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단어의 최후, 사어

학술 번역 | 2016-12-20 오후 1:33:18 | 조회수 : 2895 | 공개

언어와 단어의 최후, 사어


“영동 갑시다”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30~40대라면, 흐릿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영동은 영등포의 동쪽, 현재의 강남을 의미합니다. 태백산맥 동쪽 지역 영동과 혼동의 염려가 있으며, 강남이라는 실제 지명이 잘 알려지면서 현재는 영동대로, 영동시장 등 고유 명칭을 제외하고는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플로피디스크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80~90년대에 사용된 컴퓨터의 외부기억장치로, 현재의 USB 메모리의 역할과 비슷합니다. 플로피디스크는 매우 느리고, 초기 제품은 용량이 1MB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촬영 사진의 크기가 5MB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대단히 작은 용량이지요. 기술의 발전과 함께, CD, DVD, USB 메모리 등으로 대체되었고, CD와 DVD도 곧 플로피디스크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최근 발표된 한 고급 승용차에 CD 삽입구가 사라진 것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용되지 않는 단어는 책자나 기록의 형태로만 남을 것이고, 학구적, 역사적인 가치가 있지 않은 이상 일반인이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집니다. 또한, 북한에서 자주 쓰이는 ‘동무’와 같은 표현도 우리 사회에서는 사실상 금기시되는 사어로 볼 수 있습니다. 1년 치의 임대료를 미리 지불하는 것을 뜻하는 삭월세라는 단어는 현재 표준어가 아니며, 사글세가 표준어로 바뀌었습니다.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흔치 않은 방식이라 사용 빈도가 줄어듦은 물론, 국립국어원에서 표준 표기법을 바꾸었기 때문에 사어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범죄나 재난 등에 관련된 단어도 사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편, 언어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워낙 많은 언어가 존재하고 있기에 사라져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지요. 홍콩 원주민은 본래 광둥어를 사용했으나, 영국의 영향으로 원주민끼리도 광둥어보다 영어로 대화하려 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언어적으로도 특이점이 많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때의 영향으로 많은 도시, 지역 명칭이 스페인어로 되어 있고, 공용어인 타갈로그어의 숫자 표기와 발음도 스페인어와 매우 유사합니다. 이후, 미국 식민지로 바뀌면서 영어의 위상이 커졌고, 원주민의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낮은 인건비 때문에 많은 미국 기업의 콜센터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닐라의 마천루를 구성하는 고층빌딩 중 상당수가 콜센터 업무용이라고 하는군요. 이렇듯, 스페인어는 필리핀 내에서 일부 단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히브리어와 라틴어는 언어 자체가 사어가 가깝게 된 경우입니다.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도 적으며, 히브리어의 경우 사실상 사어가 되었던 것을 별도의 노력을 통해 되살린 수준입니다. 반면, 라틴어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에 많은 흔적이 남아있기에 많은 자식을 잉태한 후, 사어가 되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10년 후에는 또 수많은 단어가 생겨나고, 사라지겠지요? 폐암, 치매, 우울증 등에 걸리는 사람이 아예 없어져서 이 단어들이 사어가 되길 빌어봅니다.


 




본 글은 해당 분야 전문 원어민 저널리스트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따라서, 글에서 예시 및 조명되고있는 사안이 국내 상황과는 일모의 차이를 보일수 있으나, 국내 연구원분들에게 영어 논문 교정 및 저널출판 관련 이슈들을 국제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AURIC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혹, 고견을 가지고 계신다면 언제든지 여의치 마시고 말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AURIC와 연구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이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