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제 시론(20140716)

기본카테고리 | 2014-12-03 오후 3:40:36 | 조회수 : 1079 | 공개

시스템 근본의 이해가 개선의 시발점이다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를 가져온 폭설로 시작된 2014년도 어느덧 반이 지나갔다. 체육관 붕괴에 이어 세월호 침몰 등 연이은 대형 사고에 대해 국민들의 공분을 표출했고 대통령 또한 '책임자 처벌'을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들의 심기를 달래고 있다. 건축설계를 담당하는 건축사로서 사고로 인한 희생자들 생각으로 무거운 돌덩어리 하나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사고 이후 관련 대책회의가 여기저기서 개최됐고 필자 또한 몇몇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회의참석자들의 사고에 대한 생각은 심정적으로는 대부분 비슷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전문분야에 따라 차이가 극명했고 책임과 관련된 부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 규명, 사고 재발을 억제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 등에 있어 이러한 이성적 판단의 차이는 현재 운영 중인 건축 및 건설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이해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이의 해소를 위해 시스템의 근본적인 내용 중 일부를 검토해 본다.
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계약관계'의 확인이다. 설계를 포함한 공사 참여자가 각각 발주자와 어떤 개념 하에서 계약을 맺게 되는가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건설관리 분야 김예상 교수는 "발주자와 설계자의 계약은 '신용을 바탕으로 한 관계(fiduciary relationship)'로 묶어지는 반면 발주자와 시공자의 계약관계는 '배타적인 관계(arm's-length relationship)'로 볼 수 있다."고 그의 저서에서 설명하고 있다. 발주자와 설계자간의 계약은 신의와 신용을 바탕으로 한 협력관계에 있으므로 설계자는 발주자로부터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발주자와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며, 발주자는 설계 성과물과 설계자의 조언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 할 것 없이 설계자의 선정과 가격 결정이 대부분 협상에 의해 이루어지는 관례가 바로 이러한 계약 개념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반해 시공자와의 총액계약에서는 입찰자간 경쟁 입찰(competitive bidding)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데 그 과정이 특히 가격경쟁에 의존하고 있음은 마치 물품을 구매할 때와 같이 협력적인 관계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시스템의 전제 하나가 설계자와 감리자의 권한과 책임범위다. 건설공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설계․시공 분리발주 방식에서 설계자와 시공자간에는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맺지 않는다. 감리자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서로에 대한 역할과 책임이 있지만 제한 역시 따르게 된다. 이것은 건설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양자 간에 의견충돌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의 해결은 각자가 계약을 맺고 있는 발주자의 몫임을 의미한다. 또한 계약당사자의 책임과 의무를 중요시하는 오늘날의 계약환경에서 클레임이나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권한행사는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설계자와 시공자 간의 역할제한의 대표적인 예로 대부분의 계약조건이나 관례로부터 설계자는 시공자를 직접 감독(supervise)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김예상 교수는 "설계자는 시공자가 설계대로 공사를 하고 있는지 확인(assure)하고 시공자의 품질관리 상태를 점검(reviewing quality control)할 수는 있지만, 시공자의 시공방법이나 절차 등에 대해 지시 또는 관여하는 것, 즉 '감독권한'은 가질 수 없다. 이는 '감독'이라는 행위를 수행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까지도 수용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설계자의 감독권한 배제 규정은 추후 시공 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설계자가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우려한 결과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개념은 미국건축사협회(AIA)의 표준계약문서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는데, 1961년 전까지만 해도 설계자의 업무에는 공사에 대한 '보편적인 감독업무(general supervision)'가 포함되어있었지만, 제3자(시공자)에 대한 책임(liability)문제가 점차 확대됨에 따라 '감독' 대신 '관측(observe)'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설계자 측의 직원이 상주하던 것에서 '정기적인 또는 시공사와 협의된 일정에 따라 방문'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문제는 국내 현실이다. 건축법 상 공사감리자를 '자기 책임 하에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를 확인하고, 품질관리·공사관리·안전관리 등에 대하여 지도·감독하는 자'로 규정하여 감독의 역할을 명문화한 듯하지만, 공사감리의 구체 행위로는 '건축주에게 보고', '공사시공자에게 요청', '허가권자에게 보고' 등 시공자의 업무에 직접적인 지시를 할 수 있는 내용은 전혀 없다. 이런 모호성은 설계자가 감리를 하는 경우 그 책임한계의 규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모호성은 재검토를 통해 신속히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건축 및 건설시스템의 근본에 대한 이해가 최근 발생한 대형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와 사고 재발을 억제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의 시발점이며 이를 근거로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해소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정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첨부파일
건설경제(시론)-140716.pdf (122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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