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log.auric.or.kr/home/jc.aspx
AURIC
|
LOGIN
홈
|
포스트
|
태그
[
총적립P :
237,370 P
]
jpchoi
안녕하세요? 최재필입니다. 여기 ALOG에서 건축계의 모든 분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친구 신청 부탁 드립니다.
친구신청
98 명
포스트 카테고리
건축학회 부회장 후보 최재필
(4)
짧은 생각
(4)
Essays
(10)
새해인사
(1)
서울의 삶터
(32)
AURIC 등록자료
My 저서
(236)
사진·답사
(0)
최근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지쮸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밴쿠버
지속가능한 환경이 가장 ...
행운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
tempus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 ...
Justin
RSS
총 방문:
325089
명
(오늘:
43
명, 어제:
13
명)
[서울의 삶터] 지하철 문화
서울의 삶터
|
2012-01-03 오후 11:22:19
| 조회수 :
3402
|
공개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느끼게 되는 묘한 기분이 있다. 건물 로비에서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며 재미나게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엘리베이터만 타면 입을 굳게 다문다. 그 대신 계기판의 층수가 바뀌는 것만 열심히 쳐다보고 있게 된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는 더욱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다. 엘리베이터를 작동하는 아가씨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저희 ○○ 백화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의 6층은 아동복, 완구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친절한 안내를 해 준다. 그런데 아무도 그 아가씨의 인사나 안내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안내 아가씨야 미리 훈련을 받았으니 괜찮겠지만, 승객들은 이런 상황을 매우 어색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헹여 그 아가씨와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계기판 숫자만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사람에게는 「개인적 공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다. 이것은 각 사람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인데, 마치 신체의 일부인양 사람이 이동할 때마다 같이 따라 다닌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란다. 건물 로비나 공원 등 공공의 장소에 가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천천히 조금씩 접근해 보시라. 대략 팔을 뻗쳐 닿을 수 있을만큼 그 사람에게 다가서는 순간 그 사람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경계의 눈빛을 주게 되고, 좀더 가까이 다가서면 그 사람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팔 하나만큼의 거리는 타인과 나를 구분짓는 나의 개인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개인적 공간은 내 앞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크기가 변한다. 예를 들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코 앞 한뼘 거리만큼 접근해도 하등 싫어할 이유가 없다. 사무실에서 내 웃사람이 심각한 얼굴을 내게 바싹 들이댄다면 이것이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못참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 코 앞에 바싹 다가 선다면 이것은 아주 당황스러운 사건이 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문채 계기판만 쳐다보는 것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각자의 개인적 공간이 깨져 버려서 모두들 신체적으로 또한 심리적으로 잔뜩 움츠려 들었기 때문이다.
혼잡한 지하철 열차 내에서도 엘리베이터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여기서도 각자의 개인적 공간이 침해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엘리베이터보다 그 정도가 심각한데 그 이유는 이렇다. 비록 개인적 공간이 침해을 받더라도 엘리베이터에서는 그 속에 탄 사람들이 다 출입문을 향해 돌아 서 있게 된다. 좁은 공간에서 움츠려 서 있더라도 서로 마주보고 있지는 않으니 그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반감된다. 기실 그렇기 때문에 극장이나 열차 매표구 앞에서 촘촘이 줄을 서 있어도 그리 불편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지하철 열차의 좌석은 열차의 양쪽에 평행하게 놓여져 있다. 그러니 좌석에 앉은 사람과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서로 마주 볼 수밖에 없다.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을 일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마주 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참 고통스러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난감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다. 우선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자. 이들의 반수 정도는 눈을 감고 있다. 피곤해서 깜박 잠이 든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일 터이다. 그렇게 하면 바로 눈앞에 서있는 사람과의 시각적 접촉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좌석에 앉은 다른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본다. 지하철을 타고 30분 이상을 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니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려고 무언가 꺼내 읽기보다는 이 역시 앞에 선 사람 (또는 건너편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과의 시선접촉을 피하는 수단이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열차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건너편 창문 위에 붙은 광고판에 눈길을 준다.
좌석에 앉지 못해 서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앉아있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벽에 붙은 광고판을 열심히 읽는다. 보고 또 보아서 거의 외다시피한 광고문안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다시 한번 읽는다. 시선을 거기에 고정시켜놓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달 월간지가 무슨 기사로 채워져 있는지 다 알고, 그것을 읽지 않아도 다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광고문안 뿐만 아니라 출입문 위에 붙은 지하철 노선표도 이미 다 외웠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지하철 종착역 이름조차도 아주 낯익다.
매일 타고 다니는 시내버스나 좌석버스에도 노선표가 붙어있다. 하지만 거기 쓰여있는 버스 노선표의 정류장들을 외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버스의 좌석은 버스 길이 방향에 직각으로 되어있다.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과 서있는 사람이 마주보지 않아도 되니 공연히 시선을 노선표나 광고판에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버스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볼 수 있으니 굳이 버스 노선표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지하철 열차의 창문 밖은 어둡기만 하다. 그러니 광고문안이나 노선표에 자연히 눈길이 가는 것이다. 앞에 앉아있는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런데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볼거리가 한가지 더 제공된다.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열차 밖은 어둡고 안은 밝기 때문에 창문 유리에 내 얼굴이 아주 잘 비친다. 굳이 나르시스의 이야기를 들추어 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보기를 참 좋아한다. 피곤한 얼굴이거나 행복한 얼굴이거나 내 얼굴이기 때문에 보고 또 보아도 지겹지가 않다. 내 옆에 서있는 사람들도 창문에 비친다. 이들을 흘낏 훔쳐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렇게 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잘못해서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은 언제나 만원이다. 서울의 구석구석 어디를 가 보아도 사람이 넘쳐 흐른다. 값싸고 편리한 지하철은 더욱 더 사람이 붐빈다. 정원의 두세배가 넘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기가 예사이다. 비록 팔 하나만큼의 개인적 공간조차 가지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그래도 서울의 시민들은 나름대로의 지혜를 발휘하여 적응을 해낸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사람들. 이들은 모두 피곤에 절어 있는 무기력한 사람들이 아니라, 잃어버린 개인의 공간을 보상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인 것이다. 복잡하고 짜증나는 서울의 삶터에서 묵묵히 함께 살아나가는 우리 시민들. 돈이 많이 들지않는다면 이들을 위해 지하철 열차마다 대형스크린의 텔리비젼이라도 설치해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우다시피 한 광고판이나 노선표 대신, 뉴스도 좋고 요리강습도 좋으니 항상 새로운 볼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미지출처: 네이버포토갤러리 - 전가람(zengazenga) 촬영
--------------------------------------------------------------------------------------------------------------------------------
'
서울의 삶터'는 제가 지난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서울 상황과는 달라진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그 씨리즈를 포스팅 합니다.
태그 :
엘리베이터
,
지하철
,
버스
,
시선
,
볼거리
댓글 :
4
개
s1ver
2012-01-10 11:31
[ Modify ]
[ Delete ]
글자로 된 광고문구에 대해서 언급하신것 같습니다.
광고는 글자뿐만 아니라 특정역에 도착하면 음성광고가 나옵니다.
자주다니는 루트의 경우 무슨 광고멘트가 나오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역에는 영어광고, 어느 역에는 피자집 광고, 성형외과 등등..
또한 버스 안에서도 특정 정류장에서 듣게되는 광고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눈을 감아도 광고에 노출되고 있는 현실에 살고있어서 너무 피곤한 것 같습니다.ㅠㅠ
다은
2012-01-06 15:03
[ Modify ]
[ Delete ]
어제 탄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서있는 상태로 앞에 앉은 여자분의 '개인적 공간'에 침범했는데 그 여자분도 느꼈는지 순식간에 획 돌아보면서 눈이 마주쳐서 서로 놀랬었는데.. 역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쳐다보거나 책읽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정윤지
2012-01-04 15:26
[ Modify ]
[ Delete ]
A common site in Seoul Metro which i still find quite amusing after two years! :)
http://eastasia.co.kr/701
Gold Rain
2012-01-04 14:10
[ Modify ]
[ Delete ]
최근에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 pc가 지하철의 이런 시선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같아요.^ ^
예전엔 서로 눈길 피하느라 바빴다면, 요즘은 모두들 핸드폰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요^ ^
스마트 폰이 빨리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에 지하철의 역할도 한몫 한 것이겠죠?^ ^
*댓글을 입력하세요
다음 포스트 ::
[서울의 삶터] 사고 파는 문화
이전 포스트 ::
[서울의 삶터] 한옥서 아파트로의 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