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
과연 악어는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인정 사정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어 보이는 추물 파충류의 흐느낌. 생김새와는 조금도 격에 맞지 않
는 악어의 울음이야기는 세익스피어의 희극에 나온다. 막 잡은 먹이를 앞에 놓고 희생물이 불쌍해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악어. 그러고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먹이와 함께 눈물도 꿀꺽 삼키는 악어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사실 악어가 운다는 전설은 16세기 노예선장 존 하킨스의 기록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노예선이 처음 도착한 커리비안 연안에서 악어가
‘어깨를 들썩이며’ 구슬프게 흐느끼는(Cry And Sob) 모습을 보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실지 악어는 울지 않는다. 악어가 눈물 같은 액체를 흘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감정의 표출이 아니란 것이다.
다만 눈에 있는 염분을 제거하기 위해 분비선을 통해 흘러나오는 윤활액일 뿐이다. 그래서 악어의 눈물은 동정을 사기 위한 파렴치한의
뻔뻔스런 술수에 견준다.
수년 전,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드 대 섭지에 갔을 때 야생 악어를 처음 보았다. 검은 타이어 같은 등짝과 코만 물 위에 드러내고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엘리게이터 떼들을 먼발치에서 숨죽이고 보았다. 잠자듯 꼼짝 않다가도, 갑자기 먹이를 향해 물기둥을 일으키며 곤두박
질 쳐들어가는 악어들을 보며 그들의 저돌성에 악 소리 지를 정도로 놀랐다.
우리에게는 모두 악어지만, 엘리게이트(Alligator)와 크락커다일(Crocodile)두 종류로 크게 나뉜다. 엘리게이트는 주로 민물에, 크락커다
일은 바닷물에 산다고 한다.
미 남부에 서식하는 엘리게이트는 좀체 사람을 헤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일 강가나 아프리카의 크락커다일은 동족은 물론 사람도 잡아
먹을 정도로 포악하다. 몸길이가 5~6m 이상 가는 큰놈들은 턱뼈로 단숨에 물소의 허리뼈를 부러뜨릴 정도다. 그런데 악어는 이빨이 뽀
족해 먹이를 씹지 못하고 통째로 삼킨다. 그들은 뱃속에 항상 수 kg의 작은 돌맹이를 안고 다니며 삼킨 먹이를 소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포악한 악어들도 새끼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상냥하다. 새끼들이 딱딱한 껍질을 까고 나올 때 어미는 자기 턱을 이용하여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부화된 새끼들을 들어 올려 입 속의 주머니에 넣는다. 갓 태어난 새끼 악어는 길이가 불과 두 뼘 남짓, 무게도 100kg정도이기 때문에 밀림의 침략자들에게는 다시없는 좋은 사냥감이 되기 때문이다.
어미들이 새끼들을 물속으로 안전하게 도피시킬 때, 물속의 수컷들은 손뼉대신 걸걸한 괴성을 합창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악어들이 먹
이 앞에선 울지 않아도 새끼들을 위해서는 진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악어를 중생대부터 2억 3,000만 년간 지켜온 셈이다. 함께 태어 났던 공룡은 이미 멸종되고 없지만 악어는
아직까지 건재하다. 사실, 악어는 지난 6,500만 년 동안 털끝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 세상 동물 중에 가장 적응을 잘 하는 증거이다. 그런
데 최근 들어 악어들이 진짜 동곡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서너 해 동안, 플로리다 아포프카 호수의 악어 번식률을 조사하던 한 생태학자는 깜짝 놀랐다. 수놈 악어들의 생식 기능이 1/4로 줄
어든 것이다. 그는 곧 원인을 알아냈다. 10여 년 전 이 호수에 수천 갤런의 살충제 DDT가 유입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소위 ‘환경 호르몬’이 악어의 생식력 파괴의 주범임을 밝혀냈다.
‘환경 호르몬’ - 생식력 파괴물질 - 의 대표적인 것이 농약과 살충제다. 이 물질들이 생식력을 파괴하는 이유는 분자구조가 뜻밖에도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몸속에 들어가면 진짜 호르몬인 양 행세하며 내분비계를 교란한다. 유사 여성 호르몬이 악어의 남성 호르몬(태스토스테론)의 작용을 막으면서 생식력이 줄어든 것이다.
비단 악어뿐 아니라, 사람도 정자수가 크게 줄어 수태 능력이 감소되고 있다. 환경 호르몬은 21세기 인류가 풀어야 할 최대 난제 중의 하나다.
악어의 눈물은 파렴치한의 거짓 눈물이다. 배우의 눈물도 허구를 사실인 듯 표현하는 연기의 눈물에 불과하다. 오로지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자의 눈물만이 진실한 눈물이다. 지난 50년 간 ‘환경 호르몬’을 양산해, 2억 수천만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지구 생태계의 씨를 말리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과연 어떤 눈물을 흘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