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영원한 건축을 보다

시와 건축 | 2012-02-05 오후 8:41:20 | 조회수 : 1350 | 공개




건축이란?(4)
 

 

 

한 죽음을 불쑥 전화로 내게 안기네

창밖에 띄엄띄엄 보이는 눈송이를 따라 내리다가

내리다가 돌에 얹혔다가 허물어졌다가 마른 풀에 얹

혔다가

나뭇가지에 얹혔다가 흙에 얹혔다가 스며들다가

물끄러미 아직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내 손을 보네

 

(오규원, ibid, “눈송이와 전화” p.76)
 

 

 이 시를 쉽게 풀어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화를 통해 생각지도 않은 지인의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는 시인은 창밖의 눈송이가 “돌에 앉혔다가 허물어졌다가 마른 풀에 얹혔다가 나뭇가지에 얹혔다가 흙에 얹혔다가 스며들다가” 하면서 영원의 길을 따라나서는 것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의 길을 깨닫는다는 내용입니다. 눈송이를 통해 영생의 길을 포착하는 시인의 직관력은 놀랍습니다.

건축가도 한 가지입니다. 일상의 하찮은 것을 통해 그것이 영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건축을 행하는 건축가야말로 진실로 우리가 건축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지요. 달리 이야기하면 눈송이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것처럼 건축도 시대에 따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지요. 그러나 ‘눈송이’에서 출발했음을 잊지 않지요. 눈송이처럼 출발한 건축이 이미지의 변신을 거듭하면서 눈사람처럼 풍성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이미지들 속에서 지나온 과거와 변화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읽을 수가 있지요. 이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한 줄기의 빛이 영원 속에서 무지개처럼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전통 속에서 느끼는 우리의 건축의 질(quality)입니다. 지인의 죽음을 통해 영원의 빛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인처럼 우리건축가도 그것을 발견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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