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循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아름다운 북 캘리포니아(북 가주). 그곳의 겨울 새벽안개가 싱그러운 숲 한가운데 서 보면 뺨을 스치는 바람결
에서 문득 고향마을의 풋내가 난다. 샛길사이로 드러난 검은 흙, 그 흙 속에 뿌리내린 자연의 늠름한 식구들을 만난다. 잎은 져도 외양이
듬직한 떡갈나무, 시카모어나무, 호두나무, 등성이쪽 드문드문 검게 우거진 참(Oak)나무들, 그리고 홍포(紅袍)입은 추기경들같이 옹기
종기 둘러선 레드우드들도 먼발치에 보인다.
나무 그늘 아래서 시냇물이 흐른다. 지중해성 기후여서 봄부터 가을까지 해 볕이 내내 따갑고 대지가 마르다가 겨울에만 접어들면 비가
제법 풍성히 내린다. 올핸 좀 가물기는 하지만 연말에 뿌린 비로 산등성엔 초록빛이 제법 완연하고 시냇물도 불어 졸졸 소리 내며 흐른
다.
물은 뒷 켠 널찍한 호수로 모인다. 퐁당퐁당 오리 떼들의 자맥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흙과 물과 바람이 함께 어우러져 영겁을 순환하는
모습이 마음에 짙게 와 닿는다.
물의 순환 : 생각해보면 물은 신비롭게도 시공(時空)을 넘어 순환하는 존재다. 오늘 보는 이 시냇물도 태고 적부터 있었던 그 옛 물의 환
생(Recycle)이다. 물은, 비록 그 형태는 수증기나 얼음으로 수시로 변하지만, 그 본질은 수억 년이 지나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에너지 보전의 법칙”에 의해 생성된 본체가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절대량은 지구가 처음 생겼
을 때의 양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물은 수시로 떠나나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이런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지금 내가 마시는 물 한 모금이 옛 광개토왕이 건너던 흑룡강 물이거나, 이 천년 전 예수님이 목 추기시던 그
사마리아 우물물의 살아 돌아옴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물의 신비로움은 본질의 훼손 없이, 장소와 때를 넘나들며, 순간순간 다른 모습으
로 새롭게 태어나는데 있다. 바다나 강에서 증발하여 떠도는 구름이 되어 신선처럼 노니다가 비와 눈이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물의
영원한 순환현상(Hydrologic Cycle)이 오묘한 하늘의 섭리인 것이다.
흙의 순환 : 물처럼 흙, 또한 순환하는 생명의 모태이다. 물의 윤회처럼 땅에 발붙이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물과 함께 생명의 태어남과 스러짐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순환의 중심이자 에너지의 풀(Pool)이다.
비옥한 땅 1평에 약 10억의 미생물들이 살면서 유기물질을 섞이고 끊임없이 화학적, 생물학적 분해 작용을 일으켜 토양의 순환을 도와
준다. 이들의 도움으로 땅에 뿌리박은 나무들은 흙에서 자양분을 얻고 흙에 꽃과 열매를 되돌려 주면서 생의 순환을 계속한다. 그래서 떨
어지는 꽃잎과 낙엽은 새로 돋아날 씨앗의 비밀을 알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해 보인다. 흙에서 흙으로 이어지는 생의 순환도
영원히 변치 않는 자연의 숭고한 참 모습이다.
대기의 순환 :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끊임없이 순환한다. 그 중에서도 생물체에 없어서는 안 될 산소와 탄산가스의 순환은 자연의 주고
받음을 잘 드러낸다. 식물들은 잎의 공기구멍으로 탄산가스를 들이마시고 엽록소가 흡수한 햇볕을 이용해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어 낸
다.
동물들은 식물과 반대로 산소를 들이마시고 탄산가스를 내 버린다. 이 기묘한 주고받음의 조화로 인해 대기권 내의 총 산소량은 약 4억
년 전 총 대기 량의 21%를 치지한 이래 그 균형이 깨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단절 : 물과 흙과 공기- 이 귀한 자연의 생명소들은 서로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순환하는데 이 자연의 숨길을 단절시키는 것이 다
름 아닌 사람이다. 사람들은 추하게도 대지와 자연으로부터 빼앗으려고만 했지 되돌려줄 줄 모른다. 받기만하고 되돌려 주지 않으면 그
생명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 순환의 법칙이다. 들어오는 물길은 있어도 나누어 주러 나가는 물길은 없는 사해(死海)엔 아무 생명도 살지
못한다.
환경파괴는 다름 아니라, 인간이 자연 순환의 고리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연에 되 나누어 주지 않고 잘라버린 결과이다. 자연은 순환하
면서 다친 상처를 스스로 핥아 치유하는 자정능력을 갖는다. 그런데 인간의 끊임없는 자연착취로 극심한 환경공해가 일어나고 그 결과
인간은 자연에게서 자정능력을 영원히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흙과 물과 공기가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사람은 함
께 살아야 한다. 함께 살기 위해선 사람이 대지에 돌려주어 갚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받은 것을 자연에 되돌려 주지 않으면 기필코 함께
죽는다. 흙과 물과 대기와 사람사이에 뜨거운 애정의 나눔이 있어야 하고 순환의 피가 서로의 혈관을 타고 강물처럼, 형제처럼 흘러야 한
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모진 사람이 먼저 변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