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해 버리기엔 너무 예술적인… 서귀포 ‘카사 델 아구아’ 한달내 사라질 위기

담화 | 2012-09-03 오후 4:19:25 | 조회수 : 2865 | 공개


동아일보  2012-08-06 /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 유작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 세계건축가연맹 금상 수상자(1999년)이자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지낸 그는 2009년 3월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스페인어로 ‘물의 집’을 뜻하는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를 완공해 선보였다. 레고레타는 이 건축물로 2010년 아메리칸 프로퍼티상을 받았다. 이후 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고 타계해 이는 그의 유작(遺作)이 됐다.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고요히 들어선 이 레고레타의 유작을 놓고 제주도와 한국 건축 및 미술계가 들끓고 있다. 제주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갤러리가 우여곡절 끝에 철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파트리시아 에스피노사 멕시코 외교장관은 2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한 멕시코대사관은 이날 “카사 델 아구아는 멕시코 현대 건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며 멕시코 정부의 이 같은 공식 방침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주한 멕시코대사는 올해가 한국-멕시코 수교 50주년임을 강조하며 청와대와 정부 관련 부처, 제주도청과 서귀포시청을 찾아가 철거 중단을 요청했다.

국내 건축계와 미술계도 이 건물의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는 지난달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는 제주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유산임에도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철거한다는 것은 국가의 품격까지 실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미술협회도 지난달 성명을 발표하고 “아시아에는 일본과 한국 두 곳에 레고레타의 건축물이 있는데 일본 작품은 개인 주택이라 내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카사 델 아구아는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되는 작품”이라며 “눈앞에 보이는 금전적 이득 때문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잃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컨벤션센터 근처에 짓고 있는 앵커호텔과 콘도 분양을 위해 43억 원을 들여 2층 1279m² 규모로 지은 모델하우스 겸 갤러리다. 호텔이 완공되면 갤러리와 VIP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앵커호텔의 시공사였던 JID가 자금난으로 호텔과 콘도 용지를 부영주택에 팔면서 문제가 생겼다. 부영주택이 이 갤러리를 철거하고 그 대신 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 JID는 호텔 용지를 부영에 넘기면서 이 갤러리는 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팔지 않았다. 하지만 임시건물인 데다 존치 기간이 만료(2011년 6월 30일)돼 법적으로 철거 대상이 됐다. 제주지방법원도 지난달 25일 철거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6일은 카사 델 아구아의 운명에 있어서 결정적인 날이다. 갤러리에서는 현재 철거에 반대하는 한국 조각가 20명이 ‘레고레타-그의 공간을 품다’라는 제목으로 철거를 막기 위한 ‘방패용’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전시는 6일 끝나지만 철거 소식을 들은 건축학도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 데다 서귀포시의 철거작업을 지연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이달 말까지 전시를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귀포시는 다음 달 6일 개최되는 세계자연보전총회 이전에 공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서둘러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오희범 서귀포시 도시건축과장은 “문제의 건축물은 중문관광단지 환경영향평가 합의 내용에 따라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는 자리에 지어진 임시건물이어서 존치 기간이 만료된 이상 법적으로 철거를 피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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