후 확신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후견지명의 희생자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모 방송국에서 ‘전파견문록’이라는 오락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설명하는 말을 듣고
답을 맞히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의 관점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그 설명내
용이 신선하고 천진난만하지만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다.
아이의 설명에 근거해서 답을 맞히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화면
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답이 공개되면, 그 답이 너무나 쉬워 보이고, 맞히지 못해 쩔쩔매는
출연자들이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저렇게 쉬운 걸 왜 못 맞힐까 싶을 정도로 속이 타보여 진다. 이것이 지식의 저주
현상(curse of knowledge)이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남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고 단정 짖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특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다.
같은 사물이나 환경을 보는 것은 시력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달리 이해하는 시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