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립미술관 논쟁에서 얻을 두 가지 가치
울산의 비평문화에 ‘불씨’ 바람직
울산의 미래 위한 건강한 논쟁 기대
울산시립미술관 건립과 운영방식을 두고 문화도시울산포럼의 김종수 고문과 울산대 미술대학 김섭 교수가 각각 두차례씩 경상일보에 기고문 형식으로 벌인 논쟁을 흥미롭게 읽었다. 울산문화풍토에서 창과 방패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전례 없는 모습에서 두 가닥의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울산풍토에서 찾아보기 어렵던 ‘창작과 비평’이 이뤄지는 점이요, 또 하나는 전문가와 실수요자 간의 가치경쟁이다. 통상 전문가 의견이 지배적인 풍토에서 비전문가가 목소리를 냈을 때 그 수준이 전문가를 설득할 수 있는지, 또 문예 분야에서도 실수요자의 권리가 먹혀드는지를 알아볼 시금석이 된다는 점이다.
첫 가닥을 살펴보면 이번 논쟁은 울산의 비평문화에 불씨를 당길 수 있다.
맨 먼저 김 고문이 울산시립미술관 건립과 운영방안에 대해 제시한 의견은 ‘창작’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가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비평’이다.
이 과정에 시립미술관의 복합공간화, 복제그림 전시, 울산초등 교사의 레지던시 시설 등 낮선 용어와 몰랐던 사실들이 소개되고 있다. 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해 알고 있다는 시민이 2% 밖에 안된다는 실태에 비춰볼 때 이 ‘창작과 비평’은 공공시설에 대한 시민의식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하다.
또 울산문예계에는 비평문화가 활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 진검승부를 방불케하는 논쟁을 통해 비평문화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 가닥은 이번 논쟁이 전문가 집단과 실수요자간의 간극을 메우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미술 전문인과 미술관을 이용할 시민간의 견해 충돌이다.
놀랍게도 이 논쟁의 발단은 전문가가 창작한 내용을 실수요자인 비전문가가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이다. 미술관에 대한 종합적 구상은 사실 전문가 집단이 먼저 하는 게 통례였다. 그런데 사단법인체인 문화도시울산포럼 회원들이 머리를 맞대 미술관 이모저모에 대해 고안한 내용을 김 고문이 대표로 발표하자, 전문가라 할 미술대학 교수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식이다.
통상 공공시설이나 행사를 추진할 때 민간의견은 깊이 반영되지 않았다. 과정을 보면 계획수립, 전문가 심의(필요에 따라 공청회도 개최), 입찰 준공, 관리 운영이라는 수순을 밟는다. 여기에 실수요자인 시민의견이 개입할 여지가 매우 좁다.
반면에 전문가(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의 견해가 주로 먹혀드는 구조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이 종종 행정편의와 결합해 나쁜 결과를 빚는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했다. ‘폭 넓은 시민의견 수렴’이라는 전제는 늘 제자리 걸음이며, 그래서 시민사회의 불만이 누적돼 온 부분이 있다.
문화도시울산포럼의 발표는 그런 불만이 부드럽게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술관이 들어설 장소성을 연구하고 시민 삶과 어우러진 체감형 제안이 공감을 샀다. 시립미술관이 울산초등학교 자리로 선정된 것도 이 포럼이 일찍이 중구 원도심 재생의 방향성을 제시, 입지 타당성을 강조한 활동성과가 일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자, 그런데 여기에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시립미술관이라면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하는게 아닌가, 시민의 취향이란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어느 기준에 맞출 것인가, 하는 의견이 대두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관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지말라’고 언급한 문맥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정 단체가 주장하는 것이 다 옳다고 할 수 없고, 전문가라고 해서 모두 전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 논쟁처럼 특정 사안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 과정에서 더 좋은 방안이 도출되면 미술관을 위해서도 좋고, 앞으로 각종 공공시설 건립이나 문화행사를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시립미술관 문제뿐 아니라 울산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늘 이처럼 건강한 논쟁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서창원 울산암각화조형연구가
( 경상일보 2014. 3.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