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500원으로 성공한 지혜로운 협상

기본카테고리 | 2016-10-07 오전 8:52:42 | 조회수 : 1556 | 공개

지폐 500원으로 성공한 지혜로운 협상

인도양에 위치한 아름다운 해변과 풍광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의 윌리엄 황태자가 결혼 후 신혼여행지로 갔던 곳이며 살아 있는 동안 꼭 가봐야 할
나라로 BBC과 CNN을 통하여 소개 되어 온 세이셸 공화국(Republic of Seychelles).
인도양의 서부에 위치한 수십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로 인도의 남서부 280km 지점에
있으며 1976년 6월 29일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영연방 국가이다. 자국기인 에어 세이셸
(Air Seychelles)도 유럽과 중동국가로 운항중이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유엔에 가입된 국
가이다. 주 섬 인 마헤섬(Mahe)은 주위가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으나 수도인 빅토리아시(市)
의 빅토리아 항은 수심 18m 이상이라서 물류 항으로 손색이 없다.
동남아시아에 해상 물류수송 환적 항으로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는 싱가폴(Singapore) 항이
있다면 전 세계의 중심 해상물류 환적 항으로 세이셸의 빅토리아 항이 야심차게 준비 중에
있다. 5대양을 누비며 해상 무역 물류의 운송수단은 단연히 선박들이다.
인도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세이셸에서는 활기를 찾으며 해상 물류 수송과 관련 조선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아무런 여건이 되지 않던 무(無)에서 세계적인 선박 건조 국
으로 인정받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재도전의 기회의 발판으로 자극을 받아 보아야겠다.
1960년 당시 울산 미포, 염포에는 당시 모래벌판 이었다. 1970년 현대그룹의 주력회사인
현대건설은 중동 건설 붐으로 특히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1972년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창조와 개척 정신으로 조선 사업을 시작하여 세
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회사로 성장, 한국을 세계1위의 조선대국이 되는데
크게 공헌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 조선소를 건설하고 조선사업을 통해 축적된 기술로 해
양, 플랜트, 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건설장비 사업에도 진출하여 세계적인 종합중공업
회사로 성장,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여 왔다. 그 원천인 성장 촉발의 과정을 거슬러 살펴보
면 비즈니스에서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고)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이 중동에서의
시멘트 프랜트 등 각종 프랜트 시공경험에 힘입어 조선사업부를 신설한다. 그 것이 오늘날
의 현대중공업의 전신인 것이다. 막상 조직은 만들었으나 조선소 부지조성과 만들어야 할
선박 수주가 필요한 것이다. 우선 외자를 활용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가까운 일본에 가
서 외자 요청을 하였다. 한 마디로 선박 건조 경험이 전무 하다는 사유로 문전박대를 당했
다.
외자 조달을 위하여 여러 국가를 생각하다가 가장 우방국인 미국에 자금 요청을 하였다. 이
또한 상담조차 거절하는 수모를 겪으며 성과 없이 돌아오게 된다. 중세부터 세계의 바다를
선박으로 지배한 영국에 외자요청을 하기로 하고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Barclays Bank)에
외자조달 요청을 하게 되었다.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은 영국 해외투자 및 수출보험 기구
인 ECGD(Export Credit Guarantee Department) 에 승인만 받아오면 상담에 응하겠다고
하였다. 절반정도 희망의 기회는 잡았다. (고)정주영 회장은 어떻게 상대를 설득 할까 고민
하다가 1966년 도에 발행 하여 1970년에 사용된 500원 권 지폐를 생각하게 되었다. 500
원 권 지폐 뒷면을 보여주며 1590년 한국의 거북선을 설명하게 되었다. 한국은 오래 전 조
상들이 거북선이라는 철갑선을 건조하는 조선기술이 발달하였고 그 기술이 후대인 지금까지
도 한국에는 남아 있으니 자신 있다고 설득하며 협상 하였다. 결국 ECGD 는 영국 해군성
에 1590년에 한국의 거북 철갑선의 존재를 조회하였고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제는 한국에
조선소 건설에 외화조달을 승인하고 한국의 조선기술을 신뢰하게 되었다.

외화 자금 조달은 하였으나 건조할 선박을 수주하여야 실질적인 조선소를 만들고 운영을 할
수 있다. 예상대로 영국은 선박 구매처 계약서를 첨부하여야 자금 조달을 해주겠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도 (고)정주영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500원 권 지폐 뒷면에 있는 거북선을 설
명하여 1974년 6월 28일 그리스의 리바노스(Libanos) 사에 25만9천톤 급 유조선 2척을
당시 3,095만$ 에 수주한 수주계약서를 첨부하여 외화조달에 성공하여 오늘날의 현대조선
소가 생기게 된 것이다. 뱃장 협상의 진가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근간에 세계 조선건조 1위의 위용을 자랑하던 한국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내용을 지면을
통하여 알고 있다. 세계적으로 선박 수주 물량이 줄었다고 한다. 파이가 적으니 나누어 가
질 수주 물량이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러한 선박 수주 물량이 줄었
다고 하면서 우리 이웃에 있는 중국은 아직 선박 수주량이 넘친다. 중국의 선박 수주 조건
을 면밀히 살피지 않아서 모르지만 예측하건데 덤핑 수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우
리가 조선 수주 호황일 때를 생각나게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듯하다. 한국이 그 동안 수주
물량이 많았다. 즉 매출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표면상 나타나는 매출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익이 얼마가 되느냐가 내실과 실속 있는 결과치가 된다. 수주 단가가 싼 덤핑으로
일감을 가지고 오니 외형으로는 많은 수주를 하지만 선박을 완전 건조하고 납품할 때마다
손해액은 더 늘어나는 구조가 되어 더 이상 저가 수주를 할 수 없게 되며 자동으로 수주 물
량은 줄어들고 조선업계는 악 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악 순환으로 조선과 해운산
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 추진되면서 거제와 울산 등 조선소들이 밀집한 지역에 경제적
어려움이 긴장감과 함께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해상 물류 운송업도 같이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굴지의 해운 사들이
힘들게 사업을 하여 흑자를 도출해야 되지만 용선료가 과다하여 어려움을 받고 있는 것이
다. 원래 해운 운송 선박들은 해운사의 소속 선박들이었다. 그러나 각 해운사 자본대비 부
채비율 제한 때문에 부채비율을 높이는 선박을 매각하고 대신 해상운송 물건들은 배를 빌려
운송하는 용선료를 비싸게 지불하기 때문에 경영에 어려움이 더 해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
다. 물론 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높으면 좋지 않다. 단순 부채비율만 따질 것이 아니라 사업
운용상 지속적으로 사업을 함에 따라 현금흐름 등으로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는 구조인지를
분석하여 제한된 부채비율이라 하더라도 재정 개선이 역력하면 자체 선박으로 운송을 하면
용선료 과다 지급에 따르는 어려움은 개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해운업을 관리 감독해야 할 지도층의 개인이 자신의 영욕에 젖어서 부정한 방법으로 운용하
도록 방치한 결과가 오늘날의 해운업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인 조선
대국을 뱃장으로 일구어 나온 선대 경영자들의 도전과 지혜를 이어받아 최근의 불황과 어려
운 조선업과 해상 물류 운송업이 다시 한 번 활기를 찾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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