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삶터] 길과 거리의 풍경

서울의 삶터 | 2012-01-03 오후 11:14:52 | 조회수 : 2300 | 공개

길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수단이다. 그래서 서울에는 단지 빨리, 효율적으로 사람과 물자를 차로 이동시키기 위한 길이 많다. 88 올림픽대로, 청계천 고가도로, 동부간선도로 등이 그 예가 된다. 이런 길은 소위 자동차 전용도로라고 불리우는데 여늬 길과는 달리 보행자를 위한 건널목이 없어 차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쌩쌩 달릴 수 있다. 물론 길 양쪽으로 사람들이 걸을 수도 없게 되어있다. 그야말로 기능에 충실한 길이다.

그런가하면 천천히 걸으며 즐기기 위한 길도 서울에 아직 남아있다. 명동거리, 인사동 골동품 거리 등이 이런 길이 된다. 길을 걷다가 길 양쪽으로 난 가게 앞에 멈추어 서서 갖가지 상품들을 구경도 하고 때로는 쇼윈도우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도 있다. 물론 오가는 행인들을 구경하고 또 그들에게 구경 당하기도 할 수 있다. 요즘 한창 유행인 붕어빵이나 오뎅 장수를 만나면 가다말고 멈추어 서서 군것질도 가능한, 머물고 싶은 길이다. 명동거리, 인사동거리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들은 단순히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 말고도 무언가 할 수 있는 길을 특별히 「거리」라고 하고, 漢字로는 「街」를 쓴다.

이에 비해 같은 「길」의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路」는 올림픽대로, 청계천 고가도로 등 차로 빨리 갈길을 가는 길에 쓰인다. 그도 그럴 것이 「路」는 「足」자와 「各」자가 붙어 이루어진 글자이다. 각기 갈 길을 간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차가 없었으니 「車」 대신 「足」자를 붙였을 따름이다.

거리의 뜻을 가진 「街」자를 보면 참 재미있다. 「街」는 「行」자 사이에 「土」자가 두개 겹쳐 있다. 「行」은 무언가 한다는 뜻이고, 이 행함이 흙길 양쪽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일 터이다(옛날에는 길에 아스팔트나 시멘트 보도 블록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길이라는 것이 그냥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길 가에서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거리는 명동거리를 가 보면 알 수 있듯이 보통 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없다. 명동거리는 여러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적당히 혼잡하면서 그 혼잡 자체가 더욱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된다. 군중 속에 적당히 숨을 수 있는 편안한 도시적 익명성과 주변 상가들의 화려함이 교묘히 섞여진 사람의 거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명동거리에도 차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는 차들은 걷는 속도보다 느리다. 사람도 차도 서로 피하느라 귀찮을 터인데 별 그런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온통 축제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 차 앞을 날렵하게 뛰어 지나가는 무쓰바른 청년의 모습도 보기 좋고, 차창에 비치는 밤의 명동거리 네온싸인이 차가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것도 나름대로 추상화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도로와 거리. 서울의 길은 이 두가지인데 도로는 자꾸 늘어나는데 거리는 자꾸 줄어든다. 도로는 돈만 들이면 서울시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 땅을 사들이고 아스팔트 포장을 잘 해 놓으면 차들은 금방 새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거리는 돈이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는 서울 시민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아무리 명동거리와 같은 폭으로, 같은 포장재(鋪裝材)로 만들어 놓아도 그 길이 명동거리 같이 활기찬 사람의 거리로 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여러 가게가 들어서고 없어져 가면서, 점차 구두나 옷가지 등 몇가지 유사한 상품을 파는 가게들로 자리를 잡아야 하며, 이것이 서울시민들에게 알려져 일부러 이 거리로 찾아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명동거리, 인사동 골동품거리, 무교동 낙지골목, 방배동 카페 골목, 석촌호수변 포장마차거리 등이 바로 서울의 살아있는 거리명소들이다. 이중에서 낙지골목은 도심재개발에, 포장마차거리는 롯데월드 건설에 밀려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이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서울의 거리가 더 이상 없어지지 않도록 아낄줄 아는 市 행정가들의 안목이 아쉽다.

어린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아도 길은 두 종류가 있다. 놀 수 있는 길과 놀 수 없는 길이다. 놀 수 없는 길은 물론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다. 요즈음 이런 길은 대부분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어 있는 큰 길이다. 놀 수 있는 길은 대개가 주택가 골목길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팽개치고는 집밖으로 뛰쳐나가 골목길에서 신나게 놀던 추억들을 모두 가지고 있으리라. 술래잡기, 구슬치기, 고무줄넘기 등 해질 때가지 놀다보면 어느덧 엄마들이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야 이제 들어와 밥먹어라」하고 불렀다. 아쉬운 표정을 한채 흙 묻은 손으로 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지난 날들이다.

요즈음 아이들, 특히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놀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놀이터라고 불리우는 곳인데, 아파트를 지어 분양을 하려면 이것을 갖추어 놓아야 서울시에서 건축허가를 내준다. 그 기본발상은 이렇다. 어린 아이들이 차가 왕래하는 아파트 단지내 도로에서 놀면 위험하니까 차가 들어 올 수 없는 안전한 곳에 놀이터를 만들어 각종 놀이기구를 두자는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이 책상 앞에서 생각하기에는 정말 그럴싸한 아이디어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파트 단지 놀이터치고 아이들이 몰려 재미있게 놀고 있는 놀이터를 보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오히려 차들이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棟과 棟 사이 주차장에서 바글바글 거린다. 오가는 차를 피해가며 주차된 차들 사이로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을 보자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주택가 골목길이라 해서 그 상황이 더 낫질 않다.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길 한 쪽에는 언제나 차들이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여기서 공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한다. 차를 피하려면 그야말로 담벼락에 바싹 붙어야 할 지경이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놀이기구가 잘 갖추어진 놀이터를 외면하는 데는 다 그 까닭이 있다. 아이들이 집밖에 나가 놀 때면, 아이들이나 엄마들이나 서로 멀리 떨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대문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우리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있었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도 아파트 발코니 너머로, 또는 부엌 싱크대 위에 난 작은 창문으로 엄마가 머리를 내밀어 놀고있는 자기를 보고 「⃝⃝야」하고 이름을 부를 수 있어야 안심이 된다. 아이와 엄마는 아직 심리적으로는 연결이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이터는 안전하게 하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아파트 건물을 먼저 배치하고 남는 짜투리 땅에 놓기가 편했는지는 몰라도, 아파트 단지내에서 가장 외딴 곳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밖에서 노는 아이들과 집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시선으로 또는 목소리로 연결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놀이터 대신 위험하더라도 아파트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에서 노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겁이 많은 엄마는 자기 아이를 아파트 주차장, 또는 차가 비집고 들어오는 주택가 골목길에 내보내지를 않고 집에서 비디오 게임만을 시킨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대장」은 알겠는데 「골목」대장은 무어냐고 물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서울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거리, 서울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골목길이 아쉽다. 아무리 도로와 주차장이 시급하다 할지라도 사람 사는 서울에 사람의 공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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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터'는 제가 지난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서울 상황과는 달라진 것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그 씨리즈를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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