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양서원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7 오후 2:29:44 | 조회수 : 847 | 댓글수 : 0 | 공개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 어의(御醫)이면서 명신인 장경공 최사전을 중심으로 그의 후손 4명(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 문절공 유희춘, 충열공 나덕헌)을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최사전은 의술로써 벼슬에 나갔는데 왕의 총애를 받아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다. 무양서원은 1927년에 탐진 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서 세운 서원이다. 서원의 이름은 광주의 옛 지명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강당인 이택당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합의문과 합인문이 있다. 합의문을 ...

관풍루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7 오후 2:25:10 | 조회수 : 842 | 댓글수 : 0 | 공개
옛날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조선 선조 34년(1601)에 세웠다. 관풍루의 원래 이름은 ‘폐문루(閉門樓)’로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이름을 바꾼 것은 감사가 이 건물 위에서 세속을 살핀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이다. 건물 4면에는 난간을 설치했으며, 뒤편으로는 ...

관해정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7 오후 2:21:54 | 조회수 : 588 | 댓글수 : 0 | 공개
회원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서원곡이라 부르는 무학산 계곡 일대에 관해정이 자리잡고 있다. 회원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 한강 정구(1543∼1620)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의 제자들이 세웠던 곳이다.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관해정만 남아 있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에는 44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정구 선생이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한다. ...

양주향교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7 오후 2:18:40 | 조회수 : 671 | 댓글수 : 0 | 공개
향교는 공자 등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국립교육기관이다. 양주향교는 태종원년 1401년에 처음 지었으며,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58년 다시 지었다.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입구인 외삼문을 지나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 내삼문 안쪽에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 ...

만정헌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7 오후 2:15:47 | 조회수 : 860 | 댓글수 : 0 | 공개
만정헌은 약 500여년전 현감벼슬을 지냈던 김자간이 경주에서 울산 명촌리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세운 경주 김씨의 정각이다. 현재 건물은 약 200여년 전에 고쳐 지은 것으로 1칸이던 온돌방을 2칸으로 늘려 지었다. 규모는 앞면이 3칸인데 비해 옆면은 왼쪽이 3칸·오른쪽이 2칸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에는 ‘명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둥근기둥(두리기둥)에 싸리나무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

숭절사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6 오후 12:29:21 | 조회수 : 751 | 댓글수 : 0 | 공개
숭절사는 1923년 세운 사당으로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함께 복위운동을 도모했던 박심문(?∼1456)을 모신 곳이다. 박팽년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세종 17년(1434) 문과에 급제한 후 단종 2년(1453)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으며 세조 1년(1455)에는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는 중 발각되어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

증심사 약사암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6 오후 12:26:13 | 조회수 : 1013 | 댓글수 : 0 | 공개
증심사는 철감선사 도윤이 신라 헌안왕 4년(860)에 세운 절로 송광사에 딸린 절이다. 증심사 입구에서 약사 계곡을 따라 새인봉 쪽으로 오르다보면 비교적 규모를 갖춘 약사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철감선사 도윤이 증심사를 세우기 직전인 850년경 ‘인왕사(人王寺) ’라는 이름으로 지었고, 고려 충렬왕 32년(1306)년 절을 고쳐 세우면서 ‘약사암 ’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74∼1984년에 복원하여 오늘 ...

구암서원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6 오후 12:21:56 | 조회수 : 838 | 댓글수 : 0 | 공개
구계 서침의 덕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이다. 서침은 고려말∼조선초의 변혁기에 향촌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에 노력하였다. 구암서원은 현종 6년(1665) 세웠고,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그 후 1924년 유림이 다시 지었다. 신명여고 운동장 오른쪽 언덕 아래에 북동쪽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경앙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유허비각이 있고 맞은편에 강당이 있다. 숭현사는 강당 바로 뒤에 3m쯤 떨어져 있다. 건물은 앞면 3칸&midd ...

금남 문절사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0 오후 8:13:24 | 조회수 : 910 | 댓글수 : 0 | 공개
매죽헌 성삼문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성삼문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사육신의 한사람이다.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세종 20년(1438)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명나라에 가서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해와서 1446년 10월 9일에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박팽년, 허조등과 단종복위 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세조에게 모진 고문을 받다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절신으로 오늘에 이르기 ...

연일향교

작성자 : 보수 | 작성일 : 2015-03-10 오후 8:10:05 | 조회수 : 677 | 댓글수 : 0 | 공개
향교는 지방에 세운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 등 성현에게 제사 지내는 기능과 학생을 교육하는 강학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연일향교는 조선 중종 2년(1507)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 숙종(재위1624-1720) 때 대용면 지좌동에 다시 세웠는데, 고종 4년(1867)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이 향교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뒤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배치하였다.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 25분을 모신 곳으로, 앞면 3칸·옆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