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삶터] 탑골 공원과 마로니에 공원

서울의 삶터 | 2012-01-03 오후 11:18:40 | 조회수 : 4919 | 공개

서울에는 유명한 공원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이전에 파고다공원으로 불렸던 탑골공원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 서울문리대 교정이었던 마로니에 공원이다. 이 두 공원에는 빼어난 자연경관이나 멋진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탑골공원에는 노인이 모이고, 마로니에공원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나름대로 독특한 공원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공원의 성격은 거기 모이는 사람들에 의해 정해지고, 또 그로 인해 유명해진 것이다.

우리는 공원하면 으레 관상수 등의 자연요소와 조각품이나 분수 등의 인공조형물이 잘 갖추어져 있어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을 생각하게 된다. 잠실의 올림픽공원이 그 전형적인 예가 된다. 그런데 탑골공원이나 마로니에공원은 그 사정이 자뭇 다르다. 이 두 공원의 규모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에 지나지 않아서 여기에 1, 2 백명의 사람만 모여들어도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하게 된다. 그러니 거기 가꾸어놓은 자연이나 공원 시설물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어진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눈에 띄는 것은 화단의 예쁜 꽃이나 조각작품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 두 공원은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사람 구경만큼 재미있는 구경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나 영화가 그토록 잘 팔리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고정된 줄거리를 좇아가야만 하는데 비해, 공원에서의 사람구경은 내 마음대로 주인공을 택할 수도 있고 신통치 않은 경우 다른 주인공의 다른 이야기로 장면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있다.

더군다나 주인공은 ‘나와 같은 노인네’여서 그가 저기 벤치에 하루종일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어도 그의 일생을, 그의 기쁨과 슬픔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집의 며느리와는 달리, 내 주인공의 삶과 나의 삶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나’ 자신도 다른 ‘관람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내가 다른 이를 구경하듯이 다른 사람도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로니에공원 벤치에서 군것질을 하고있는 아가씨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기 돌계단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고 있는 아이는 아까부터 계속 내 모자에 흘끔흘끔 눈길을 주고 있네. 요즘 ‘우리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인 캡을 쓰고 나오길 잘했어. 엄마는 여자애가 볼썽 사납게 이런 모자를 쓴다고 잔소리를 했지만...”

자연을 즐기는 다른 공원과는 달리 탑골공원과 마로니에공원은 서로 부대끼는 혼잡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끼리 서로 보고 보이면서 나름대로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터’를 제공해 준다.

공원의 물리적 요소들은 배경(背景)이 되어 뒷전으로 물러나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나 그들의 행위가 전경(前景)이 되어 서로의 눈에 띄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두 공원은 거기에 모이는 사람들의 동질집단성(노인과 젊은이)으로 인해 서울의 명소가 되고 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탑골공원을 노인의 공원으로, 또 마로니에공원을 젊은이의 공원으로 만들고 있을까.

탑골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다. 이곳에는 원래 원각사(圓覺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1897년 영국인에 의해 공원으로 개조되어 궁실공원으로 사용되다가 1913년 일반에게 공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이곳에 남아 있으며, 공원 복판에는 우리 전통건축양식의 팔각정이 있다. 더욱이 이 공원은 1919년 삼일독립선언문을 최초로 낭독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생활하는 노인들을 불러모으는 구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더하여, 독립지사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을 살펴보면 더욱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이 동상은 탑골공원의 중앙에 위치하여 남쪽을 향해 서있다. 원래는 서울의 안산(案山 - 풍수지리 용어로서, 도읍과 집터 혹은 묏자리 맞은 편에 있는 산을 가리킴)인 남산을 바라보며 조국의 독립을 기리는 의암선생의 모습을 나타내었을 터이다. 그런데 광복을 맞이하고도 5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의 의암선생은 탑골공원 남쪽 하늘을 꽉 메워 남산을 완전히 가려버린 「시사영어」사 건물을 처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본어에서 영어로 바뀌었을 뿐 그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는 당혹스런 의문을 가진채 말이다.

탑골공원에 모여드는 노인들은 일본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젊은 시절에 6․25를 겪고 장년시절에 미국의 원조로 허기를 채우던 세대이다. 어려서는 일본말을 써야 했고, 자라난 후에는 영어 한두마디는 해야했던 그들은 의암선생의 당혹감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리라.
마로니에공원 역시 대학 캠퍼스가 젊은이들의 장소로 되었다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영어는 필수과목이요 일본어는 선택과목인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에 맞는 서구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공원 안에 마로니에라는 서양 나무가 있어 그 이름을 따서 ‘마로니에 공원’으로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것, 서양 것을 따지기 이전에도 이 두 공원의 공간배치를 보아도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탑골공원에는 공원을 둘러싼 울타리가 있고 그 중간중간에 대문이 있어 그리로 공원출입을 하게 된다. 담장과 대문간으로 이루어진 전통 사대부집과 같은 방식이다.

이에 비해 마로니에공원에는 울타리가 없다. 원래 서울 문리대 시절부터 있었던 현 문예진흥원 건물과 새로 지어진 문예회관, 미술회관이 이루는 ㄷ자 모양의 가운데가 바로 마로니에공원이 된다.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건물 사이로 놓여진 좁은 골목길과 공원 서쪽의 대학로 어디에서부터든 이 곳으로 들어올 수가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탑골공원이 노인들의 전유물인 사랑방을 연상케 한다면, 담장 없는 마로니에공원은 떠꺼머리 총각, 댕기 땋은 처녀가 자유분방하게 쏘다니는 저자거리를 연상케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마로니에공원 주변에서는 군것질감을 파는 행상들이 많이 몰려있는 반면, 탑골공원에는 전혀 행상이 눈에 띄지 않는다. 또 마로니에공원에서는 항상 소규모의 즉흥공연이 벌어지며 한쪽 구석에는 점쟁이들과 초상화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또한 저자거리의 약장수, 풍물패와 다를 바 없다.

서구화된 이름의 마로니에공원도 우리 고유의 정서를 떨쳐버리기는 커녕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현대화시킨 것을 보면, 6백년의 삶을 살아온 우리 서울의 삶터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인가 보다.
 
*이미지출처: 사진1- 종로구청 홈페이지, 사진2-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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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터'는 제가 지난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서울 상황과는 달라진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그 씨리즈를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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