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와 비둘기

기본카테고리 | 2013-12-13 오전 10:37:13 | 조회수 : 1708 | 공개

공해와 비둘기

 

화창한 토요일이면 오전 근무가 무섭게 삼삼오오 회사 문을 박차듯 나와 광화문까지 걸었다. 주말의 거리는 해외공사기술부 업무로 시달리던 우리들에게 화사한 피난처였다. 기분이 내키면 우리는 광화문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시청 앞까지 돌아갔다. 70년대 시청 앞엔 시원한 분수가 물보라를 하늘로 내뿜었고 그 위로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맵씨 있게 날았다. 그 당시 분수를 볼 수 있는 곳은 그곳 밖에 없기에 우리는 비둘기들의 유연한 활공을 올려다보며 서울의 찬가를 휘파람 불곤 했다.

벌써 30여년이 지난 젊음의 직장시절 추억이다. 그때 비하면 서울은 엄청나게 변했다. 서울시 연감을 보면 60년대에서 80년대 말에 이르는 30년간 서울은 매 2~5년마다 1백만 명씩 인구가 증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90년에 1천만 명을 돌파했고 94년 말에는 1천72만 명으로 통계되어 있다. 실제로 계산해 보면 56년부터 90년까지 35년 동안 근 천만 명의 인구가 증가한 셈이다. 동서고금의 어디에서도 유래가 없었던 급격한 집중적인 도시화의 물결이었다.

늘어난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8.15광복당시 1천대도 안됐던 자동차가 65년에는 1만3천대, 80년대에 25만대, 92년에는 1백만 대를 넘어섰다. 2004년에 승용차만 272만대가 등록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서 서울시청 주변의 비둘기 허파에서 많은 량의 납(Lead)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보도이다.

납은 건강에 극히 유해한 4가지 중금속(카드뮴, 수은, 니켈)중의 하나다. 납중독에 걸리면 적혈구 생산이 중단돼 뇌,콩팥,간등의 기능에 장애를 주는데 특히 어린아이들과 임산부에게 해롭다. 어린아이들은 아무리 적은 량이라도 오랫동안 납에 노출되면 뇌 손상아와 지진아가 될 수 있다는 임상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 때문에 혹시 납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조기발견을 위해 일년에 한번쯤 혈액검사를 권하고 있다.

납은 물론 납 제련공장과 강철공장, 건전지공장등이 주 오염원이다. 수 년전, 부산의 납 제련업소에서 한 근로자가 납중독으로 ‘뇌석회화 병변’환자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병은 납 성분이 혈액 속에 들어가 뇌세포 중 미토콘드리아조직의 칼슘흡수를 방해, 세포질

내에 쌓이면서 뇌세포가 하얗게 변하는 증상의 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농도 납중독 사건은 요즈음은 거의 드문 일이고, 근래에 와서 납의 주요 오염원이 자동차 매연과 페인트로 나타나고 있다.

1977년 전까지는 페인트의 질을 높이기 위해 납을 첨가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보수 안된 옛날건물에는 납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 변두리 단독주택지 아이들 납중독의 제일 큰 원인이 낡은 집 주변에서 놀면서 벗겨진 페인트 조각과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휘발유 1ℓ에 0.3g정도 납을 가하면 옥탄가가 10배나 증가함으로 수십 년 간 휘발유에 납을 썩어 사용해왔다. 미국에서는 1977년 이후 해로운 납이 섞인 유류가 판매 금지되고 무연(無鉛)휘발유(Unleaded gasoline)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적으로 볼 땐 납 함유 휘발유로 인한 납 오염의 여파가 여전히 심각하다. 매년 대기 중에 배출되는 납은 미국에서만 4천 톤이나 돼 납 함유 휘발유사용이 계속되는 개발도상국들까지 합하면 전 세계 배출량은 엄청나다.

김광섭시인은 인간들의 자연 파괴로 갈 곳을 잃어가는 비둘기의 설움을 애절하게 한편의시로 그렸다. 비둘기들의 허파에 고인 상당량의 납 성분은 서울이 포화상태의 인구와 300만대에 육박하는 자동차를 굴리는 거대한 공룡같은 도시로 커가면서 뿜어댄 공해와 자동차 매연이 그 원인이다. 이러한 것들이 인간들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비둘기들의 가슴에 금을 긋고 만 것이다. 사람들의 위안이고 휴식이며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이제는 도시 오염에 쫓겨, 집도 잃고, 절도 잃어 갈 곳 없는 새가 되었다. 이대로 가면 쫓기는 신세에서 영영 시들어가는 신세로 변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만 같다.

인간에 의해 파괴당하는 생태계의 끝에는 결국 사람이 서 있다. 짐승과 새가 못살 도시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예전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과 같이 어울리고, 평화를 즐기던’비둘기들, 그들은 오늘은 어디서, 인간들에 대한 배신감을 삭이며 시린 입을 닦고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남아있는 도심지 비둘기들 옆에 휘파람소리 끊어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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