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보이는 것

건축 外 | 2012-02-02 오후 3:15:43 | 조회수 : 2276 | 공개

다음의 글은 비상에듀(주)에서 2012년에 출판 될 교육과학부 검인정 교과서인 고등학교 문학2 실린 본인의 글이다. 이 글은 책,『건축 詩로 쓰다』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을 보자. 사찰인 경우, 입지 자체가 돌고 도는 길을 따라 깊숙한 안쪽으로 숨는다. 건축물이 잘 안보인다. 보여도 조금씩 조금씩 보일 뿐이다. 보는 자가 원하면 보이는 것은 머리를 살며시 드러낼 뿐이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서로 엮이어 있다. 오른손이 왼손을 잡으면 왼손이 오른손을 잡았는지 오른손이 왼손을 잡았는지 모른다. 이 생각을 연장하면 내 자신이 이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지 이 우주가 내 속에 있는지를 모른다. 시인 최하림은 그러한 경험을 "' 억새풀들이 그들의 소리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억새풀들이 그들의 소리로 왁자지껄 떠들다가
한 지평선에서 그림자로 눕는 저녁,
나는 옷벗고 살 벗고 생각들도 벗어버리고
찬 마루에 등을 대고 눕는다 뒷마당에서는
쓰르라미 같은 것들이 발끝까지 젖어서
쓰르르 쓰르르 울고 있다 감각은
끝을 모르고 흘러간다고 할 수밖에 없다.



(최하림, 『풍경 뒤에 풍경: 최하림 시집』, 문학과 지성사, 2002, p. 63)

 
 "쓰르라미 같은 것들이 발끝까지 젖어서"라는 구절을 보면 쓰르라미가 외부에 있는지 시인의 몸 속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감각은 끝을 모르고 흘러간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시인의 감각은 온 우주를 흘러 그것을 꽉 채운다. 우주와 시인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상기의 시에서처럼 이 건축물이 주위의 자연한경과 서로 부둥켜안고 있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연이 건축물 내에서 쓰라미 같은 것들로 건축물을 접게 할 수는 없을까? 필로티로 노출된 중정과 그 주변의 소나무들, 그리고 주차장 안쪽에 있는 큰 돌들이 시인이 아닌 건축물의 "발끝까지 젖어서 쓰르르 쓰르르 울고 있다."


 
                                                                                                                                                                              - 이동언,『건축 詩로 쓰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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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
jpchoi   2012-02-03 17:45 [ Modify ]  [ Delete ]
멋진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