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신건축 11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Kunsthaus Graz

외국의 신건축 | 2016-05-06 오후 5:29:17 | 조회수 : 16146 | 공개

1. 그라츠 도시 및 건축개요
 
그라츠(Graz)는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로, 2015년 6월 기준 인구는 310,391명, 대학생수가 44,000명 이상에 이르는 유서깊은 교육도시이다. 중부유럽에서 잘 보존된 구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구로 등재되었고, 2010년에 쉴로스 에겐베르그(Schloss Eggenberg) 지구까지 확장되었다. 2003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었으며, 미국 영화배우인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Alois Schwarzenegger)의 고향이기도 하다.


쇨로스베르크 정상에서 본 무어(Mur) 그라츠 도시전경 
 

그라츠라는 명칭은 짧은 기간동안 슬로베이나의 영토였던 시기에 명명된 것으로, 16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슬로베니아인들에게 그라츠는 수도인 류블랴나보다도 정치, 문화, 과학, 종교적인 측면에서 더 중요한 도시였다. 슬로베니아어로 된 최초의 카톨릭 서적이 그라츠에서 출판되었으며 1592년에는 여러 나라 말로 쓰인 최초의 슬로베니아 사전이 출판되었다.

스티리아 지방의 슬로베니아인들은 그라츠를 독일도시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슬로베니아 정체성과 슬로베니아계 학생들의 민족적 자각 때문에 2차세계대전동안 독일 민족주의자들의 반 슬로베니아 탄압을 받았다.

오늘날 비록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지만 그라츠는 슬로베니아인들의 애정이 서린 도시로서, 오스트리아 스티리아 지방에 사는 많은 슬로베니아인들이 이 곳에서 공부하고 있고, 슬로베니아 스티리아 지방의 많은 문헌들이 그라츠대학의 고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는 등  슬로베니아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도시이다.


쇨로스베르크 정상에서 본 무어(Mur)강변의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전경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인 그라츠시가 2003년 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건립된 건물이다. 영국 건축가인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Peter Cook and Colin Fournier)가 설계한 건축물로서, 건축개요는 다음과 같다.
 
연면적 : 13,100㎡
순면적 : 11,100㎡ / 141,007 sq. ft.
전시면적 : 2,500㎡
지하주차장 : 146대
총공사비 : 4천만 유로
소유주 : 그라츠시
 

2. 입지특성
 
오스트리아 남동쪽 슈타이어마르크주의 주도(州都)인 그라츠시는 인구 25만명의 중세도시로서, 동쪽으로는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남쪽으로는 슬로베니아와 인접한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라츠라는 도시이름은 ‘요새’라는 뜻의 슬라브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전형적인 중세 도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무어(Mur)강 동쪽의 그라츠 구도심 지역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된 예수회수도원, 바로크 양식의 지붕과 외벽의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의 상업건축물, 매너리즘 양식의 페르디난드 2세 유해안치소 등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해발고도 473m의 슐로스베르크 언덕을 중심으로 구릉을 따라 상점가가 줄지어 있으며 도시 전체는 시청, 성당,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시를 구성한다.


그라츠 시가지내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위치도(출처 : 구글어스)


쿤스트하우스와 무어강의 무린젤(문화의 다리), 쉴로스베르크의 시계탑 위치도(출처 : 구글어스)


무어(Mur)강의 무린젤(문화의 다리)

그라츠시는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구도심을 보존하려했던 시민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1970년대 초, 당시 시장이었던 구스타브 쉐르바움은 구도심의 중심도로로서 보행자도로였던 헤렌 거리를 왕복 4차선의 자동차도로로 만들고, 시 외곽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언론과 시민들로 하여금 '그라츠 구도심 보존운동'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쉐르바움은 1973년 시장선거에서 낙선하였으며, 보행자 우선정책과 역사유산 보존정책이 점차 우선시되면서 시당국은 주차장으로 쓰이던 카르메리터 광장에 조경수와 분수를 설치해 시민휴식공간으로 바꾸는 한편, 헤렌거리에는 자동차 진출입을 전면 금지시키게 되었다.
 
그라츠시의 구도심 보존정책은 상당히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다. 건물 증개축 때 주위의 역사적 건물보다 층고를 높이 올리면 안되고, 증개축을 위해서는 슈타이어마르크주, 그라츠시 등 4개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부 건축전문가들은 "창문 하나만 새로 내려 해도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이런 정책은 도시의 활기를 잃게 만든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베르트람 베를레 그라츠시 건설개발국장에 의하면 "구도심 개발정책의 핵심은 도시의 퀄리티 유지"라며 "오래된 건물들 사이의 조화를 깨지 않는 것이 바로 도시의 퀄리티"라는 것이다.
 
입지적으로 쿤스트하우스 그라츠가 위치해 있는 무어강은 지역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도시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무어강을 경계로 강 양안의 공간구조가 상이하고 사회경제적인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무어강 서쪽에는 오래된 건축물도 있지만 동편 역사지구처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은 많지 않다. 중세 유적이 잘 보존된 동쪽 구시가지에는 중세부터 귀족, 부르주아 계급의 거주지역이었고 지금도 주로 중상류층이 살고 있는 반면, 뒤늦게 개발된 서편은 동구권 이민자들과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고 있고 범죄율도 상대적으로 높으며 여전히 홍등가의 흔적도 남아있다.


쇨로스베르크의 시계탑에서 본 무어(Mur)강 

이 때문에 그라츠시는 무어강 양안의 문화적 이질감과 사회ㆍ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강 서쪽 지역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게 된다. 방치돼 있던 무어강 서쪽 공터에 2003년 준공된 쿤스트하우스는 그라츠시가 이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를 보여준다. 특이한 건물외관 때문에 건립초기에는 전통을 파괴한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그라츠 시민들은 요즘 쿤스트하우스를 '친근한 외계인'이라 부를 정도로 이 건물은 도시의 명소가 되었다. 쿤스트하우스 주변으로 고급 레스토랑과 영화관, 바 등이 들어서면서 무어강 서쪽 지역은 도시 발전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라츠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어(Mur)강
 

3.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미디어 파사드
 
이 건물의 미디어파사드는 베를린 디자인 그룹 리얼리티 유나이티드의 얀 엘더와 팀 엘더의 작품으로 건축과 기술, 시각적 메세지를 통합하고 있다.
 
BIX 미디어 설치에 대한 아이디어는 쿤스트하우스에 미디어를 설치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던 중 나왔다. BIX는 쿤스트하우스의 전반적인 계획이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을 때 추가적인 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늦게 시작된데다가 복잡한 프로젝트의 특성 때문에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Spacelab team)의 표현적인 건물 디자인에 그의 건축개념을 통합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기도 했다.
 
마침내 BIX는 건물의 강변 정면을 완전히 둘러싸는 하나의 새로운 요소가 되었으며, 그 결과 건축적인 건물 외피의 개념을 급진적으로 새롭게 재정의하게 되었다. BIX 미디어 설치는 건축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였던 매끄럽고 푸른 빛을 띠며 가물거리는 듯한 파사드에 적합했기 때문에 건축주인 그라츠시 당국과 건축가의 승인을 얻게 된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미디어 파사드 BIX 주간경관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미디어 파사드 BIX 근경


쇨로스베르크산에서 본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미디어 파사드 BIX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진 대략 1,300여개의 반투명 플렉시유리(Plexiglas) 패널이 유기적인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이른 바 건물의 외피(skin)는 각기 다른 투명성의 색조를 나타내도록 의도된 것으로, 변화하는 건물 내외부간의 의사전달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기술적, 경제적 이유 때문에 외피의 물리적 투명성은 포기하였으며, 이에 따라 재료의 투명성은 단순한 장식품으로 전락되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외피에 시공중인 BIX(인터넷 사진 참조)  

BIX의 도입으로 비록 매개적인(중간에서 내부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파사드의 의사전달 개념은 되살아났으며, 동시에 외피의 최종 건설과정에서 플렉시유리 사용으로 필요한 정치적 논쟁들을 전달하게 되었다. BIX는 쿤스트하우스 동측면의 표면적 900㎡인 플렉시유리 파사드에 930개의 튜브모양의 둥근 일반 형광등을 설치한 것이다.
초당 18프레임씩 밝기가 개별적, 연속적으로 조정되는 각 램프는 이미지, 영상 및 애니메이션 표현이 가능하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외피에 시공중인 BIX 디테일(인터넷 사진 참조) 

BIX 개발과정에서 일반적인 대규모 디스플레이의 주요성능 특성들이 실질적인 여러 장점들을 얻는 대가로 포기되었다. 매트릭스의 해상도가 아주 낮아진 것이다. 외피는 단지 930픽셀의 해상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일반 텔레비전 화면 해상도 픽셀수의 0.2%에 불과한 것이며, 또한 흑백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낮은 이미지 해상도가 강력한 한계로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BIX의 모듈구조와 큰 규모로 인해 다른 미디어 디스플레이처럼 부가적인 장치가 아니라 건물의 일부가 되었다. 절감과 긴장은 현대예술이 내부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데 좋은 전략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BIX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커뮤니케이션 범위를 확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전체 프로그램 또한 보완하고 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외피에 시공중인 BIX 디테일(인터넷 사진 참조)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외피에 시공중인 BIX 디테일(인터넷 사진 참조)   

건축물과 미디어 장치는 쿤스트하우스 내부의 예술과정을 파사드상의 추상적이고 매개적인 형태로 대중들에게 투사하는 강력한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BIX는 복잡한 건물형태에 맞도록 만들어진 무정형의 조명 매트릭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직선의 시각적으로 분명한 경계보다는 테두리 부분으로 점진적으로 희미해지게 되어 있다. 이 설비의 테두리는 마치 조명패턴이 건물 외피 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처럼 거의 인식할 수 없으며, 930개의 조명은 개별적인 색소반점처럼 건물 외피 속으로 문신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크기와 해상도, 파사드의 통합과, 눈에 보이지 않는 스크린 테두리 측면에서 보면 BIX는 뒤에 이어지는 프로젝트(SPOTS, NIX, Crystal Mesh, AAMP, C4) 연구를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미디어 파사드 BIX 근경(인터넷 사진 참조)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미디어 파사드 BIX 디네일(인터넷 사진 참조)
 
오래된 옛 기술의 선택으로 BIX는 기술적인 지속가능성의 문제들을 제기한다. 산업의 급속한 혁신 사이클 때문에 대형 스크린용 기술들은 매우 빠르게 발전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부엌용 램프로 알려진 고전적인 디자인의 형광등을 픽셀로 사용함으로써 기술적으로 업데이트되어야 하는 문제들은 더 이상 제기되지 않고 있으며, BIX는 건축적으로 항구성의 요구를 충족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IX는 기술수준이 낮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18분의 1초내에 밝기가 0%에서 100% 사이에 조절가능한 각 램프의 능력은 특별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필요로 하였다.


BIX 스크린 매트릭스 


BIX 스크린 매트릭스에 사용되는 형광등

BIX 스크린 매트릭스는 건축물의 커뮤니케이션 잠재력을 상당히 향상시키고 있으며, 단지 구경거리에 불과한 표현적 감성 이상의 것을 제공해 준다. 미디어파사드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커뮤니케이션 범위를 확장하여 프로그램상으로 정형화된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잘 수행하는 동시에 쿤스트하우스의 아이덴티티와 이미지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만일 이같은 문화시설이 예술적 명료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라면 BIX 장치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를 강력한 도구로 전환시키는 힘을 배가시키는 것으로, 그 힘은 물리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의미를 널리 퍼뜨리고 분명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BIX로 예술가들은 새로운 문화적, 예술적 양식의 산물들을 탐구할 수 있게 된 반면, 표면을 상업적인 선전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배제된다.


무어강 동측에서 본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미디어 파사드 BIX  

외피의 디스플레이 특성 때문에 파사드는 표현의 한 형태가 되고 있다. 그것이 예술적이든, 단순한 취미용 기술이든 간에 이 건물의 파사드는 파사드란 무엇인가, 하나의 건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건축이란 언제나 하나늬 실재가 되어 왔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목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BIX 매트릭스 외피의 경우, 우리는 다채롭고 진전된 시각적 멀티미디어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상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을 추구할 수 있다.
2010년 BIX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영구소장품에 선정되었다. 뉴욕현대미술관의 컬렉션에서 대표적인 BIX는 일대일 스케일의 초기 연구용 시제품이었다.


4. 건축특성
 
그라츠시의 역사적인 도심부에 위치해 있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실제로 그 주변지역과 거주자들에게는 좀 이상해 보이는 건물로,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사무동(기존건물)과 전시공간으로 새로 건축된 전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형태는 주변의 전통적인 건물들과 매우 다르지만 그 형태는 주변의 환경에서 형태를 따온 것이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와 주변건축물(인터넷 사진 참조)
 
무어강변의 새로운 생체구조물과 쉴로스베르크의 오래된 시계탑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도시의 트레이드 마크로서 전통과 전위예술 사이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얻으려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도시계획 및 목적과 관련하여 보면 쿤스트하우스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에서 교두보 역할을 수행한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와 주변건축물(인터넷 사진 참조)
 
인접해 있는 강의 물결치는 듯한 모양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의 전체 형태는 개방적인 내부 구조와 물성을 통하여 적당히 두드려 펼 수 있도록 유동적이고 개방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자적으로 강렬한 비정형의 미디어 파사드를 보여준다. 동쪽 전체 파사드는 BIX 매트릭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 BIX의 특정한 매트릭스는 무한한 변화를 연출할 수 있도록 각각 자체 조절이 가능한 형광램프를 보호하기 위한 플렉시 유리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이나 영상을 연출할 수 있다. 처음보면 외계인같은 생체적인 형태는 시각을 충족시키기보다는 외견상 경관속으로 통합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으며, 색채와 조명,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변적이다.
 
푸른 빛이 감도는 아크릴 외장으로 마감된 4층건물의 지붕 위에는 문어 빨판처럼 생긴 9개 촉수를 달려 있는데, 아크릴 유리로 된 외부 표피면으로부터 인상적인 형태의 노즐이 태양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돌출된다.
건물 내부는 “숨겨진 트릭의 블랙박스”처럼 큐레이터에게 영감을 불어넣도록 의도된 반면, 건물 외피는 전자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미디어 파사드로 마감되어 되어 있다.(Colin Fournier) 공기방울처럼 푸른 빛이 가물거리는 쿤스트하우스의 외피는 유리벽으로 된 1층 위에 마치 떠 있는 듯 보인다. 폭이 60미터까지 걸쳐있는 생체구조물은 별도의 지지대없이 두 개의 커다란 전시공간을 덮고 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1층 평면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3층 평면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단면도


문어빨판모양의 건물외관
 

문어빨판처럼생긴 촉수중 조명이 들어 있는 형태
 

3층에서 빨판모양의 천창을 통해 본 쇨로스베르크 산 일부  
 

3층에서 본 천정의 빨판모양 형태

쿤스트하우스는 소장품 없이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실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의 다리 건립과 함께 강 양쪽 지역에 사는 가람들의 소통공간이자 문화적 구심점으로서, 문화공간을 통해 계층간 사회통합을 이룬 훌륭한 사례이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측면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1층 주출입구 홀
 

1층에서 본 3층으로 올라가는 무빙워크
 

3층에서 1층으로 연결되는 무빙워크
 

3층 전시공간
 

전면 도로에서 본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니들(Needle)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외관의 니들(Needle) 내부 


5. 피터 쿡(Peter Cook)에 대하여
 
아키그램의 설립자이자 전 런던 현대예술연구소장(ICA), 런던 바틀렛 건축대학 학장인 피터 쿡(Peter Cook)은 건축분야에 있어 지난 반세기동안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주요 인물이다.


피터 쿡(인터넷 사진 참조) 

피터 쿡은 1961년에 마이크 웨브, 데이비드 그린과 함께 아키그램Ⅰ을 조직하였으며,. 같은 해 피터 쿡은 세 사람의 친구인 론 헤론, 웨렌 초크, 데니스 크롬프턴을 끌어 들였다. 이 세 사람은 런던 평의회 사우디 뱅크 예술센터(1967년 완성)설계팀에서 함께 작업하였고 나중에 아키그램의 조직에 동참하게 된다. 1963년에는 서로 그룹의 일원으로서의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들의 성향은 1960년대 영국을 거점으로 기계주의 시대적 건축운동의 연속선상에서 1960∼70년대의 공간 탐색과 상상력으로 충만한 사고, 비 주류성, 비틀즈, 공상과학만화 등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디자인 영감은 벅민스터 퓰러(Buckminster Fuller),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프레드리히 키슬러(Friedrich Kiesler)등의 조형언어와 그 양식을 키워나간 근대주의 건축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아키그램’이라는 이름은 건축‘(Architecture)’과 전보‘(Tele-gram)’ 라는 두 단어의 조합으로서, 날로 무의미해져가고 척박해가는 전후 영국 주류 건축과 디자인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긴급타전, 즉 전보를 띄운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들은 규범적인 환경을 거부하고 자연환경 속에서의 상호조화를 중요시하며, 60년대 소비사회 법칙에 따라 교환 가능한 이동성, 가변성을 지닌 건축과 환경창조의 주요수단으로서 기계적 서비스를 강조하였다.


아키그램의 Plug in City 


아키그램의 워킹시티

이와 같은 그의 건축적 혁신에 대한 기여는 최근 2010년 4월에 있었던 스웨덴 룬트대학교의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통해 잘 나타난다. 급진적인 실험그룹으로서 아키그램에 대한 피터 쿡의 업적은 많은 출판물의 주제가 되어 왔으며, 2004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회원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상인 로열골드메달을 수여하였다,

2007년, 피터 쿡은 건축에 대한 공로로 영국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또한 왕립예술원 회원이기도 하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Commandeur de l’Ordre des Arts et Lettres)을 수여받았다. 피터 쿡은 현재 왕립예술대학 선임교수이다. 그의 교수직은 런던대학 왕립아카데미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에 있는 시각예술 문화아카데미(Hochschule fur Bildende Kunste)의 회원을 포함하고 있다.

피터 쿡은 초기부터 건축계의 경향을 이끌어 왔으나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지어진 예술적인 건축물을 건축하여 많은 대중들에게 그의 작품을 선보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는 또한 오사카, 나고야,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마드리드 등지에서도 건물을 설계하였다.
 
 
참고문헌 출처

1. https://en.wikipedia.org/wiki/Graz
2. www.realities-united.de
3. Architecture Week, http://www.architectureweek.com/2003/1217/design_3-2.html
4. arcspace, http://www.arcspace.com/features/spacelab-cook-fournier/kunsthaus-graz/
5. http://arch5541.wordpress.com/2012/11/02/light-technology-cladding-kunsthaus-graz/
6. Architectural Record, http://archrecord.construction.com/projects/bts/archives/museums/0401_kunsthaus/overview.asp
7. 한국일보 2010.6.23일자, 강 양안의 '정체성' 살려나가며 자연스럽게 갈등·불균형 해소 모색
8. 중앙일보 2008.2.19.일자, 도시 르네상스’ 유럽을 가다 ③ 끝, 오스트리아 그라츠 ‘쿤스트하우스’
9. http://report.dreamwiz.com/view/view.hcam?no=4465479
10. http://petercookblog.wordpress.com/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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