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건축 _ 그림자

시와 건축 | 2012-04-09 오전 10:04:32 | 조회수 : 2830 | 공개

詩와 建築

 
이동언 부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아침마다 서둘러 출근을 하지만
그림자는 집에 있다
그를 두고 나오는 날이 계속되고
거리에서 나는 활짝 웃는다
 
그림자 없이도
웃는 법을 익힌 뒤로는
내 등 뒤에 그림자가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집에서 혼자 밥 말아 먹고 있을 그림자
 
그림자 없이도
밥 먹는 법을 익힌 뒤로는
내가 홑젓가락을 들고 있다는 걸
마주 앉은 사람도 알지 못한다

 어느 저녁 집에 돌아와보니
그림자가 없다
안방에도 서재에도 베란다에도 화장실에도 없다
 
겨울날에 외투도 입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
신발도 없이 어디로 갔을까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그림자를 기다린다
그가 나를 오래 기다렸던 것 처럼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문학과 지성사, 2007, pp. 42-43.)
                                                                                           





 건축에서 "그림자"를 잃어버린 대표적인 사례가 기능주의 건축입니다. 기능을 제외한 형태를 포함한 나머지 모든 것은 건축에서 주요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건축은 삶이란 복합적인 것을 담는 공간인데 삶의 복합성 가운데 기능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을 버리면 그것들은 그림자로 되었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건축이 거대담론에 압도되어 미시담론을 놓치면 미시담론은 그림자가 되어 사라집니다. 흔히 사람들은 그림자로 사라진 것을 타자화 되었다고 말하지요. 건축에서 모든 공간은 원천적으로 삶의 복합성을 담지요. 기능주의라는 거대담론에 압도되어 삶의 복합성 가운데 대표 기능만 추출하여 실의 용도에 따라 명칭을 붙입니다. 복도, 계단, 거실, 부엌 등등으로 말이죠. 이리하면 복도는 통로 기능 이외의 것, 휴식, 조망 등이 그림자로 사라집니다. 즉 미시담론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해체주의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도 그림자의 복원이죠. 그래서 로고스가 지배적인 근대건축에 로고스로 인해 타자화 된 것들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형태위주의 복원이었죠. 이 역시 삶의 복합성이란 그림자를 사라지게 한 원인이 되었죠. 이젠 우리는 그림자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죠.






 

 
출처: The Architectural Review; Arcitect Konrad Frey 2002.03 p56

 



태그 :
댓글 : 0
이전 포스트 :: 시와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