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NEW-제주‥도시를 디자인하자 … 하천경관
제주의 하천은 우기를 제외하곤 맨바닥이 훤히 드러나는 건천이 대부분이다.
◀ [사진 설명] = 도시를 관통하는 제주의 하천은 도심에서 유일하게 살라 숨쉬는 경관이다. 제주시 오등동 방선문(위)과 제주시 외도천 하류 일대.
따라서 친수공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천=물’이라는 등식에 익숙해 있는 주민들에게 건천은 별로 매력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숨겨진 매력이 있는 게 제주의 건천이다.
제주 건천의 첫째 매력포인트는 하저(河底.하천바닥)에 널려 있는 거대한 암석군이다.
그 크기나 모양, 배치형태 등을 볼 때 천연의 ‘돌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다.
급속한 도시화·무관심에 밀려 방치·훼손
"새로운 시각으로 건천에 대해 생각할 때"
쉽게 접하는 탓에 우리는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렵지만 외지인들에겐 자연석의 신비감을 느끼게 해주는 숨은 경관자원인 셈이다.
하천 주변의 다양한 식생도 독특한 제주 건천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빼어난 경관요소다. 빽빽히 우거진 숲과 계절따라 변화무쌍한 색채의 향연, 그리고 다양한 종의 생물은 제주 건천이 가진 최대 경관미로 손색이 없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있는 이 같은 특이한 경관은 하천이라기보다는 계곡 특성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그만큼 제주건천도 관광자원으로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경관에도 불구하고 제주 건천은 급속한 도시화와 무관심에 밀려 방치되고 훼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여름철에는 ‘개고기 파티장’ 정도로 전락하는 등 주민들에게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한천 중류에 자리잡은 제주시 오라동 방선문.
제주를 찾았던 목사, 판관 등 선인이 남긴 시구가 새겨진 240여 개의 암벽 마애각과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구춘화(瀛邱春花.들렁귀에 핀 봄꽃)로 유명한 경승지다.
비록 건천이긴 하나 신비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암벽과 하저의 기암괴석, 하천 주변을 뒤덮고 있는 풍부한 숲은 더없이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장을 찾은 날, 옛 선인들이 풍류를 즐겼던 그 자리엔 주민 10여 명이 가스통과 커다란 솥단지를 옆에 두고 ‘개고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인근의 일부 바위와 수목은 시꺼멓게 그을려 불을 피웠던 흔적이 확연히 드러나는 등 경관의 훼손 현장은 어렵지 않게 곳곳에서 목격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행정당국의 관리와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도시공원 지구로 지정돼 개발행위만 제한될 뿐 문화재 지정이 안돼 관리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동행한 이정민 박사는 “주민들이 아까운 자원을 남용하고 있다”며 “천하를 얻은 지역이라 그런지 조그마한 관광자원은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박사는 “방선문의 경관적 가치를 고려할 때 진입도로 확장.정비와 주차장 조성 등으로 접근성을 확보하고 최소한의 편의시설 및 안내체계를 갖춰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경우 방선문으로 통하는 도로변에 있는 교도소 주변 노변을 따라 향토수종을 밀식하는 등 교도소 시설을 차폐시키기 위한 방안도 모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방선문이 관광자원적 가치가 높다면 용천수가 흐르는 외도천의 하류에 있는 월대는 친수공간으로서 개발 가치가 더할나위 없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도 깨끗한 물과 주변 환경, 편의시설 등 친수공간 조성을 위한 노력이 엿보이지만 주변 경관 디자인을 더욱 공격적으로 개선해 공원화하고 어린이 자연학습장 등 좀더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도시하천 또한 삭막하고 무기력한 도심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녹지공간이다.
폭이 좁고 골이 깊어 계곡 특성을 지닌 전형적인 제주의 하천으로, 녹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시경관을 보완해주는 귀중한 녹지경관이지만 그 효용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일부는 복개로 인해 녹지축을 단절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흘천 등 신제주 일원의 경우 주변에 공원을 조성해 쉼터로 활용 중이지만 동부생활권을 가로지르는 화북천, 삼수천 주변 등은 접근성을 높이고 친수공간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병걸 제주대 교수는 “도시를 관통하는 하천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을 쉬는 경관”이라며 “새로운 시각으로 제주의 건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기획 취재팀=홍원석·최일신 기자
◆ 사진=김영하 기자
◆ 자문위원=이병걸 제주대 교수·이정민 박사