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제 시론(20141022)

기본카테고리 | 2014-12-03 오후 3:48:36 | 조회수 : 1113 | 공개

'공공건축가 제도' 제대로 운영하려면


2010년 대통령이 국정지표로 '공정사회 구현'을 제시하면서 시작된 공정한 사회에 대한 담론의 열기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반칙과 편법이 만연해 있고, 특히 기득권자에게 더 많은 선택의 권한과 기회가 주어진다는 믿음과 이로 인한 사회적 약자로서의 피해의식과 불신이 우리들 속 깊숙하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는 균등한 기회, 공정한 룰과 투명한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고 합리적인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많은 제도와 규제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든 제도와 규제가 오히려 건축프로세스의 공정한 수행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공공사업의 예산절감과 합리적인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했지만 과도한 경쟁과 담합을 유발시킨 '최저가 입찰제'가 대표적이다. 건축설계 분야에서는 최저가 입찰제의 부작용을 개선하고 공공건축물의 품질과 디자인 수준 향상 및 도시 경쟁력 증대를 위해 발주제도를 개선, '설계경기(디자인공모)'를 시행하고 있으며 서울시의 경우 2013년 4월부터 서울시 및 소속 자치구에서 발주하는 공공건축물에 대하여 가격입찰을 중단하고 디자인 공모방식으로 설계자를 선정하고 있다. 실력은 있지만 초기 투자여력이 없는 회사나 능력 있는 신진건축사들에게 참여기회를 보장하고자 하는 취지 역시 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형 공공건축가(이하 공공건축가)' 제도 또한 시행중에 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공공건축가 제도는 시작부터 반응이 엇갈렸다. 기본적으로 공공건축가에 선정되지 못한 건축사 입장에선 새로운 진입장벽이 생긴 것이다. 공공건축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아주 작은 규모라서 봉사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공공건축가들의 항변도 있지만 소규모 건축시장을 대상으로 설계를 수주하던 건축사들 입장에서는 한 순간에 시장을 빼앗긴 상황이고 공공건축가들 입장에선 업무독점인 모양새다. '그들만의 리그'다. 또한 신진건축사 육성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기성건축사들도 설계 참여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제도운용 과정에서도 편법과 반칙의 연속이다.
서울특별시는 2011년 10월 77명의 공공건축가를 공고하고, 2012년 2월 이들을 위촉했다. 건축기본법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서울특별시 건축기본조례가 2012년 1월 5일에 제정, 시행되었으니 자치조례의 제정을 염두에 두고 선 조직 후 형식적으로 조례제정 후 운영을 시작한 셈이지만 변칙적으로 운용됐다. 2011년 12월 9일 SH공사는 긴급용역 입찰공고(SH 전자공고 제2011-295, 296호)를 통해 장기전세 설계용역과 공공원룸텔 설계용역을 발주했는데, 공공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지명경쟁입찰이었다. 제도적 법령 근거 없이 시행된 편법 발주였다. 입찰참가자격 제한도 지켜지지 않았다. 공공원룸텔 설계용역에, 해외 건축사자격증을 소지한 공공건축가 A의 명의가 아닌 A가 소속된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사 건축사 B의 명의로 제안서가 제출되었고 결국 건축사 B가 1위로 발표됐다. 공공건축가는 소속된 조직과는 무관한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인정된 지위다. 그리고 해외 건축사자격 소지자의 경우 국내에서 건축사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건축사법에 의거, 국내 건축사와 협업을 신고하고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해야 한다. 공공건축가 A는 2013년 12월이 되어서야 협업 신고를 했으니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건축사법'에 의거, 공공건축가로서 입찰참가가 불가능했음에도 서울특별시와 SH공사는 타인의 명의를 이용한 반칙상황을 눈감아준 꼴이다. 한편 SH공사는 2012년 3월, 2년 임기의 '서울특별시 SH공사 신진건축가' Pool을 구성, 자체적 운용을 도모했으나 공공건축가 Pool을 고집한 서울특별시의 반대에 부딪혀 2년 동안 프로젝트 단 1건만을 자체 Pool을 대상으로 발주했다. 전형적인 갑의 횡포다. 지난 5월 서울특별시는 해외 건축사자격 소지자에게 국내 건축사와의 협업등록을 독려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이와 연계해 서너 명의 국공립대학교 소속 교수가 국내건축사와 협업신고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공무원법 상 영리행위와 사기업체 겸직 금지에 위배 여부의 판단도 필요하다. 이러한 편법, 반칙 등의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공공건축가들의 업무범위에서 설계자로서의 역할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
공공프로젝트는 결과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전 과정이 공정하여야 하며, 모든 판단과 결정이 공정성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민간전문가 참여 제도는 법적 근거에 따라 시행해야 하며, 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이 보장되어져야 한다. 민간전문가의 업무범위는 민간전문가의 공공성과 권위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 민간전문가가 공공 프로젝트의 설계자로서 지자체와 계약을 하게 되면 갑과 을의 관계가 성립, 그 순간부터 설계용역업자가 된다.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민간전문가 측에 조금이라도 이윤이 발생하는 순간 금전적 이익이 생기는 지위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선정과정 역시 논란이 일 수 있다.
국내와 유사한 해외 민간전문가 운용 사례를 보면 어떠한 경우에도 민간전문가가 공공 프로젝트에 설계자로서 참여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몇몇의 건축물보다 기획, 발주, 사업관리 등 전반적인 공공 건축 운영 시스템에 개입, 이에 대해 고민하고 제안하는 것이 공공건축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울특별시의 응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첨부파일
건설경제(2014.10.22).pdf (788K)
건설경제(2014.10.22).pdf (788K)

태그 :
댓글 : 0
이전 포스트 :: 건설경제 시론(2014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