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삶터] 한옥서 아파트로의 변모

서울의 삶터 | 2012-01-03 오후 11:21:37 | 조회수 : 4337 | 공개

옛날에는 집에서 혼례식을 올리거나 아이를 낳았다. 이제는 아무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일생의 大事를 집을 떠나 예식장에서 치루고 또 병원에서 맞이하는 것이다. 세태가 많이 바뀐 것을 느끼게 된다.

서울의 600년 역사 중 마지막 십분의 일이 되는 지난 60년 동안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하는 시대였다. 집도 예외는 아니다. 1930년대에는 전통한옥이 서울의 주거지역을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1990년대의 서울은 영 딴판이다. 서울의 행정구역이 넓어지면서 계속 추가로 개발되는 주거지역마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1991년 현재 수도권 가구 전체의 반이상이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의 소위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고 한다. 30년전 처음으로 세워진 아파트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옥에서 아파트로의 변화를 단순히 집의 모양이 바뀐 것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집은 우리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따라서 집도 변한다. 집의 모양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집의 개념도 변하고 또 그 기능도 우리 삶이 바뀜에 따라 좇아 변한다.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선인(先人)들은 사람의 일생을 「生․老․病․死」의 네 글자로 요약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나이를 먹고 병들어 마침내는 생을 마감한다는 말이다. 옛날 한옥에서는 이 인생의 네가지 단계가 모두 집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은 한옥 건너방에서 태어난다 (生). 아이가 자라 나이가 차면 혼인을 하는데 혼례식은 집의 대청마루 또는 마당에서 치루게 된다. 시간이 지나 다시 자식을 낳고, 때가 되면 마루 건너 안방을 물려받는다. 자식들을 시집 장가 보내고 나면 어느덧 인생을 돌이켜보는 시기를 맞는다. 회갑잔치나 회혼식 역시 집에서 치루어진다. 일가친척과 친지들이 대청과 마당에 모인다. 자식들의 절을 받노라면 눈길이 안방 문지방에 닿는다. 어릴 때 걸음마를 배우다 걸려 넘어지곤 하던 문지방에는 이제 손주녀석의 과자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이렇게 지나간 육십년 인생의 흔적이 집안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老).

나이를 어쩔 수 없어 점차 기동이 불편해지고, 마침내는 병이 든다. 하루종일 안방에 누워 자식들의 수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연히 눈길이 천장에 가 멈춘다. 한 세대전 자신의 부모 역시 이 천장 아래에서 숨을 거두었고, 자신도 곧 그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病). 자식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눈에 익은 안방 천장을 마지막으로 한번 쳐다보고는 숨을 거둔다 (死). 대청마루와 마당에 다시 일가친척과 친지가 모이고, 며칠 후 상여는 대문을 나선다. 건너방에서 시작된 삶은 마루 건너 안방에서 끝을 맺는다.

이제 오늘의 집과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자. 우리의 아이들은 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난다. 삶의 첫 순간을 집밖에서 맞이하는 것이다 (生). 어른이 되어서 결혼은 예식장에서 한다. 물론 회갑잔치도 집안에서가 아니라 요리집에서 치루게 된다 (老). 중한 병이 나면 병원 입원실에서 누워지내고 (病), 결국 숨을 거두는 장소도 병원의 중환자실이 된다 (死). 일가친척들도 병원 영안실에 모인다. 생노병사의 대사가 예외없이 집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아파트로 대표되는 오늘의 집은 우리의 삶을 이전과 같이 포용해주지 않는다. 또한 세대간에 집을 물려주는 일도 별로 없다. 집은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 좀더 큰 집, 나중에 좀더 비싸게 팔 수 있는 집을 찾아 몇번씩이나 이사를 다닌다. 집 대신 돈을 물려주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나의 인생의 흔적을 남기고 또 나중에 그것을 찾아본다거나 하는 일들도 있을 수 없다. 단지 집은 가족들이 각기 밖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곳, 기회가 닿으면 좋은 값에 팔아넘기는 곳일 뿐이다.

한옥과 아파트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들어나는 곳이 바로 대문이다. 한옥과 아파트의 문은 열리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 한옥 대문은 집밖에서 안쪽으로 열리고, 아파트 문은 반대로 집안에서 바깥쪽으로 열리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차이점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무척 재미있다. 집에 대한 개념차이가 잘 들어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무릇 어떤 물체를 움직이려 할 때 그것을 당기는 것보다는 미는 것이 더 쉽다. 문도 마찬가지이다. 문 손잡이를 찾아 그것을 잡고나서 문을 당겨 열기보다는 손바닥으로 밀어 여는 것이 더 쉽다.

한옥의 경우, 밖에서 대문을 밀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저녁이 되어 바깥일에 지친 식구들이 하나씩 집으로 돌아올 때, 대문은 집 안쪽으로 열리며 이들을 따뜻이 받아들인다. 아파트의 경우, 밖에서 문을 당겨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안에서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기가 더 쉽다. 집안보다는 집밖을 더 중히 여기는 현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다. 요즈음은 노인들조차도 집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 노인정으로 「출근」을 한다.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한옥의 경우, 집주인은 문틈으로 손님을 확인한 후 (한발짝 물러서서) 대문을 당겨 열고 손님을 맞아들인다. 예로부터 손님을 환대하는 우리네 관습이 엿보인다. 아파트의 경우, 집주인이 문구멍으로 손님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반대로 손님이 한발짝 물러서야) 문을 밀어 열고 손님을 불러들인다. 현대 도시생활에서 이웃간에 오가는 정을 못느낀다는 불평을 이해할만 하다.

집의 공간구조도 크게 바뀌었다. 한옥에서는 마당과 대청마루가 있어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집안에서 치룰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이런 공간이 없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일들을 집안에서 치룰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청마루나 마당이 없어져 버렸다. 생활이 바쁘다 보니, 한옥에서와 같이 안방 아랫목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부엌 조리대 옆에 작은 식탁을 하나 놓고 식구들마다 제각기 시간되는 대로 거기 앉아 밥을 먹는다. 부엌 건너편 거실에 틀어놓은 텔리비젼에 눈길을 주면서 말이다.

주말에 놀러가서 하루이틀 묵고는 다시 떠나버리는 콘도를 잘 살펴보면 그 공간구조가 아파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둘 다 잠자는 방, 부엌, 거실, 화장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을 담는 「집」이 아니다. 그저 단독으로 소유한다는 사실로만 콘도나 호텔, 여관방과 구별이 되는 「주택」일 뿐이다.

지난 60년간 진행되어 온 한옥에서 아파트로의 변화는 단순히 집 모양의 변화가 아니다. 집의 개념도 우리의 생로병사와 밀착된 原形的 「삶터」에서 그저 편히 쓸 수 있으면 좋은 삶의 「도구」, 또는 투자가치가 좋은 재산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집」 아닌 「주택」은 몇년만에 한번씩 갈아치우는 자동차와 같으며, 요즘 젊은이들은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마련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찾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더니, 이제는 되돌아갈 「집」마저 없어진 서울시민 우리 자신들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이미지출처: 네이버포토갤러리 - 요상한나 (jkkje0502)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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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터'는 제가 지난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서울 상황과는 달라진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그 씨리즈를 포스팅 합니다.



댓글 : 6
아카이호시   2012-01-31 10:12 [ Modify ]  [ Delete ]
단순히 문을 여는 것에서부터 그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주셨어요.
삶의 그릇인 '집'이 변화하면서 주택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다시금 조사해야겠습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무무   2012-01-20 11:00 [ Modify ]  [ Delete ]
정말 공감하며 글 잘 읽었습니다.
효율이 우선적인 아파트와는 달리, 한옥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이 비록 반양옥 주택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아름답고 좋은 추억은 모두 그 집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님의 글에서처럼 저희 집 대문도 밖으로 열리는 게 아니라 안쪽으로 당기는 문이었지요. 그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면 "어서와라"고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던 여름날, 대문 위로 연결되는 옥상 빨랫줄에서 펄럭이던 하얀 이불들에서 풍기던 보송보송한 햇볕내음도, 언제나 반질반질 윤이 나던 장독들도, 겨울날이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하나에 저마다 발을 쑤셔넣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왠지  행복하다고 느꼈던 일도, 모두 그 집에서만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요즘들어 자주 생각하는 것이지만, 편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커르   2012-01-19 18:51 [ Modify ]  [ Delete ]
공감합니다.  한옥을 생각할때, 건축적 아름다움이나 웰빙으로 접근방식에 찝찝함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말씀 잘보고 배우고 갑니다.
zptloves   2012-01-18 02:25 [ Modify ]  [ Delete ]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공감하며 깊은 인상에 인사드려봅니다. ^^
planet91   2012-01-10 11:30 [ Modify ]  [ Delete ]
교수님 글을 읽으면서, 우리네 삷을 담은 한옥의 소중함과 연구가치를 다시금 느낍니다.
시대에 따라 주거의 의미가 달라지고있고, 특정 잣대로 한옥과 아파트를 비교하기란 쉽지않은 일이지만,
지금의 답답한 서울의 아파트 숲을 보면서 절대적인 자산 수단으로서의 단편적 의미를 넘어 우리가 잊고, 그리워하는 가치 측면에서 
두 주거유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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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jeong   2012-01-04 13:56 [ Modify ]  [ Delete ]
리모델링 연구 프로젝트를 하면서, 서울에서 아파트는 자산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정말 크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교수님 글 읽다 보니, 2008년 교수님이랑 한옥 아파트 연구할 때, 송인호 교수님이 설계하신 삼청동 카페 연에 가면,  젊은 주인장이 사람들 불러다가 피리도 불고 참 좋았는데^^ 이번 주말에 삼청동 한 번 가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