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건축에서 '겨울숲'건축으로-부산 중구청소년문화의집
이동언 부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우리는 몸짱스타 하면 으레 권상우, 소지섭 등을 떠올린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탄탄한 몸매로 어필했던 스타들.… 하지만 세월이 바뀌면 트렌드에도 변화가 생기는 법. 최근에는 30~40대 사람들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으로 부상하며 중년의 몸짱 스타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어 눈길을 끈다. 꽃미남에 중년남의 이미지를 결합시킨 '꽃중년' 등의 유행어도 그 가운데 생겨났다."('꽃중년'에 관한 최근 인터넷 보도 중)
건축도 시세에 야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꽃중년의 트렌드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10~20대의 꽃미남은 형태적으로 아름답게 신축된 건축물에 비유될 수 있다면, 꽃중년은 그것의 이상적 모델들(차승원 등)을 쫓아 성형이나 운동을 티나게 행한다. 형태적으로 아름답게 개축된, 조금은 오래된 건축물에 비유될 수 있다.
부산에서도 중년의 건축물이 꽃중년 형의 그것으로 개축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리모델링이 성행하는 것은 이러한 꽃중년 열풍과 무관하지 않으리. 꽃미남은 신축된 건축물이라면 꽃중년은 개축된 것으로 아무리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고 있더라도 본바탕이 조금은 오래된 것이다. 꽃중년의 근원이자 꽃미남이 주축을 이루는 아이돌(idol)을 잠재우면 꽃중년의 열풍도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아이돌'이란 화두조차 정면돌파한 건축적 사례
부산의 상지이앤에이건축사사무소(대표이사 허동윤)은 자신들이 설계한 부산 중구청소년문화의집을 그루터('grow+터'를 합성하여 만든 말)라 부른다. 그루터는 부산 중구 보수동 예전의 인쇄골목에 위치해 있다. 대지면적 200㎡ 미만의 작은 땅에 앉은 다소 오래된 건물이다. 1984년 신축해 사용하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은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건축사사무소는 그루터를 리모델링하면서 아예 형태 디자인의 근본개념부터 바꾸었다. 디자인 개념은 겨울 숲의 재현, 아니 그것의 재현이라기보다도 추상에 더 가깝다. 이렇게 본다면 디자인 개념은 재현과 추상 사이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건물 표면의 아랫쪽 목재 루버(폭이 좁은 판을 일정 간격을 두고 배열한 것긿사진 X 참조)는 길이 약 3.4m, 건물 외부를 세포를 확대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감싸고 있는 상부의 알미늄시트(불소수지코팅) 길이가 약6.8m이다.
목재루버는 나무기둥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알미늄시트는 나무의 숲 부분을 추상적으로 해석한다. 목재루버의 위쪽으로는 흰색의 알미늄시트와 갈색의 알미늄시트가 중첩돼 있다. 마치 요즈음의 여성패션이 중첩효과를 위해 옷들을 일부러 밖으로 내밀어 놓는 것처럼. 예를 들면 바지를 입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는 식이다. 흰색과 갈색의 알미늄시트가 포개지니 중첩의 효과로 창문까지의 깊이가 훨씬 더 깊어 보인다. 내부에서 외부를 보면 곡선형의 창 자체가 하나의 그림처럼 보인다. 특히 계단이나 경사로에 인접해 있는 알미늄시트로 인해 현실이 왜곡되어 보인다 (장자의 호접몽 우화처럼 현실이 왜곡인지 왜곡이 현실인지 알 수 없다). 알미늄시트는 세상을 아름답게 조각내고 마치 종이 퍼즐처럼 끼워야할 부분을 남겨두고 있다. 알미늄시트의 구멍 부분은 또한 배경이 되어야 할 부분을 전경이 되게 만든다.
내부에서 볼 때 알미늄시트의 구멍으로 인해 전경과 배경이 도치된다. 알미늄시트의 구멍이 배경, 즉 주변을 건물 안으로 성큼 걸어들어 오게 만든다. 이웃이 더 가까이 다가와 보인다. 이웃과의 소통의 밑자리를 깐 셈이다. 또한 구멍 부분들의 나머지 부분이 실내의 그림자로 비칠 때 사람의 몸체의 그림자와 어우러지는 장관을 이룬다. 한편 외부에서 보면 내부를 가지와 줄기처럼 적당히 가리는 역할을 알미늄시트가 수행한다. 구멍난 알미늄시트는 가지와 줄기로 실내 프라이버시를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겨울 숲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삭막한 도시에 가지가 무성한 숲이
삭막한 도시에 이렇게 가지라도 무성한 숲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상도 해라 / 겨울 숲이 더 가득 차 있다니, / 앙상한 가지에 /더 많은 것들이 달려 있다니, / 바위 같은 내 마음에 / 파고 들어와 / 드디어는 뿌리내려버린 / 저 뜨거운 핏줄의 겨울나무, / 빈 가지 벌려 / 텅 빈 마음 열어 / 바람 소리 새소리 서리까지 / 차곡차곡 쟁이는구나, / 눈보라에 살 에이며/ 수액(樹液)으로 삭여내는구나,/… 내 삶은/…/옷 다 벗어버릴 수 있을까'(서림, '겨울 숲')
중구청소년문화의집은 도시 가운데 서서 겨울 숲 역할을 한다. 앙상한 가지에서 더 풍성한 것을 얻는다. 미니멀리즘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상도 아니고 더군다나 재현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알미늄시트에 형성된 겨울 숲의 앙상한 가지와 같은 것들 속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달려있다. 훌훌 다 털어버린 가지 사이에 우리는 주변의 각양각색의 것들이 매달려 있음을 본다. '진정한 꽃중년'의 건축이 되는 새로운 길은 잎을 훌훌 털어버리는 '겨울 숲' 건축이 되는 것이다. 그 건축이 모든 것을 버리고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을 가질 때 주위의 풍경을 얻어낼 수 있다.
평면 역시 겨울 숲 같다. 면적에 비해 과다인 여러 가지 실(室)들이 겨울 숲의 앙상한 가지에 달린 것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 출입구를 밀고 들어가면 자그마한 로비가 있고 오른쪽은 계단실이고 왼쪽은 열린 도서관이다. 기능도 참 명쾌하기도 하다. 북쪽의 일직선 계단이 상하의 수직교통을 분담, 여러 입주자들이 거쳐나가는 동안 아마 평면은 더욱더 기능적으로 되었을 것이다. 지하 1층에는 무용실, 라커룸, 창고가 있고 지상 1층에는 어린이 도서관과 열린 도서관이 있다. 북측 계단을 타고 지상 2층에 올라가면 인터넷 홀이 가운데 있고 좌측에는 창작공예실, 우측에는 사무실. 지상 3층에는 소강당과 동아리방. 옥상층 역시 앙상한 겨울 숲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목구조물이 서 있다.
이 건축물의 계단실 크기의 반 정도와 정면도의 전체가 겨울 숲으로 상징된다. 누가 형태는 기능에 따른 다고 했는가? 기능이 오히려 형태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형태만 잘 형성되면 그 공간 안에 기능은 어찌해도 수용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미(美)중년 혹은 꽃중년의 근원인 아이돌 세대의 생각이다. 기능에서 형태가, 형태에서 기능이 각각 나온다고 보아야 한다. 기능과 형태의 상호 주고받기 게임은 주변과의 조화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1층이 어린이 도서관, 열린 도서관이다. 상당한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공간이다. 그것의 창에 목재루버를 설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창작공예실, 인터넷홀, 사무실도 어차피 프라이버시가 어느 정도 요구된다. 이런 내부적 조건에다 아무런 특색 없는 주위 여건이 무언가 상징적인 것을 갈구하는 듯하다. 나무 한 그루의 쉼터를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 겨울 숲을 발견하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과 유사하다.
진정한 꽃중년과 비움의 지향
'진정한 꽃중년'이 되는 길은 얼굴의 부분적 약점 보완으로 되지 않는다. 사회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비우는 능력이 마비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꽃중년이 되기 위해서 얼굴을 성형하고 초콜릿 복근을 만든다 할지라도 소용없다. 그런 일들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비울 때 '겨울 숲'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빈 가지 벌려 / 텅 빈 마음 열어 / 바람 소리 새소리 서리까지 / 차곡차곡 쟁이는 구나'라고 읊는다. 비우는 능력을 회복하려면 '빈가지 벌려 / 텅 빈 마음 열어'야 한다. 내부계단을 지날 때나, 인터넷을 할 때나, 창작공예를 할 때나 이용자들은, 주로 청소년들은 늘 느낄 것이다. 겨울 숲의 풍성함을(그러나 측면계단에서 겨울 숲이 단절되는 부분에서는 당혹감을 느낀다). 특히 숲이 귀한 부산, 이런 곳일수록 황폐함을 없애기 위해 실제로 숲을 심든지 상상의 숲을 심어야 한다.
도시의 좁은 주택가 사이에 서 있는 숲 하나. 이곳은 오로지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이 있는 '겨울 숲'이다. 우리의 도시는, 우리의 건축은 언제쯤 훌훌 옷 다 벗어버릴 수 있을까? 옷을 훌훌 다 벗는 날. 꽃중년들은 '겨울 숲' 건축이 진정 그들만의 건축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