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대한 소고 4.> 아파트가 먼저다.

건축. | 2020-09-16 오후 2:56:21 | 조회수 : 574 | 공개





- Hypothesis -

1. 아파트는 공공 인프라다.

2. 아파트가 본래 공공재임에도 그 개발, 소유, 거래를 지금까지 민간 시장에 맡긴 것이 눈부신 경제 성장의 신의 한 수였다.

3. 하지만 아파트는 현시대 출산율, 혼인율, 자살률 등 각종 사회문제의 근간이다.

4. 이제는 아파트의 공급과 계획 방식의 구조적 수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위 주장에 대해 부족하지만 제 건축 실무와 실생활을 바탕으로 공부와 글쓰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파트를 먼저 짓는다.

도시를 만드는 순서를 생각해보자. 먼저 집은 집 자체로만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인프라가 필요하다. 도로, 상하수도, 가스, 통신, 대중교통 노선, 주변 편의시설이 있어야 집은 비로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니까 도시를 만든다고 하면 상식적으로 도시 인프라, 즉 도로망, 공원, 학교, 전기,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마련되고 그다음 집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도시를 만드는 방식은 특이하다. 일단 큰 도로만 닿게 해 주고 학교부지만 대강 마련되면 ‘먼저’ 아파트 단지부터 짓는다. 그 아파트 안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필수시설(내부 도로, 주차장, 어린이집 등)은 이미 들어있다. 단지계획을 지도하는 주택법의 내용이 거의 다 그러한 것이다. 일반 건물과 인허가 차원이 다르다. 주변 도시구조가 열악해도 아파트 단지만으로 주민이 살만한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도시를 개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단지 안에 최소한의 상가도 포함된다. 집 앞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주변도 따라 개발된다. 그리고 아파트 안의 시설들은 주민들이 관리사무소와 알아서 관리한다. 만약에 아파트 동 하나가 일개 건축물이었다면 그 사이 도로의 보도블록 하나, 가로수 한 그루도 다 시청이나 구청에서 관리했어야 했다. 만일 아파트가 없었다면 다른 보통 나라처럼 각종 생활인프라를 직접 짓고 일일이 관리했어야 하는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서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신도시의 경우, 아파트 다음에 큰 관공서, 백화점이나 몰이 구축된다. 심지어 교통시설도 나중이다. 내가 사는 동탄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2020년 IC 확장공사가 이제야 시작됐다. 그리고 트램, GTX 등 주요 대중교통시설은 아직 계획 중이다. 도시-집으로 도시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집-도시 순으로 도시를 건설한다. 정부 입장에서 첫 번째 모델은 너무 느리고, 재정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시민이 원하는 시설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두 번째 모델은 ‘아파트’라는 집과 도시의 중간체를 거의 순전히 민간(기업과 수분양자)의 자금과 기술과 기획(시장 트렌드 반영)으로 먼저 짓게 만든다. 단순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가 도시개발에도 적용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점은 왜 이렇게 불편할게 뻔한데 사람들이 들어오냐는 것이다. 바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열악할 때 사놔야 나중에 돈을 번다. 자금력 있는 사람들은 들어와서 살지 않더라도 전세라는 또 특이한 계약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들어와 살지 않더라도 아파트를 통해 인프라가 지어질 수 있도록 일종의 선투자를 한다. 선분양, 다주택자가 문제? 임대 주택이 없다? 이 구조는 바로 50년 전 돈 없고 능력 없던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구조다. 그것으로 강남이 탄생했고, 분당, 판교 등 전국의 택지개발지구가 다 그렇다. 지금은 국민 60%가 아파트에 산다. 해외의 표준적 시각에서 아파트는 임대주택이다. 국가가 소유하거나 민간 거대부동산기업이 소유한다. 분양아파트도 있지만 매우 고급으로 뉴욕 맨해튼 같은 도시 중심부 고소득층을 등 겨냥한 럭셔리 주택이다. 그리고 300세대 넘는 단지를 보기도 힘들다. 우리나라는 1천 세대 넘어야 대단지로 겨우 인정해 준다. 잘 아는 대로 송파 H단지는 약 1만 세대 규모다. 70년대 따뜻한 보일러,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살만한 집이 없어서, 대단지에 집을 모아 지어 살만한 수준으로 짓던 방식으로 3 만달러 시대에 1만 세대 서울 교통요지에 아파트 인프라를 고급화해 준 셈이다. 참 사람들은 '하던 대로'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불과 30년 전 만해도 우리나라는 무척 가난했다. 내가 6살 아들만 할 때, 바다가 보이는 달동네 집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소변을 봤었다. 산업화가 궤도에 오른 1970년 후 경제 성장의 속도는 세계 유래 없이 가팔랐다. 1950년 전쟁에 이미 있던 기반시설도 파괴된 상태의 서울은 복구할 충분한 시간도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빠르게 서울로 유입되면서 도시는 꽉꽉 판자촌으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기반시설을 마련할 시간과 돈도 그리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소득은 늘어나는데, 그에 맞는 살만한 집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며, 꽤 어려운 행정력과 기술을 요했기 때문이다. 집이 아니라 도시 인프라와 그를 개발하고 관리할 행정 역량이 부족했다(와우아파트 붕괴 사건)는 뜻이다. 이것이 민간이 자금과 기술과 시장으로 주도하는 아파트라는 개발형 식이 탄생하고 번성하게 된 배경이다. 국가의 인프라 구축 역할을 상당 부분 속도와 효과의 정확성을 위해 민간에 맡긴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정부가 ‘아파트 분양을 통한 시세차익’으로 분배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내 삶에서 체감하려면 제때 서울의 요지 아파트를 분양받아 적당히 팔았어야 했다. 여기에서 문제는 얼핏 모두에게 동등해 보이는 분양제도는 아파트의 가치가 강남의 아파트와 나머지 아파트의 시세차익 기대수익이 천지차이라 매우 불공정하다는 거다. 최초에 정부가 왜 그렇게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이 후에 본질을 잊어버린 건지 아님 어떤 심오한 이유로 일부러 수정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 건지 모르겠다.

 

아파트가 문제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 특히 아파트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현상은 ‘아파트는 그냥 집이 아니고, 준 공공 인프라다.’라는 가정을 가지고 분석해야 한다. 이 문제는 지금 당장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의 근대화 이후, 50년 동안 진행 중인 문제로서 우리나라가 어떠한 방식으로 도시를 만들고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며 그 도시 경제/정치적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다. 공공과 민간기업, 그리고 수요자가 어떠한 역할을 나눠가지고 있는지, 또 경제 성장으로 도시의 경제적 가치가 형성될 때 그 열매를 어떻게 나눠가졌는지 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내 전문 분야인 도시 건축 공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그냥 집값이 아니다.) 가격’이 폭등하자 분명 이럴 리가 없고 버블이 틀림없는데, 어떤 ‘나쁜’ 이들이 시장을 교란해서 그 정도 가치도 없는 집이 비싸졌다는 자극적이고 감정적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이들이 많다. 꼭 뭐가 잘못되면 ‘누가’ 그랬는지 따지는데, 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은 접근이 아니다. 분명히 구조적인 문제이다. 누군가의 악의를 찾기 보다 과거의 선의가 지금에 와서 생각지 못한 악영향을 가져왔다는 점을 짚을 것이다.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아파트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 이 글쓰기를 통해 부동산 문제, 즉 한국형 아파트 문제의 근본적인 핵심을 진단하는 것을 넘어, 감히 솔루션을 도출해내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이 도전을 해보고자 합니다.

 

 

 





댓글 : 2
CJ   2020-11-09 13:36 [ Modify ]  [ Delete ]
토마호크님, 댓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최근 제 부족한 글에 부끄러워 다음 글 포스팅 못하고 주저주저 하고 있었습니다. '틀에 박힌 평면'과 '유니크한 공간'을 언급해주셔서 다음 글은 단위세대에와 배치 그리고 그 변화 가능성에 대해 제 생각과 경험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전세'에 대해서도 생각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 부분도 언급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토마호크   2020-11-03 17:09 [ Modify ]  [ Delete ]
통찰력있는 글이군요  다음 포스트가 기대되는... 감사합니다 공부를 나눔해 주셔서요
요즘 젊은세대가 영끌해서 아파트 산다는게 강한 정주욕구의 발현이란 생각도 들어요
틀에 박힌 평면이긴해도 꾸미기에 따라서는 유니크한 공간을 만들수 있단걸 그들은 알죠
전세집을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 자가를 원하는 거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