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씨랜드, 인천호프집, 그리고 규제완화(20030329 경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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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09 오후 2: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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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까마득한 기억 뒷편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지난 94년 10월 21일의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95년 6월 29일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고속성장 뒤에 가려진 우리의 부실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언젠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재난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좋은 사례였다. 사고 직후 정부에서는 각종 건설공사의 부실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서 감리제도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규를 개정하고 주요 구조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다가 1997년 말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위기를 맞이하면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하에 다양한 분야의 정부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 왔다. 불필요하거나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들이 정부 각 부서별로 몇 건 이상씩 인위적으로 할당되어 폐지되고 있는데, 그 속에는 건축물 감리대상의 축소와 건축관련 각종 규제의 철폐 내지는 완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1999년 여름, 경기도 화성의 씨랜드 화재로 인하여 많은 유치원생들이 숨졌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당시 불법적인 건물 인허가 비리로 인하여 관련 업자와 화성군의 많은 공무원들이 구속되었으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인천 호프집 화재로 인하여 또다시 많은 청소년들이 희생되었고, 공무원과 업자간의 전통적인 유착 비리가 다시금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관련법의 미비나 관련공무원의 자질을 질타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에 맞추어 관계공무원들을 전원 교체하고 관련법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국가정책이 얼마나 즉흥적이고 단기적으로 수립되고 있으며, 문제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처방하기보다는 대증적인 요법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전문가적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독립적이고 개별화된 사안이라기보다는 제도나 법률, 기업의 윤리, 시민들의 의식수준 등이 총체적으로 관련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처리되어져 왔고, 그 결과 유사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듯이 보인다.
공공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의식수준이 높은 선진국의 경우와 달리 어떻게든 돈만 벌고 보자는 천민 자본주의 의식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련의 규제완화 조치는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신장시킴으로써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가능한 한 규제는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반드시 지키도록 되어있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무시되는 사회라면, 그리고 그것을 감독하고 제재해야 할 공무원들이 오히려 그것을 방관하고 도와주기까지 하는 사회라면 더 이상의 규제완화나 자율성은 무의미한 것이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일련의 규제개혁 조치는 규제완화라는 또다른 규제의 틀 속으로 공공부문을 묶어버림으로써 공공성을 확보하기 최소한의 감시기능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다.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거나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한 정책, 그리고 지방자치권의 신장을 위한 각종 법제 등 정작 완화하거나 개혁되어야 할 부문은 여전히 많은 규제가 행해지고 있으며 공익을 위해 규제되어야 할 부문이 오히려 완화됨으로써 앞서 살펴보았듯이 앞으로 더 큰 재난을 발생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신장시키고 이를 통하여 국가경쟁력을 진정으로 강화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권차원의 홍보나 실적 위주의 규제개혁 차원에서 벗어나, 그리고 단기적이고 대증적인 요법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규제개혁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