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땅 이야기 - 시작하면서
제주도 땅 이야기
| 2016-05-15 오전 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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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땅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이 땅에서 살면서 남기는 것이 지문(地文)이고 문화다.
문화는 그 도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그렇다면 땅(공간)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심가치는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후손들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는 땅을 제대로 활용하라는 사명을, 후손들에게는 이유 불문하고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빌 하라리는 도시계획이나 문화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결과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도시계힉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공복지를 위해 수립된 것이 아니다. 집권층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도시계획은 헌법에도 나와 있듯이 공공복리를 실현하는 수단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남을 개발하였다.(손정목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 중) 수도권 5개 신도시 역시 서민들의 주거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런 저런 사유로, 그동안 우리는 땅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에 대한 공론화 과정에 소홀했다. 왜냐?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이런 가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시계획이나 도시디자인을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원희룡 도지사가 18억 원이라는 예산을 들여 제주미래비전계획을 수립했지만, 이에 대해 알고 있는 도민이나 전문가가 몇이나 될까?
그 보고서에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를 표방하고 있지만, 현실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존도 불투명하다.
지금과 같이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주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모래위에 성을 쌓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도지사는 청정과 공존을 강조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행정절차도 어겨 과물해변 해수풀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도지사와 담당공무원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중산간을 보호한다고 했지만, 중국자본이 추진하는 대규모 복합리조트가 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되었다. 도지사는 청정과 보전을 외치지만, 공무원들은 도지사의 구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행정을 추진하고 있는 게 제주도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보 전파력이 강한 조직이 공무원 조직이다. 공무원이 제주의 아름다움과 미래비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지 않으면 제주도의 지속가능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치열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살처럼 스쳐가는 기회도 잡을 수 있다. 그 기회를 잡지 못하면 그 기회는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의 중심가치를 무엇으로 설정해야 하는가?
경관 및 관리계획에서 제시되었던 지문이 살아 있는 서사적 풍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도민들에게 와 닿지 않는 개념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떠한 위정자나 정치인도 해결하지 못한 농가부채를 터무니(터는 땅지, 무니는 무늬 문 그래서 地文입니다)없이 올라버린 부동산 가격이 해결해주고 있다. 10필지 팔아도 갚지 못했던 농가부채를 1필지만 팔아도 해결될 수 있으니 농민들에게는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으랴.
이제 농사를 지어야 할 농민도 시간만 나면 부동산 얘기를 한다. 농사 얘기가 아니다. 그저 자기가 농사짓는 토지가 어떻게 하면 개발될 수 있는 땅인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난개발이 문제라고 지적해대지만, 농민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난개발이 농민을 살려주고 있다.
당장 살아가는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인 것이다. 대통령이나 도지사가 농민의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꾼들이 해결해준 일이다.
지금의 상황은 최소한 농민들에게 실리가 돌아가는 상황이다.
실리가 돌아간다고 지금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람직한 현상인가? 이는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도시에 사는 노동자는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교환할 수 있는 토지의 양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회정의와 거꾸로 가는 상황이다.
농지가 택지로 변하는 것은 환경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너질 것만 같은 돌담이 풍파에도 잘 견뎌낸 곳이 제주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제주의 정체성이다. 무분별한 건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주도의 문화유산인 돌담이 사라지고 있다. 건설이라는 쓰나미 앞에는 한 없이 약한 것이 제주의 정체성이고 아름다움이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한지도 40년이 훌쩍 지났다. 이 보고서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었다. 지속가능성 정말 어려운 단어다. 경제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리가 돌아가고, 사회적으로는 정의롭고 공정해야 하며, 환경적으로는 수용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지금 제주도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청정과 공존이 아닌,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한 제주가 될 때 제주의 아름다움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속가능한 제주를 만들 것인가? 이에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지속가능한 제주를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인식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효율적인 평가수단이 될 수 있다.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 헬스케어타운, 신화역사공원 지금 개발센터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지속가능성이라는 잣대로 평가해보면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막연한 개념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사안별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부터 시작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