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삶터] 암사동 선사 주거지

서울의 삶터 | 2011-12-29 오후 6:29:14 | 조회수 : 3379 | 공개

서울이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정해진지도 육백년이 넘었다. 몇해전 육백주년 때에는 기념사업이 많이 벌어졌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그전엔 아무도 살지 않다가 꼭 육백년 전에 갑자기 생겨난 도시인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려시대에도 서울은 南京이라 불리우는 어엿한 도시였었고, 그 이전 삼국시대에는 이곳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것이 곧 한반도의 패권을 잡는 것이기도 하여 몇 세기에 걸쳐 이곳의 주인이 백제에서 고구려로, 또 신라로 바뀌는 역사를 겪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삼국시대보다도 훨씬 전에 벌써 서울 땅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낀 곳이었다. 우리 조상들도 고조선 왕국을 건국하기 훨씬 전부터 「아리수」라고 불리우던 한강 기슭 여러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 중의 하나가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움집」이라 불리는 선사주거 유적(先史住居 遺跡)이다. 여기 가보면 약 5,6000년전 신석기 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지어 살았던 움집 아홉채를 考證을 거쳐 복원해 놓았다. 원래는 여기서 모두 스물여덟채의 움집터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이 한반도에서 가장 큰 신석기시대의 거주지라고 한다.

이 움집을 겉에서 보면 원뿔 모양의 초가지붕이 땅에 바짝 붙어있고, 한쪽으로 조그만 입구가 하나 나있다. 어릴 때 흑백 TV에서 보던 서부활극에 나오는 미국 인디안 천막과 흡사하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우리 조상의 집을 보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집을 연상하게 되니 기분이 씁쓰레하다. 자세히 다가가서 입구 안쪽을 들여다보면 내부 바닥이 밑으로 내려 앉아있는데 워낙 안이 어두워 그 이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발길을 옮겨 이 유적지 바로 옆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 본다. 속에는 움집터 몇개를 발굴 당시 그대로 상태로 복원해 놓았다. 과연 땅이 움푹 파여 있고, 바닥에는 구멍이 몇개씩 뚫어져 있다. 바로 이 구멍에 굵은 나무기둥을 세워 고정시키고 가는 나뭇가지로 서까래를 엮어 달아 그 위에 지푸라기 지붕을 얹은 것이다. 이보다 조금 큰 구멍들도 있는데 여기에는 음식물을 보관했다 한다. 당시에는 이미 흙으로 만든 그릇들이 있었는데도 굳이 이런 식으로 음식물을 저장했었던 것은 5000년전 우리 조상들도 땅속에 묻어둔 음식물이 더욱 신선하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김장독 파묻기의 지혜는 반만년을 내려온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인 것이다.

움집 바닥 한가운데에는 조그만 돌을 원형으로 배치해 놓았다. 이것은 화로의 흔적이라고 한다. 여기 불을 피워 움집 내부를 덥히고, 이 불은 또한 창문이 없어 컴컴한 내부를 비쳐주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움집은 대개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고 그 크기는 대략 직경 6m 정도이니 어림잡아 9평이 된다. 한 가족이 몇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는 수명도 짧았고 의료기술이 부족해 갓난아기들도 많이 살아남지 못했을 터이니 기껏해야 대여섯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아홉평의 공간은 크지는 않아도 넉넉하고 아늑한 공간이었을 법하다. 화롯불 주위에 둘러앉아 낮에 주워온 야생 옥수수라도 구우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나 둘 서로의 팔과 다리를 베고 잠이 드는 정겨운 모습이 떠오른다.

이렇듯 화롯불의 따스함은 가정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네 가정의 중심에는 텔리비젼이 있다.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는 선사시대 조상들의 화롯불과는 다름 없지만, 텔리비젼을 향하여 앉은 식구들이 거기에 멍한 시선을 주고 있을뿐 가족끼리 나누는 정은 5000년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닥에 누운 우리 조상 원시인 家長의 눈에 움집 지붕이 들어온다. 흔들리는 화롯불빛을 받아 지붕 밑 서까래 그림자도 따라 흔들린다. 가장은 누구네 움집보다도 튼튼히 이어진 서까래가 자랑스럽다. 『지난 봄 아내와 단둘이서 힘들여 새로 얹은 지붕인데 두 보름달 전 폭풍우가 몰아쳤을 때 끄덕없이 견디어 냈었지 않은가. 이웃의 다른 움집 지붕들은 다 날라가 버렸어도 말이다.』 흐뭇한 미소를 띤 채 가장은 잠이 든다.

몸집이 저희 아버지만큼이나 커져버린 첫째놈이 잠결에 몸부림을 치다 아내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그 바람에 잠이 깬 아내는 일어나 앉아 움집 내부를 둘러본다. 서로 얽힌채 새우잠을 자고 있는 식구들을 보며 아내는 자기네의 움집이 이제는 비좁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좀 더 큰 움집을 새로 지어야 할까보다. 힘은 좀 들겠지만 지난번에도 훌륭히 해냈으니 이번에도 잘 할거야. 더구나 첫째놈도 이제는 한 몫 할 것 아닌가 말이다. 지금 이 움집은 곳간으로 쓰던지, 아니면 사슴 뒷다리 두개쯤 받고 이웃집에게 줘버리면 되지....』 우리 원시인 조상의 재산증식(?)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 아닐까.

이렇듯 아주 옛날에는 각자가 살 집을 제 손으로 지었다. 주거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졌던 셈이다. 그런 중에도 눈썰미 좋고 손맵씨 특별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고, 다른 사람들은 이들에게 대가를 치루고 집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여보게, 자네 오늘 사냥나가지 말고, 나 집 한채 지어주게나. 내 오늘 잡은 멧돼지는 통째로 자네에게 줌세』

이런 식으로 해서 집의 주문생산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직도 집짓는 이는 전문가가 아니다. 매일의 생활은 사냥이나 낚시로 살아가되 가끔씩 남의 부탁을 받고 집을 지어주는 아마츄어이다. 집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바로 옆에 같이 사는 사람들의 집이니 내 집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내 집 짓듯이 지으면 된다.

그로부터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국가가 생겨나고 인구도 늘고 도시가 형성된다. 움집은 땅 위로 올라와 초가집이 되었다가는 이내 기와집으로 발전한다. 집의 크기도 커지고 모양은 점점 더 복잡해져서 어느덧 내가 내 집을 손수 짓기는 어려워진다. 동네의 아마츄어는 이제 목수(木手)라고 불리우는 전문인이 된다. 집 주인은 목수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한다.『우리는 식솔이 많질 않으니 네칸 짜리 안채에 세칸짜리 사랑채면 족한데 단지 내가 육대조 장손이니 사당만큼은 크게 지어주게나.』『아버님이 혼자 되셨으니 안방은 장자인 우리 부부가 쓸 것이고 아버님은 사랑채에서 기거하실 것이니 사랑채는 온돌방과 사랑마루를 놓게나.』 이렇듯 「시공」은 목수의 몫이지만 「설계」만큼은 집 주인이 한다. 주택은 주문생산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한강변에 움집이 들어선지 5000년이 지난 오늘, 한강변에는 엄청난 크기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땅을 파는 대신 땅 위로 수십미터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솟아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 집을 손수 짓지 않는다. 그렇다고 집을 목수에게 주문하여 짓지도 않는다. 그대신 크고 작은 집장수들이 집 또는 아파트를 여러 채 지어놓으면 그 중의 하나를 골라 돈을 주고 구입한 후 거기 들어가 산다. 어떻게 생기고 얼마나 큰 집이 우리 가족에게 알맞겠다 하는 희망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 단지 25평형, 45평형 등 업자가 만들어 놓은 기준과 내 경제능력에 따라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제는 설계도 시공도 남의 몫이 된 것이다. 이른바 주택의 상품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집은 상품치고는 아주 비싼 상품이다. 잘못 샀다고 되물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상품이다. 가장이랍시고 소매 걷어부치고 나서서 뜯어 고칠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현대인은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미지출처: 암사동선사주거지 홈페이지
--------------------------------------------------------------------------------------------------------------------------------
'서울의 삶터'는 제가 지난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서울 상황과는 달라진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그 씨리즈를 포스팅 합니다.



댓글 : 1
자네   2012-01-03 10:34 [ Modify ]  [ Delete ]
집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의 집은 5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현실과의 gap은 점점 커져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