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제 시론(20140812)

기본카테고리 | 2014-12-03 오후 3:45:40 | 조회수 : 1179 | 공개

정부의 '안전' 대책, 국민들은 '안심'할까?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를 비롯한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위험사회'라고 규정한다. 복잡한 고도 기술화로 인해 그만큼 인간 주변에 위험요소가 증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자연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인공적인 재해도 빈발하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징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2012년 이웃나라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는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올 해들어 국내에서도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강당 붕괴, 세월호 침몰 등 대형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 소중한 생명들을 앗아가고 있다. 이들 사고 중 대부분은 안전에 대한 불감증과 부주의가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과거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오로지 생산성의 극대화만이 살길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노동경쟁력의 일부가 안전을 희생한 대가였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고 소득수준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 같은 사고(思考)와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상존하고 있으니 지난 몇 개월간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고는 사회 전반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 Maslow)는 욕구위계이론에서 인간의 기초욕구인, 굶주림이나 갈증 등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한 생리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발현된다고 설파했다. 이는 국민들이 정부에 기대하는 요구 중에 안전에 대한 보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 정부의 존재이유 중 큰 부분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인 것 있다.
최근 대형사고 이후 정부 각 부처에서는 안전강화 대책이 쏟아지고 있고 국회 역시 안전 관련 법안발의가 연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발생했으니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안 마련을 위한, 물리적으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질 수 없는, 지극히 짧은 기간에 마련된 정책과 법안의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안전 공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안전의 정도를 일컫는 '안전성'은 리스크(risk)의 함수이며, 일반적으로 '안전'은 리스크의 회피(avoidance)와 절감(mitigation)이 적절히 이루어져 허용 가능한 정도(tolerable level)로 리스크 수준이 억제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틀이 이른바 '위기관리(risk management)'다. 즉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위험원을 규정․평가 및 제어함으로써 최소의 비용으로 그 결과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작업이다. 허용 가능한 리스크의 범위는 더 이상 리스크 저감이 불가능하거나 리스크의 저감을 위한 비용이 너무 높아서 저감효과(이익)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허용되는 범위다. 또한 허용 가능한 리스크일지라도 반드시 잔여 리스크가 존재하므로 리스크 저감에 필요한 비용을 고려하고 합리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낮은 수준으로 리스크를 억제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이며 잔여 리스크의 정보에 대한 공개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한편 과학적인 안전기준에 이르렀어도 사회나 국민들의 안심감을 가졌다고 만은 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안전은 안심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국어사전에는 안심이란 '근심․걱정 없이 마음을 편안히 가짐'이라고 되어있다. 안전이 일종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에 근거하는 것이라면, 안심은 인간의 주관적․심리적 감각이나 정신적인 개념을 포함하는 것이다. 앞서 서술한 리스크의 개념은 자연과학적, 혹은 공학기술적으로 정의된 '객관적 리스크(objective risk)'다. 이는 협의(俠義)의 리스크이며, 인간이나 사회가 과학기술 사고나 자연재해를 어떻게 인식하고 리스크의 성질이나 정도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형성되는 이른바 리스크 인지(risk perception)에 따른 '주관적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안심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선 과학기술에 의해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재해리스크'를 국민이나 사회가 어떻게 분배하고, 부담하며, 받아들일지를 검토해야 하며, '신뢰(trust)', '공평(equity)', '공정(fairness)' 등이 기본 요소다. "리스크를 어떻게 수용하는가, 혹은 '리스크의 허용성'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사회나 사람들 또는 이해관계자가 논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다. 이를 토대로 리스크를 어떻게 공평․공정하게 분배․부담하고, 어떻게 수용할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배적'인 공평․공정함도 필요하지만, '리스크 수용'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절차․과정상의 공평․공정함이 특히 중요하다. 즉,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거나 '발언의 기회'를 보증하는 공정․공평함이 중요하다. 이는 국민들이 리스크를 수용하기 위한 불가결한 요건이며, 이러한 것이 안심감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안전․안심 공학적 측면에서 볼 때 안전강화를 위한 최근의 정부정책과 국회의 입법안은 부족한 부분이 많다. 총체적인 틀을 보고 체계적이고 섬세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 감정에 치우친 즉흥적인 법안 또한 눈에 띤다. 이런 대책과 법안들에 국민들이 공감하고 안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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