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을 읽는 코드 (부산일보 서창원 칼럼 )

울산문화 칼럼 | 2015-12-11 오후 8:06:48 | 조회수 : 1529 | 공개

 

                                             울산을 읽는 코드

 

    울산을 말할 때 흔히 공업도시,공해도시,노사분규로 바람 잘 날 없는 도시로 잘라 말한다. 지난 60년대 공업 특정지구로 지정된 이후 계속 되어 온 이러한 지역 이미지는 좀처럼 바뀔 줄 모른다. 울산은 지정학적으로 부산과 같이 국토의 동남단을 차지하면서도 광역시 승격 이전에는 경상남도에 편입되어 있었다. 문화권역으로 볼 때 경주와 같이 신라문화권에 속하여 있으나 행정구역과 문화권역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지난 90년대의 울산시 군 통합과 광역시 승격으로 경상남도의 행정 지도를 벗어나 중앙정부와 직접 대응하는 가운데 지역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간 정부가 지정한 공업특정지구로서 장소성만 강조 되었지 오늘날 공업도시로 성장하는 배경에는 어떤 문화적 요소가 잠재해 있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울산은 그간 수 많은 공장 근로자와 가족, 그에 따른 인구의 집적효과를 더해 인구 몇만의 소읍이 30여년 만에 1백만을 헤아리게 됐다. 일터를 찾아 갑자기 모여든 외지사람들은 울산이라는 지역성에 대해서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공해니 노사분규니 하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고용기회가 큰 도시이니 돈 벌면 떠나야지 하는 생각이 많았다. 공업도시 30년을 이렇게 보내면서 한 세대가 지났다.


   그런데 울산에서 태어난 2세들이 울산을 이끄는 젊은 신진세대로서 울산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울산의 정주의식이 크게 높아 졌다. 2002년 월드컵 개최도시로 자긍심을 키웠으며 울산을 이해하고 구성원간에 일체감을 드높이는 취지에서 펼쳐진 울산사랑운동의 영향도 컸다.

 

   좀 비켜가는 얘기일지 모르나 통상 울산에서 말하는 ‘울산사람’이라는 어감에는 그저 울산에 사는 사람을 말하는게 아니다. 이 말에는 외지 유입인구 증가로 15%로 줄어든 울산 토박이만을 지칭하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여기에는 외지 유입인에 영향을 받은 토박이의 배타적 결속의식 마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토박이들의 결속 명분은 애향심이다. 산자수려한 울산이 외지 유입인으로 인해 자연도 인심도 황폐해 졌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울산은 고향사람이 지켜야 한다는 당위론을 폈다.

 

   그러나 외지 유입인의 생각도 만만찮다. 울산을 이 만큼 키워 온 것도 다 외지인들인데 울산에서 자식 낳고 수십년을 살아도 울산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는 하소연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울산을 움직이는 지도층의 대부분은 울산이 고향인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 등 선출직 지도층과 일반 사회 유지들이다. 힘을 가진 그들이 앞장서 외지 유입인의 다양성을 표용하여 보다 활력있는 진정한 울산의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광역시 승격 후 울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놀라워 하는 사람이 많다. 선사시대 대표적 유산인 국보 제285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만 하더라도 민속학자 김열규 교수는 경주의 모든 문화재를 통틀어도 암각화 하나와 바꿀 일이 아니라고 극찬을 보냈다.  이 암각화는 공업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70년대 초 공업용수 조달을 목적으로 조설된 태화강 대곡천 사연댐 상류에서 가뭄을 틈타 물이 마른 덕분에 우연히 발견 되었다. 그 간 이 암각화는 발견 후 30년 동안 사연댐 수위 만큼이나 우리의 의식 속에 잠겨 있었다.

 

   97년 광역시 승격 이후 울산문화의 정체성 회복 움직임과 지역 특화 문화요소를 발굴하던 가운데 반구대 암각화가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98년 울산시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의 이례적인 반구대 암각화 관광자원화 주문에 힘입은 바 크다. 2000년 암각화 국제학술대회 개최에 이어 관광자원화 계획 수립 등 각종 화젯거리로 지난 수 년간 울산은 암각화 열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장생포 근대 포경을 기리는 지역축제인 고래축제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잡이 역사와 결합, 시너지 효과를 더하면서 암각화 문화상품 개발도 뒤를 이었다. 이 암각화는 연구자들의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하더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

 

   울산문화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의 갈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틀림없이 이 암각화에 꼭지점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공업도시 울산을 상징하는 조선소의 유조선의 모양과 이 암각화에 새겨진 유선형의 고래 모양이 닮아 있다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암각화에는 현재 울산의 다양성 만큼이나 많은 역동적인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따라서 울산의 정체성을 해독하는 상징적 이미지가 함축되어 잘 나타나 있다.


   선단식으로 무리를 지어 배를 타고 바다에 나아가 고래를 잡던 선사인의 모습에서 해양도시 울산이 서려 있으며 사슴이며 멧돼지,호랑이에게 활을 쏘며 창을 던지며 사냥을 하는 선사인의 모습에서 언양 일대를 중심으로 가지산 영남 알프스로 상징되는 울산의 내륙성을 살필 수 있다.

 

   암각화 하나 만으로 요즘 울산은 ‘문화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울산을 방문하는 내빈이나 외국을 방문할 때 어김없이 내어 놓는 암각화 기념품은 첫 만남의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바꿔 놓고 있다. 의례적인 인사보다 암각화를 화제로 자연스레 지역문화의 우수성을 소개하므로서 상대방에게 울산문화에 대한 깊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울산은 또한 새천년 밀레니엄 상징도시로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돋는다는 간절곶이 있다. 한반도 인류 동진(東進)의 끝으로 울산에는 태화강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여 번영을 누렸다는 가설이 있다. 일찍이 고대로부터 신라 국제 해상교역의 관문으로 처용설화를 간직한 처용의 도시이며 삼포 개항지의 하나인 염포가 있었던 도시이다.
 

   울산은 서울 보다 면적이 1.7배나 넓은 도시이지만 인구는 10분의 1 밖에 안돼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도시이며 전국에서 비교적 물가가 높은 도시이지만 가계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가 바로 울산이다. 울산은 숨가쁘게 달려 온 우리나라 근대화의 바로미터이다.

 

  울산을 알아야 한국이 보인다는 이도 있다.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 개최에 이어 국제도시로 나아가는 2005년 국제포경위원회(I.W.C) 정기총회 개최와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울산광역시는 다시 한번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울산 내부적으로는 지방분권 의지, 정주의식 향상, 지역문화의 자긍심 고취 등 긍정적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으나 울산을 바라보는 외부적 시각은 여전히 편협되고 경직되어 있는데 있다. 울산은 지난 날 국가 경제를 위해 고유한 지역성을 희생하면서 공해 부담이 많은 중화학 공업시책의 무대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환경, 복지, 교육, 의료, 문화활동 등 시민 삶의 질과 밀접한 분야의 투자가 미약하다.


   최근 현안으로 부각된 고속철 울산역 유치, 울산 국립대학교 설립문제, 신항만 개발 촉진, 국립 산재병원 설립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현재 울산의 외형적, 수치적 성장 만 바라볼건 아니다. 문화도시,산업수도를 지향하는 울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가는 코드를 이해하려는 중앙정부의 보상적이고도 정책적 배려가 우선 되어야 비로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서 창 원 지역홍보연구소장

 

   ( 부산일보, 2003 .6.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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