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建築
부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동언
『
관악산에 가서 아들과
잠자리를 잡다가
너무 세게 잡아 그 자리에서
죽은 잠자리
내가 죽인 잠자리
산을 내려오는 동안 줄곧
나를 따라오던 그
죽은 잠자리,
세상에 들어서자 금방
안 보이는
그 잠자리
보이지 않는
세상
(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시집, "보이지 않는 세상”, 문학과 지성사, 1997, p.12)
』
"세상에 들어서자 금방 안 보이는 그 잠자리, 보이지 않는 세상." 왜 그럴까요? 일상이란 테두리 안에 인간이 머물기 때문이죠. 일상이란 습관화된 세계이지요. 아마도 일상 밖에서 일상 안으로 들어오면 일상 밖의 일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세상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어버리므로 세상과 같이 움직일 뿐이죠. 세상 안의 분위기에 휩쓸리기가 십상이죠. 세상의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곳의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 하죠. 그러나 일단 그곳을 벗어나며 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죠. 마치 흐르는 선율 속에 자신이 빨려들어가면 그 당시에는 선율과 같이 하지요. 그러나 후에 자신이 선율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도 한 가지입니다. 일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거나, 반성적 사고를 하게 되면 일상의 질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 일상적 질성이 우리의 건축을 만드는 뿌리입니다. 이 일상적 질성 속에서 새로운 배열 혹은 결합이 일어날 때 우리는 창조라 말합니다. 즉 일상성 속에서 새로운 관계맺기가 바로 창조입니다. 아득히 먼 데에서 온 느낌을 주는 새로운 건축이 바로 창조적 건축입니다.
출처 : New World Architect 11호 p162 C3A , Antonio Predock, 미국유물관 및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