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대한 소고 1.> 아파트는 "사는 것" 이다.

건축. | 2012-01-13 오전 8:29:54 | 조회수 : 2188 | 공개

  '상품(제품)으로서의 건축'이란 개념은 아파트의 가장 본질적 속성이다. 이는 고고한 아카데미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천박한 상업논리에 의한 건축의 윤리적 오염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개념 자체가 아파트가 가진 수많은 부정적인 이슈들 - 도시 경관의 획일성, 대규모 단지 개발로 인한 도시 구조 파괴, 몰개성화, 주거의 질과 가격의 불합리 등 - 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식되는 것은 심각한 오판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속성이 다른 문제점들의 중요한 원인임을 인정하더라도, 그 속성 자체는 또 다른 더 큰 범주인 사회의 시스템과 시대의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업논리를 떠난 아파트는 있을 수 없다. 더하여 알맹이 없는 디자인의 허망한 아름다움에 아파트의 구원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 논리를 대입하고 그에 걸맞은 진보된 수익모델과 적절한 건축방식을 고안해내야 한다.
 
  서울에서는 다 쓰러져가는 강남의 소형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이 수도권 근교의 고급전원주택과 맞먹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현상은 환금성이나 가격책정의 용이 등과 같은 상호 교환되는 상품으로서의 가치에서,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거의 질보다는 상품성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물론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도입된 모든 선진 국가에서, 우리의 경우처럼 생산된 제품이자 팔리고 사는 '상품으로서의 주택의 의미'와 또한 '그에 상응 하는 가격'이 확연히 커진 경우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서구의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천천히 진행되었고, 그들의  주거 양식에 대한 전통적 인식이 견고했기 때문에, 과거의 주거 형태가 급격하게 전환되지 않고 변화에 천천히 적응해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대에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자본주의화를 겪은 동아시아의 많은 대도시들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아파트 형태를 많이 볼 수 있지만, 유럽 등 서구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분야에서는 아시아가 서구를 앞서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이를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주거문화에 끼칠 필연적인 결과로서 '주거의 상품화'의 결과라고 보자.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과거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 속에서 기존 전통 주거의 개선이나 승계 과정이 배제된 채, 순수하게 농축된 폭발적인 산업화, 자본주의의 성장 논리만이 작용하여 상품으로서의 주거 형태의 급격한 전환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아파트란, 우리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로의 전환 그리고 과거 우리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들이 만들어낸 주거형태 - 제품이자 상품 - 의 돌연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말하자면 이 아파트라는 돌연변이는 환경의 변화에 매우 잘 적응하여 살아남았고 과거의 종들(한옥 등)을 대신하는 지배적인 새로운 종이 된 것이다. 또한 이 종은 살아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또한 그 사회변화를 촉진시켰다. 그리고 이 추이는 매우 특징적이며, 자랑스럽던 부끄럽건 간에, 한국의 대표적인 경관(외형)이 되었다. 여기에서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은 주거형태란 개인의 취향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사회적이며 시대적 상황들을 드러내는 대표적 문화 형태라는 것이다. 요컨데 아파트란 형태에 대한 박정희나 르꼬르뷔제의 영향은 그들 개인으로서의 영향이 아니라 시대,사회적 영향의 한 단편이었는 점을 분명히 하자. 아파트는 산업화(대량생산)과 자본주의(시장경제)에 잘 적응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순수하게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지닌, 건축 형태이다. 이러한 '문화 형태의 상품으로의 전환'은 다른 문화 형태(예를 들어 의식주에서 의와 식)에서도 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옷에서의 기성복의 등장과 음식문화에서의 외식산업의 성장에서 비슷한 점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산업화와 시장경제로 인한 '문화형태의 상품으로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로서 단순히 아파트가 가진 불경한 건축 윤리적 문제점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건축 윤리적 판단을 배제한채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한국의 현대적 주거 형태(아파트)의 대체 불가능한 속성으로 놓아보자. 물론 많은 문제가 여기에서 발생하고 의복이나 음식문화 또한 비슷한 문제점으로 신음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성복이 가져온 세계적 의복 문화의 획일화나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가 보여주는 여러가지 문제점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아파트 또한 경관의 획일화나 생활의 질의 문제 등의 문제점을 초래한다. 상품은 사고 판다는 의미이고,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 듯 대량생산된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경제적(시장경제) 속성이고 후자는 산업적(산업화) 속성이다. 상품도 아닌 제품도 아닌, 전통 사회의 옷과 음식을 상상해보자. 과거에는 직접 식재료를 채취,재배하고 각자의 집에서 그것을 요리해 먹었다. 옷 또한 베틀에 천을 짜고 바느질을 해서 옷을 해입었다. 지금도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우리는 거의 5000년동안 내내 그와 비슷하게 살아왔다. 그 때는 지역과 기후 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소위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운 다양성이 유지되던 시대였다. 물론 주거의 경우에도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파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손으로 다시 뒷동산 나무로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사회 전체적으로 다시 가내 수공업으로 옷을 해결할 수 없고 외식산업의 성장을 막을 수 없듯이, 이제는 주거도 상품으로의 속성을 버리는 것은 어렵다.산업화가 거꾸로 가거나 시장경제를 전복할 다른 경제적 체제가 아직까지는 나오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주거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인간생활의 거의 모든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문화적 체험마저 생산과 소비, 판매와 구입의 범주에 잠식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가 뒤집어 지지 않는 이상 '상품(제품)으로서의 속성'은 여러 문화 형태들의 본질을 잠식해 갈 것이다. 오히려 그 본질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제거가 아닌 양성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떻게 잘 팔리는 아파트가 곧 우리 삶과 도시를 이롭게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들 중 80%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거주하고 있다. 아파트는 상품이자 제품이다. 80%는 전통적 개념의 거주자가 아니다. 우리는 결국 소비자다. 구입하고 팔고 빌리고 빌려주고, 신상을 선호하고 비싼 집과 동네를 과시한다. 그런 면에서 자동차나 우리가 입는 옷이 하는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거주자라기 보다 아파트 소비자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상품은 지난 반백년동안 우리나라 시장경제를 이끄는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다. 사실상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가 성냥갑 모양이어서 강을 둘러싼 그 군락이 하늘에서 보면 마치 군사기지처럼 보이든 말든, 우리는 한강을 볼 수 있는 그 성능에 단지 열광했을뿐 문제삼지 않았다. 10년을 살든 1년을 살았든 자기 집을 무너뜨는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으며 오히려 제품 낡으면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해주는 그 혜택를 빨리 받고 싶어 안달이었다. 집의 질에 비해 집값이 터무니 없이 비싸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 물건을 살만큼 사는 사람들만 사는 집이기 때문에, 오히려 훨씬 더 넓고 쾌적한 곳에 사는 사람들도 그들을 동경한다. 80%... 거의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들어섰다. 
 
  아파트의 수많은 문제점들 중에서 대체/수정 불가능한 속성을 구별하고 그 속성은 쉬이 없어지지 않고 현 사회체제(산업/경제체제)와 오랫동안 운명을 함께 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상품(제품)으로서의 그 속성이 초래한 남은 심각한 문제점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주거에 관해서 상품(제품)이라는 속성을 제거해야할 오류가 아닌 시대적 전환이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아파트의 문제는 적어도 건축 디자인,계획의 문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간다. 아파트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디자인이나 계획의 문제라기 보다 생산과 공급방식, 경제성과 트랜드, 소비자 심리와 대중심 '등의 보다 비건축적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건축의 미적, 윤리적, 사회적 가치를 아무리 적용하려 해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의류의 패션이나, 자동차, 가전제품, 컴퓨터 등이 보여주는 제품 디자인의 매우 경제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전략들이 오히려 더 큰 효용이 있을지 모른다. 
 
  옷을 직접 해 입던 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옷이 가지는 문화적 속성이 더럽혀 졌다고 보는 사람이 있을까?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의류의 경우는 물건의 생산과 소비로만 산업이 국한되어 있지 않다. 말 그대도 패션 산업이라 하여 비물리적인 생산과 소비, 즉 유행과 트랜드의 선도 그리고 끊임없는 대중에 대한 연구 그리고 자극과 소통을 통해 또다른 현대적 문화산업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것은 일방향적인 서비스의 제공도 아니며 매우 쌍방향적이고 역동적이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문화적 활동이다. 공장에서 만들어 돈을 주고 사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즐기면서 옷을 사고 있고 그 입기를 즐기고 있다. 남과 같은 옷을 입는 것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며 안도 하는가 하면 다른 것에 대해 자신만의 개성을 느끼며 적당히 과시하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을 사고 파는 상품으로, 찍어내듯 생산해낸 제품이라 해서 건축의 순수한 속성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품이나 제품으로서 속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하지 않는 건축가들의 태도가 시대적 괴리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여전히 건축가와 직접 거주할 사람이 만나 세상에 유일한 단독주택을 만드는 것이 아파트를 만드는 것보다 더 순수한 건축이고 작가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 건축의 본질을 축소시키고 아파트에 적용해야할 적절한 건축적 전략을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사고 팔지만 여전히 사람은 상품이든 제품이든그 집에 살고 사는 것을 즐긴다. 혹은 즐기지 못하더라도 즐기고 싶어 한다. 같은 유형이 한 개든 수만개든 만들어진 집에 사람이 살고 그 사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 본질이지, 상업적 행위든 디자인 방식이든 생산 방식은 말그대로 방법일 뿐이다. 방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외면해서는 안된다.
 
   다른 건축 형태 보다도 주거의 경우에는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기보다 매우 사회적인 특징을 보이고 문화형태로서 의미가 크다. 그래서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고 개인이든 지도자든 건축가든 누구든 개인적으로 아무리 바꾸려 해도 잘 바뀌지 않고, 오직 사회의 문화수준을 순수하게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아파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나 현재의 다른 문화 형태가 보여주는 변화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데 산업사회 초기에 세계적인 문화적 변화에서 각 분야의 모던 작가들은 그 문화 변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패션의 코코 샤넬뿐 아니라 건축에 르꼬르뷔제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 후로 그 문화 형태가 산업화되고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꾸준히 디자이너나 작가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로 나뉘어 지는 것 같다. 패션이나 영화나 음악과 같은 매체 산업은 작가들이 계속적으로 상업화에 주도적 기여를 했고 그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비교적으로 건축에서 주거의 경우에는 작가들의 상업화에 기여도가 낮다고 판단된다. 결과적으로 산업화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표준화 문제와 그로 비롯된 다양성의 결여 문제를 해결할 재능을, 전자는 작가들의 크리에이티브와 소비자 문화의 적절한 소통과 결합에서 했고 후자의 경우 자본의 논리로 해결을 하거나 여전히 전통 문화에서 해결책을 기대하게 됐다. 물론 지역마다 나라마다 차이가 존재하므로 의류나 주거나 음식문화와 같은 범주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근대부터 현재까지의 주거 건축이 거의 아파트로만 귀결된데에는 주거 형태의 산업화,상업화 과정에서 작가로서 건축가의 창조적 재능은 자본이나 여러 정치적이나 경제적 의도/시도에 비해 그다지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는데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적 아파트의 발전 과정에서 한옥 공간 구조의 영향력이, 역사적인 삶의 패턴의 관성이 더 컸다는데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특수한 아파트라는 현상은 <아파트공화국> 발레리 줄레조가 밝히듯 "산업화의 기계"로서 작동한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아파트를 상품과 제품의 속성이 순수하게 체현된 주거 형태로 만들었다. 그로인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적극적으로 주거의 상품화가 되는 것에 기여하지 않은 건축가들의 태도가 더 상황을 악화시켰다. 하지만 건축가가 상품으로서 주거형태를 인정하고 소위 히트 상품을 만들기 위해 창의적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아파트에 대한 수다한 불평을 끝내고 오히려 세계 어느나라보다 일찍 그리고 풍부하게, 새로운 초현대적 주거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파트 문화는 한국의 근현대가 남긴 상처나 흉터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21세기를 위한 가장 큰 유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우리 사회와의 관계는 이미 세계에서 유례없이 초현대적이다.
 



댓글 : 5
이정애   2012-06-11 10:49 [ Modify ]  [ Delete ]
글이 참  솔직하고 직설적인거 같아요. 저도 이번에 주거팀으로 배정받아 일하고 있는데 문제점이 많다 지적하지만 정작 그걸 풀어내고 해결할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어요. 분명 이 분야도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주거유형이고 사회현상인데 말이죠. 상당히 공감가는 글 잘 보았습니다! 블로그에 퍼갈게요~
CJ   2012-01-16 14:15 [ Modify ]  [ Delete ]
@ zptloves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제 글과 생각을 담론이라고 봐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젊은 패기로 머리 속에 있는 그대로 충실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관심 감사드립니다. ^^
zptloves   2012-01-16 14:00 [ Modify ]  [ Delete ]
글 무척 잘보았습니다. 아파트에 관한 CJ님의 담론에 앞으로도 귀기울이고 싶어집니다. ^^
CJ   2012-01-14 18:19 [ Modify ]  [ Delete ]
감사합니다~ 작은 악마님. 과분의 말씀에 스스로 열심히 해봐야 겠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더 공부해서 좋을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작은 악마   2012-01-13 13:03 [ Modify ]  [ Delete ]
좋은 글, 공감가는 글에 감사합니다.
다음 글이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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