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인문관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 '김중업 씨(이하 김중업으로 표기)은 1950년대 말에 4개 대학교 즉, 부산대학교, 건국대학교, 서강대학교, 수도여사대(현 세종대학교)의 건물설계에 참여하였고, 1960년대 중반부터 제주대학의 많은 건물을 설계하였다. 김중업이 설계한 대학교 건물들은 주로 1950년 말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의 초기 건축경향이 잘 나타난다. 설계는 매우 기능적으로 이루어졌고, 또 건물의 형태는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주대학을 제외한 초기 건물들은 김중업이 자기세계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설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기서도 여러 가지 모방과 변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주장을 간략히 하면 세계적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1887~1965)의 제자로 그의 문하에서 갓 벗어난 김중업(1922~1988)은 아직 자기의 세계가 형성되지 않아 르 코르뷔지에의 세계의 모방과 변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지는 경사가 상당히 심한 계곡의 중턱에 위치해 있다. 이런 대지의 특성은 산의 계곡을 따라 선형적으로 전개된 부산의 지리적 특성과 관련된다. 첫째 이런 지형적 특징을 살리면서 건물을 삽입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건물을 통해 전체 캠퍼스 건물들을 통합하는 상징적인 구심점을 부여하기 쉽도록 이동축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건물은 어느 정도 그런 기대를 충족하고 있다. 교문으로 향하는 진입로에서 바라볼 때 뒤쪽의 산을 배경으로 이 건물은 전면에 우뚝 솟아 힘찬 기운을 허공에 내뿜고 있고, 그래서 다양한 형태로 건설된 주위의 건물들을 통합하고 있다.' 상기의 두 인용문은 한양대학교 정인하 교수의 글 '김중업 건축론'으로부터다.
중앙홀 T자형 계단의 기능
지형적 특징을 살리면서 건물을 삽입하는 것, 이 건축물은 전면에 우뚝 솟아 힘찬 기운을 허공에 내 뿜는 것, 다양한 형태로 건설된 주위의 건축물을 통합하는 상징적인 구심점 구실을 한다는 점 등의 어구를 보아 '르 꼬르뷔지에 세계의 모방과 변용이 부산대학 인문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정 교수의 주장은 오히려 설득력 없이 들린다.
그는 '김중업 건축론'에서 김중업 초기작품인 부산대 인문관의 자기정체성 상실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서 몇 가지 의문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정체성도 지니지 않은 건물이 허공에 힘찬 기운을 뿜어 낼 수 있겠는가? 모방과 변용은 자기 정체성의 확보와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다. 게다가 지형적 특징의 살림, 상징적 구심점 역할 등은 자기정체성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자기정체성이 바로 '정신'이 된다.
부산대학교 인문관에 들어서면 그 정신을 만난다. 무신경하게 보아 넘기던 것들이 정신을 싹틔우고 있으므로. 시인 정종현은 시, '정신은 어디서나 싹튼다'에서 읊조린다. '정신은 어디서나 싹튼다/ 비에 젖어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 잎에서/ 번개와도 같이 그건 싹트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배경이/ 그 움직임을 씨앗으로 하여 팽창할 때/ 그건 꽃필 준비가 되어 있으며,/ 활성(活性) 슬픔에서는 물론/ 굴광성(屈光性)의 기쁨에서도 정신은/ 싹튼다./ 그 어디서나 정신은 싹튼다.'
그렇다. 건물 구석구석에도, 천정 구석구석에도 계단 난간의 핸드레일에도, 5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의 구석 구석에도, 창문의 유리창에도 정신이 보인다. 시공간의 압축으로 인해 희미해졌지만 활성의 슬픔에서나 굴광성의 기쁨에서도 정신이 싹튼 흔적이 있고 지금도 싹튼다. 슬픔에서나 기쁨에서도 이 대학의 정신을 가진 것이 이 중앙홀이다.
중앙홀은 T자형 계단 좌우면이 5층까지 열려있는 다목적 중앙 홀이다. 친구를 기다리는 대기실, 풍광을 즐기는 정자, '열공'하는 학습실, 휴식하는 휴게실, 햇빛과 달빛, 별 등을 만나는 관측소, 이런 사소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대학의 정신들이 소통하여 자기정체성을 구축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 정신은 좌로 우로, 앞으로 뻗친다. 좌청룡, 진산, 우백호의 형국이다. 진산에서 뻗친 정신(氣)은 왼쪽의 청룡 부분이 강해 진산에서 청룡부분까지는 짧고 진산에서 백호까지는 허해서 길다. 앞의 구월산은 안산(案山)인 셈이다. 온천천은 풍수에서 말하는 내수(內水)이고 말이다. 중앙 홀의 정신은 여름날 아침이 되면 안다. 여름날 아침에 중앙 홀을 들어가 보면 안다. 모듈러에 의하여 요리조리 박아 넣은 장변의 직사각형의 붙박이창들로 보이는 물기 젖은 나뭇잎을 보면서 시인 정현종의 '아침'을 되뇐다. '새날/풋기운!'을 느낀다. "정말 운명같은 것은 없나봐" 라고 중얼거린다.
인공선과 대조된 자연선의 아름다움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아침에는 중앙홀을 중심으로 정신을 만난다. 워낙 기운이 풋풋해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설사 저녁이나 밤에 축 늘어진 나에게 운명이 엄습해온다 할지라도 아침에는 의기충천하노라. 마치 젊은 시절에는 노년시절이 두려운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중앙홀 이 곳이 학교 내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새벽에 동이 틀 때 인문관이 빛을 받아 생기는 아우라를 통해 정말 '새날/풋기운!'을 느낀다.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인문관과 그것의 아우라을 보고 있노라면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건물의 주요 배치를 보자. 지상 1층을 보면 우선 중앙홀이 T자형 계단이 있는 계단실이다. 좌측에는 통합관리실이 있고 우측에는 필로티가 연속적으로 70m 가량 있으며 주먹처럼 생긴 부분에 12개 학생회실이 있다. 2층에는 중앙홀 좌측에는 화장실, 강의실, 정보검색실이 셋 있다. 우측에는 학생회의실,여학생, 강의실이 자리했다. 지상3층 평면도의 골격을 보면 중앙홀의 왼쪽은 화장실, 전시실, 자료전시실, 자료보관실이, 우측에는 강의실 등이 있다. 지상 4층 좌측은 과제도서실, 전화기계실, 일반실습실 2개, 강의실, 멀티미디어실이다. 5층도 유사한 구성이다. 평면 및 단면은 시원하고 대범하다. 김중업의 말처럼 고구려의 기상을 닮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째째함과 옹색함이 판을 치는 판에, 부산대에서 유일하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 곳이리라.
한편 흰 벽선을 따라 가지런한 5층의 지붕선은 산과 평행을 이루면서 쭉 뻗어나간다. 인문관의 흰 윤곽선이 자연과 절묘한 대조를 이루어 인공선과 대조된 자연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선과 대조된 인공선은 얼마나 매혹적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뒤편에 선 산학협동관을 필두로 여러 건물들이 이 선을 파괴한다. 이 선이 부산대 공중의 중심축이 되어야 했다. 건물들을 지을 때 인문관의 지붕선이 축이 되어 다채로운 선의 연주가 이루어졌더라면 아름다운 선들의 합창이 캠퍼스에 펼쳐졌을 것이다. 인문관의 평행선은 허공의 중심축이 아니라 조형의 중심축이 되었어야 했고, 되어야 한다.
문화재 지정 가능성 보여
캠퍼스 자체가 김중업의 정신세계의 변이를 이루면 어떠했을까? 건축가들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과 김중업의 정신세계의 만남, 이런 식으로 건물들이 지어졌더라면 색깔, 형태, 매스(덩어리)가 각양각색을 이루면서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조형세계를 이뤘을 것이다. 또한 김중업의 예술세계와 학생들이 만나 오색찬란 다양한 학문세계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부산대학교 인문관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인문관 옆 교수 연구동인데 너무나 다른 건축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옹색한 필로티, 답답한 서쪽 창들, 모듈러의 차이. 앞으로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인문관에 교수연구동이 너무 바싹 다가가 있어 그것을 감상할 기회를 미리 박탈한다. 인문관의 기운에서 생성된 교수연구실, 더 나아가 인문관에서 나온 상상력에 의해 생성된 캠퍼스, 정말 그 어디서나 김중업의 정신이 싹트는 살아있는 아름다운 캠퍼스에 '새날 풋기운'이 풋풋하게 올라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