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기본카테고리 | 2014-01-06 오전 9:36:00 | 조회수 : 8961 | 공개

소나무

 

 

“송림(松林)사이로 푸른 강물은 흐르고”란 노래를 누군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옛 학창시절, 겨울 설악을 오르다 문득 뒤돌아본 그 청청하던 솔밭과 나무들 사이로 검푸르게 출렁이던 바다. 그 솔과 물의 절묘한 조화를 취한 듯 바라보며 우리는 낮은 목소리로 이 애잔한 노래를 불렀었다.

소나무 사이로 흐르는 물도 아름답지만 옛 우리나라에선 소나무 사이로 드는 바람소리도 멋있다 하였다. 솔(松)은 나무(木)중에서도 벼슬(公)을 할 만한 품격을 지녔고, 인륜대사인 어머니의 태교(胎敎) 가운데도 일컬어질 만큼 사람의 본이 되었다. 이를테면, 옛 부터 귀한손(孫)의 해산을 기다리는 어머니는 고운 말만 듣고 {美言}, 선현의 명구를 외울 뿐 아니라 {講書}, 꼭 소나무에 드는 바람 소리를 들어라 {風入松},는 것 등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소나무하면 남산(南山)이었다. 일제 무렵 만해도 남산의 70%가 소나무로 뒤덮혔다 한다. 남산은 결코 좋은 토질이 아니어서 겨우 한 뼘만 파 들어가면 온통 화강암 바위땅인데도 신통하게 소나무가 울창했다는 것이다. 이규태선생의 ‘한국학 칼럼’에 보면 남산 소나무는 옛적엔 양절목(養節木)이라고도 불렀다는 것이다. 암반 속에 뿌리 내리려고 하도 안간힘을 써 밑동이 구불구불 휘었어도 끝내 살아남고, 혹심한 눈발과 풍상 속에서도 절의(節義)를 꺾지 않은 그 얼을 선비들이 보고 배운다는 뜻이었다.

옛 부터 한국 소나무는 유달리 척박한 땅인 풍화된 암질의 땅이나, 자갈땅 , 건조한 땅, 산성이 강한 땅, 뿌리내리기 어려운 비탈진 땅만 골라서 굳이 그곳에 집착하여 사는 참을성 많은, 우리 민족 같은 나무라고 얘기한다. 사실, 우리나라 소나무를 좋은 땅에 옮겨 심으면 오히려 시들시들 죽어 가는 것을 보면 옛 선비 같은 깐깐한 고집과 질그릇같이 투박한 민족성을 함께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찢기고 밟히고 헐벗으면서도 한곳에 꿋꿋이 뿌리박고 살아오며 우리 스스로의 고통과 고뇌를 그대로 투영하는 소나무를 오랫동안 남달리 끌어안고 사랑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에 비하면 미국소나무(Pine)는 서양 사람을 닮았는지 대개 솔잎이 무성하고, 크고 미끈하며 좌우 대칭형으로 곧게 뻗어 있다. 종류도 많아 미국산만 약 65종류나 되는데 곧고 수려한 소나무의 대표적인 것으로 판데로사 소나무(Ponderosa pine), 슈거 파인(Sugar pine), 제프리 파인(Jefferry pine), 라지폴 파인(Lodgepole pine)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소나무종은 키도 60m ~ 75m나 되고, 몸통지름도 3m정도로 굵어 재목감으로, 내장용으로, 펄프로, 또 가구재로 두루 유용하게 쓰인다.

미국에서는 소나무와 유사한 사촌종(種) 침엽수들도 많고 다양하다. 제일 가까운 것이 전나무(Fir)다. 그 중에서도 높은 산에 우뚝 솟아 있는 더글러스 전나무(Douglas Fir)들은 크기와 쓰임새가 판데로싸 소나무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레드 퍼나 흰 전나무 류 는 병충해나 가뭄에 현저히 약한 게 흠이다. 또 다른 종류로는 북구 산 크리스마스 나무로 쓰이는 가문비나무(Spruce),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노간주나무(Juniper), 동양화 한 폭처럼 멋들어지게 휘어진 몬트레이 싸이프러스(Cypress), 솔송나무(Hemlock), 향질은 연필재료로 쓰이는 씨다(Cedar) 삼목(衫木)등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귀한 침엽수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이제는 ‘남산위에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가 무색할 정도로 서울 남산의 소나무분포도가 70%에서 15%미만으로 떨어졌다한다. 오랫동안 무분별하게 빌딩과 도로를 만든다고 잘려나가거나, 또 아카시아같은 별 쓸모없는 외래 잡수(雜樹)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록키산맥과 시에라 산맥 쪽도 마찬가지여서 지난 6~7년새 레익타호 분지에서만도 전체 600만평 면적에 빽빽하던 침엽수림의 근 30%가 죽어가고 있다.

미국 침엽수들이 사라져가는 주된 요인도 사람들의 무자비한 벌채이다. 시에라의 경우를 보면 1849년 골드러쉬 직전만 해도 타호 삼림은 판데로싸같은 거목 칩엽수들로 가득차 있었다 한다. 그리고 금을 쫓아 수만 인파가 몰리고, 특히 1860년 타호근처, 버지니아 시티에서 세계 최대의 캄스락(Comstock Lode)은광이 발견되면서 곧고 큰 재목감을 광산버팀목, 철로부설 침목으로 엄청나게 많이 베어낸 것이다. 그 결과 판데로싸나 슈거파인 같은 우량종 거송들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자리를 메우고 들어온 것이 지금 타호삼림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질이 좀 떨어지는 전나무 류 이다. 사실 자연의 섭리대로 하면 가끔씩 산불이 일어나 열등 목들을 솎아주고 우량종인 거송들이 재생되어야 할 터인데 사람들은 억지로 이 자연 순환과정마저 막아온 것이다.

1900년경부터 타호가 부자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산불은 계속 억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타호의 침엽수들은 지난 6년간 한발로 면역성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웬만한 병충해에 견뎌내지 못하고 자꾸만 죽어가는 것이다.

내가 기억해낸 송림의 옛 노래처럼, 누군가 황순원의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기억하고 있을까? 6.25전쟁이라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절망과 좌절 가운데 방황하던 젊은이들의 아픔을 그린 문제작이었다. 그 싱싱한 소나무 같은 젊은이들이 전쟁 때문에 삶의 현장을 벌채 당하고 결국은 비탈의 위기에 설 수밖에 없었던 그 모습을, 오늘 죽어가는 소나무들의 위기를 보며 애잔히 떠올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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