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업단지 태동기(종결)

기본카테고리 | 2015-09-04 오전 9:37:28 | 조회수 : 1064 | 공개

개성공업단지 태동기(종결)

 

황해남도 개성시 봉동 일원 3.3㎢(100만평) 개성공업단지(이후 개성공단)에 대한 토지임차

료 협상은 2003년 11월에 착수 하였으나 우리정부가 제시한 금액과 북측이 요구하는 금액

사이의 차이가 커 2004년4월까지 약 5개월간 협상이 진행되었다.

 

양측은 2004년 4월13일 임차토지와 지장물 및 기타물건에 대한 보상금으로 미화 1600만

달러를 지불키로 하되, 이중 400만 달러는 개성공단 출입국시설인 북측의 출입국사무소

(CIQ) 건축에 사용하기로 합의하였다.

 

개성공단의 투자환경을 위해 2003년 8월20일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분쟁해결

에 관한 4대 남북경협합의서가 남북 간에 발효되었다. 통행ㆍ통신ㆍ통관ㆍ검역에 관한 합의

및 국회동의를 받아 북측의 초청장 없이 통행증으로 통행이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개성공단의 기반시설설치에 필요한 비용 1573억 원을 남북협력기금에서 무상으로

지원받아 3.3㎡당 분양가를 14만9천 원으로 하는 등 양호한 투자여건을 마련하였다. 공단

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개성공단 투자기업이 북측에 수용, 송금제한, 당국 간 합의파기 등

돌발적인 조치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시 손실을 보전하여주는 제도도 마련하였다.

 

개성공단 투자환경의 사전검증과 조기 활성화를 위하여 1단계 준공 이전인 2004년 6월30

일 시범단지 9만2562㎡ 를 준공하여 2005년 말까지 봉재ㆍ신발ㆍ전자부품 등 15개 기업

이 입주하여 북측 근로자 약 3천명이 근무하게 되었다.

 

2004년 12월 15일 입주기업 최초로 리빙아트가 북측 근로자들이 만든 주방용품을 남쪽에

판매함으로써 개성공단의 첫 결실을 거두었다. 또한 2005년 5월26일에는 의류제조업체

(주)신원이 남측 모델들의 패션쇼를 개성공단 현지에서 개최하는 등 서서히 시장경제의 틀

을 갖추어 나갔다.

 

2005년 8월1일부터 개성공단 생산시설용지 1차분 16만5290㎡를 분양 공고하였다. 분양방

법은 신청자격조건에 부합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추첨 또는 심사방식으로 분양하되, 외국기

업 또는 선도 대기업 유치단지는 우량기업유치 및 공단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심사방식을

적용하였다.

 

이어서 2006년 2차 분양을 추진하였으나 북핵사태, 미사일 발사 등에 따른 대북관계의 악

화로 분양에 착수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2007년 들어 6자회담이 열리면서 분위기가 나

아지자 잔여물량 175만4천㎡ 에 대한 2차 분양을 준비해 나갔다.

 

2007년 3월7일부터 5월29일까지 서울을 비롯한 6대 광역시와 인천남동공단, 안산시화공단

등에서 12회에 걸친 설명회를 개최하고, 특히 외국기업 위해 주한 EU상공회의소와 협의하

여 별도의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다각적인 홍보활동을 하였다.

 

2007년 6월25일부터 시작된 2차 분양은 공급물량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2.3대 1 이라는 높

은 경쟁률을 기록하여 182개 업체가 입주기업으로 선정되었고, 추가로 112개 기업의 입주

가 완료되어 4만여 명의 북측근로자가 근무하게 되었다. 더욱 활기가 붙어서 아파트형 공장

입주기업을 포함하여 400여 개 입주기업에 북측근로자 수는 약 10만 명에 다 달았다.

 

개성공단 편익식설 부족으로 인한 입주기업 해소를 위해 정부요청으로 호텔사업 등 지원시

설사업을 추진하고, 지원시설사업은 사업위험 완화와 전문성을 고려하여 개발사업자(토지공

사ㆍ현대아산)와 민간사업자가 공동으로 출자하여 국내에 한누리(주)를 설립하였다.

 

국내에 설립된 한누리(주)가 개성현지법인인 한누리호텔(주)과 한누리에너지(주)를 설립하고

호텔사업과 에너지사업(주유소ㆍ충전소)을 진행하였다.

 

북측과 협의하여 개성공단 관련 각종 법, 규정, 준칙 등이 제정이 되어 법적ㆍ제도적 기반

을 구축하였고 사업시행자, 개성공단지원사업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등 사업추진체계

가 정비됨에 따라 향후 개성공단 2단계, 3단계 등 남북경협이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

다.

 

2008년 새 정부 출범 후에는 북핵문제의 심화, 미사일 발사, 현대아산 직원의 억류 등으로

남북관계가 심하게 경색되면서 북측은 돌연 2009년 4월21일 개성접촉을 통해 ① 북측 노

동자 임금인상 ② 토지사용료 유예기간을 10년에서 6년으로 재조정 ③ 토지 임차료 재협의

및 북측근로자 숙소문제 해결 등을 요구해 왔다.

 

북측의 요구사항은 기존의 합의를 깨는 것으로 남측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항들 이었다.

북측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경제성을 상실하여 개성공단의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이 후 교착상태에 빠진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협의를 가진 끝에 현대아

산 직원의 억류가 풀리고 2009년 9월1일 개성공단 통행이 정상화되는 등 다시 대화의 물

꼬가 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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